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무슨 소리야! 연락이 두절 되었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조금 전 한강민이 62층을 돌파하고 대기실에 도달했다는 연락이 도착한 뒤로…."
"말도 안 되는 소릴!"
"흡!"
가주 김원호의 불호령에 보고를 올린 명가의 플레이어가 숨을 급히 들이켰다.
하지만 어쩔까.
진실인 것을.
아직도 63층 대기실로 향했던 플레이어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들어오고 있지 않았으니.
"어서, 어서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거라!"
"그, 그렇지 않아도 지금 사람을 보내 놓은 참이니, 곧 연락이 도착할 것입니다!"
"……."
"크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어색한 기류가 검술 명가의 수뇌부들 사이를 흐르기 시작했다.
***
[63층에 입장했습니다.]
[1인 입장이 확인되었습니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 '무모한 도전'을 달성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이건 뭐….'
솔직히 예상도 못 한 업적이다.
고작 혼자 입장한 것 하나로 업적을 달성하게 될 줄이야.
물론 업적에 대한 보상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레벨이 3개 오른 데에 그쳤으니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이제 100레벨 까지는 고작 2레벨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 포식 슬롯이 열리게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게 바로 100레벨이었으니.
업적 하나로 3레벨이 오른 게 결코 아쉬워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곧 던전에 대한 안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붉은 오우거의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붉은 오우거의 던전]
>클리어 조건 :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 처치
붉은 오우거.
역시 탑의 저층에서 사냥했던 오우거의 강화 버전.
고블린, 오크와 마찬가지로 오우거의 신체 능력이 수십 배나 강화된 버전이었고.
그렇지 않아도 오우거라는 괴물이 수십 배 강해졌으니, 63층의 난이도가 얼마나 괴랄할지는 상상에 맡겨 두도록 하겠다.
'63층을 돌파한 게 위드 길드였지.'
당연히 내가 그들에게 붉은 오우거와 붉은 트윈 헤드 오우거의 약점을 넘겨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생에서 놈들의 약점을 밝혀내느라 많은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잃었었지.'
하지만 내가 그 정보를 들고 과거로 돌아온 이상, 앞으로 내 전생에서와 같은 커다란 피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더 빠른 속도로 플레이어들이 성장하며 탑을 오를 수 있을 테고.
꽈악
나는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뒤에서는 몰른이 연주를 시작했다.
세 가지의 버프 효과가 적용되었고.
전신에서 힘이 을러 넘치기 시작했다.
쿵! 쿵!
그리고 저쪽에서부터 오우거 몇 마리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전신이 붉게 물들어 있는 오우거의 모습은 흉측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나도.'
꾸드득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했습니다.]
[신체 능력이 증폭됩니다.]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했다.
내 몸의 근육들이 요동치며 부풀어 오르고, 팽팽하게 당겨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 순간에도 나를 향해 달려오는 붉은 오우거들.
오우거의 신체가 활성화 되고 난 뒤 오러 블레이드 위로 뇌전검과 충격파를 함께 뒤섞었다.
그리고.
쿠웅!
발을 디디며 오우거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간 나의 몸에는 엄청난 추진력이 붙었고.
파각!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 휘두를 순간.
"크어어어어!"
"크아아아아!"
순식간에 세 마리의 붉은 오우거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힘 10을 포식했습니다.]
[힘 13을 포식했습니다.]
[힘 9를 포식했습니다.]
순식간에 30에 가까운 스탯을 포식했다.
설마하니 일격에 붉은 오우거를 처치할 수 있을 줄이야.
'하긴. 이미 보스 두 마리를 일격에 처치했는데, 붉은 오우거 따위를 일격에 처치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오우거의 신체와 몰른의 새로운 버프 효과가 더해져 지금 내 공격력은 감히 측정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이 속도라면 3일 내에 65층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을 거다.
아니, 그런 수준이 아니지.
여기에서 스탯을 충분히 포식하고 느긋하게 올라가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지금 내 사냥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민첩성 7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8을 포식했습니다.]
[힘 10을 포식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스탯 포식 메시지들을 뒤로한 채, 나는 붉은 오우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일격에 서너 마리씩 쓰러져 나가는 붉은 오우거들.
덕분에 사냥이 힘들기는커녕 붉은 오우거의 느린 리젠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
그 시각 65층으로 향하는 대기실.
"뭔 일 일어난 거 맞지?"
"예. 확실해요."
이곳에서 위드 길드의 수뇌부들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탑의 최전선엔 웬만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박명철도 지금에는 64층의 대기실에 올라와 있었다.
"그래도 길마님 덕분에 쟤들이 함부로 시비 안 걸었던 걸걸요. 와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김민희의 말에 박명철이 답했다.
말 그대로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가 나타난 순간, 김민희는 즉시 박명철을 호출한 것.
그들이 무게를 잡기 시작하자 제아무리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다급히 사라졌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일 났군."
그 모습을 보며 박명철이 중얼거렸다.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뻔하다.
