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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86화 (186/277)

186화

키르륵! 키르륵!

콰득! 콰지직!

저주받은 고블린과 다른 열 마리의 소환체들이 몬스터를 쉴 새 없이 쓰러트렸다.

내 신체 능력을 이어받은 이상, 이 근방에서 저 녀석들을 가로막을 수 있는 몬스터는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초감각의 범위로 근방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으니.

적어도 내 시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몬스터는 없다고 봐도 문제는 없을 거다.

'벌써 0.8%.'

내가 처음 발레하드 왕국에 도착한 지 3일째가 된 날 이뤄낸 쾌거였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보들과 함께 개척률은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었다.

이 속도라면 발레하드 근방에서 3%까지도 충분히 욕심내 볼 법하다.

짧은 시간이나마 내가 개척률에 대해서 분석한 건 이렇다.

'같은 대상이라도 어떻게 분석하느냐에 따라서 증가하는 개척률이 달라진다.'

무슨말인가 하면, 같은 식물을 그냥 눈으로 훑어볼 경우 0.0001%가 증가할 것을.

더 세밀하고 자세하게 분석할 경우 10배, 혹은 20배 이상의 개척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나의 초감각은 가히 사기적인 능력이지.'

겉표면을 훑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내 초감각은 그 내부를 파고들어 뿌리의 성분마저도 철저하게 분석해 낼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니 한 개의 식물을 분석하더라도 내가 얻어내는 개척률은 평범한 플레이어들이 몇 시간 노력해서 분석하는 것 이상으로 탁월했다.

'심지어 그런 작업이 1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거지.'

그뿐인가.

한 번에 초감각의 범위 내에 닿아 있는 모든 동, 식물과 지형, 지리를 단번에 꿰뚫어 버리니.

그 효율성과 개척의 진척 속도는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 혼자서 산책 한 번 하는 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달라붙어 노력하는 것 이상의 효율을 보이는 셈이다.

'어쨌든 이 근방은 거의 다 정리된 것 같은데.'

지난 3일간 잠도 거의 자지 않은 채로 발레하드 왕국 근방의 몬스터를 싸그리 소탕했다.

당연히 발레하드 왕국 기사와 병사들의 도움은 받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지만.

저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몬스터와 맞서 싸웠고, 그 사실에 크게 기뻐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하하하! 이제 우리 왕국의 번영만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쪽에 더 이상 몬스터가 없습니다! 우리의 승리입니다!"

"국왕 전하의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어어!"

기사와 병사들이 한데 엉켜 소리쳤다.

처음 저들을 봤을 때 느껴졌던 피로감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지금 저들이 외치는 환호는 가식이나 연기 따위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인 것이 분명했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결국 나아갈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근방의 산맥에 서식하던 몬스터를 거의 다 몰아낸 이상, 저들의 활동 반경은 더더욱 넓어질 테고.

더 많은 재료와 식량들을 조달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나름 뿌듯하기도 하고.'

나의 이득을 위해서 한 일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발레하드 왕국의 일원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니까.

"자, 다들 정리하고 돌아갑시다! 오늘 거하게 마셔 보자고! 으하하!"

"좋습니다! 기사님! 오늘은 돼지고기 좀 넉넉하게 구워 달라고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돼지고기? 좋지!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엄청나게 잡아들였다는군!"

"오오오!"

기사와 병사들이 마치 친구라도 된 것처럼 친근하게 떠들어댔다.

그동안 내가 관찰해온 결과, 사실 이들 사이에 신분이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국왕 앞에서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긴 했지만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만 그럴 뿐이지.

만찬을 하거나 사적인 자리에서는 병사와 국왕들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이상하게 느꼈던 것일 테지.'

조금은 경박스럽던 국왕의 웃음이라거나.

군기가 다 빠져 보이던 병사들의 모습 말이다.

듣기로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어비스에 넘어와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격식을 따지는 것 따위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국왕은 결국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았다고 했다.

신하들은 한동안 적응을 못했지만, 계속해서 동료들이 몬스터의 습격에 목숨을 잃어가며 지금의 발레하드 왕국이 되었다고 했었지.

'하긴. 지금 규모로만 본다면 왕국이 아니라… 조금 규모 있는 마을 수준에 불과하니까.'

이들이 그동안 수렵을 통해 생계를 이어 올 수 있었던 것도 왕국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레하드 왕국의 일원들은 만난 게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묘하게 정이 가는 이들이었다.

"모험가님! 어서 오십시오! 오늘 꼭 함께 만찬을 즐기시는 겁니다!"

"제 누이를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누이로 말씀드리자면…."

"야 이놈아! 저분이 누구신데! 내 여동생 정도는 되어야…!"

"닥쳐 이것들아! 모험가님! 무시하십시오! 이놈들은 제가 단단히 혼쭐을 내주겠습니다!"

"이크! 죄송합니다요! 흐하하!"

어느새 나에게도 거리낌 없이 대하는 병사와 기사들.

그런 태도가 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는 기사와 병사들을 바라보며 나도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저쪽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사람이다.'

