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76화 (176/277)

176화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끝나기는커녕, 이제 막 싸움이 시작됐을 뿐이다.

고작 가이오스와 고블린 따위로 저 왕 도마뱀을 쓰러트리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가이오스와 고블린의 역할은 드래곤을 괴롭히고 시선을 교란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순간.

'피해라.'

나는 가이오스와 고블린들에게 다시 내 의지를 전했다.

그와 동시에 고블린들은 재빠르게 가이오스의 등에 올라탔고.

가이오스들은 여덟 개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순식간에 드래곤의 몸에서 거리를 벌렸다.

그와 함께.

콰르르르륵!

드래곤의 몸 위로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자신의 몸 위로 불길을 둘러싼 것이다.

당연히 고블린과 가이오스를 불태워 버리기 위해서였겠지만.

이번에도 나는 초감각으로 놈의 마나의 움직임을 파악해냈으니.

파바바밧!

고블린을 태운 가이오스들은 재빠르게 드래곤의 몸에서 멀찍이 떨어진 상태다.

"크아아아아!"

잔뜩 약이 올랐는지, 자신의 몸 위로 피어오른 불꽃을 보스존 내부에 사정없이 흩뿌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드래곤은 앞발과 꼬리를 움직여 가이오스를 공격했지만, 그 정도의 둔한 움직임으로는 가이오스의 재빠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드래곤의 몸 위로 타오르던 불꽃이 사라졌다.

가이오스들은 불길이 꺼짐과 동시에 다시 드래곤의 발밑으로 내달렸다.

그 이후로는 조금 전과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 펼쳐졌다.

파직! 콰직!

이제는 발등에서 발목으로 올라탔고.

몇몇은 드래곤의 무릎까지 올라가 사정없이 살점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드래곤의 무릎에서도 뼈가 드러나기 시작할 정도다.

"크륵! 크르르르륵!"

드래곤이 온몸을 강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블린과 가이오스들이 만들어낸 상처만 더 벌어지고, 더 많은 피만 쏟아낼 뿐이다.

'그러면 이제 슬슬.'

내가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이미 놈의 날개는 놈의 거대한 몸을 띄울 수 없는 상태였고.

뒷다리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라 놈의 움직임은 훨씬 더 둔해졌다.

콰륵!

나는 곧바로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맹렬한 에너지가 검 위로 치솟은 순간, 드래곤도 그 기운을 감지했는지 나를 바라봤다.

동시에.

쿠르륵!

허공에서 거대한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마법이다.

그리고 지금 모여드는 마력의 양으로만 본다면.

'최소한 AAA급. 어쩌면 S급 수준의 마법이겠군.'

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느새 허공에 모여든 마력은 거대한 화염 구체로 변했다.

그 개수는 무려 열에 가까웠다.

구체가 완전한 형태를 갖춤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 역시 가이오스와 고블린을 견제하는 건 포기한 모양이다.

모든 구체들이 정확히 나를 노린 채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동하면 구체 역시 나를 따라 움직였다.

아무래도 드래곤이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서 저 구체를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으면.'

부딪치는 수밖에.

그렇다고 무작정 몸뚱이를 들이밀 생각은 없다.

'먼저 궁신탄영.'

콰아앙!

궁신탄영을 이용해 허공으로 도약했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구체들의 방향이다.

그와 함께.

휘릭!

몸을 회전시켰다.

몸 주변에는 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마력을 둘렀으며.

빠르게 회전하는 오러 블레이드는 구체와 닿았다.

그 순간.

콰르르륵!

오러 블레이드가 화염 구체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내가 마력을 적절히 컨트롤하며 오러 블레이드를 이용해 드래곤의 마력을 흡수한 덕분이다.

초감각을 통해 드래곤의 마력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마력의 컨트롤이 흐트러지면, 나는 곧바로 커다란 폭발에 휘말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내 마력의 컨트롤이 완벽하다는 뜻이리라.

