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흐아아아악!"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의 괴성과 함께, 그 뒤에 있던 모든 녀석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오합지졸처럼 보이진 않았건만.'
놈들에 대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서 있는 자세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기백은 결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고.
한눈에 보더라도 쉽지 않은 전투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최전선에서 직접 뛰는 녀석들이 분명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놈들에게 다가선 순간 놈들은 기겁하며 비명이나 내지르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똥강아지마냥.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이미 놈들이 내 오러 블레이드를 본 순간 크게 동요했다는 건 나 역시 진즉에 느끼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러라고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 것도 맞지.'
아마 저 녀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지금 당장 검술 명가 녀석들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
'아직은 일러.'
내가 녀석의 머리를 들여다본 건 아니지만, 놈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싸움은 65층을 돌파한 뒤다.'
그 이유는 하나다.
각 스테이지의 중간인 5층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바로 마을의 존재가 그것이다.
'65층도 마찬가지지.'
한 스테이지를 거점 삼을 수 있는 마을의 존재는, 플레이어들의 마음에 커다란 안정감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마을에 처음 발을 내디딘 세력의 위상은 감히 이전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을 것이다.
'아직까지 검술 명가를 지지하는 세력은 많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검술 명가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동경한다.
그 압도적인 힘 때문이다.
'위드도 검술 명가에 뒤지지는 않을 테지만, 아직 그에 조금 모자라는 것도 사실이지.'
그리고 내가 결정적으로 65층을 노리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놈들에게 절망감을 주기 위해서.'
검술 명가.
그들이 65층을 노리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검술 명가가 65층의 마을에 첫발을 내디디라고 굳게 믿고 있을 테고.
그것을 박살 내려는 것이다.
일차적인 절망감을 선사하여, 그들이 '검술 명가'라는 이름에 가지고 있는 굳건한 확신과 믿음을 박살내는 것.
'그 알량한 기대와 희망을 내가 직접 짓밟을 수만 있다면.'
여기에서 이 녀석 하나 죽이는 것 이상으로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의.
더 나아가 가주 김원호와 그의 아들 김준석의 원대한 계획을 산산이 짓밟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은가.
'너희를 죽이는 건 그 다음이다.'
전생에서 70층에서 홀로 죽어가며 내가 느꼈던 좌절과 절망감.
그것을 놈들에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직 죽기 이르다.'
내 앞에서 혼비백산해 있는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직접 지켜봐라. 너희들의 몰락을.'
명가와 길드의 위상이 역전된 그 세상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겠다는 원대한 계획의 끝자락.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부우우웅!
주먹을 내질렀다.
충격파와 뇌전검의 효과가 뒤섞인 주먹이 검술 명가 플레이어의 복부를 향해 내달렸고.
빠아아악!
주먹이 놈의 복부에 닿은 순간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꺼…헉…?"
놈의 눈이 튀어 나올 것처럼 커졌다.
입은 떡 벌어졌고.
주륵
실성한 것처럼 눈을 까뒤집고 입에서는 침이 쏟아져 내렸다.
"똑똑히 봐라. 이게 너와 나의 차이니까."
"꺼, 꺼어억…."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하다.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해도, 놈의 몸은 지금 이 순간의 충격을 잊지 못할 테니까.
무의식에 각인된 공포.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모종의 힘이다.
쿠우우웅!
놈의 몸뚱이가 저 먼 곳에 날아가 처박혔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몸은 피를 한 번 토해내며 축 늘어졌다.
죽지는 않았다.
초감각의 범위 안에 아직 흐물대는 놈의 마력이 느껴졌으니까.
"허, 허어어어억!"
"이, 이게… 이게 무…슨…!"
그래.
죽이지는 않을 거다.
의식이 남아 있을 정도로만.
그 정도로만 끝내 주마.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였고.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검기를 뽑아들고 나를 막아섰다.
하지만.
서걱!
내 오러 블레이드가 움직이며 놈들의 검기를 잘라냈다.
말 그대로, 잘려나간 검기와 놈들의 검은 허공에 튀어 올랐다.
"흐아아아아악!"
"마, 말도 안 돼애애애!"
사색이 된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
조금 전의 현상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다.
놈들의 검기의 위력은, 내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 애들 장난 수준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다시.
후욱!
주먹을 움직였다.
빠아아악!
뻐어억!
콰직!
주먹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의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파열됐다.
장기가 찢어지고 신체의 일부분이 함몰됐다.
죽지 않을 정도로.
숨을 쉬고 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만큼.
그리고 나에 대한 공포가 저들의 뇌리 깊은 곳에 각인 될 수 있을 만큼.
마지막으로는 두 눈 뜨고 자신들의 몰락을 목도할 수 있을 정도로만.
