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커어어억!"
콰아아앙!
한 자리에 서 있던 플레이어의 몸이 다짜고짜 날아간 채 저 먼 곳에 처박혔다.
하지만 문제는, 대체 조금 전 날아간 플레이어를 그렇게 만든 현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으니까.
"뭐, 뭐야!"
"구, 구스타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모, 몰라! 나도 모른다고! 하지만…."
꿀꺽
구스타프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의 탐지 능력을 펼쳐냈다.
순간 그의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 내렸다.
.
"위, 위…."
그렇게 중얼대며 구스타프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콰아아앙!
다시 한번 폭음이 울려 퍼졌다.
쿠우웅!
구스타프가 서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거센 파동이 일었고.
강풍이 플레이어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지금 감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구스타프의 전신이 내려앉았다.
전신의 뼈가 박살나고, 장기가 터져 나왔다.
인간이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처참한 형상만이 구스타프가 서 있던 자리에 남아 있었다.
"구, 구스타프! 구스타프으으으!"
"X발! 이게 뭐야! 뭐냐고!"
그제야 플레이어들은 조금 전 구스타프가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구스타프의 탐지 능력은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고.
정말로 정체 불명의 플레이어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빠르다는 거지?'
'마, 말도 안 돼….'
'아무래도 저 녀석은 우리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설마 벌써 템플 녀석들에게 넘어간 건가?'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들이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다.
포섭하기는 커녕,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벌써 두 명의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으니까.
"모여! 힘을 합쳐야 한다!"
"젠장!"
플레이어들은 서로 등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등을 내줘서는 승산조차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모인다고 가망이 있는 건인가?'
'그 속도와, 구스타프를 일격에 곤죽으로 만든 힘이라면….'
자신들이 아무리 모여 있다고 해봐야 승산 따위가 있을 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어.'
'파편만… 파편만 내게 있었어도….'
'젠장. 여기에서 이딴 꼴을 당하게 되다니…!'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꺼내 들고, 불안한 마음에 입술을 씹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꾸득- 꾸드득-
"뭐, 뭐야…."
조금 전 곤죽이 된 구스타프의 몸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꿈틀대는 구스타프의 몸이 다시 재구성됐다.
터져나간 팔과 다리, 뼈와 장기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으니.
"허, 허억…."
"X발! 대체 저게 뭐야아아!"
"우, 우에에엑!"
구역질을 해대는 플레이어와 괴성과 욕지거리를 터트리는 플레이어들로 인해 한순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충격이다.
분명 사념을 이용하는 게 어느 정도 부작용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쩄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은.
결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끄어어… 거어억…."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좀비?
차라리 좀비처럼 인간의 모습이나 갖추고 있었으면 흉측할지언정 참혹하지는 않았을 텐데.
"우에에엑!"
결국 플레이어 한 명이 토악질을 해대며 속을 게워냈다.
저 앞에 있는 건,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흉측하고 기괴한 '괴물'이었다.
"마, 말도… 말도 안 돼… 대체 왜…."
"저, 저게 뭐, 뭐야…."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강민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저 자신들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득 차고 있을 무렵.
꾸득- 꾸드득-
저곳에서 하나의 괴물이 또 다가왔다.
조금 전 강민의 일격에 먼 곳으로 처박힌 채 즉사했던 플레이어다.
구스타프만큼 괴상하지는 않지만, 분명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그동안 블러드의 플레이어가 죽는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현상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으니.
그들이 느끼는 충격은 감히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때.
파삭-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역겨워 뒈지겠군."
건조한 목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다.
***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사념이 짙어진 어비스라고 하지만, 곧바로 이런 장면이 펼쳐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내 예상이 확신으로 바뀐 것도 맞지.'
조금 전 내가 쓰러트린 두 명의 플레이어는, 이전 김준석을 처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탑의 파편으로 만든 내 검은 크게 공명하고 있었으니.
분명 짙어진 사념에 파편으로 만들어진 검이 반응하며 김준석 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일 테지.
'저 녀석들은 분명 사념을 이용해서 힘을 증폭시킨 플레이어들.'
그 말은, 저 녀석들의 가슴팍에도 사념의 파편 조각이 박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보다.'
나는 놈들을 바라보며 조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 포식 슬롯을 채우지 않아 나는 저들이 가진 능력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들의 능력창에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한 가지 능력 때문이었다.
[사념 흡수 (???)]
등급은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사념 흡수라는 능력이 어떤 능력인지는 굳이 설명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능력을 이용해서 사념을 흡수하고, 힘을 증폭시키는 것이겠지.
'그건 그렇고… 내 눈에 저 능력이 보인다는 건 내가 저 능력마저 포식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딱히 이렇다 할 포식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포식 포인트뿐.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저 능력을 포식해도 괜찮을지.
아니, 그보다 포식한다고 해도 내가 저 능력을 활용할 일이나 있긴 한 것인지.
'흐음….'
나는 다시 플레이어들을 돌아봤다.
다들 넋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나와 꿈틀대는 괴물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는 잠시 거기에 있어라."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인간이었던 괴생명체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의 신체를 초감각을 이용해 훑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는 파편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파편이 되지 않은 기운들이 전신을 떠돌고 있었을 뿐.
'그렇군.'
이제 알겠다.
