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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64화 (164/277)

164화

"너, 너희들…."

예진희가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미, 미친 짓하고 있는 거야. 아, 아무리… 위, 위드 길드가 날뛰고 있다고 해도 상대는 검술 명가라고! 이러고 너희가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후…."

궁술 명가 산하 길드인, 신궁 길드의 플레이어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죠, 알아. 미친 짓이라는 거 누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플레이어의 목소리에는 조소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데 말했죠.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고. 당신도 알 겁니다."

그러면서 예진희를 노려보는 플레이어.

"우리야말로 이 탑에서 그 누구보다 우리의 이득을 꾀하는 단체라는 걸…. 우리라고 몰랐겠어요? 우리를 향한 경멸적인 시선들. 박쥐라느니 명가의 개라느니…."

쓸쓸한 미소와 함께 자조적인 그 한마디에 예진희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예진희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제는 우리도 못 해먹겠다는 겁니다. 당신들 똥받이."

"……!"

예진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결정한 겁니다. 우리가 누리던 것들 조금 내려놓더라도… 차라리 마음 편하게 살기로. 알아듣겠어?"

명가의 산하 길드라는 존재는, 일반 플레이어임에도 명가의 이득을 위해 일했던 이들.

그런 노력의 대가로 다른 플레이어들이 누리지 못했던 권세를 누렸던 이들.

"그런 우리가 돌아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당신 정도면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플레이어가 흘려보내는 서늘한 웃음에 예진희는 다시 한번 몸을 움츠렸다.

콰앙!

플레이어가 예진희의 책상을 양손으로 내리쳤다.

***

"뭐. 다들 아실 겁니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서 당신들의 위치를요."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고.

그 상석에 앉아 있는 건 바로, 한동희였다.

그는 위드 길드 박명철의 대리인으로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들에 대한 탑 전체의 이미지는 이미 개차반이라는 걸요."

한동희의 말에는 거침이 없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각 명가 산하 길드의 길드장들.

그들은 더 이상 명가에 가망이 없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위드에 대한 검술 명가의 대응이 결정적이었다.

원래의 검술 명가와는 너무도 다른 대응 태도.

이미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처참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위드 길드가 이렇게 건재하다는 건.

검술 명가로서도 위드 길드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니 명가 산하의 길드라는 오명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위드 길드에게 협조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도박수를 둔 것이기도 했지만.

현재 상황을 분석해 봤을 때, 승리할 확률이 조금 더 큰 도박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그동안 저희가 해왔던 일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말에 한동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으로 길드장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이미 파악했다.

저들 역시 진심으로 명가의 산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우리도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사실 명가의 산하에서 많은 이득을 누린 것도 사실이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망할 것들이 얼마나 제 멋대로인지. 우리를 대하는 태도에 비참함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게 말하는 길드장을 노려보는 한동희.

"앞으로 어딜 가서 그런 말을 절대 꺼내지 않길 바랍니다."

한동희의 싸늘한 눈빛에 길드장이 움찔했다.

"그런 말을 해 봐야 다른 플레이어들에게서 동정표를 살 수 없어요. 그 심정을 모른다는 게 아니라, 굳이 의미 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거죠."

바쁘게 고개를 끄덕이는 길드장들.

"여러분들은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많은 플레이어들을 탑의 고층으로 보내는 것. 그동안 해왔던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나서서 이 탑을 완전히 뒤바꾸는 것이죠."

한동희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모두 이미 강민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들.

탑의 1층부터 시작하여 새로 탑에 들어설 플레이어들을 위한 만반의 시설을 갖추고, 탑을 등반하기 위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것.

강민은 강민의 전생에서야 완성되었던 뉴비 플레이어들을 위한 교육과 인프라를 이 시점으로 당겨왔다.

그 이유는 하나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타국의 플레이어들과의 만남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탑을 올라야만 할 테니까.

"그, 그나저나… 화랑 길드는…."

길드장 한 명이 말했다.

이 자리에 Top10의 길드 중 제외된 길드는 화랑과 검술 명가 산하의 청검문뿐.

"어쨌든 당신들이 우리에게 붙었다는 건, 화랑이 아닌 우리가 더 유력하다는 판단 때문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만…."

"그들을 앞으로 탑의 균형에서 완전히 배제될 겁니다."

한동희가 말했다.

"……!"

"아실 겁니다. 그동안 탑의 랭킹이라는 것으로 길드를 줄 세우고 명가 다음으로 가장 많은 걸 누렸던 게 누구인지."

화랑이다.

그리고 Top3 길드.

화랑, 청검문,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마법 명가 산하의 블랙.

기존의 균형을 뒤엎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길드가 바로 화랑이었으니까.

"더 이상 이 탑에 길드들을 줄 세우는 랭킹은 없습니다. 길드들이 평가받는 건, 그들의 행동과 행동으로 이끌어 낸 결과물. 그리고 그것을 평가하는 건 탑의 플레이어들이 되겠죠. 지금처럼 랭킹 1, 2, 3위 따위가 아니라요. 그걸 위해서 이 탑의 길드와 플레이어들은 협동해야만 합니다."

한동희는 길드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역시 이유는 잘 모른다.