오러 블레이드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그와 동시에.

휘릭!

검을 휘둘렀다.

드래곤을 향해서.

콰아아아!

오러 블레이드 위를 휘감고 있던 불길이 드래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드래곤이 다급히 숨을 들이켜며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푸슉! 파직! 콰득!

그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드래곤의 뒷다리를 공략하고 있던 가이오스와 고블린들.

고블린과 가이오스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드래곤의 뒷다리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다.

근육과 관절들마저 씹어 먹기 시작한 가이오스들 덕에 드래곤은 거대한 자신의 몸뚱이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었으니.

결국.

콰아아앙!

내가 날려 보낸 불길이 오히려 드래곤을 강타했다.

드래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드래곤에게 가해진 대미지는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미처 흡수하지 못한 마법의 남은 마력들은.

콰콰쾅!

결국 내 몸을 두드렸고.

"크흡!"

놈의 마법의 위력을 한참이나 줄였음에도, 내 신체에 가해지는 대미지 역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크아아아아!"

그 피해의 80%가 드래곤에게도 전해졌다는 뜻이었다.

드래곤이 몸을 격하게 뒤틀기 시작했다.

풀썩!

나는 다시 바닥에 착지했다.

"젠장…."

물약을 꺼내 마셨다.

대용량 체력 지속 회복 포션과 대용량 스태미너 지속 회복 포션이다.

아무래도 드래곤과의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판단으로 스태미너 포션까지 복용했다.

"아파 뒈지겠군."

마력의 초월 스탯인 마법 피해 흡수효과와 마력 저항력이 더해졌음에도 살갗이 찢어질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지금 내 눈앞에 또 다른 능력의 효과가 새로 적용됐다.

[오크 좀비의 재생력 효과가 적용됩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100% 증가합니다.]

물약의 회복 속도와 더해져 마법으로 인한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더 몰아쳐 볼까.'

나는 드래곤을 바라봤다.

놈은 아직도 뒷다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가이오스와 고블린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중이다.

놈이 내 소환체들을 마법으로 없애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만, 놈의 마법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나는 그것을 예측하고 가이오스와 고블린을 완벽하게 조종하고 있었다.

'울화통이 치밀겠지.'

자신의 발톱보다도 작은 생명체들에게 이토록 방해를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나는 입꼬리를 한껏 비틀며 다시 드래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놈이 포효했다.

입가에서 다시 불길이 치솟았다.

아까 전 사용하려다 실패했던 브레스다.

콰아아아!

놈의 입에서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강하게 응축된 마력은 나를 향해 정확히 뻗어 나왔지만.

콰콰콰콰쾅!

나는 놈의 브레스를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직선으로 뻗어 나오는 브레스 따위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척!

나는 순식간에 놈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콰아아앙!

몸을 날렸다.

궁신탄영이다.

궁신탄영의 추진력과 함께 나는 순식간에 놈의 눈동자 앞으로 도달했다.

쩌억!

놈이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 안에서 다시 불길이 치솟았다.

정면에서 나를 향해 브레스를 쏘아 내려는 것 같았지만.

'자충수다, 멍청아.'

그렇게 속살을 드러내 줬는데 가만히 있어 줄 내가 아니지.

우우우웅!

오러 블레이드가 강하게 공명했다.

거대한 에너지가 오러 블레이드로 모여들었다.

콰아아아!

놈의 벌어진 아가리를 향해 검기의 파동을 쏟아냈다.

거대한 반달의 형대로 펼쳐진 파동이 놈의 목구멍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놈의 입과 입 내부에서 거대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놈의 목구멍으로 모여 들던 마력은 검기의 파동과 뒤엉키며 놈의 몸속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이 일기 시작했다.

쾅! 콰쾅! 콰앙!

드래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성을 내질렀고, 몸을 격렬하게 뒤틀었다.

그때였다.

