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됐어!"
"나이스으으!"
"오우예!"
그 무렵, 대한민국 탑의 65층.
65층의 마을은 한참 개발 중이었다.
각 길드의 건물들이 들어섰고, 65층에 거주하는 이종족들과의 교섭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65층의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의 주인은 당연히 위드였고, 위드의 건물 내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정말 잘된 거 맞죠?"
"그래. 지금 막 다시 탑에 들어 온 녀석한테 보고 받기로는 탑 밖에서 우리의 요구들을 모두 들어 주기로 했대."
"좋았어, 좋았어! 이제 우주로 뚫고 나가는 일만 남았다아아!"
김민희가 양손을 뻗어 올린 채 소리쳤다.
"고생했다, 다들. 오늘은 마음 편히 쉬어도 좋아. 이제 탑의 저층 시설 건축도 대충 마무리 되어 가니까."
박명철이 회의실에 모여 있는 위드의 중역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이스으으으!"
"얼마만의 휴가냐."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만큼 성취감이 있는 일이다.
실제로 탑 10층 아래의 생존율이 어느새 100%에 수렴할 정도로 뉴비들의 기본기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탑에 막 진입한 플레이어들조차 위드의 이름을 알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느끼는 뿌듯함은 그 어떤 행복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오늘은 내 이름으로 먹고 싶은 거 다 먹어. 내가 쏜다."
박명철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회의실을 벗어난 자리에는 다시 세 사람만 남아 있었다.
박명철과 김민희, 한동희다.
지금의 위드가 있기까지 가장 많이 노력했고, 또 위드의 밑바닥부터 함께 해왔던 세 사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어찌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도 오늘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요! 한잔합시다!"
하지만 박명철은 매서운 눈초리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왜…욧."
"뭐야, 저 표정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흠칫 몸을 떠는 두 사람.
"다들 앉아 봐."
"예…?"
"와, 나… 어쩐지 박명철씨가 휴가를 줄 리가 없지. 저 일중독자가…."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박명철의 말대로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슬슬 우리도 탑을 올라야 해. 다들 알고 있지."
"……."
"흠…. 그렇죠?"
그 말에 두 사람의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동시에 다시금 현실을 직시했다.
'어비스.'
이미 강민에게 들어서 어비스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아직 70층도 오르지 못한 마당에, 마치 탑을 정복한 것 마냥 들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지금 강민씨는 혼자 저 위에서 다른 대륙의 플레이어들과 경쟁하고 있어. 무려 대륙 단위라고. 우리라도 손을 보태야 하지 않겠어?"
"그렇죠."
"강민씨 보고 싶다, 그치?"
"그러게요. 얼마 안 됐는데 다른 데 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보고 싶네."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하루빨리 올라가야지. 지금부터 플레이어들을 다시 정비하고 탑을 정복해 나갈 거야. 다들 조금만 더 힘내 줘."
툭툭!
"맡겨 줘요. 내가 그런 거 잘하잖아?"
"맞아요. 민희 누님. 힘내요!"
"뭐, 이 새끼야?"
"아 또 왜! 응원해 줘도 난리야!"
"아오, 저게 진짜!"
어느 때와 같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박명철은 미소 지었다.
'든든하다. 너희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던 박명철은 이내 결심했다.
'그래. 오늘 하루쯤이야.'
탁!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박명철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가자. 오늘은 내가 산다."
"어? 진짜? 진짜로?"
"우아아아아!"
박명철의 커다란(?) 결심에 김민희와 한동희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
이제 막 템플의 본거지에 도달했을 무렵이다.
템플의 본거지는 내 예상외로 커다란 도시에 있었다.
블러드와 대항하는 단체라면 왠지 깊은 구석에 박혀서 저들끼리 작당을 꾸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건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얻어낸 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개척률이 10%를 돌파했습니다.]
[1인의 플레이어에 의해 한 대륙의 개척률을 10%를 넘어섰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전설의 탐험가'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5% 때와 마찬가지로 10%를 달성한 순간 내 눈앞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무수한 메시지들이 쏟아져 내렸다.
단번에 레벨이 10이 증가했다.
덕분에 내 레벨은 150이 되었다.
보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올스탯 500이 증가합니다.]
[새로운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능력 '탐험가의 도약'이 상태창에 각인됩니다.]
[탐험가의 도약]
>등급 : S
>효과 : 시야에 닿는 곳으로 즉시 이동할 수 있다.
>재사용 시간 : 20분
'텔레포트 같은 능력인 건가.'
이번에 획득한 능력도 전투에 딱히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은 아니지만.
'블러드 녀석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특히나 초감각, 만리경과 함께 사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되리라.
