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뭐, 뭣…."
김원호는 다급히 검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자신의 친위대가 공격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푸훅! 푸학!
어디선가 모습을 드러낸 스켈레톤과 고블린이 자신을 향해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진 않지만, 그의 몸에 생겨난 상처들 위로 피가 흐르기 시작했으니, 김원호도 다급하게 박명철을 향한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놈들!"
콰직! 파직! 서걱!
김원호가 그를 공격하고 있는 고블린과 스켈레톤을 빠르게 처치했다.
"뭣들 하느냐!"
김원호가 친위대에게 외쳤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말이 아니다.
조금 전 울려 퍼진 굉음과 함께 저 먼 곳에 날아가 처박힌 친위대들은 이미 정신을 잃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블린과 스켈레톤을 처치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큰일 날 뻔했군."
그때 저쪽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
그 순간 김원호는 직감했다.
'한강민.'
저기에서 걸어오고 있는 인물이 바로 한강민이라는 것을.
김원호와 눈이 마주친 강민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떤가. 내 선물은. 네놈의 친위대가 내가 부리는 고블린, 스켈레톤보다 나약해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한껏 비아냥대는 강민의 말에 김원호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그가 이끄는 열 명의 플레이어들은 고블린과 스켈레톤 한 마리조차 쉽사리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파각! 푸학! 콰직!
"크아아아악!"
"사, 살려줘어어어!"
"끄아아악!"
고블린의 단검에 플레이어의 다리가 꿰뚫리고, 스켈레톤의 악력에 팔꿈치가 뒤틀렸다.
"이 무슨…."
김원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그 역시 탑을 올랐다.
그러니 저 고블린의 정체는 알고 있다.
'어떻게….'
그가 알고 있는 저주받은 고블린이 아니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대체 어떻게 일개 플레이어가 저주받은 고블린을 다루고 있다는 것인가.
'소환사?'
아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도 내에 이 탑에 소환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강민은 소환사나 네크로멘서 따위가 아니지 않은가.
'대체….'
김원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와중.
강민이 한 걸음, 한 걸음 그를 향해 다가왔고.
"오해하지 마라. 저 녀석들은 그저 장난감 병정들일 뿐이니까."
강민의 말과 함께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콰르르륵!
강민의 검 위로 피어난, 무형의 기운.
"마, 말도… 말도 안 되는…!"
김원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분명히 검기다.
아니, 검기보다 훨씬 정순하며 강하게 응축된 기운이었다.
"이, 이…."
더 이상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머리가 멍해지려던 찰나.
파지직!
백색의 오러 위로 전류가 더해졌다.
"아…."
김원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대체 이 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인가.'
그는 탑의 가장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었다.
자신이 탑의 모든 것을 내려 보며 관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탑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힘과 권세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많은 것을.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저 아래.
그의 시선이 닿지 않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일어난 작은 변화.
언젠가 탑 전체를 뒤흔들만한 격동의 씨앗을 놓치고 있었다.
'…….'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신의.
아니, 검술 명가 전체의 패착이었다는 것을.
***
[천골지체 – 혈계]
[폭기 – 혈계 파생]
[근골 강화 – 혈계 파생]
[무골 – 혈계 파생]
[천기흡공 – 혈계 파생]
[공력 강화 –혈계 파생]
[검강 – S]
[검기 - AAA]
[속성 부여 – AA]
.
.
.
끝없이 이어지는 김원호의 능력들.
김원호를 만나기 전, 새로운 포식 슬롯을 오픈하고 김원호의 능력을 볼 수 있게 된 결과였다.
'조금… 어이가 없군.'
히든피스란 히든피스를 독식하다시피 한 나와 맞먹을 정도의 능력을 보유한 김원호다.
그중에 혈계와 관련된 능력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말해서 배알이 꼴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니 탑의 정상에서 군림하고 있었던 거겠지.'
그가 따로 획득한 능력을 모두 제하고서라도 혈계와 혈계에서 파생된 능력들만 가지고 있어도 웬만한 랭커쯤은 싸잡아 먹을 수 있을 수준이다.
그리고 저 정도의 능력은 이미 다른 검술 명가의 직계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놀란 것 이상으로 김원호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역시나 내 오러 블레이드를 보고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어떤가. 네 감상은."
내가 김원호에게 물었다.
"……."
말이 없다.
솔직히 물어본 이유는 하나다.
놀려주기 위해서.
안 봐도 내 오러 블레이드가 훨씬 더 정순한 마력을 담고 있다는 건 뻔한 일이다.
짙푸른 오러와 백색의 오러.
이미 김원호 수준의 짙푸른 오러는 내가 이미 거쳐 온 단계이지 않은가.
푸훅! 파직! 파각!
그리고 이 순간에도 울려 퍼지는 파육음들과.
"끄아아악!"