쿠우우웅! 쾅! 콰아앙!
저 먼 곳에 날아가 처박힌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끄어억…."
"꺼억… 꺼억…."
"하하."
문득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습지 않은가.
그토록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며 나를 내려 보던 이들이.
'지금은.'
저곳에 자빠진 채로 숨을 껄떡대고 있지 않은가.
'너희들이 가진 것의 근원조차 모른 채로.'
결국 일종의 오류로 생겨난 작은 틈새를 가지고 마치 자신들이 선택받은 양 떠들고 있었던 저들의 그 역겨움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미안하지만 저들에게 있어서 죄책감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숙제'의 일부를 해냈다는 마음 이외에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다.
'많이 누리고 있어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63층, 그리고 64층.
마지막 검술 명가와 위드 길드가 치열하게 클리어를 위해 다투고 있을 65층까지.
'앞으로 3일.'
3일 안에 나는 65층에 올라갈 생각이다.
물론 파티원은 없다.
이미 밑으로 내려가 있는 그들을 다시 불러들일 마음은 없다.
'어차피 내 실력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지.'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굳이 파티원이 필요 없음에도 61층, 62층에 파티원을 이끌었던 건.
아직 벗어 던지지 못한 전생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의 영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이젠 아니다.'
보스 몬스터 두 마리를 일격에 처치했다.
그리고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검조차 쓰지 않은 채 빈사상태로 만들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이미 정상에 올라섰다.
'즐겁군.'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는 주먹을 바라봤다.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조금의 긴장감과 조금의 설렘과, 조금의 고양감.
"가자, 몰른."
어느새 몰른은 이런 장면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건지 태연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너의 연주가 많이 듣고 싶을 거야."
몰른 앞에서 스킬 버프라는 말은 꺼내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아무래도 몰른 역시 자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 한다는 쪽이 마음에 들어 할 테니까.
"좋아요오오!"
몰른은 신이 난 목소리로 벌써부터 류트를 꺼내 들었다.
새로 작곡한 음악을 몰른도 썩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다음 층인 63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62층. 역시. 거기 있었군."
그 무렵, 검술 명가의 본당에서는 김준석과 김원호, 그리고 장로들이 모여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아들었다.
"확실히 말해 뒀겠지? 그자를 아직 죽여서는 안 된다."
김원호의 당부.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철저하게 말해 뒀습니다. 여기에서 한강민을 섣불리 공격했다간, 65층의 클리어라는 대업에 지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65층의 클리어.
그것은 검술 명가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많은 플레이어들이 부상을 당했다.
그들로서도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강민과 위드와의 전면전을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한강민이라는 자는 분명 위드에서도 극도로 아끼는 자일 것이 분명하다. 아니, 아낀다는 말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을 테지."
"그럴 겁니다.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서 분석해 본 결과, 한강민은 지금의 위드를 일궈낸 장본인이라는 결론입니다. 결국 위드 그 자체라는 말이 적절하겠군요. 박명철이라는 자는… 물론 대단하지만. 한강민 없이는 지금 위드는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믿을 수 없는 사내야."
장로들과 가주 김원호가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그들이라고 해서 저 말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강민이 대외적으로 보인 행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자가 위드를 일궈냈다니?
'귀신이 아니고서야,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이냐.'
그 말 대로다.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일을 해내는 인간.
그럼에도 그동안 위드와 강민, 또 탑의 중대한 사건들을 돌아봤을 때.
결국 그 모든 구심점에는 강민의 존재가 빠질 수 없었던 것.
그때 한 장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혹 마법 명가를 그렇게 만든 것도…?"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심증만이 존재할 따름이죠."
"허나 그 심증이라는 것이 너무도 확실한 것이 문제 아니냐."
"……."
김준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봤을 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한강민이라는 플레이어밖에는 없었다.
한 개인이.
그것도 혈계조차 없는 플레이어가 마법 명가라는 거대 집단을 무너트렸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나라면 할 수 있는 일인가.'
김준석이 생각했다.
그 역시 마법 명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혈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육체의 고강함을 추구하는 검술 명가의 일원으로서 마법 명가의 마법은 '잡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마법 명가가 탑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으로 자라나는 동안에 견제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그럼에도 마법 명가의 성장을 막아설 순 없었으니까.
'…….'
결론은 '불가능하다'라는 것.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검술 명가라는 집단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일개 개인이 해냈다니.
사아아-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옷 안의 피부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리고 그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소름이 돋아난 모습이 옷에 가려져서 다행이라고.
그 모습을 가주와 장로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가주와 장로들 앞에서 보일 수 없지는 않겠는가.
"……."
잠시 침묵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순간.
"6, 62층의 플레이어들과의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