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대체 이 넓은 땅에서 어떻게 한강민을 찾으라는 거지?"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 하지 않겠나. 다만 놈이 블러드에게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풀썩
템플의 플레이어들이 주점에 앉아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아시아 대륙의 개척률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벌써 며칠 만에 4%를 향해 치솟고 있는 개척률 말이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싶지만… 시스템이 고장 난 게 아닌 이상…."
아시아의 개척률이 열린 지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대체 어떤 녀석이지? 어떻게 혼자서 저런 속도로 개척률을 증가시킬 수 있는 거야."
"……."
그 말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쯤 모든 대륙에서 난리가 났겠어. 우리야 경쟁에는 관심이 없다지만… 다른 대륙의 길드들은 뒤통수가 얼얼하겠는데."
"그렇겠지."
그 말대로 현재 각 대륙을 이끌고 있는 거대 길드들은 이 순간에도 개척률을 달성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툭, 하고 나타난 아시아의 플레이어 혼자서 며칠 새에 4%에 가까운 개척률을 달성해 냈으니.
그들로서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됐어.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돼."
"그래. 그래도 알렉스가 미리 준비해 온 덕분에 스타팅 포인트가 될 만한 지역을 추려 놓은 게 다행이지."
"그래. 만약 그런 정보도 없었다면… 사막에서 바늘 찾는 일이었을 거다."
그 말대로다.
템플의 수장인 알렉스는 이미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동안 나름의 분석을 해 놓았다.
덕분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진입하게 될 위치에 대해서도 파악해 놓은 상태.
"다만 문제는 지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이곳이 그 플레이어의 스타팅 포인트가 맞느냐는 건데."
"어쩔 수 없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반드시 그 플레이어와 접촉해야 해."
꿀꺽
플레이어 한 명이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이제 곧… 저 산 하나만 넘으면 왕국 하나가 나타날 것이다. 거기가 바로 아시아의 스타팅 포인트 중 하나지."
"제발… 저곳에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으음…."
템플의 플레이어들의 안색은 그리 밝지 못했지만, 그들은 결코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
"무슨… 소리지?"
내가 봐도 미친놈 같아 보이겠지만, 나는 허공에 대고 그렇게 물었다.
[뻔뻔하군.]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당황스러운 마음을 더 키우기만 하는 대답이다.
'뻔뻔해?'
드디어 나타났군, 그리고 뻔뻔하군.
이라는 두 문장을 통해 분석해 봤을 때.
이 목소리의 주인은 나를 알고 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도 꽤나 안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네놈이 이렇게 뻔뻔하게 모습을 드러낸 이상… 우리도 더는 참을 수 없다!]
이건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라는 말인가.
내가 어비스에 진입한 건 고작해야 며칠뿐이 되지 않았는데.
복수라니.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오해의 이유를 대충 눈치 챘다.
'파편.'
분명 이 성벽에 오르고 눈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진 순간에 파편이 진동하고 있었으니까.
'이 녀석들은 블러드와 좋지 않은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한데.'
나는 급히 인벤토리에서 파편을 꺼내들었다.
그 순간.
[이노오오오옴!]
내 머릿속으로 울려 퍼진 외침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오해하지 마라. 우선 대화를 하자."
[오해? 오해라고? 어디서 그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아무래도 아직 나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순간.
척! 척!
성벽 아래에서 짐승들과 뛰어놀고 있던 이들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수는 수십에 가까웠으니, 아무래도 놀고 있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카앙! 채앵!
순식간에 무기를 뽑아든 녀석들은 나를 흉흉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공격하라!]
다시 한번 울려 퍼진 외침과 함께.
팟! 파파팟!
수십 명의 인간(?)들이 나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골치 아프게 됐군.'
나는 검은 꺼내지 않았다.
여기에서 저들을 죽게 했다가는 이들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릴 게 분명하다.
'우선… 기절만 시키는 게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향해 날아드는 녀석들을 향해 도약했다.
빠악! 빠각!
"커억!"
"흐억!"
내 주먹질 한 번에 녀석들이 하나둘 씩 고꾸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공격이 나를 향해 쉴 새 없이 쇄도했다.
그들의 공격방식은 꽤 특이했다.
마법 같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마법과는 꽤나 이질적인 기운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이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나둘씩 제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풀썩
나는 다시 바닥에 착지한 채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나를 향해 달려들었던 녀석들이 혼절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살아 있는 건 분명하고.'
나는 다시 허공을 바라봤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다만 대화를 하고 싶어. 나도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거기 숨어있지만 말고… 나오는 게 어떻겠나."
[…….]
말이 없다.
당황한 모양이다.
나름 당당하게 외쳤는데,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렸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곳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어서 나와라."
[뭐, 뭐…?!]
이미 나는 놈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성벽 위로 올라서고, 낯선 풍경이 펼쳐진 순간 활성화된 초감각의 감지 능력 덕분이었다.
