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탑의 난이도가 재구성됩니다.]
[탑의 최종 보스몬스터가 변경됩니다.]
[70층 이하에 머무는 플레이어에 한정하여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응? 이게 뭐야?"
"뭐야! 갑자기?"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저거?'
"나, 나도 보여요!"
그 시각.
대한민국 탑의 전역에서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난데없이 떠오른 메시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1층에서부터 최고층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 모두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이게 대체 뭐지?"
"갑자기 왜 난이도가 바뀐다는 거야?"
"신체 능력은… 헉!"
다급히 상태창을 펼쳐보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증가되어 있었으니까.
"맙소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거라곤 여느 때와 같이 탑을 오르거나, 아니면 휴식을 취하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히든피스라고 하기엔…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니지. 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히든피스를 달성할 리가 없잖아."
이 순간에도 길드 메시지를 통해 서로 알 수 없는 이 현상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저, 저기… 저기 보세요!"
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은 채 소리쳤다.
"어, 어?!"
"저, 저게 뭐지?"
하늘에는 모두가 볼 수 있게 거대한 홀로그램 하나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 담겨 있는 건.
"요, 용?"
"저거 드래곤 아니야?"
바로 레드 드래곤이었다.
조금 전 강민이 쓰러트렸던 그 레드 드래곤.
동시에 그런 레드 드래곤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으니.
"한강민이다! 저, 저 사람… 한강민이야!"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그가 강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이유는 강민의 머리 위에 써있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 화면은, 설계자가 탑의 플레이어들에게 직접 전송한 홀로그램 화면.
그 짧은 순간 설계자는 강민과 드래곤의 싸움 중 하이라이트만을 편집해서 탑의 플레이어들에게 전송한 것이다.
동시에 메시지 하나가 더 떠올랐다.
[플레이어 한강민의 업적으로 이 탑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일시적인 버프 효과를 적용함. 다들 한강민을 만나면 감사 인사라도 한 번씩 전하시길 –설계자 백-]
이라는 메시지였다.
"허어어…."
플레이어들은 혼란에 빠졌다.
지금 막 레드 드래곤과 싸우기 시작한 강민의 모습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저게… 저거 사람 맞냐?"
믿을 수 없었다.
자신들은 본 적도 없는 몬스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드래곤을 농락한다.
그뿐인가.
드래곤의 마법을 그대로 받아쳐 드래곤에게 반격하는 모습을 본 순간 모든 플레이어들은 입을 떡,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든 장면들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드래곤을 압도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약한 건가? 라는 생각이 스쳐 갈 법도 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생각은 할 수 없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드래곤의 몸집과 드래곤이 펼쳐내는 마법들을 말이다.
'내가 저 앞에 있었으면 1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니, 1분이 뭐야. 1초라도 버틸 수 있으면….'
'저 사람은 겁이란 게 없는 거야?'
'대체 스탯이 얼마나 높은 거지? 아니, 능력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 거야?'
플레이어들의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켰다.
누군가는 절망감을 느꼈고.
누군가는 환희를 느꼈다.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강함.
그것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결국 강민이 드래곤의 몸속으로 들어간 순간에는.
"……."
더 이상 감탄사를 흘려보내는 것마저 잊어 버렸다.
드래곤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폭발과,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불길.
그 모든 것을 버텨내고 드래곤의 몸속을 헤집고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미치겠네."
"사람이 아니야."
플레이어들은 절규했고, 환호했으며 동시에 강민의 이름을 연호했다.
분명 설계자가 그러지 않았던가.
자신들에게 벌어진 이 현상이 바로 강민 덕분이었다고.
***
"……."
"인간 아니죠?"
"아닐 거야. 저게 어떻게 인간이야, 에이…."
박명철과 한동희, 김민희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들도 지금 레드 드래곤과 싸우고 있는 강민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저거… 70층일 텐데."
"다행이에요. 보스 바뀐다니까."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강민이 레드 드래곤을 처치해 준 덕분에 자신들은 드래곤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김민희는 앞을 바라봤다.
"니들도 잘 봤지?"
"예, 예에에…."
"우와아아…."
그 앞에 서 있는 19살의 소년, 소녀들.
그들은 바로 이제 곧 탑 밖으로 보내질 플레이어들이었다.
탑에서 나고 자라 19살이 된 이들이었고.
위드 길드의 계획대로 그들은 탑 밖에 나가서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후…. 근데 얘들한테 맡겨도 되는 거죠? 이런 핏덩이들한테…."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김민희의 눈에 19살 플레이어들은 어린애로밖에는 안 보였으니까.
"걱정 마. 교육은 단단히 해 뒀으니까. 그렇지?"
박명철은 한 소녀를 바라봤다.
"맡겨 주세요. 염려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신 만큼 확실히 보답해 드릴게요."
"그래. 유진이 너만 믿는다."
박명철은 최유진이라는 19살 소녀에 대해 크게 기대를 거는 중이었다.