빠아아악!

결국 드래곤의 뒷다리가 자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쿠우우웅!

쓰러진 드래곤과.

떨어져 내리는 드래곤의 몸뚱이를 피해 달아났던 가이오스는 금세 드래곤의 몸 위로 타고 올랐다.

끼르르륵!

크허어어엉!

가이오스와 고블린들은 더욱더 신이나 드래곤의 몸뚱이를 공격했다.

날개를 찢었고, 몸속을 타고 오르며 사정없이 도륙했다.

놈들에게는 잔칫상이나 다름없을 테지.

타앗!

그렇게 가이오스와 고블린을 조종하면서도 나는 놈의 전신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지휘관의 외침을 사용했다.

놈의 비늘과 뼈가 터져 나왔고, 근육이 찢겨졌다.

오러 블레이드가 가르고 지나간 자리는 여지없이 갈라져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르…르르…."

몸통 여기저기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진 드래곤.

놈은 신음조차 제대로 흘려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드래곤의 안광이 번뜩였고.

놈의 몸에서 강렬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촤아앗!

놈의 전신에서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빛이 뿜어져 나오며 놈의 전신을 휘감았다.

놈의 전신에 낭자하던 상처들이 한순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회복 마법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회복량.

'젠장.'

이건 너무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회복 마법까지 가지고 있으면, 도대체 이 괴물을 어떻게 처치하라는 말인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음에도.

놈의 상처들이 급속도로 치유되기 시작했다.

피가 멎었고, 찢겨지고 파괴된 살점들이 다시 자리를 되찾았다.

부러졌던 놈의 뒷다리도 마찬가지다.

'적당히를 모르는군, 정말.'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다.

여기에서 어떻게 포기하고 물러설 수 있겠나.

'해 보자. 누가 이기나 갈 데까지 가 보자고.'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고.

다시 드래곤을 향해 도약했다.

***

몇 시간.

아니, 어쩌면 며칠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시간 따위 재고 있을 틈 따위는 없었고.

시간 감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 시간 동안 나와 드래곤은 쉬지도 못한 채 서로를 향해 끝없는 공격과 공격을 이어왔다.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드래곤은 많이 지쳤고.

지쳐가면서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저 안에서 느껴지는 방대한 마력의 근원지.'

오랜 시간.

드래곤과 싸우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놈의 마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었고.

놈의 몸속 어딘가에 방대한 마력을 저장해 놓는 마력의 근원지가 있다는 것.

처음에는 알아챌 수 없었지만.

놈이 지쳐갈수록 놈의 약점은 뜨겁게 달아오르며 마력을 과도하게 흩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초감각으로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은밀히 숨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초감각의 범위 내에 놈의 마력의 근원지가 뚜렷하게 포착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놈 역시 스스로의 몸과 마력을 컨트롤 하는 게 버거워졌기 때문일 테지.

'저것을 파괴해야 한다.'

나는 다시 놈의 입속을 향해 몸을 날렸다.

놈의 턱과 이빨을 깨부수며 단번에 놈의 입속으로 진입했고.

계속해서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놈의 목구멍을 타고, 놈의 몸속으로 진입했다.

콰직! 콰지지직!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끈적한 진액이 내 몸을 잔뜩 뒤덮었다.

콰아앙! 콰쾅!

뼈를 박살 내고, 근육과 점막을 헤치며 끝없이 나아갔다.

쿠우웅! 쿠우웅!

드래곤이 자신의 몸을 흔들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박살 낸 뼈와 근육은 놈의 회복 마법을 통해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동시에 놈은 자신의 몸속으로 마력을 움직이며 나를 공격했다.

뜨거운 열기가 내 전신을 감쌌다.

나 역시 끔찍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 눈에 드래곤 하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정체처럼 보이는 거대한 물체.

하지만 그게 수정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쿠웅! 쿠웅!

드래곤의 심장은 내 몸을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격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