"이러면 믿을 텐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툭
파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시 말하지. 나는 대화를 하고 싶다.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
어느새 이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이종족들 역시도 머뭇대며 쉽게 나를 향해 다가오지는 못했다.
[너는 뭐지?]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험가다."
[그것을 묻는 게 아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그 끔찍한 조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야!]
그리고.
슈욱!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서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인반수의 이종족.
저벅
그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시작했고.
내 주변으로 포진해 있던 이종족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 올렸다.
다시 한번 싸울 의사가 없음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나를 향해서 계속 다가오며 내 몸을 쭉 훑는다.
아주 조심스레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마나 같으면서도 조금은 이질적인 기운이 내 전신을 훑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다시 한번 싸울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결국 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내 가슴위로 손을 얹었다.
'확실히 블러드 녀석들과 충돌이 있었던 게 분명하군.'
내 가슴팍에 손을 얹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정말…이구나."
그가 말했다.
나를 향한 경계심이 한층 수그러든 목소리다.
"저건… 어서 치워라. 꼴도 보고 싶지 않아."
떨어져 있는 파편을 보며 그가 말했고.
나는 파편을 집어든 채 다시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대화할 용의가 생겼나?"
내 말에.
"그…래. 조금 전의 무례는 사과하지."
동시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종족들이 금세 모습을 감췄다.
"사과는 필요 없다. 그보다 밖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좀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물론 괜찮다면."
"……."
다시 내 표정을 흘끔 바라본다.
그러더니.
"알겠다."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나에 대한 경계심이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그가 손을 한 번 휘둘렀다.
그리고.
"어, 어어어어!"
"뭐, 뭐야!"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기사들과 몰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해츨링도 마찬가지다.
내 초감각도, 해츨링의 마력에도 들키지 않은 채 이 거대한 공간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니.
'이들은… 대체 누구지?'
가장 근본적인 궁금증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
"대단하군."
'그'는 나와 기사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움직였다.
드넓은 숲이 펼쳐져 있는 이곳은 내가 초감각으로 확인했던 모든 건축물들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건축물들을 황폐해 보이는 상태로 놔둔 채, 그들의 진실을 모조리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발레하드 왕궁 이상으로 거대한 성벽과 각종 건축물들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채 드넓은 대지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으니까.
"보아하니 인간은 아닌 것 같은데. 마법을 사용하는 종족인가?"
"마법? 아…. 우리의 '라듬'을 너희의 세계에서는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라듬?"
"그래. 우리 레미드족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지. 식물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해. 그렇게 이 자연과 교감하며 우리는 '렘'이라는 기운을 평생에 걸쳐 신체에 축적하지. 그렇게 축적한 '렘'을 통해 우리는 '라듬'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용어는 다르지만, 마력과 마법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처럼 느껴졌다.
"너희가 사는 이곳을 숨긴 능력도 '라듬'이라는 능력 덕분인 건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 숲이 모습을 감춘 건, 자신의 의지지. '그 녀석'들로부터 숨기 위해서."
"……."
알 수 없는 말들투성이다.
다만 확실한 건, 적어도 이들은 '전투'라는 것을 추구하는 종족은 아니라는 뜻일 거다.
라듬이라는 것도 전투를 위한 능력이 아니라, 자연을 가꾸고 살아가기 위한 능력인 모양이고.
'그나저나 자연이 스스로 모습을 감췄다는 건… 또 새로운 이야기군.'
발레하드와 마찬가지로 레미드족이 살고 있는 하나의 '세상' 자체가 어비스 전체로 넘어왔고.
이들이 살아가는 자연은 말 그대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네가 붉은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자연이 우리에게 경고했다. 너를 없애라고."
"라듬을 통해서?"
"그래. 자연이 허락하는 한에서, 우리는 라듬을 이용해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다."
조금 전 내가 느꼈던 이질적의 기운의 정체는 역시 라듬이라는 능력이었다.
"재미있는 종족이군, 너희는."
"내 이름은 라문이다. 라문이라고 부르면 돼. 현재 레미드족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지."
"그런가. 내 이름은 한강민이다. 말했듯 모험가고."
그렇게 라문과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걸었을 무렵.
"자, 이곳이 우리의 성이다."
그곳에는 자연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거대한 성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주변을 떠돌고 있는 짐승들은 내가 알고 있는 짐승들과는 많이 다른 모양새였으며.
[새로운 동물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식물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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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률이 증가합니다.]
[개척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합니다.]
[개척률이 5%를 넘어섰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위대한 탐구자'에 대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모든 스탯이 100씩 증가합니다!]
순간, 내 앞에 쏟아지는 메시지들.
'정말이지 엄청나게 쏟아지는군.'
5개의 레벨이 올라, 어느새 내 레벨은 140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새로운 포식 슬롯이 오픈됩니다.]
140레벨을 달성한 순간 새로운 포식 슬롯이 오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