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78화 (178/277)

178화

알은 내 마력을 한참이나 집어삼켰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내 마력이 온전하지 않았고.

덕분에 내 마력이 다시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중.

[드래곤의 알이 부화를 위한 마력을 온전히 흡수했습니다.]

[드래곤의 알이 부화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슬아슬했다.

마력이 조금만 더 필요했으면, 나는 다시 마력을 탕진한 채로 쓰러져야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쩌적!

알의 한가운데에서부터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알의 한쪽에서 구멍이 생겨났다.

투둑!

그 안에서부터 작은 손 하나가 뻗어져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발이겠지만.

"끼이잉…."

아직 온몸이 축축한 점액에 뒤덮여 있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도마뱀이 몸을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신음과 함께 알을 깨부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투둑! 투두둑!

"끼잉… 끼이잉…."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몸에 붙은 점액들을 떨쳐내고 계속해서 꿈틀대고 있는 해츨링의 모습.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오…?"

몰른이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돼."

어디에서 본 적 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건,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꼭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고.

만약 여기에서 내가 도와준다면, 그건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해츨링을 방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끄으응… 끄르륵…."

쩌적!

해츨링의 앞발이 알을 깨부쉈고.

투두둑!

부서진 잔해가 떨어져 내렸다.

구멍은 더욱 커졌다.

해츨링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장면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꽤 두꺼운 알을 부수는 게 쉽지 않아 보였으나, 해츨링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우, 우아아아!"

몰른이 탄성을 터트렸다.

나도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오는 해츨링을 보며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어쨌거나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지 않은가.

"끄륵… 끄르륵…."

결국 알을 모조리 깨고 모습을 드러낸 해츨링.

'드래곤이라고 하기엔….'

조금 귀여웠다.

앞다리는 고작 해 봐야 10cm를 간신히 넘을 것 같았고.

온몸에 통통하게 올라 있는 살집들은 그런 해츨링의 모습을 한층 더 귀엽게 만들었다.

게다가 저 동그란 눈을 보고 있으면.

'저게 나중에 자라서 아까 같은 왕 도마뱀이 된다는 건가.'

내가 싸웠던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해츨링이 알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간 녀석의 옆에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레드 해츨링]

>펫 등급 : R (성장형)

>보유 능력

1. 화속성 부여

>해츨링의 마력을 이용하여 무기에 화속성을 부여할 수 있다.

2. 해츨링 피어

>해츨링이 포효함과 동시에 적들은 공포에 빠진다.

-공포에 빠진 적은 50%의 확률로 스턴

3. 마법

>레드 해츨링은 화염 계열의 마법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R등급….'

게다가 무려 성장형이다.

시작부터 세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앞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것 아닌가.

몰른이 이제야 세 개의 버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 막 태어난 해츨링이 얼마나 대단한 펫인지는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저 세 번째 능력….'

마법 말이다.

마법이라는 하나의 능력으로 뭉뚱그려 놓기는 했지만, 사실상 해츨링이 사용 가능한 마법들을 늘어놓는다면, 그 수는 지금의 수십 배로 뛰어오르겠지.

'괜히 R등급 펫이 아니군.'

이제는 내게 흔해진 R등급.

하지만 과연 R등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펫의 능력이다.

'태어나자마자 마법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니.'

조금 질투가 날 정도다.

플레이어들이 마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면.

탄생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마법을 가지고 태어나는 해츨링의 존재는 확실히 독보적이었다.

'게다가 화속성 부여라는 능력도 꽤 마음에 들어.'

지금 내게 속성 부여라고 할 능력은 고작해야 뇌전검.

그마저도 지속 시간이 제한적이라 꽤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해츨링의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사실상 제한 시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테지.'

나는 다시 해츨링을 바라봤다.

"꾸웅… 꾸웅…."

해츨링은 알 수 없는 울음을 흘려보내며 나와 몰른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왔다.

"우와아아아…."

몰른은 그런 해츨링이 너무 귀엽다는 듯이 계속해서 감탄사를 흘려보내고 있었으니.

"잘 해 줘라, 몰른. 네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좋아요오오오!"

몰른이 해츨링을 부둥켜안으며 소리쳤다.

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다.

해츨링도 그런 몰른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조금은 신나 보였다.

"우웅! 꾸우웅!"

그렇게 나는 다시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한 번 마력을 급격하게 사용해서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움직일 정도로 몸 상태가 호전되었다.

'그러면 이제….'

나는 70층을 클리어했고.

남은 건 하나다.

'이 다음 층.'

하지만 드래곤이 쓰러진 게 꽤 오래됐음에도 아무런 변화는 없다.

'어떻게 해야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거지?'

이후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나 역시도 처음 경험하는 것들.

하나씩 직접 탐구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혹시 여기 어딘가에 문이라도 설치해 놓은 건 아닐지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 것도 없다.

그런 게 있었으면 이미 진즉에 초감각으로 파악했을 테니까.

"어쩌라는 건지."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던 중.

[설계자가 플레이어 '한강민'님을 소환하기를 원합니다.]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

이런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

소환이라.

나쁘지 않지.

아니, 오히려 바라던 바다.

