212화
[지금 어디지?]
알렉스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알렉스 : 무슨 일입니까. 지금 막 색출 작업을 시작한 참입니다.]
[아마 네가 있는 곳으로 에미미가 찾아갈지도 모른다.]
[알렉스 : 예? 에이미가 말입니까?]
[그래. 네가 줬던 파편에서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파편의 한가운데에서 검은색 기운이 피어올랐어. 아무래도 알 수 없는 힘을 수혈받은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너를 노리려는 것 같다.]
[알렉스 : 강민씨를 노리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가능성도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를 않아.]
잠시 알렉스의 침묵이 이어졌다.
[알렉스 : 그렇군요.]
하지만 오히려 알렉스는 차분했다.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아니면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알렉스 :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추격을 당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아 있죠. 녀석들에 대한 대비는 이미 충분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잠시의 침묵 뒤.
[알렉스 : 이번 건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을 건 분명하군요. 일이 꽤 커졌으니까요.]
[그래. 맞는 말이다.]
[알렉스 : 도와 주시겠습니까? 제가 미끼기가 될 테니 이번에 커다란 물고기 하나 낚아 보는 거죠.]
[좋은 생각이다.]
[알렉스 : 좋습니다. 그러면 이곳으로 오십시오.]
알렉스는 내게 자신이 있는 위치를 전송했다.
***
'말도 안 돼.'
에이미.
그녀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보며 저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 말도 안 되는 힘은…!'
이전의 그녀가 가지고 있던 힘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생겨났다.
분명 같은 사념의 힘이지만, 달랐다.
'뭐지? 어떻게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자신에게 이 힘을 준 남자.
블러드의 최상위 랭커들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에 대한 의문이 더 커져가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념의 기운의 농도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짙어졌다.
그녀의 가슴팍에 새겨있는 붉은 흔적의 중앙부가 검게 물들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손짓 하나만으로도 수만 명의 플레이어를 짓눌러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마어마한 힘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힘이 솟구쳤다.
'이거면… 정말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강민.
'한강민. 그자를 쓰러트릴 수도 있을지 몰라.'
분명 남자는 강민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힘을 손에 넣게 된 순간, 에이미는 자신의 힘을 과신하기 시작했다.
'알렉스와 한강민. 두 사람을 한 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가능해.
라고 그녀는 읊조렸다.
그만큼 그녀에게 생겨난 변화는 이성의 판단을 흐리게 할 만큼 커다란 변화였다.
'이번 일만 끝내면.'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다른 블러드의 플레이어들.
'네놈들이 다시 내 눈앞에서 고개도 못 들게 만들어 주겠어.'
분했다.
남자의 말대로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가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똑같은 결과가 일어났을 것이다.
'후회하게 해 줄 거야.'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에이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역시 알렉스.'
알렉스를 사로잡아 알렉스를 미끼로 한강민까지 함께 사로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알렉스. 그 쥐새끼 같은 놈.'
문제는 어떻게 알렉스의 위치를 찾아내느냐는 것.
귀신같이 신출귀몰하는 알렉스의 위치를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그동안 템플이 블러드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 왔던 만큼, 블러드에서도 템플.
특히나 알렉스에 대한 많은 데이터들을 축적해 왔다.
'아무리 신출귀몰하다고 해도 놈의 꼬리를 잡는 건 충분히 가능하지.'
그리고 지금의 에이미는, 이전의 에이미가 아니다.
이전까지는 꼬리를 잡고서도 번번이 알렉스를 보내줘야 했지만, 지금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반드시 내 손으로 잡을 거야.'
에이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가 볼까.'
그리고 에이미가 몸을 움직였다.
***
"너는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정말 괜찮은가?"
내가 알렉스의 뜻을 재차 확인했다.
알렉스는 내게 말했던 그대로 자신이 미끼가 되기를 자청했다.
"목숨을 잃게 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는 겁니다. 당신이 있으니까요."
알렉스가 그간 블러드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이었다.
공간을 왜곡해서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
텔레포트와는 조금 달랐다.
일종의 '축지법'과 같은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말 그대로 공간을 접어서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수십, 수백 미터를 도약할 수 있는 그런 능력.
'하지만 텔레포트가 아닌 이상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텔레포트는 말 그대로 공간을 뛰어 넘는 능력.
하지만 알렉스의 능력은 어쨌든 물리적인 거리를 도약하는 능력일 뿐.
'만약 각성한 에이미가 그런 알렉스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면, 일이 골치 아파질 수도 있겠지.'
결국 내가 얼마나 빠르게 에이미를 쓰러트리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강해졌느냐는 것.'
원래의 에이미가 얼마나 강했는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또 한 번의 변수가 겹쳐 있는 상황이다.
이건 확실히 도박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상황.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한두 번도 아니니 저는 실수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 알겠다."
알렉스가 저렇게 말하니 믿어보기로 했다.
나도 내가 에이미라는 여자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얼마나 그녀를 빠르게 쓰러트릴 수 있을지가 관건일 뿐.
그리고 그때.
우우웅!
파편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가오고 있다. 준비해라."
"예."