그저 강민이 전한 말을 그대로 읊고 있는 것뿐.

"아, 알겠습니다."

길드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직까지 여기에 자리해 있는 모든 길드장들이 위드 길드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현재의 상황상 위드 길드가 유리해 보이는 건 맞지만, 역시나 검술 명가라는 상대는 너무도 거대해 보였으니까.

"뭐… 아직 걱정 되시는 분이 계시는 것 같은데, 혹시 지금이라도 다시 명가 쪽에 붙으실 분 계십니까?"

그들의 표정을 읽어낸 한동희가 되물었다.

하지만 길드장들은 고개를 저었다.

"더러워서 안 갑니다."

"그 망할 새끼들."

"차라리 우리가 누리던 혜택을 나누면 나눴지, 다시 쓰레기장 밑에 들어갈 수는 없죠."

그들의 대답에 한동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게 조금만 잘하지.'

명가들에게 하는 말이다.

만약 명가들이 산하 길드들을 조금만 더 잘 챙겨 줬어도, 지금과 같은 결과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었으리라.

'하긴. 말만 Top10이지….'

그 Top10이라는 랭킹 역시 화랑과 청검문, 블랙으로 이루어진.

사실상 명가의 영향력 아래에서 결정되는 일종의 허명에 불과했을 테니까.

"자, 그럼."

한동희가 몸을 일으켰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이제 곧 시작될 겁니다."

그와 동시에 한동희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박명철 : 대기실에 강민 씨 도착. 그리고 지금 막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 나타나기 시작했다.]

***

"…네놈이로구나."

김원호.

그가 자신 앞에 서 있는 박명철을 바라봤다.

박명철로서는 처음 마주하는 김원호의 모습이었다.

현재 소가주로서 명가의 전면에 나서 있는 김준석의 얼굴은 익히 알았지만, 웬만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주의 모습 앞에서 박명철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람이….'

김원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느냐."

김원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박명철 역시 떨리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김원호의 물음에 답했다.

"우습구나.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너의 모습이 어떤 꼴인지… 정말 모르겠느냐."

김원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비웃음이었다.

김원호의 눈에 비친 박명철은 범 앞에서 떨고 있는 하룻강아지와 다름이 없었으니.

스릉

김원호가 검을 꺼내들었다.

"그따위 알량한 허세로 나를 도발했던 것이냐.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구나."

"흐…."

박명철이 웃음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입꼬리를 비틀며 팔짱을 꼈다.

"……?"

미간을 좁히는 김원호.

"그래요. 솔직히 말하지. 나는 당신을 못 이겨. 말이 안 되지. 내가 당신을 이길 수 있었으면 진즉에 내가 검술 명가를 박살 냈을 테니까."

"이노옴…."

"당신도 알 것 아니야. 내가 뭘 믿고 이렇게 나대는지. 그렇지 않아?"

까득

김원호가 이를 갈았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화가 났다.

정작 자신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다른 누군가를 믿고서 이토록 날뛰고 있다는 것이.

원래 같았으면 눈조차 감히 마주할 수 없을, 벌레나 다름없는 존재가 자신 앞에서 큰소리 치고 있다는 것이.

"이노오옴…!"

김원호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고, 전신의 근육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꾸득- 꾸드득!

그렇지 않아도 흉측할 만큼 거대하던 근육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괴력으로 유명한 검술 명가의 힘을 몇 배로 증폭시켜주는 말도 안 되는 능력.

검술 명가의 근본이자, 지금의 검술 명가를 있게 만든 근원적인 힘.

저것이 바로 검술 명가의 혈계 능력이었다.

고오오!

가만히 서 있는 김원호의 주변으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증폭된 힘에 더해서 김원호가 평생을 갈고닦아 온 마력이 분출되기 시작한 것.

스르릉!

그의 검 위로 무형의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검기.'

검술 명가 고유의 기술인 검기는 푸르게 타오르며 순식간에 김원호의 검을 뒤덮기 시작했으니.

"네놈은 죽는 순간까지 이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니라."

김원호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명철은 무기를 뽑아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기를 꺼내 들어봐야 김원호 앞에서 자신은 일격도 버텨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강민 씨가 올 거다.'

이미 강민이 64층을 클리어 했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고.

강민이 머지않아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겁먹을 이유가 없잖아.'

그와 함께.

콰아아아아!

김원호의 짙푸른 검기가 쏟아져 내렸다.

"기, 길드장니이임!"

뒤쪽에 서 있던 위드의 길드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이대로 간다면 박명철은 그대로 김원호의 검기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피, 피하세요!"

"빨리이이이!"

하지만 박명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질끈

'난 안 죽는다.'

그렇게 되뇌인 순간.

콰아아아앙!

저 먼 곳 어디선가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

"커으으윽!"

쿵! 쿠우웅! 콰아앙!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의 비명 소리와 그들이 날아가 저 먼 벽에 처박히며 굉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딸그락- 딸그락-

키에엑-

알 수 없는 괴성과.

푸훅! 푸학!

어떤 금속이 일으키는 파육음까지.

"크아아아악!"

"사, 살려줘어어어!"

"이, 이게 뭐야!"

순식간에 펼쳐진 지옥도.

그 속에서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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