저들이 가진 능력을 이용해 사념을 흡수하고, 어느 지점에 이른 순간 기운을 응축하여 파편으로 만드는 모양이다.
'흥미롭군.'
내가 알고 있던 혈계 능력과는 비슷하지만, 동시에 달랐다.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탑의 사념을 이용한다는 것.
하지만 혈계는 어디까지나 스스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었다.
피에서 피를 타고 이어지는 능력이었을 뿐.
'사념을 직접 모아 자신의 힘을 증폭시키는 원리인가.'
더 나아가서 또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대체 저 능력의 시작은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대체 어떤 식으로 이런 능력을 전파 되고 있는 것인지.
분명 여기에도 명가의 선조들과 같은 시작이 있을 텐데.
그들은 이 탑에 비밀에 누구보다 근접해 있는 녀석들일 테고.
'정말… 알 수 없는 것들투성이군.'
이제 조금 탑의 진실에 다가갔다고 생각했건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아직도 내가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우선.'
나는 괴물을 바라봤고.
놈의 몸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박아 넣었다.
푸각!
오러 블레이드가 박히자 괴물은 격하게 몸을 떨어댔다.
하지만 역시나 끝없이 신체를 재생하기 시작했으니.
'사념을 모두 제거하는 수밖에.'
초감각으로 사념의 움직임을 따라 그대로 마력을 움직였고.
내 마력은 놈의 몸을 떠도는 사념들을 모두 불태웠다.
그렇게 모든 사념을 제거한 순간.
파사삭!
놈의 몸이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남은 한 녀석도 마찬가지로 제거한 뒤.
"자. 이제는 너희와 내가 대화를 좀 나눠야 할 것 같군."
나는 남아 있는 여덟 명의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
"저, 정말이다! 미, 믿어 줘!"
"뭘 믿으라는 건가. 결국 너희가 내게 알려준 정보는 쥐뿔도 없는 것을."
"그, 그게 우리가 아는 저, 전부라는 말이다!"
플레이어들은 내 앞에서 소리쳤다.
간절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처절한 외침이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들은 정말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저 사념을 모으고, 그 힘을 이용해서 강해질 수 있다는 것 정도.
여기까지는 나도 이미 파악한 내용이라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는 정보들.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이들은 블러드라는 집단의 소속이다. 그리고 이들과 대항하는 템플이라는 집단이 있다는 것.'
어느 정도 어비스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졌다.
대륙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활동하는 두 집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내 행동 방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것도 그렇고… 역시 어비스도 사람 사는 곳이로군.'
각 대륙에는 역시 수많은 길드들이 난립해 있었고.
그들은 역시 자신들 나름대로 랭킹이라는 것을 메기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그 랭커들 중에 블러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블러드의 수뇌부는 자신들의 정체를 비밀에 숨긴 채 활동한다고 했다.
블러드라는 집단은 자신의 바로 위쪽 라인이 아니면 결코 접촉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적이라고 했으니까.
분명히 상위 길드의 수장들 중에서도 블러드의 일원이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한 가지만 더 묻지."
내가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잔뜩이나 경계심 가득한 태도로 나를 바라봤다.
"대체 너희는 그 능력을 어떻게 손에 넣은 건가."
이들이 가진 사념 흡수라는 능력.
그 능력을 손에 넣게 된 계기와 전달한 플레이어의 정체만 알게 되어도 놈들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플레이어들이 내 시선을 회피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숨기려는 모양이다.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가 이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건만, 누구를 속이려고.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데. 대체 무슨 능력을 말하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로도 용케 거짓을 지껄이고 있는 녀석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것 말이다. 너희가 모두 가지고 있는 그거."
"……!"
내 말에 플레이어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사념 흡수 말이다."
"허, 허억…."
"무, 무슨…!"
다시 한번 숨을 급히 들이켜는 플레이어들.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조금 고통스러울 거야."
나는 몸을 일으켰고.
다시 검 위로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모, 몰라! 모른다고! 우, 우리는 그저… 그곳에 가서 계, 계약을 맺었을 뿐이다!"
계약?
그곳?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눈매를 좁히며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훑었다.
저 정도가 사념 흡수라는 능력에 대해서 저들이 알고 있는 전부인 게 분명했다.
'우선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건가.'
이들은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었을 테니.
고작 이런 나부랭이들을 통해서 블러드라는 집단의 비밀에 다가갈 수는 없을 테지.
'어쨌든 이 정도의 소득도 지금 상황에선 충분하지.'
그리고 나는 내 앞에 있는 플레이어를 바라봤다.
동시에 나는 마음먹었다.
저 사념 흡수라는 능력을 포식하기로.
"우선 그건 내가 가져가마."
"뭐, 뭐…?'
그 순간 떠오른 메시지는.
[사념 흡수 (???)를 포식하시겠습니까?]
[필요 포식 포인트 10,000,000P]
포식하기 위해서 무려 1천만 포식 포인트가 필요한 능력.
하지만 망설일 필요는 없다.
이미 포식 포인트는 넘칠 만큼 가지고 있었으니까.
'포식하겠다.'
그렇게 능력을 포식한 순간.
[사념 흡수 (???)를 포식했습니다.]
[상태창에 사념 흡수 (???)가 각인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고.
"허, 헉!"
내게서 능력을 빼앗긴 플레이어가 다시 한번 숨을 급히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