"마, 망할 새끼드으으을!"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의 처절한 외침이 내 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김원호의 건너편을 바라봤다.
"하하…."
머쓱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박명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피하십쇼."
그렇게 말했고.
박명철은 서둘러 좌우로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위드의 플레이어들이 빠르게 멀리 퍼지기 시작했고.
처억!
나는 김원호를 향해 쇄도했다.
뇌전검과 충격파를 사용함과 동시에 오우거의 신체까지 더해졌고.
그 외에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들을 동시에 펼쳐냈다.
"……!"
김원호가 나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
'이러고 있을 수 없다.'
그 무렵 김준석은 조급해질 대로 조급해진 상황이다.
현재 탑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에 김준석도 큰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친 것인가?'
각 명가들은 현재 자신들의 산하 길드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고, 동시에 위드 길드의 영향력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뿐인가, 위드 길드가 급부상하며 Top10 길드들을 모두 소집했다는 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화랑 길드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요동치고 있다.'
격렬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대던.
거대한 격류가 두꺼운 암벽을 뚫고 표면 위로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가, 이 내가 그것을 놓쳤다는 것인가.'
아니다.
놓친 게 아니다.
김준석은 이미 강민의 존재와 위드 길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
알면서도.
두 눈으로 보고 귀로 소식들을 전해 듣고 있었으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
그 이유는.
'…….'
선민의식 때문이다.
검술 명가의 소가주라는 오만함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다른 명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했던.
자신들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외면했던 그 안일함 때문이리라.
'아직. 아직이다.'
김준석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격류가 몰아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막아 낼 수 있다.'
김준석이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이 격류를 역전시키기 위해서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작업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서다.
김준석의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님. 아버님을 도와야 한다.'
물론 그 역시 탑의 전반적인 상황을 진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김원호와 한강민의 싸움이다.
두 세력을 이끌고 있는.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두 인물의 싸움.
물론 남은 검술 명가의 세력을 움직인다면 날뛰고 있는 위드 길드와 명가 산하의 길드들을 제압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만약 김원호가 한강민에게 당하고 난 뒤라면.
아무리 위드 길드를 제압했다고 해도 검술 명가에게 희망은 없다.
김원호가 당했다는 그 사실 때문에.
한강민이 김원호를 쓰러트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검술 명가는 몰락을 맞이하기 충분할 테니까.
'아버님이 분노하실 테지만….'
만약 여기에서 김준석이 김원호를 돕는다면, 그것은 김원호의 치부로 남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 앞에서 검술 명가의 가주로서 나약함을 드러낸다니.
김원호는 아마 평생 김준석을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차라리 김원호의 미움을 사더라도 이 시점에선 가문을 구하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다.
철컥! 철걱!
김준석은 다급히 장비를 착용했다.
그리고 그 역시 검술 명가의 최정예 플레이어들을 모두 소집했다.
직계와 방계를 가릴 것 없이 지금 당장 전투가 가능한 모든 인원을 소집했고.
"다들 준비해라. 가문의 명운을 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김준석이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
콰아아아앙!
오러 블레이드와 검기가 부딪치며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콰아앙! 쾅! 쾅! 쾅!
그 파동만으로도 대기실의 벽면이 허물어지며, 대기실의 바닥이 들고 일어났다.
"크으으으으!"
김원호의 눈에 핏대가 섰다.
믿을 수 없는 괴력이다.
그 역시 자신의 모든 혈계를 개방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어찌, 어찌하여…!'
도무지 강민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불가능했다.
그의 공격이 이미 몇 번이나 강민의 몸을 두드렸건만, 강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부우웅!
그 순간에도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강민의 오러 블레이드를 보며 김원호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껴야만 했다.
콰아아앙!
간신히 강민의 검을 막아낸 김원호의 팔꿈치가 지끈거린다.
"크으윽…."
김원호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을 도와 줄 친위대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블린과 스켈레톤을 상대하며 크게 부상 당했던 그들은, 강민의 공격에 휩쓸려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으니.
"재미있지 않은가."
그때 강민의 목소리가 김원호의 귀를 스쳤다.
김원호가 대답할 틈도 없이 다시 한번 쇄도하는 강민의 일격은.
파직!
"크아아아악!"
결국 김원호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김원호의 전신을 관통했다.
뇌전검과 충격파가 뒤엉킨, 6단계의 오러 블레이드다.
한 번 잘려나간 살점은 더 이상 재생조차 되지 않았다.
혈계 파생 능력인 무골과 천기흡공으로 그의 신체 재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건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강민의 공격이 스쳐 지나간 부위는 결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천기흡공. 훌륭한 능력이지."
그때 강민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에.
"흐읍!"
김원호는 큰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천기흡공.
그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검술 명가의 혈계를 직접 계승한 이들밖에는 없었건만.
"대, 대체 어떻게…."
김원호가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