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뭐, 뭐야…!'
강민에게 목을 잡힌 플레이어는 흔들리는 눈으로 강민을 바라봤다.
그는 블러드의 플레이어로서 강민과 접촉하기 위해 은밀히 강민에게 접촉했다.
강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강민과 가까워질수록 가슴에 숨어 있는 파편이 공명하며 그의 위치를 알리고 있었으니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템플의 목걸이를 위조하여 착용하기까지 했건만.
'이 미친놈이…!'
다짜고짜 자신의 목을 붙잡을 줄이야.
생각도 못 했던 전개다.
물론 그 역시 강민이 템플과 접촉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자신의 목걸이를 본 뒤에 강민이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을 하리라 생각했고.
만약 템플과 접촉했다고 판단되는 즉시, 벽 속에 숨어 있는 플레이어들과 종업원들이 합심해서 장민을 처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생각은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무슨 힘이….'
도무지 강민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속도로 치자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였건만.
자신의 목을 붙잡는 강민의 움직임은 그가 인지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재빨랐고.
한 번 붙잡힌 순간부터 그 어떤 노력을 해도 강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꺼어어억…."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얼굴에 피가 쏠리며 시야가 어두워질 지경이다.
"까어억…."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조차 나오지 않았고.
종업원으로 위장해 있던 블러드의 플레이어들도 크게 당황한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뿐인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벽 속에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의 마력이 뒤엉키며 하나둘씩 쓰러진 채 죽어가고 있었으니.
'대, 대체… 정체가 뭐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완벽한 규격 외의 존재다.
그 어떤 계획도.
그 어떤 준비도.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힘.
그런 존재가 지금 눈앞에 서 있었으니.
'파국이다.'
이로서 확실해졌다.
이 괴물 같은 존재는 자신들 블러드를 적대하는 게 분명했으며.
그 힘은 감히 측량도 할 수 없었으니.
'재앙… 이건 재앙이야….'
남자의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남아 있던 의식의 끈은.
툭!
끊어졌다.
***
쿠우웅!
남자를 바닥에 내던졌다.
아직 간신히 숨은 붙어 있지만, 가만히 두면 곧 죽을 것이 분명하다.
어디서 이런 같잖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우습지도 않을 지경이다.
일부러 템플 문양을 보여주고 내 반응을 보려 했던 것 같은데.
'차라리 그냥 나를 공격하는 쪽이 녀석들에겐 훨씬 나았을 텐데 말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내게 작은 상처 하나쯤은 입힐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것도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처참한 실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녀석이 그나마 가장 강한 것 같은데.'
이 중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내 손아귀의 힘조차 버텨내지 못 할 정도면.
남은 녀석들의 힘이 얼마나 처참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지.
홱
나는 시선을 돌렸다.
"뭐, 뭐야…!"
"너, 너…!"
종업원으로 위장해 있던 블러드의 플레이어들이 뻣뻣하게 굳은 채 한 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안쪽 녀석들은 대충 끝난 것 같고."
아직 죽이진 않았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정도로만 놔뒀다.
사념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마력을 움직여서 놈들의 신경을 파괴하고 헤집어 놨으니, 놈들도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한 명."
"뭐, 뭐…?"
"한 명 손 들어라."
내 말에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급히 움직였다.
누구도 손은 들지 않았다.
"자진은 없나. 그렇다면 내가 고르는 수밖에."
그렇게 움직이며.
척.
테이블에 놓여 있던 포크를 모두 꺼내 들었다.
그리고.
홱!
플레이어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그 순간.
콰직! 콰득! 파바박!
포크 하나, 하나가 플레이어들의 다리를 하나씩 관통했고.
풀썩! 풀썩!
다리를 관통당한 플레이어들이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그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성을 내질렀다.
오러가 담겨 있는 포크라 아마 고통이 꽤 클 테지.
"흐악, 흐어어억…!"
내가 남겨 놓은 한 명의 플레이어는.
"사, 살려… 살려 줘…."
사색이 된 얼굴로 자빠진 채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기다려라. 잠시 할 일이 있으니까."
나는 인벤토리 안에 들어 있는 사념의 파편을 꺼냈다.
해츨링이 들고 있는 파편은 아직 반 정도밖에는 정화가 되지 않았으니.
'이곳에 사념을 모으는 게 낫겠지.'
그렇게 나는 능력 '사념 흡수'를 사용했다.
동시에.
"끄억… 끄어어억…."
"흐아아악!"
주변에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신음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우우우웅!
사념의 파편이 진동했다.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총 스물둘.
그들이 가진 사념들이 일제히 내가 들고 있는 파편으로 모여들었다.
우우우웅!
사념의 파편의 진동이 더욱더 거세졌다.
푸르게 빛나던 파편은 어느새 다시금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식당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많은 양의 사념이 파편을 향해 내달렸고.
카득! 투두둑!
결국 사념은 그 크기를 키웠다.
엄지손톱만 하던 파편은 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부풀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플레이어들의 사념을 흡수한 파편은 결국 진동을 멈췄다.
놈들의 사념을 모조리 흡수한 것이다.
'어마어마하군.'
원래에도 꽤 많은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던 파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훨씬 더 방대해졌다.
'특히 그 녀석에게서 흡수한 사념의 양이 엄청났어.'
처음 내게 합석했던 녀석 말이다.
그 순간.
[렘의 기운이 사념을 정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렘의 수치는 고작해야 10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렘의 수치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처음 보유하고 있던 사념에 비해 한 번에 몇 배나 폭증해 버렸으니까.
나는 모든 사념을 흡수해낸 파편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고.
[마력 57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63을 포식했습니다.]
[힘 35을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29를 포식했습니다.]
.
.
.