다른 19살 플레이어들 중 가장 영특하고, 말재주가 뛰어났고.
박명철과 한동희, 김민희가 지시하는 모든 일을 똑 부러지게 해냈다.
"유진이 한 명만 있어도 웬만한 어른들 열 명보다 낫다."
"그건… 그래."
김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깐깐한 그녀의 눈에도 최유진이라는 소녀의 영특함은 단연코 눈에 띌 정도였다.
"야, 니들도 똑바로 해. 알겠어?"
김민희가 그 뒤에 서 있는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예! 예! 당연하죠!"
"걱정마세요!"
모두가 입을 모아 소리쳤다.
"그만 겁주고."
박명철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너희의 이름은 앞으로 역사에 남게 될 거야. 탑 내부와 탑 외부를 연결한 플레이어로 말이다. 그리고…."
박명철이 허공을 바라봤다.
여전히 드래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강민의 모습.
"저 사람이 만들어준 기회를 결코 헛되이 날려 보내서는 안 될 거다. 너희는 저기 보이는 강민씨의 뜻을 이어받은 전사들이다."
"우욱!"
"으으."
김민희와 한동희는 조금 오그라드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지만, 19살 플레이어들에게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 모양이다.
조금은 고양되고, 조금은 떨리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테다.
위드에 소속되어 있는 그들은.
자신들이 강민과 같은 길드에 속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이미 마음속에서 투지가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나도 강민님처럼 강한 플레이어가 될 거야.'
'강민님이 만든 위드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래. 길드장님이 맞아. 나는 강민님의 의지를 업고 있는 거라고.'
강민의 이름을 되뇌며 19살 플레이어들은 의지를 다잡았다.
이 순간에도 하늘 위에서 드래곤을 압도하는 강민의 모습.
그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멋있고, 그 누구보다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잘… 해내겠습니다."
최유진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냉철해 보이던 그녀마저도.
이 순간에는 강민의 모습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한순간도 강민의 모습이 보이는 홀로그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
"뭐, 뭡니까!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느냐는 말입니다!"
강민이 소리쳤다.
강민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강민이 이렇게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부끄럽기 때문이다.
"으하하하하!"
그런 강민을 앞에 두고 설계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 웃음이 나옵니까! 당장… 당장 끄십시오!"
다급히 설계자를 향해 달려드는 강민.
하지만 설계자는 폴짝폴짝 뛰며 강민의 추격에서 금세 벗어났다.
"왜! 네 업적을 알려야지! 그래야 다른 애들이 너한테 고마움을 느낄 거 아니야!"
"피, 필요 없습니다. 그런 것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던 강민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태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 강민은 그리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아서가 아니다.
그제야 정말로 자신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그토록 원했던 일이잖아.'
목숨도 아끼지 않고 온몸을 내던졌다.
단 하나.
탑의 등반을 위해서.
남들이 해내지 못했던 일.
그리고 평생을 목표해왔던 그 일을 해내지 않았던가.
어쨌든 설계자 덕분에 다시 한번 제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두 눈으로 자신이 레드 드래곤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70층을 클리어 했다는 사실이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 혼자의 힘만으로.
'…….'
전율이 일었다.
그런 강민을 보여 설계자는 미소 지었다.
"것 봐. 너도 기분 좋잖아. 흐흐."
그 말에 강민은 조금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너무도 미숙했기에.
자신의 감정이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을 뿐.
"……."
하지만 그 순간, 강민은 생각했다.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아주 가끔은.
그리고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군.'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가.
강민은 언제나 감정을 억눌러왔다.
슬퍼도 슬퍼하지 않았고, 기뻐도 기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지만.
그것을 티 내는 게 마치 죄악인 것만 같이 느껴왔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스스로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마음 놓고 웃었던 것이 대체 언제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도 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봤다.
치열한 삶이었다.
매 순간이 전쟁이었고, 매 순간이 혈투와도 같은 삶이었다.
'나도 많이 바뀌었군.'
전생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사치다.
누군가는 매일과 같은 일상임에도, 강민에게는 이런 것조차 커다란 사치였다.
하지만 그런 삶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했던 과거가 있었으니 지금의 이 희열과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강민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몰른과 해츨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 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설계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박명철]
[한동희]
[김민희]
쏟아지는 동료들의 메시지.
그 내용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강민도 그들을 의지하고 동료라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나쁘지 않은 삶이다.
앞으로도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강민은 그렇게 되뇌었다.
물론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살아갈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달라졌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강민의 마음 한구석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자, 됐고. 우선 마셔!"
다시 설계자가 소리쳤다.
강민은 다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몰른의 옆자리에 앉았다.
"주인님! 드세요! 맛있어요오오오!"
"그래."
강민은 다시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자신 앞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씁슬한 와인향이 강민의 코를 간질였다.
"그나저나."
강민은 설계자를 바라봤다.
설계자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는 일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민에게 일이란 곧, 탑의 등반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설계자는 혀를 내둘렀다.
네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