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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02화 (202/277)

202화

후우우웅!

바람이 우리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힘 14를 포식했습니다.]

[힘 13을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14를 포식했습니다.]

스탯 포식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말은 즉, 몰른의 활 한 방으로 몬스터가 즉사했다는 뜻이리라.

'훌륭하군.'

몰른이 어느새 화살에 마력을 담을 수 있게 되면서 화살의 사정거리와 위력이 몇 배로 뛰어올랐다.

'역시 천재야.'

마력을 담는 법을 그렇게 빠르게 터득할 줄이야.

물론 오러 블레이드처럼 마력을 뿜어내는 정도는 아니다.

그저 마력을 이용해서 그 위력을 증폭시키는 정도였지만.

지금의 수준에서는 그 정도로 발전한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성취인 것도 맞다.

"어떤가. 이제는 조금 믿을 만해?"

내가 레이먼드를 돌아보며 물었고.

"…괴물이군. 너는 정말… 괴물이야."

레이먼드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보여줬는데, 벌써 나를 판단했다는 말인가?"

"……."

미안하지만, 몰른은 겨우 내 스탯의 일부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 오늘 내가 가진 힘을 저들이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꾸우우웅!"

벌써부터 몰른을 보고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해츨링이 콧김을 내뿜고 있었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내가 말했고.

우리는 성전의 심층부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상상 이상인데.'

시간이 흘러 탄력이 붙기 시작한 몰른과, 정화된 파편으로 마력을 강화한 해츨링의 실력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이 던전을 클리어 하는 순간까지 내가 나설 틈 따위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하하하하!"

"꾸우우웅!"

해츨링과 몰른은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들떠서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파괴하고 있는 중이었다.

파괴.

그 말이 정말로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아시아의 탑에서는 대체 어떤 괴물을 육성하고 있는 겁니까."

"…정말 미치겠군."

나와 동행하고 있는 오디세우스의 길드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레이먼드가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음?"

"정말… 국적을 변경하고 우리 길드에 들어 올 생각은 없나? 상상도 못 할 대우를 약속하지. 진심이다. 너를 놓친다면 나는 아무래도 죽는 순간까지 후회를 할 것 같거든."

"내 대답은 이미 네가 알고 있을 거다."

나는 다시 한번 레이먼드의 제안을 잘라냈다.

레이먼드 역시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그도 내 대답을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아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는 못한 채 계속해서 입맛만을 다시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 쓸 만한 것들이 꽤 많은데."

나는 던전 내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몬스터들이 남기고 떠난 잔해나, 창공의 궁전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금속들은 하나하나가 훌륭한 재료로 사용할 만큼 뛰어났다.

'미스릴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재료들이다.'

초감각으로 파악해낸 결과였으니, 내 판단은 정확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레이먼드가 내게 물었다.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장비로 만든다면… 뛰어난 장비가 될 수 있겠다는 말이다. 막말로 저 기둥 하나만 뜯어내도 웬만한 금속으로 만든 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검이 될 수 있을 거고."

나는 시선을 돌렸다.

"저기 보이는 동상 보이나?"

창공의 궁전 한 곳에 쭉 늘어서 있는 동상.

"그래. 근데 뭐? 그냥 쇳덩이 아니야?"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동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동상의 몸 위에 걸쳐 있는 갑옷 하나를 들어 올렸다.

"한 번 보겠나."

그것을 레이먼드에게 건넸고.

레이먼드가 갑옷을 들어 올린 순간.

"허…!"

레이먼드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장식용으로 만들어 놔서 아직 옵션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제련만 하면 분명히 탁월한 장비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거야."

그때였다.

부우웅!

레이먼드가 주먹을 들어 갑옷을 내리쳤고.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거대한 파동이 잠시 우리를 휩쓸었다.

그런데.

"…맙소사. 정말이군."

갑옷에는 조금의 흠집밖에는 나지 않았다.

레이먼드 역시 온 힘을 다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만큼 이 금속의 강도가 단단하다는 뜻이리라.

"무게가 왜 이렇게 가볍지? 이 정도 강도의 금속의 무게가 이렇게 가벼울 수 있는 겁니까?"

"정말이다. 이 검도 마찬가지야."

"허어…!"

그제야 내 말이 진짜라는 사실을 깨달은 오디세우스의 플레이어들.

"미처 이런 것을 살필 생각조차 못 했었다. 그동안 레이드를 하면서 몬스터를 처치하느라 바빴던 나머지…."

"그래, 그리고 사실… 여유가 있었다고 한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살필 생각은 못 했겠지. 설령 살핀다고 해도 이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건 또 다른 말이고."

레이먼드와 후안이 말했다.

사실 나도 초감각이 아니었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거다.

이렇게 거대한 창공의 궁전 한구석에 박혀 있는 동상 따위.

레이드를 하는 와중에 굳이 살필 이유는 없을 테니까.

다만 지금 몰른과 해츨링이 너무 활약해준 나머지 나에게 여유가 생겨난 덕분이기도 했다.

"문제는 훌륭한 대장장이가 있느냐는 건데."

내가 말했다.

이 정도로 훌륭한 금속이라면, 해밀턴 정도 되는 대장장이가 아니라면 그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없을 거다.

나는 레이먼드를 바라봤다.

"혹시 알고 있는 대장장이가 있나?"

내 말에.

쿵! 쿵!

