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이, 이게 무슨!"
"괜찮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정신 좀 차려 봐!"
"끄… 끄으윽…."
63층의 대기실.
그곳에 막 도착한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참혹한 광경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강민을 기다리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두가 초주검이 되어 나자빠져 있었으니.
'말도 안 된다. 이게 어떻게….'
이 상황을 보건대, 한강민 한 사람에게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이 모두 이렇게 됐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말 해. 한강민 그자가 너희를 이렇게 만든 건가?"
"혀, 형… 형님…."
김효석이 한 플레이어를 보며 말했다.
"그래. 효석아. 어서 말해 봐라. 어떻게 된 것이냐."
"괴, 괴물… 그, 그 녀석은 괴물…."
그 말을 하고 다시 김효석은 혼절했다.
"맙소사…."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모, 모두… 모두 살아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때 저쪽 어디선가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전원이 생존하였으니 다행이라는 이 외침에.
'다행? 이게 정말 다행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게 과연 우연이나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의 실력이 부족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검술 명가의 최정예들을 초주검으로 만들고 혼자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다.
못 죽인 게 아니라 죽이지 않은 것.
그 뒤로 자연스레 따르는 의문 하나.
'왜?'
죽이려면 죽였지, 왜 살려 놓았을까.
그토록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서.
'…….'
순간 떠오른 불길한 예감에 플레이어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우리 검술 명가가 그런 녀석에게….'
꿀꺽
생각이라는 게 떠나보낸다고 해서 쉽게 떠나갈 수는 없듯이.
그의 머릿속에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불길한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젠장.'
입술을 깨물었다.
"어서 물약을 복용시켜라! 빨리 물약을 복용시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약을 복용시키고 상태가 호전되는 즉시 본당으로 호송한다!"
"예!"
그의 외침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다급하게 미리 챙겨 온 물약을 먹이기 시작했고.
쓰러져 있던 플레이어들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고 있었다.
'알려야 한다. 이 사실을 지금 당장 가주님께 알려야 해.'
그리고 그는 즉시 검술 명가의 가주 김원호에게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64층 대기실에 입장했습니다.]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처치한 뒤, 나는 64층의 대기실에 올라섰다.
'휑하군.'
말 그대로 대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원래 같았어도 많은 사람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원래 있던 사람들도 모두 빠져나간 모양이다.
물론 그 이유는 알고 있다.
'검술 명가.'
이미 이전 층의 대기실에서 만나지 않았던가.
그렇게 똥폼을 잡고 서 있는데 다른 플레이어들이 그 압박감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았겠지.
나는 65층에 들어서기 전, 박명철에게 메시지 하나를 전송했다.
[지금 막 64층 대기실에 올라왔습니다. 지금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박명철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박명철 : 조금 전까지 검술 명가 몇 명 대치하고 있었는데 다 사라졌어요. 확실히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군요.]
폭풍전야라는 말이 순간 머리에 떠올랐다.
이쯤 되었으면, 검술 명가에서도 내가 63층의 대기실에서 벌인 일에 대해서 파악했을 테지.
'어떻게 나올 거냐.'
아마 지금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상황일 테지.
그리고 내가 아는 검술 명가라면, 지금쯤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그 표적은 당연히.
'위드.'
[지금 당장 길드원들에게 대피하라고 하십시오. 길드 건물이건, 사람이 많은 곳으로 피하건, 아니면 한데 뭉쳐 있건.]
[박명철 : 그렇지 않아도 지시해 놓은 상황입니다.]
역시 박명철은 빠르다.
그리고 그때 박명철로부터 또 하나의 메시지가 날라왔다.
[박명철 : 그리고 검술 명가에게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만약 저희 길드 플에이어들이 한 명이라도 다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요. 물론… 탑의 일간지를 통해서였죠.]
박명철의 메시지에는 비장함마저 담겨 있었다.
[박명철 : 물론… 강민 씨 믿고 나댄 거긴 합니다만.]
비장함 뒤에 이어지는 박명철의 한 마디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걱정마십시오. 가만히 놔둘 리가 있겠습니까. 위드 길드의 길드원들이 가만히 있다고 해도 그냥 놔둘 생각은 없습니다.]
[박명철 : 하하! 그러면 조금 더 나대 보겠습니다. 괜찮죠?]
[얼마든지.]
나는 그렇게 답장을 보낸 뒤, 걸음을 내디뎠다.
64층을 향해서.
이곳만 넘으면, 탑의 최고층인 65층이다.
'최대한 빨리 뛰어 넘어주마.'
65층의 테마는, 리치의 던전.
'마침 마력을 넉넉하게 포식할 수 있는 던전이야.'
아직 개방하지 못한 초월 스탯은 마력뿐이었으니.
'이번 층에서 마력마저 초월 스탯을 개방할 수 있겠군.'
그리고 그때.
[64층에 입장했습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
"이게 무슨 개소리야!"
김원호.
그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괴성을 내질렀다.