사념을 모두 빼앗긴 블러드의 플레이어들의 숨통이 끊어지며 스탯 포식 메시지가 쏟아졌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한 녀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가 할 일은 하나다."
"허, 허어억…."
"너희의 본진에 가서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려라."
"무, 무슨…?"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다.
"내가 왜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너희를 족쳤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
그 순간 플레이어가 눈을 부릅떴다.
"선전포고다. 네가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해라. 내가 한 이 말까지도."
"미… 미친 놈….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 하는 거야?"
그가 내게 말했다.
"물론이지."
"제정신이… 아니야…."
"그럴 수도 있고."
놈이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무, 무섭지도 않느냐… 이 어비스를 주름잡고 있는 우리 조직의 랭커들이… 너를 찾아가서 죽일 것이다…! 네, 네 놈의 뼈조차 남기지 않고 씹어 먹을 만큼 잔인무도하신 분들이다!"
내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재밌겠군."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니까.
직접 나를 찾아와 준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빨리 놈들의 상판을 만나보고 싶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숨어만 있을 리는 없을 테지."
"미, 미친… 미친 새끼!"
그 말을 남긴 채 플레이어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고.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옷이 더러워졌어."
나는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아직 포식할 수 있는 스탯이 많아.'
잠재 옵션 말이다.
벌써 두 번이나 포식 슬롯을 열었지만, 그동안 잡재 옵션을 포식하지 않은 상태였다.
'쓸 만한 장비들이 보이지 않았거든.'
잠재 옵션은 장비의 성능에 따라 포식할 수 있는 스탯의 양이 달라졌고.
그동안 포식할 정도로 욕심나는 잠재 옵션들은 딱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꽤나 괜찮군.'
지금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 중, 내게 합석했던 녀석의 장비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포식한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장비의 잠재 옵션들을 모두 포식했고.
그 결과.
[상태창]
>이름 : 한강민
>레벨 : 150
>스탯
-육체
힘 : 4914.654
[초월 - 방어 무시 50%]
민첩성 : 4318.938
[초월 – 치명타 확률 70%]
체력 : 4581.123
[초월 – 피해 반사 50%]
-정신
마력 : 4201.123
[초월 – 마법 보호막 물리/마법 피해 50% 흡수]
렘 : 10.0235
힘은 대략 300.
민첩성은 200, 체력은 400.
그리고 마력은 대략 100 정도를 포식할 수 있었다.
'달콤하군.'
꽤 많은 포식 포인트를 사용해야 했지만,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이제 곧 힘은 5000.'
아직도 하나 열려 있는 포식 슬롯과 한 번 더 잠재 스탯을 포식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으니.
'다음번에 만나는 녀석은 더 쓸만한 녀석이었으면 좋겠어.'
아쉽게도 이 주점에는 아티팩트나 장비가 없었다.
단순히 놈들의 비밀 집회 장소로 이용되는 곳인 것 같았다.
그나마 장비라고 할 건, 내게 죽은 플레이어들이 착용하고 있는 것들 뿐.
그럼에도 딱히 내가 욕심나는 장비는 없었으니.
'남은 건 템플에게 처리하도록 하면 되겠어.'
물론 거저로 넘겨줄 생각은 없다.
아이템을 넘겨주는 대가로 저 아이템에 상응하는 돈을 받아낼 계획이다.
어쨌든 나도 어비스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할 테고.
그동안 모아놨던 돈도 이제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아쉽군. 괜찮은 장비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입고 있는 장비들은 현재 내 스펙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입맛을 다시며 주점을 벗어났다.
'당분간 이 근방을 돌며 개척률을 증가시켜놔야겠어.'
지금 당장 내가 할 만한 일은 없다.
다음 목적지도 정해 놓은 건 맞지만, 블러드 쪽에서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놈들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다.
'이제 조금씩 랭커들에게서도 반응이 올 테고.'
현재 탑을 주름잡고 있는 거대 세력들인 길드들.
그들이 나를 두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여기가 마침 항구도시니까 그 이점을 살려도 괜찮겠어.'
나는 몰른을 바라봤다.
활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몰른은 음유시인이었고.
음유시인이란 하나의 '소식통'이다.
"몰른. 오랜만에 노래를 해 보자."
사람이 많아모여 있는 광장으로 몰른을 보낸 뒤, 몰른을 통해 내 이름을 담긴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당연히 공짜 노동은 아니다.
오랜만에 몰른에게 얼큰하게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신이 난 몰른은 열심히 나에 대한 노래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듣기에도 민망하게 느껴질 법한 가사들이다.
나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몰른의 한강민 찬미가.
그 앞에서 다양한 종족의 선원들이 내 이름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으니.
'지금까지는 내 이름뿐이었지만.'
이제는 내 이름뿐만이 아니라 나에 대한 무용담들이 선원들의 허풍 가득한 입담을 통해 어비스 전역으로 뻗어나가게 되겠지.
***
그 뒤로 사흘이 더 지났고.
[개척률이 20%에 도달했습니다.]
사흘만에 15%의 개척률을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더 이상 개척률에 대한 업적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개척률에 대한 업적은 그동안 획득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저 사람이 한강민이지?"
"맞아. 탑에서 드래곤을 손가락으로 죽였다며?"
"손가락? 나는 가만히 서서 눈빛만으로 드래곤 내장을 파괴했다고 들었는데?"
"드래곤이었어? 나는 마왕 아니야?"
나를 알아보는 플레이어들이 꽤 많아졌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아무말 대잔치다.
그리고 그들이 떠들고 있는 나에 대한 소문에는 어마어마한 거품이 끼어 있었다.
그리고 결국.
"한강민씨, 맞습니까."
누군가 내가 뿌린 미끼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