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민첩성 4를 포식했습니다.]
[체력 5을 포식했습니다.]
[힘 3을 포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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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져 나오는 스탯 포식 메시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처음에 비해서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나 혼자서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니, 그 양은 감이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스탯을 포식할수록, 내가 가진 능력들의 위력은 더욱더 강해졌고.
그럴수록 붉은 오우거를 처치하는 속도는 더욱더 빨라졌다.
초 단위로 증가하는 스탯 성장의 향연에 나도 모르게 취하기 시작했을 무렵.
어느새 스탯들은 빠르게 2500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2500에 가장 근접한 건, 체력이었다.
'2490.'
'2495.'
'2499.'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체력은 어느새 2499에 도달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 누구도 넘지 못했다는 2500의 벽.
내가 알기로 가장 높은 스탯 수치는 2490 언저리였다.
전생에서의 검술 명가의 가주, 김준석의 힘 스탯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준석조차 2490에서 스탯 하나를 올리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골드를 쏟아부어야 했다.
그리고 종국에 그의 힘 스탯은 2498에서 멈췄다고 했다.
더 이상 돈을 써도, 시간을 써도 스탯을 올릴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몬스터를 사냥하고, 아이템을 획득하고.
능력을 강화해도 더 이상 스탯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2500은 일명 '마의 벽'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70층 아래에선 그 어떤 짓을 해도 2500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정론이 되었지.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사실 그렇다.
나는 방금 2500이라는 수치를 뛰어넘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쉽게 말이다.
그저 몬스터를 사냥했고, 이를 통해 스탯을 포식했을 뿐이니까.
'한 마리만 더 사냥하면.'
마침 내 눈앞에 서 있는 붉은 오우거 한 마리가 보였다.
나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각!
일격에 몸이 두 동강 난 채 쓰러지는 붉은 오우거.
쿠웅!
놈의 몸이 고꾸라졌다.
그리고.
[체력 3을 포식했습니다.]
너무도 무미건조했다.
그저 언제나와 같이 체력을 포식했다는 메시지만이 하나 떠올랐을 뿐, 그 외의 변화는 없다.
아직 상태창을 펼쳐본 건 아니다만.
내 스탯은 2502가 되어 있겠지.
만약 2500에서 멈춰 섰다면 체력 3이 아니라 1을 포식했을 테니까.
'역시 그저 추측에 불과했던 건가.'
김준석의 힘 스탯이 2500을 넘지 못했던 건, 2500이 하나의 벽이나 분기점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의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고.
내가 2500을 넘을 수 있었던 건, 내가 김준석과는 비할 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생각보다 허무하군.'
조금 기대해서 그런지, 너무도 무미건조하게 넘겨 버린 2500이 조금은 공허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체력 스탯이 2500에 도달했습니다.]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
내 몸이 잠시 얼어붙었다.
공허했던 그 가운데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가득 채운 한 글자는 바로.
'있다.'
있다, 라는 단어였다.
더 나아갈 길이 있다는 것.
아니, 나아가는 것 정도가 아니라 한 계단 뛰어오를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꿀꺽
침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리고 다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 한계돌파]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업적.
무려 업적이다.
스탯이 2500을 넘은 순간 달성하게 되는 업적이라니.
나는 이 순간, 적어도 대한민국 탑에서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무언가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나는 떠오른 메시지를 다시 바라봤다.
'한계돌파.'
그 이름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결국 2500이란 하나의 벽이 맞았어.'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벽을 넘어섰다.
[업적에 대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2500에 도달한 스탯에 한정하여 '초월 스탯'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
초월 스탯.
당연한 말이겠지만, 처음 듣는 단어다.
나는 곧바로 상태창을 펼쳤다.
초월 스탯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상태창을 펼친 순간.
[체력 2502 – (초월 스탯 미각인)]
체력 수치 옆에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 달린 초월 스탯 미각인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초월 스탯이라는 글자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각인 가능한 초월 스탯]
1. 방어력 증가 + 100%
2. 체력 회복 속도 증가 + 100%
3. 피해 반사 효과 + 50%
'이 세 개를 각인할 수 있다는 건가?'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피해 반사다.
이미 나의 방어력은 충분했고, 체력 회복 속도도 2500이라는 체력 덕분에 웬만해선 부족할 일이 없다.
게다가 오크 좀비의 회복력이라는 능력에 이미 체력 회복 속도 100%의 옵션이 붙어 있으니, 사실상 체력은 무한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피해 반사라는 옵션은 웬만해선 손에 넣을 수 없는 옵션이다.
'거기에 벌써 30%의 피해 반사 효과 옵션을 가지고 있어.'
툰테른의 보호라는 능력에 달린 옵션이었고.
'여기에서 피해 반사 효과를 50% 추가할 수 있으면.'