눈으로 아직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초감각의 범위 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해 냈다.

'누구지?'

어비스의 원주민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저쪽 방향에서 거주하는 원주민 집단은 없을 텐데?'

그동안 당연히 몬스터만을 소탕한 게 아니다.

그동안 발레하드 왕국에서 탐색한 것 이상으로 나는 근방의 지형과 몬스터, 원주민들의 분포에 대해서 빠르게 분석해 놓은 상태였으니까.

'그렇다면 플레이어라는 말인데.'

아직 아시아의 플레이어들은 단 한 명도 어비스로 넘어오지 않았다.

그 말은 즉, 지금 이쪽으로 다가오는 플레이어들은 타대륙의 플레이어들이라는 뜻.

'그건 그렇고….'

내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저들이 이동하고 있는 방향이다.

우연이라고는 너무도 정확하리만치 내가 있는 방향으로 꾸준히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나를 찾아오고 있는 건가?'

지금 모든 상황을 전제로 생각해 본다면.

저들은 나를 노리고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분명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빠르게 놈들과 조우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군.'

내가 말하는 놈들이란 바로 사념이 파편을 악용하고 있는 녀석들을 가리키는 것.

'내가 등장한 순간 어차피 전 대륙의 플레이어들은 나의 등장을 알게 되었을 거다.'

나의 입장과 동시에 내 입장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게다가 동시에 활성화된 아시아 지역의 개척률도 그렇고.

'잘 됐군.'

나는 저 앞쪽에서 걸어가고 있는 기사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은 너희들 먼저 가라. 나는 잠시 할 일이 있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몰른과 해츨링은 기사들을 통해 왕궁으로 보냈다.

지금은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은, 당연히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방향이다.

그렇게 그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새 능력을 한 번 사용해 봐야겠어.'

어비스에 도착한 순간 손에 넣은 '만리경.'

먼 곳에 있는 이들의 대화까지도 엿들을 수 있는 사기적인 정찰 능력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나를 끌어 모음과 동시에 만리경을 활성화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맵이 펼쳐졌다.

맵에는 내가 서 있는 지점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내 위치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이 그려 있었다.

'이 원이 만리경의 범위인 모양이군.'

그렇게 맵을 바라보며 나는 초감각을 활성화해 나를 다가오고 있는 녀석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들의 위치는 운이 좋게도 만리경의 범위 내에 들어와 있었으니.

나는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곳을 향해 마력을 움직여 내 분신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음? 뭔가 움직이지 않았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내 귓가로 들려왔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능력이군.'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오는 능력이라니.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의 대화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였다.

***

"무슨 소리야?"

"아냐. 나도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바람 소리겠지. 그보다 이제 얼마 멀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절대 잊어서는 안 돼."

"그보다… 그 녀석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쩔 수 없지.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생포하는 수밖에. 어차피 팔다리쯤이야 사념을 이용하면 금세 재생할 수 있으니까."

"사념… 정말 무섭지만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야."

"그렇지. 어느새 내 평균 스탯이 1000을 넘었어. 사념이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다."

"평균 1000이라니, 대단하군."

"대단하긴. 여기에서 파편 조각만 심어낼 수 있으면 평균 2000도 금세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블러드 플레이어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압도적인 힘.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잠깐."

플레이어 한 명이 멈춰 서서 손을 들어 올렸다.

"뭐지?"

"갑자기 사념이 더 크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한 명이 말했다.

그 순간 모두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들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진짜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공명이 몇 배로 빨라지고, 진동이 커졌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으니.

"정말이다. 공명이 몇 배는 더 거세졌어."

"무슨 일이지?"

플레이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마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건가?"

"구스타프. 탐지 능력을 펼쳐봐."

그 말에 구스타프라는 플레이어는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와 함께.

파아앗!

약한 바람이 그들의 주변을 스쳐지나갔다.

"헛!"

구스타프가 숨을 급히 들이켰다.

"뭐야, 구스타프. 왜 그래?"

"오, 오고…있…."

"뭐라고?!"

"그자가 오고 있다고!"

구스타프의 말에 다른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이 다급해졌다.

그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자신들이 찾아가고 있던 목표물이,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니.

"위, 위치는! 그리고 속도는?"

"그, 그러니까…."

하지만 구스타프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 이게 대체…."

너무도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한 명의 플레이어.

"뭐 해! 구스타프! 어서 방향을 알려 줘!"

기다리다 못한 플레이어 한 명이 다시 소리를 내질렀다.

"자, 잠시만. 지속시간이 끝났다. 다시 한번 능력을 사용할 테니…."

구스타프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한번 탐지 능력을 펼쳐냈다.

동시에 구스타프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배, 백 미터 전방… 아, 아니 오십, 아니, 삼십…."

"이런 미친 새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결국 참지 못한 플레이어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구스타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강민의 초감각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의 탐지 능력은 충분히 탁월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콰아앙!

급작스레 터져 나온 폭음과 함께 플레이어 한 명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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