그렇지 않아도 설계자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꽤 많은 참이었으니까.

"좋다. 응하겠다."

내가 대답한 순간.

후우우웅!

내 몸 위로 빛무리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

"안녕."

이전에도 한 번 와 봤던 설계자의 방.

거기에는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설계자가 앉아 있었다.

"오늘은 친구도 있네?"

설계자는 내 옆에 있는 몰른을 보여 말했고.

"애완동물도 하나 있고. 푸흡."

해츨링을 바라보며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가 웃는 이유는 하나다.

해츨링의 등 위에 올라타서 잔뜩 신이 나 있는 몰른의 모습 때문일 거다.

내가 봐도 저 몰른의 천진난만함은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될 정도다.

"안녕하세요오오!"

몰른이 설계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래. 안녕."

설계자역시 몰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따악!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함께 설계자의 방 한가운데에 커다란 식탁이 모습을 드러냈고.

쫘르륵!

각종 음식과 술이 세팅됐다.

"우선 앉아. 고생했는데 밥이라도 먹어야지?"

"…팔자… 좋으십니다."

달라진 게 없다.

저번에는 소주더니, 이번엔 한눈에 봐도 꽤 고급스러운 와인들이다.

"우아아아!"

"꾸웅~! 꾸우웅!"

몰른과 해츨링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식탁으로 달려서 한 자리씩 차지해 앉았다.

"흐흡…."

설계자는 눈에서 꿀이라도 떨어질 듯한 표정으로 몰른과 해츨링을 바라보더니.

"많이 먹으렴."

그렇게 말했다.

우걱! 우걱!

허락을 받자마자 몰른과 해츨링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접시를 다 비운 순간 또 다른 음식이 접시를 채웠으니.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

나는 그저 가만히 서서 설계자를 노려봤다.

"표정이 왜 그래. 이렇게 좋은 날에."

"정신 좀 차리십쇼."

나는 설계자를 타박했다.

"어, 응…? 뭐, 뭐를…!"

설계자가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이딴 걸 난이도라고 조정해 놓은 겁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대체 저딴 괴물을 어떻게 사냥하라고 만들어 놓은 겁니까. 경쟁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쟁은커녕… 다른 플레이어들은 드래곤의 날갯짓 한 번에도 내장이 터져 죽어 버리고 말 겁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딴 보스를 70층에 세워 놓은 겁니까."

나는 쉬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내가 이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이제 타국의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물론 나는 70층을 클리어 했고, 이제 그 다음으로 넘어갈 자격을 획득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저 괴물을 또 처치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나의 도움 없이 레드 드래곤을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다.

이래서는 내가 신규 플레이어들을 위해 설치하고자 했던 시설들조차 아무 의미 없는 짓이 되어 버리고 말 게 자명하다.

"하하하하!"

하지만 설계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무슨…."

괜히 짜증이 올라오려던 그때.

"네가 있잖아."

"뭐요…?"

"내가 말하지 않았어? 내가 기다려왔던 건 너와 같은 독보적인 강자였다고. 다수의 강자가 아니라, 소수의 절대자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너는 소수도 아니고 혼자서 다 해 처먹네?"

"다 해 처먹다니…."

하지만 그 말이 그리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가 강하다는 말이니까.

"그리고 걱정은 마."

"……?"

"드래곤은 그렇게 구하기 쉬운 생명체가 아니야. 이 괴물이 집어삼킨 모든 세계를 통틀어 서도 얼마 없어."

"설마…."

"그래. 앞으로 70층에는 드래곤이 나오지 않을 거야. 그 녀석마저도 다 죽어가던 녀석이었고… 나도 꽤 많은 협상을 통해 그 자리에 앉혀 놓은 거였거든."

"허…."

정말 설계자와 대화하다 보면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협상이라니. 대가는 뭡니까."

내 말에 설계자는 한 곳을 바라봤다.

열심히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해츨링.

"설마…."

"그래. 자신의 아이를 돌봐줄 만큼 강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보상으로 네게 저 아이가 주어진 거고."

"내 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그가 원했던 일이야. 자신이 직접 자신의 아이를 돌봐줄 존재를 가늠하겠다고 했어."

"그 테스트라는 걸 위해 저는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설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드래곤을 펫으로 부리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아? 아니, 그걸 떠나서 목숨을 걸지 않고서 그런 행운을 얻겠다는 건 과욕이지."

나는 다시 해츨링을 바라봤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저렇게 귀여워 보일지라도, 그 본질은 레드 드래곤.

내가 직접 상대했던 레드 드래곤은 정말 강했다.

게다가 실제 해츨링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같은 능력들이다.

내 눈으로 확인했기에 잘 알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다 죽어가는 드래곤이라니.'

그 말은 내게 있어서도 조금 충격적이었다.

만약 전성기의 레드 드래곤이었다면….

굳이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나는 어떻게든 놈을 쓰러트렸을 테지만.

아마 그 과정이 너무도 고되고 힘들었겠지.

"우선 먹어."

설계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이건 내 선물."

[탑의 난이도가 재조정됩니다.]

[탑의 최종 보스몬스터가 변경됩니다.]

[70층 이하에 머무는 플레이어에 한정하여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