레이먼드가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내가 누구인가. 오디세우스의 길드장이다. 우리 길드에는 마침 어비스 어디에 내놔도 절대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대장장이가 있지!"

"대장장이… 플레이어가 있다고?"

나는 그의 말에 조금 놀랐다.

대장장이를 선택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음? 그게 왜? 플레이어가 대장장이를 선택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나?"

"……."

하긴.

안 될 건 없지.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탑에서 한 플레이어가 대장기술을 배운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공격 능력을 습득하고 실력을 쌓아서 탑을 오르기도 바쁜 와중에 대장 기술을 익힌다니.

적어도 그런 일은 대한민국의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은 쉽게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긴….'

생각해 보면 그렇다.

굳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도.

탑의 바깥에서도 한국인들은 늘 정석적인 코스를 따르고, 최대한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방법을 추구하곤 했으니.

'이런 특성들이 탑에서도 은연중에 적응되고 있었다는 거겠지.'

물론 그게 한국인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래도 인구수가 그리 많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을 뿐.

그리고 대한민국의 탑의 난이도가 웬만큼 어려워야지.

어설프게 대장기술 따위를 배웠다가는 탑을 오르는 건 꿈에도 못 꿀 일이었으니까.

결국 탑의 난이도와 환경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셈이겠지.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졌을 테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전투력은 조금 부족해도 다양한 직업군이 힘을 합치며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아마도 그것이 미대륙 설계자의 목적이었을 거다.

'알아갈수록 흥미롭군.'

나는 다시 레이먼드를 바라봤다.

"어쨌든 잘 되었군. 너희 길드에서 대장장이를 보유하고 있다니. 그의 실력은 믿을 만한가?"

"물론이다. 내가 미국의 탑에 있을 때부터 항상 함께 탑을 오른 녀석이다. 전투 능력은 조금 모자라도 대장기술만큼은 내가 만난 모든 이들이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고!"

레이먼드가 저렇게 말 할 정도니, 한 번 믿어봐도 괜찮겠지.

슬슬 나도 방어구를 갈아 줄 때가 되기는 했으니, 마침 타이밍도 적절하고.

"이번 던전을 클리어하는 즉시 사람들을 투입해야겠어. 고맙다. 네가 없었으면 이런 보물을 그냥 지나칠 뻔했어."

"그런 말로 하는 인사보다는 나는 물질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말보단, 물질.

당연한 이야기다.

"걱정 마라. 네 장비를 최우선으로, 그리고 가장 훌륭한 퀄리티로 완성해 줄 테니까.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좋다. 그 정도면.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나는 전방을 바라봤다.

어느새 쑥대밭이 되어 있는 창공의 궁전.

사방이 불로 뒤덮여 있었고, 그 사이를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몰른의 화살은.

콰르르릉!

궁전 내부를 박살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이제 곧 보스존이다. 아직 우리도 만나보지 못해서 어떻다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

"걱정할 것 없다. 여차하면 내가 나설 테니까. 물론 그럴 일이 있다면 말이야."

"든든하군."

그 말과 함께 우리는 다시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앞에 굳건하게 닫혀있는 문 하나를 바라보면서.

***

[창공의 궁전 보스존에 진입했습니다.]

[창공의 군주가 등장합니다.]

보스존에 진입한 순간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존 내부의 풍경은 이전의 던전의 풍경과는 꽤 달랐다.

'우주같군.'

말 그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를 걷고 있었다.

조금 전 보였던 커다란 궁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쩌저적!

저 먼 곳의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 나온다!"

누군가 소리쳤다.

갈라진 틈새로는 커다란 손이 하나가 나타났고.

콰직!

공간을 그대로 움켜잡은 손과 함께.

쩌저적!

공간의 틈이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벌어진 틈새로 또 하나의 손이 나타났고.

콰드드득!

양손으로 공간을 뜯어내며 슬슬 거대한 몸집이 얼핏 비쳐 보였다.

'…과연….'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아직 모습을 전부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놈의 존재감이 우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결국.

번뜩!

놈의 안광이 우리를 향한 그 순간.

"허, 허윽!"

"맙소사…!"

오디세우스의 플레이어들이 다급히 숨을 들이켰다.

'쉽지 않겠는데.'

조금 전 내가 나설 필요도 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막상 놈을 만나게 되니 나도 그 말에 대해서 다시 곱씹어야만 했다.

그 정도로 모습을 드러낸 보스 몬스터의 기운은 무시무시했으니까.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나는 몰른과 해츨링을 바라봤다.

"어, 어으음…."

"꾸으으응…."

벌써부터 기가 죽어 있는 몰른과 해츨링.

몰른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츨링마저 기가 죽는 모습은 나로서도 놀라운 장면이었다.

아직 새끼라도 하지만, 해츨링은 드래곤의 피를 이은 생명체다.

그런 해츨링이 기가 죽을 정도라면.

"…아무래도 네가 직접 나서야 할 것 같은데."

분위기를 파악한 레이먼드가 말했다.

"흐음…."

나는 저 앞쪽을 바라봤다.

쿠르르릉!

어느새 공간의 벽을 완전히 허문 채 대가리를 내밀기 시작한 창공의 군주.

전신을 은은하게 빛나는 갑주를 두른 채로 투구 사이로 흘러나오는 섬찟한 안광이 꽤 인상적인 녀석이었으니.

"그래. 알겠다. 웬만하면 나서지 않으려고 했지만."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최대한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나도 어떻게 될지는 책임질 수 없을 테니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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