62층에서 강민이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만났고.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은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났을 테지.
"걱정 안 돼요?"
"되겠니?'
"하하."
정말 눈곱만큼도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한 박명철의 표정과 말투.
그럼 박명철이 김민희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 많으실 텐데. 괜찮겠어요?"
"안 그래도 나도 올라오려고 했어."
"강민 씨 때문에요?"
"응."
박명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다려야지, 누가 기다리겠어."
"그것도 그래요."
물론 현재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박명철은 모든 업무들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말했듯, 강민을 기다리기 위해서.
그들은 지금 강민이 탑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63층에 홀로 입장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몰라. 물어보지 마."
박명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더 이상 내 예측이 빗나가는 꼴을 나 스스로도 보고 싶지가 않다, 민희야."
"그래도 2주 정도는…."
"난 3일 본다."
"예?"
3일이라는 박명철의 말에 김민희가 눈을 부릅떴다.
"오바죠. 3일이라뇨. 우리가 최정예로 레이드 파티 꾸려서 64층 하나에 2주가 넘게 걸렸어요…. 그런데 두 개를 3일?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었나."
"어차피 못 믿을 거 왜 물어봐? 나는 그냥 내 예상을 말한 건데."
"그냥… 그렇다는 거죠, 뭐."
김민희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게 무슨 문제겠어요."
"그래. 강민 씨가 여기에 도착하는 날, 역사는 바뀐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 65층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
그들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은 알 수 없을 거야.'
박명철이 생각했다.
검술 명가 역시도 강민이 범상치 않다는 건 느끼고 있을 테지만.
박명철은 알고 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강민은 실제의 강민에 비하자면 빙산의 일각뿐이라는 것을.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계획을 하고 있건 간에 직접 두드려 맞으면… 모두 허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초창기부터 강민과 함께 현재의 위드를 일궈낸 박명철이라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이 탑의 누구보다도 강해.'
***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98
>스탯
-육체
힘 : 2413.189
민첩성 : 2389.194
체력 : 2340.85
-정신
마력 : 2146.42
>마력 저항력
+ 50%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R)
6. 아이언 바디 (S)
7. 지휘관의 외침 (S)
8. 초감각 (S)
9. 은신
10. 궁신탄영 (혈계 파생)
11. 육체 개조 (???)
12. 툰테른의 가호 (S)
13. 저주받은 홉 고블린의 외침 (AAA)
14. 오크 좀비의 재생력 (S)
나는 잠시 앉아서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에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이제 모든 육체 스탯들은 250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력 역시도 2000을 훌쩍 넘었다.
원래는 마력이 육체 스탯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61층을 넘어선 뒤로 내가 포식하는 육체 스탯량이 폭증한 결과 다시 한번 뒤바뀌어 버린 셈이다.
'비현실적이군.'
물론 이전에도 내 상태창은 충분히 비현실적이었지만….
지금 보는 내 상태창은 기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전생에서조차 스탯이 2500을 넘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물론 자신의 상태창을 공개하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을 테니.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을 노릇일 테지만.
'그래도 2500을 넘긴 사람이 없는 건 분명하지.'
전생에서도 스탯의 최대치가 2500이라는 게 중론이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는 건, 결국 누구도 2500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만약 2500을 넘어선 플레이어가 나타났으면 입이 근질거려서라도 2500 이상의 스탯이 존재한다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내 스탯이 2500을 넘어서는 순간, 나의 성장은 멈추는 걸까?
'…확신할 수는 없지.'
많이 알아냈다고 생각했지만, 이 탑에서는 늘 새로운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한계 따위는 정해두지 않는 편이 낫겠지.'
까득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전투 식량에 담겨 있던 초콜렛 하나를 베어 물었다.
달큰한 향이 입가를 맴돈다.
그 끝에 느껴지는 쌉싸름한 초콜렛 특유의 향취까지.
'다시 가 볼까.'
이제 보스 몬스터가 기다리는 곳까지는 고작 몇 시간 거리.
따라다니는 파티원이 없어지고, 내가 강해질수록 진행 속도는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었다.
'잠을 자지 않고 움직인다면 이틀 안으로 65층에 도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렇게까지 몰아칠 필요는 없을 거다.
그리고 기왕이면.
'이번 층에서 2500을 달성해 보고 싶기도 하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 누구도 달성해 보지 못했던 2500이라는 수치를 하루빨리 뚫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몰른. 더 먹을 건가."
한참 정신없이 전투 식량을 뜯어 먹고 있는 몰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어… 아, 아닙니다요!"
몰른은 허겁지겁 먹다 남은 전투 식량을 입에 털어 넣었다.
"빵조각… 묻었다."
몰른의 입가에 붙어 있는 빵조각을 보며 말했다.
몰른은 헤헤, 웃으며 빵조각을 떼어 입안에 집어넣었고.
"잘 따라와."
"예에에에!"
나는 몰른과 함께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저곳에서는 붉은 오우거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