무려 80%의 피해 반사 효과를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말도 안 되는 수치지.'
내가 입는 피해의 80%를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웬만한 적들은 가만히 선 채로도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겠지.'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
난 곧바로 피해 반사 효과라는 3번 옵션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3. 피해 반사 효과 +50%를 각인하시겠습니까?]
"그래."
[초월 스탯이 상태창에 각인됩니다.]
[피해 반사 효과 + 50% 효과가 적용됩니다.]
'미치겠군.'
따로 조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2500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이런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남은 힘, 민첩성, 마력까지도….'
모두 체력과 같이 초월 스탯을 개방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로 초월자가 될지도 모르겠군.'
"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해졌다.
너무도 강해졌다.
파티를 구하지 못해서.
파티에 넣어만 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구걸했던 내가.
쿵! 쿵!
나를 향해 달려드는 붉은 오우거들을 바라봤다.
나를 씹어 먹겠다는 얼굴로 달려오는 저 붉은 오우거들을 홀로 마주하고 있었다.
두렵지 않다.
두려움?
그런 감정을 느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덤덤하게 열 마리도 넘는 붉은 오우거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부우우웅!
붉은 오우거가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를 휘두른다.
나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몽둥이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빠아아아악!
붉은 오우거의 몽둥이가 나를 강타했다.
아프지 않다.
아플 리가 있는가.
이미 내 방어력은 놈의 공격력을 한참이나 초월했다는 것을.
오히려.
빠득! 빠드드득!
나를 내려친 놈의 몽둥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르윽…?!"
놈이 눈을 부릅떴다.
몽둥이로 전해진 충격은 점점 위로 타고 흐르기 시작했으니.
빠득! 빠드드득!
놈의 손가락을 타고, 손목을 타고, 그리고 팔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
그제야 괴성을 내지르는 붉은 오우거의 몸이.
빠직! 빠드득! 콰드드득!
박살 나기 시작했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겨져 나갔다.
콰아아앙!
붉은 오우거의 몸이 터졌다.
말 그대로다.
그대로 터져 버린 붉은 오우거는.
투둑 투두둑
잘게 찢긴 잔해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힘 4를 포식했습니다.]
붉은 오우거가 남긴 4의 힘 스탯과 함께 말이다.
"그, 그르륵…?"
"그으윽…!"
그동안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던 붉은 오우거들의 눈에서.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
결국 해냈다.
힘과, 민첩성마저도 모두 초월 스탯을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아직 마력은 조금 부족했다.
이미 경험해 왔던 그대로, 몬스터를 사냥해도 마력이라는 스탯을 포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걱정할 건 없지.'
내게는 스탯 전환 아티팩트가 있으니까.
다른 육체 스탯을 쌓아 올린 뒤, 마력 스탯으로 변환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70층에 오르기 전, 스탯은 정말 넘치도록 포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내가 손에 넣은 초월 스탯은 각각 이렇다.
[힘 초월 - 방어 무시 50%]
[민첩성 초월 – 치명타 확률 70%]
'너무 공격력 쪽에 치중한 건 아닌가 싶긴 하지만.'
아니다.
최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가 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군.'
방어력 무시 50%에 치명타 확률 70% 증가라니.
그렇게 변해버린 내 상태창을 보면서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보스 몬스터만을 남겨 두고 있다.
'여기에서 100레벨만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현재 내 레벨은 98.
보스 몬스터를 파티도 없이 혼자 사냥한다면,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1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곧 64층.'
현재 대한민국 탑의 최정상인 65층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가자.'
저벅
보스 존 안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가 잠시 후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잠시 후.
쿠우우웅!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굉음과 피어오르는 먼지.
그리고 저 앞에서 흉흉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보스 몬스터.
콰아아아!
검 위로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쿵! 쿵! 쿵!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상대했던 보스 몬스터들에 비해서 훨씬 더 호전적이다.
게다가 신체 능력 역시도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울 리가 있는가.
지금의 나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을.
그렇게 나와 오우거가 가까워졌을 때.
부우우우웅!
오우거가 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서걱!
내 오러 블레이드에 놈의 거대한 몽둥이는 수수깡처럼 잘려 나갔고.
휘릭!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파직! 파가각!
"그륵…?"
잘렸다.
놈의 다리가 말이다.
쿠우우웅!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크어어어어!"
놈이 괴성을 내질렀다.
쿵! 쿵! 쿵!
발이 잘린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버둥대는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바라봤고.
파직!
놈의 심장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박아 넣었다.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처치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00레벨에 도달했습니다!]
[포식 슬롯이 열렸습니다!]
100레벨이 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새로운 포식 슬롯이 열렸다.
'완벽하군.'
그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또 완벽했다.
쉴 틈은 없다.
나는 곧바로 64층의 대기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