조금 전 들려온 63층의 소식 때문만은 아니다.
빠직!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탑의 한 일간지였다.
[위드 길드 "검술 명가에 엄중히 경고…]
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지금 막 읽어 내린 참이었다.
"이, 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는 건, 지금 탑에 오르고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 역시도 이 기사를 읽었다는 말일 테니까.
"건방진, 이 건방진…."
이것은 명백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다.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를 건드려 놓은 상태에서 자신들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니?
아니, 그것을 떠나서.
"네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김원호가 말했다.
그렇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그 말.
그 말이 김원호의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히 우리 앞에서?'
검술 명가가 태동한 이후로 그런 적이 있었던가.
감히 그 어떤 세력이 검술 명가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말을 뱉을 수 있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위드가 해버렸다.
이 순간 김원호가 더 화나는 것은.
'한강민….'
그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미 자신들의 최정예 플레이어들을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은 괴물.
그런 뒤에서 유유히 사라져 탑을 등반하고 있는 인물,
'어찌. 어찌 그런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이냐.'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자신의 손으로 끝내 버려야만 한다.
'내 이러고 있을 수 없다.'
만약 한강민이라는 괴물을 그대로 놔둔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리라!
그는 당장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쾅!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준석이다.
"아버님!"
평소와 같이 가주 앞에서 예의를 지키던 김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아들의 모습일 뿐이었다.
"안 됩니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어찌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김준석이 소리쳤다.
그도 알고 있다.
지금 그가 김원호에게 하는 말뜻이 무언인지를.
이미 패배를 상정한 발언.
대 검술 명가의 가주인 김원호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혈계조차 없는 일개 플레이어에게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담은 발언이라는 것을.
그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
김원호조차 아무런 말이 없었다.
김준석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표정이다.
"어찌하겠느냐. 가문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가주인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가문을 위해 힘쓰겠느냐."
김원호가 덤덤하게 말했다.
철걱
그러는 동안 장비의 착용을 마친 김원호가 김준석을 바라봤다.
"알고 있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라는 것도. 그런 화근이 될 싹을 진즉에 알아채고 뽑아냈어야 하는 것인데, 검술 명가라는 이름 앞에서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말이다."
"……."
"허나."
김원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은 없지. 그자는 강한 게 사실이니까. 그의 행보를 본다면, 나도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김원호의 입에서 두렵다, 라는 말이 나왔다.
언제나 거대하고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지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두려움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김준석을 향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쳤다.
"…제가… 대신…."
"되었다. 너는 이 가문을 이끌 미래다."
김원호는 확고했고.
스릉-
그의 잘 갈린 검이 날을 번뜩였다.
숙! 슈슉!
그와 동시에 김원호 옆으로 플레이어 열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늘 김원호의 옆을 지키고 있는 김원호의 최정예 친위대.
"가자."
그가 말했고, 동시에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력 10을 포식했습니다.]
[마력 11을 포식했습니다.]
[마력 8을 포식했습니다.]
.
.
.
리치들을 쓰러트릴 때마다 마력 스탯이 무수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홉고블린들은 리치에게는 이렇다 할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마법 저항력이 전무한 홉고블린들은 리치의 손짓 한 번에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마력 저항력 50%와 피해 반사 80%의 위력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리치는 정말 상대하기 까다로운 몬스터 중 하나였는데.'
마력 저항력은커녕 마법 저항력조차 그렇게 구하기 힘든 옵션이라는 걸 생각해 봤을 때, 리치는 최악의 몬스터 중 하나다.
전생에서도 리치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한 파티에 마법 계열 플레이어 최소한 3명이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그토록 구하기 힘든 마법 계열 플레이어 세 명.
게다가 그 세 명의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은 공격이 아닌, 방어에만 신경을 써야 했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의 막대한 화력을 방어에만 쏟는다는 것만 해도 큰 손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가.
콰콰콰쾅!
내 몸을 두드리는 리치들의 마법은 마력 저항력에 이미 피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오히려 그 충격에 나를 공격한 자신들의 몸통이 터져 나가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내게도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피해는 이미 복용해 놓은 대용량 지속 회복 포션과 2500을 훌쩍 넘은 체력 스탯의 회복 속도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력 스탯이 2500에 도달했습니다.]
[마력 스탯에 초월 스탯을 각인할 수 있습니다.]
[각인 가능 초월 스탯]
1. 마나 번 – 상대가 가진 마력의 99%를 일시적으로 불태워 없앤다. (재사용 대기 시간 30분)
2. 마력 보호막 – 마력을 이용하여 물리, 마법 피해의 50%를 흡수하는 보호막을 만든다. (패시브)
3. 마력 자기장 – 마력을 빠르게 소모하여 반경 10m 내에 있는 적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자기장을 형성한다. 피해량은 마력 수치에 비례한다. (지속 시간 10분 / 재사용 대기 시간 20분)
'…….'
초월 스탯들을 본 순간, 잠시 머리가 아찔해졌다.
'정말이지, 최고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도 일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