게다가 올스탯이 500이 증가한 마당이니,
-육체
힘 : 4614.976
[초월 - 방어 무시 50%]
민첩성 : 4118.234
[초월 – 치명타 확률 70%]
체력 : 4181.342
[초월 – 피해 반사 50%]
-정신
마력 : 4101.644
[초월 – 마법 보호막 물리/마법 피해 50% 흡수]
렘 : 10.0235
현재 내 스탯의 상황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오히려 탑에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스탯이 증가하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어비스에 올라온 뒤로 오히려 쓰러트리는 몬스터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당연히 내가 포식할 수 있는 스탯의 양도 많이 줄어든 게 당연한 일인데.
스탯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이제 곧 힘이 5000에 도달하게 생겼군.'
5000이라니.
그 말도 안 되는 숫자에 조금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2500이 벽이라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지.'
분명 그러지 않았던가.
2500이라는 수치를 막 돌파하고 초월스탯을 개방했던 게 그리 먼 과거가 아니건만.
그런데 이제 5000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지.'
분명 처음 블러드라는 녀석들을 만났을 때, 놈들은 파편만 얻어낼 수 있으면 2, 3000의 스탯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고 말했었다.
그런 점을 되짚어 봤을 때, 블러드의 상위 랭커들의 스탯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일 게 분명하다.
'스탯은 높을수록 좋다.'
그건 불변의 진리다.
특히나 놈들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한 이상, 5000의 스탯으로도 부족하다.
나는 계속해서 강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
[정화되고 있는 사념의 파편 조각]
>등급 : !#
>효과 : 아직 알 수 없#!$.
어느새 렘의 수치가 10을 막 넘어섰을 무렵.
슬슬 파편의 조각의 붉은 빛은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고.
파편의 정보도 거의 다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오히려 해츨링의 속도보다 내가 정화해내는 속도가 더 빠를 정도니까.'
렘이라는 능력이 얼마나 정순한 기운인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뭐 해. 저기다. 우리 템플의 중앙 지부."
제이미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이미의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
허름한 판잣집이었다.
***
"반갑습니다. 템플의 수장, 알렉스입니다. 미국의 플레이어이며 현재 어비스에서 랭킹 103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알렉스는 나를 본 순간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한강민이다."
굳이 길게 소개하진 않았다.
딱히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아직 랭킹에는 정식 등록되지 않았겠군요. 아시아 지역은 이제 막 열린 참이니까요. 혹시 랭킹을 등록하고 싶으시다면…."
"관심 없다."
"아… 하하하!"
알렉스는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역시 어비스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라 저들끼리 랭킹을 만들어 플레이어들을 줄을 세워 놓은 모양인데.
그런 것 따위 관심 가질 이유가 없지.
"그보다 역시 연막이었나."
허름한 판잣집인 줄 알았던 공간은, 내부로 들어오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판잣집의 지하로 이어진 이들의 본거지는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니까.
"그렇죠. 저 위는 술집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밤만 되면 손님이 꽤 북적이죠."
"그렇군."
나는 이들의 본거지를 다시 한번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앉으십시오. 손님을 불러놓고 무례를 범했군요."
알렉스가 손짓하며 말했고, 나는 그 말대로 의자를 하나 찾아 몸을 앉혔다.
의자 역시 꽤나 편안했으니, 가격이 꽤나 나가는 의자 같아 보였다.
현재 이곳에는 알렉스와 나, 몰른과 해츨링 말고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알렉스의 지시 때문이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직 우리는 그쪽에 대해서 온전히 신뢰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가? 이미 이야기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나는 기세를 조금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이 대화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심리전을 벌일 생각인 모양이다.
이미 제이미와의 첫만남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싸아아!
내가 마력을 흘려보낸 순간, 공기가 몇 배는 더 무거워졌다.
동시에 알렉스를 노려보자 알렉스의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하하하…. 미안…합니다. 제가 괜한 욕심을 부렸던 모양입니다."
현실을 직시한 알렉스는 땀을 훔치며 힘겨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다시 대화할 용의가 생긴 건가?"
"예, 예."
나는 이제 다시 한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생각이다.
길고 돌아가는 대화 따위는 역시 내 성미에는 맞지 않는다.
첫 구는 직구다.
"블러드. 그 녀석들이 숨어 있는 곳을 내게 넘겨라."
이게 내가 이들에게서 원하는 전부다.
도움이나 협력 따위는 필요 없다.
당장에라도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가서 때려 부수고, 놈들의 사념을 흡수해서 최대한 끌어모을 생각이다.
"하아아…!"
내 말에 알렉스가 탄식을 쏟아냈다.
"듣던 것대로… 호쾌하시군요."
"성질머리가 더러운 편이지."
"하하하…!"
"역시 그 말을 하고 싶었나 본데?"
"아, 아닙,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렉스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신다면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쪽에는 블러드에 속해 있다가 우리에게 넘어온 플레이어들이 꽤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도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얻어낸 정보인데 공짜로 넘겨드리는 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알렉스는 조금 전 내 기세를 느끼고도 지지 않겠다는 듯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조금 용감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흥미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래 말해 봐라."
알렉스가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다.
어차피 결정권은 내게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