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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89화 (189/277)

189화

잠시 후.

툭!

해츨링은 집어삼켰던 파편을 토해냈다.

'맙소사.'

나는 해츨링이 뱉어낸 파편을 보고 허탈한 웃음을 토해냈다.

붉은색으로 점철되어 있던 파편은 극히 일부긴 하지만, 끄트머리에서 푸른빛이 맴돌고 있었다.

'해답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드래곤.

대체 어떤 생명체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는 다시 파편을 집어들었다.

해츨링의 침이 끈적하게 묻어 있기는 했지만, 바뀐 건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email protected]#!된 [email protected]#!의 파편]

>등[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효[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이전에는 한 글자도 보이지 않았던 파편의 정보에 아주 조금이지만 문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꼭 이런 식으로 정화를 해야 하는 건가?'

파편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건 기쁘다만.

정화를 위해서 계속해서 해츨링의 입속에 넣어 놔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그때.

"꾸웅."

해츨링은 다시 파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파편을 꽈악 움켜쥐었고.

우우웅!

다시 한번 해츨링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아무래도 굳이 입속에 집 넣고 정화를 해야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왜…."

나는 조금은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해츨링을 바라봤지만.

해츨링은 말없이 꾸웅,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파편을 움켜쥐고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어쨌든 파편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하며 나는 다시 몸을 눕혔다.

'나쁘지 않군.'

저 파편이 완전히 정화되기만 한다면, 또 새로운 비밀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

날이 밝았다.

전날 흥청망청 취해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이들을 높이 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석에선 한없이 친근하지만, 또 나름 격식과 군기를 갖춰야 할 때를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드디어 오늘은 우리 발레하드 왕국의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날이로다!"

국왕은 언제나 그랬듯 호쾌한 웃음과 함께 소리쳤다.

그 말대로, 지금 나와 발레하드의 기사들은 협곡을 넘어 인근의 왕국과 교섭하기 위한 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험가여! 부디 이번에도 나와 우리 발레하드를 위해 애써주기를 바라네!"

국왕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나 역시 바라는 바다.

당연히 발레하드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이미 이 인근에서 달성할 수 있을 개척률은 최대치로 끌어올린 상태였고.

지금 나의.

정확히 말하자면 아시아의 개척률은 어느새 2%를 넘어 3%에 가까워진 수준에 다가왔다.

아직 미처 내 발걸음이 닿지 못했던 곳도 발레하드의 사냥꾼과 병사들이 탐색하고 학자들이 분석하며 꾸준히 개척률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협곡을 넘어서면 충분히 5%까지 넘볼 수 있을 거다.'

나 역시도 아직 협곡 너머에 있다는 이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이 근방을 탐색하고 몬스터를 소탕하느라 꽤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저 너머에 있는 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마당에 무작정 넘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해서 발레하드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내 입장도 꽤 난처해질 테니까.'

어쨌든 어비스에 와서 처음 만난 이들이고, 좋은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이니, 나의 행동도 조심스러워 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다들 준비 되었는가! 그대들은 발레하드의 역사에 이름이 남을 영웅들이다! 부디 나의 검이 되어 발레하드의 영광을 위해 애써주길 바란다!"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기사들이 우렁차게 답했고, 그와 함께 궁중의 악사들은 우렁찬 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사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사를 향해 예를 표했고.

끼기기긱!

거대한 성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나아가라!"

그렇게 나와 기사들은 이전에 한 번 휩쓸었던 협곡을 향해 다시 움직였다.

***

"어마어마하군요."

"맙소사. 이 많은 괴물들을…."

"도대체 모험가님은 얼마나 강하신 겁니까."

협곡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이든의 시체를 보며 기사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 혼자 한 게 아니야. 반 이상은 이 녀석의 몫이지."

나는 내 옆에서 뒤뚱뒤뚱 걷고 있는 해츨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말에 우쭐한 해츨링이 콧김을 뿜어냈다.

"대단하군요. 해츨링이라는 생물은… 대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발레하드의 모두는 드래곤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드래곤에 무지한 저들도 드래곤이라는 생명체가 뿜어내는 고유의 위압감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실력이 뛰어난 기사들일수록 해츨링의 귀여운 겉모습에 속아서 해츨링을 함부로 대하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글쎄…."

나는 그들의 물음에 말을 아꼈다.

나도 드래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고작 해봐야 예전 판타지 소설 속에서 읽었던 드래곤이 내가 아는 드래곤의 전부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면모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지 않은가.