나와 알렉스는 움직였다.
미리 약속해 놓은 장소를 향해서.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 도착한 뒤.
"이번엔 너희 둘도 움직여줘야 한다."
몰른과 해츨링에게 말했다.
"마, 맡겨 주세요오!"
"꾸웅!"
몰른과 해츨링이 외쳤다.
"자, 잘 들어라. 너희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려줄 테니까."
나는 그 둘에게 앞으로 벌어질 상황과, 그 둘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잘 할 수 있겠나?"
"맡겨 주세요오오!"
"꾸우웅!"
해츨링과 몰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희가 얼마나 잘 해주느냐에 따라서 나의 수고가 훨씬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거다."
물론 저 둘에게 이번 일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의 중대한 일은 맡기지 않았다.
맡긴다고 해서 저 둘이 그걸 해낼 만큼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저 둘이 약하다기보다는 에이미가 말도 안 되게 강해진 거지만.'
실제로도 지금 저 먼 곳부터 느껴지는 에이미가 가진 사념의 힘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렬했다.
초감각의 범위로 파악하기로는, 그녀는 아직 저 먼 곳에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도.
'여기까지 느껴져. 마치 내 바로 코앞에 도착해 있는 것만 같군.'
그 말대로 블러드의 플레이어들이 내 바로 코앞에 서 있을 때처럼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가까이 마주했을 때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도 가질 않는군.'
그런 마당에 저 둘에게 성패를 맡길 수는 없을 테고.
'다만 잘만 해 준다면, 에이미를 확실하게 사로잡을 수 있겠지.'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리고 확실히 사로잡아 에이미에게 힘을 준 존재의 꼬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아낼 수 있도록.
'자, 시작해 보자.'
나는 에이미가 다가오고 있는 방향을 정확히 노려보며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다들 준비해라. 이제 곧 시작될 거다."
***
'안 느껴져. 역시 안 느껴지고 있어.'
에이미가 미간을 좁혔다.
확실히 어느 시점부터 도무지 강민의 기색을 파악할 수 없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었고.
이제는 강민의 기척을 도저히 느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분명히 알렉스와 같이 있을 거야. 그런데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어떤 현상이 벌어진 거겠지.'
에이미는 절대로 강민과 알렉스가 따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
'내가 두 사람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두 사람도 지금 나를 노리고 기다리고 있겠지.'
알렉스가 있는 위치만 봐도 그렇다.
누가 봐도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한 눈에 보더라도 싸움을 준비하고 있으며, 에이미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디지?'
에이미가 바쁘게 눈을 굴렸다.
곳곳에 숨어 있는 블러드의 플레이어들로부터 알렉스의 현재 위치는 대강 파악했지만, 정확한 위치마저는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귀신같은 녀석.'
수많은 블러드의 눈과 귀를 피해서 지금까지 템플이라는 집단을 이끌어 온 남자다.
이제는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지금부터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알렉스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
하지만 걱정은 없다.
파바바밧!
그녀의 마력이 흩어지며 드넓은 대지를 향해 크게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마력 위로 사념의 기운이 뒤덮기 시작했다.
'이곳 어딘가에 있는 게 확실하다면, 이 공간 자체를 없애 버리면 그만이겠지.'
에이미의 계획이었다.
간단하지만, 이전의 에이미였다면 생각할 수 없었을 일.
'하지만 지금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에이미도 알렉스의 능력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놓칠 수밖에 없었던 알렉스의 기상천외한 능력.
'이제 네놈의 그 잔재주도 오늘까지다.'
쿠르르르르!
에이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방대한 마력으로 드넓은 대지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바위와 무수한 대지의 흔적들이 하늘 위로 솟구치고 떨어져 내리기를 반복했다.
'아아아…!'
황홀했다.
자신의 손에 이런 힘이 들어왔다는 게 너무 황홀하고 짜릿했다.
'다… 모조리… 내가 죽여 버릴 거야.'
그녀의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던 억눌린 분노가 폭발했다.
콰르르릉!
하늘로부터 번개가 내리치며 땅을 휘든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피유우웅!
"……?!"
무언가 에이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에이미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마력의 장을 꿰뚫은 채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품고서 날아드는 하나의.
'화살…?'
그래.
분명히 화살이다.
하지만 에이미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대체 어떻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거대한 마력의 장을 꿰뚫을 수 있는 화살이 있을 리가!
'젠장!'
에이미가 손을 뻗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내기 위해서다.
콰지지직!
사념이 뒤엉킨 마력이 거대한 장막을 펼쳐냈다.
정확히 화살이 날아오고 있던 방향.
하지만.
"뭐, 뭐…?!"
에이미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마력의 장이 꿰뚫렸기 때문이다.
"젠장!"
화살이 자신을 꿰뚫기 바로 직전,
에이미가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화살의 궤적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 순간.
콰아아앙!
폭발이 일어났다.
"크악!"
에이미는 화살이 일으킨 충격에 휩싸였고.
"미친…!"
에이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무슨 화살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콰아아아!
저 먼 곳에서 다시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체… 대체 몇 개야?'
셀 수도 없이 많은 화살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