'파편의 정화는… 정말 충격적이었지.'

지금 이 순간에도 파편을 한 손에 꽈악 움켜쥐고 있는 해츨링.

어느새 파편의 붉은빛은 많이 옅어졌고, 푸른빛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파편의 정보창에서도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더 많아지기도 했고 말이다.

'대략 일주일 정도만 지난다면 파편이 완전히 정화될 수 있을 거야.'

그때였다.

"이제 곧 협곡의 끝자락에 도달할 겁니다! 다들 준비해 주십시오!"

저 앞에 정찰을 떠났던 발빠른 기사가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와 소리쳤다.

"다들 무기를 들어라!"

기사들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무기를 고쳐들었고, 언제라도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전투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싸울 일은 없을 거다.

저들에게 굳이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나는 이미 초감각을 통해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아무것도 없다.'

정말이었다.

적어도 내 초감각이 닿는 범위 내에서는 그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은 아니다.

분명히 인간, 혹은 어떤 지성체가 살았을 법한 건물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 살고 있었던 건 맞다.'

발레하드 왕국이 파악한 정보가 완전히 틀린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협곡 너머에 무슨 '사건'이 터졌을 테지.

고작 협곡 하나를 사이로 이렇게 확연히 다른 풍경이라니.

어비스라는 곳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내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들의 실망이 꽤나 클 것 같은데.'

새로운 문명과의 교류.

싸움이 될 수도, 거래가 될 수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문명과의 충돌은 언제나 발전을 가져왔으니까.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나는 말을 아끼며 기사들과 함께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우리는 협곡을 완전히 벗어났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모험가님을 중심으로 태세를 갖추라! 사방을 주시하라!"

기사단장의 입에서 끝없이 외침이 터져나왔고.

그의 외침에 따라 기사들은 온 신경을 집중하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

"으음…."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흐르고, 협곡을 벗어난 지 한참이 되고 나서야 슬슬 기사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분명… 이곳에는 왕국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그 말대로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성벽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성벽 위로 느껴지는 인적은 하나도 없었고, 거대한 성벽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질 만큼 망가져 있었다.

'확실히 저 너머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성벽에 도달하며 초감각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건만 개척률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아무런 생명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건, 인간이 살았을 건축물과 드넓은 대지뿐.

식물도, 동물도, 인간과 같은 지성체는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돼… 우리가 얼마나… 이 협곡을 넘기 위해 애써왔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라는 말인가!"

"이럴 수는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기사들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소리치기 시작했다.

몇몇은 성벽을 두드리고, 저 너머에 혹시라도 누가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런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대답 따위가 있을 리가.

'…….'

하지만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고 해도… 짐승조차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렇지 않은가.

짐승조차 없다는 건,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짐승을 몰살시켰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살고 있던 발레하드의 왕국의 근처만 하더라도 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었으니까.

'분명히 무언가 있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저 안을 살펴보고 올 테니까. 혹시 모르니 너희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내 말에 기사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츨링, 그리고 몰른. 너희는 여기에서 이들과 함께 있어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즉시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꽤 높은 성벽이었지만, 이 정도 높이를 오르는 건, 내게 큰 문제는 아니었고.

풀썩

성벽 위로 타고 오른 순간.

"……."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고개를 흔들며 눈을 꿈뻑였다.

'무슨….'

내가 이러는 이유는 바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장면 때문이었다.

'사람이…, 아니. 지성체가 살고 있잖아.'

말 그대로다.

성벽 너머에는 거대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고, 인간의 형상을 한 어떤 존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풀과 나무, 꽃.

그리고 많은 짐승들이 오가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성체들과 함께 뒤엉켜 있던 것이다.

'내가… 정신이 나간 게 아니라면.'

분명 성벽 안에는 생명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성벽 아래를 바라봤다.

그 순간.

"어…?"

또 한 번 장면이 뒤바뀌어 있었다.

성벽 너머로, 저 협곡까지 쭉 뻗어 있는 넓은 들판과 그 들판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꽃과 나무, 식물들.

동시에.

[새로운 동물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식물을 발견했습니다.]

.

.

.

[개쳑율이 상승합니다.]

[개척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내 개척률이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단번에 3%를 넘어 3.1%, 3.2%.

종국에는 4%를 향해 치솟고 있었으니.

'정말… 돌아버리겠군.'

아직도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성벽 위에 우두커니 서 있던 중.

우우웅!

파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드디어 나타나셨군.]

내 머릿속으로부터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드디어 나타났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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