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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57화 (157/277)

157화

"뭐야, 이거."

"분위기 살벌한 거 봐."

"조용히 해."

63층으로 향하는 대기실.

사실 이쯤 되면 플레이어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

고작 해봐야 대형 길드와 명가의 플레이어들 정도.

그들의 숫자라고 해봐야 스무 명 정도 있으면 많은 축에 속했다.

그러니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이쪽 대기실에 있는 이들은 서로 얼굴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63층의 대기실은 싸늘한 분위기와 함께 얼어붙어 있었다.

"……."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 때문이다.

분위기를 더 싸하게 만드는 건, 바로 검술 명가의 직계들이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같아 보였으니.

그 자리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이 무거운 분위기를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이게 뭔 일이야."

"잠깐만…."

"허억…."

그때 플레이어들이 다급히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방금 막 길드 상부에서 전해 내려온 메시지 때문이다.

[당장 물러나요. 지금 62층 이후 모든 대기실에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 쫙 깔려 있습니다. 심상치 않아요.]

그들로서는 선택권이 없다.

대체 검술 명가가 왜 저러는 건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튀자."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한 곳만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말이라도 잘못 걸었다간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각 플레이어들은 하나 둘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특히나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검술 명가가 등장한 순간 최대한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벌레 같은 것들.'

그런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를 보며 검술 명가의 직계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도륙내고 싶었지만, 그들도 상부에서 함부로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를 건드리지 말라는 보고를 받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찌 저런 것들을 신경 쓰신다는 말인가.'

통탄할 노릇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길 한복판에서 베어 죽였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존재들이건만!

'한강민….'

그렇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 바로 강민.

검술 명가는 위드가 자신들을 도발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강민이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 강민이 빠른 속도로 61층, 62층을 돌파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뒤, 각 대기실에 플레이어들을 소집한 것이다.

물론 추측에 근거한 행동이었지만.

그동안 벌어진 일들과, 다른 명가들이 건넨 정보에 따라 추측한 결과, 지금 강민이 60층을 넘었다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로서도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미 위드에게 한 방 먹고 난 이상, 검술 명가가 물러난다는 건 그들의 체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여기에서 강민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

상부에서도 조심하라고 몇 차례 경고가 도착한 참이었다.

'본격적인 싸움은 우리가 65층을 돌파한 뒤다.'

아직은 검술 명가에서도 병력을 충분히 조달하기 힘들었다.

검술 명가의 대부분의 전력은 현재 65층을 돌파하기 위에 투입되어 있었으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한강민이라는 자의 힘을 파악하는 일이다.'

아직 강민에 대한 모든 건 베일에 감춰져 있다.

그들이.

아니, 탑의 모든 세력들이 강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가 강민이 탑의 저층에서 벌였던 행적들에 대한 정보들 뿐.

즉, 너무 낡아 버린 정보들 밖에는 없다는 뜻이다.

'내 낱낱이 밝혀주마.'

한강민.

그 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그 사람을 믿고 하늘 높은 줄을 모른 채 기세가 등등한 것인지!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혈계라는 축복도 전해 받지 못한 한낱 벌레일 뿐.'

그렇게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강민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그들이 내뿜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채 플레이어들은 하나둘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판단 때문만은 아니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각 길드와 명가에서 다급히 모두에게 긴급하게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는 덕분이었다.

***

[박명철 : 강민 씨.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각 대기실에서 죽치고 있답니다.]

한창 오크 좀비 웨이브를 끝내고 난 뒤 박명철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다.

"어?"

"검술…명가?"

물론 나에게만 도착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나와 함께 있는 플레이어들 모두 길드로부터 검술 명가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은 참이었다.

"무슨 일이지…?"

"62층을 클리어하는 즉시 아래층으로 복귀하라고?"

"어떡해. 나는 층간 이동 아티팩트 없는데…."

"걱정 마. 나랑 같이 가요."

검술 명가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꽤나 화기애애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놈들이 각 대기실에 포진되어 있다는 건, 아무래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재밌군.'

두렵지 않다.

오히려 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묘한 흥분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내가 신경 쓰인다는 것일 테니까.'

검술 명가와 마법 명가.

이전 생에서도 나를 가장 크게 괴롭혔던 이들이었다.

마법 명가가 나를 실험체로 쓰려 했었다면, 검술 명가는 나를 극도로 멸시하며 혐오했었지.

혈계를 가지지 못한 일반 플레이어조차 경명하는 녀석들이다.

하물며 혈계는커녕 남들 모두 가지고 있는 능력도 없는 나를 얼마나 증오했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랬던 놈들이 이제는 나를 그렇게 견제하기 시작했다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흥미롭지 않은가.

나를 벌레같이 여기며 경멸했던 그들을 가장 크게 위협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내가 되었다는 것이.

'그렇다면 즐겨 줘야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나는 검술 명가의 본가로 냅다 쳐들어갈 자신이 있다.

그렇게 그 안에 있는 모두를 쓸어 버리고서 유유히 살아서 나올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천천히 숨통을 조여주기 위해.'

한 번에 고통 없이 보내는 건 싫다.

그들이 나를 괴롭게 했던 만큼, 나도 놈들을 괴롭게 해 주고 싶다는 뜻이다.

벌써부터 손이 간질거린다.

"갑시다."

동요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내가 말했다.

"아, 아… 넵!"

"그렇지. 강민 씨가 계셨어."

"강민 씨만 있으면…."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렇게 나와 플레이어들은 저 앞에 보이는 보스 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번 던전의 보스 몬스터인 오크 좀비 히어로.

오크 히어로라는 보스 몬스터의 힘과 동시에 좀비의 무지막지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

'솔직히 욕심이 난다.'

저주받은 홉 고블린을 처치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놈을 일격에 처치할 수 있을지.

안다.

터무니 없는 욕심으로 비쳐보일 수 있다는 것을.

62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들 모두가 모여 한참을 공략해야만 겨우 처치할 수 있는 몬스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에서 용솟음치는 에너지.

몰른의 버프로 증가된 공격력이라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내 공격력은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수준이었고.

거기에 무려 50%의 공격력 버프가 더해진 상황이지 않은가.

'해볼만 한 도전이다.'

그리고 만약 여기에서 놈을 일격으로 처치하고, 또 한 번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대박이지.'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역사상 놈을 일격에 처치한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을 테고.

이번에도 똑같은 업적의 보상이 주어지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업적을 달성할 수 없어도 상관없다.'

내가 놈을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만큼 내가 강하다는 것을 또 한 번 증명할 수 있는 셈이지 않은가.

저벅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보스존까지는 이제 고작 1m의 거리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고.

파티원들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혼자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구심도 품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하고 있다는 듯, 들떠 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몇 분 컷 예상해?"

"분? 나는 10초 보는데?'

"에이, 그래도 10초는 좀…."

"십만 골드빵. 콜?"

"…30초."

"1분."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 걸 보면 저들 역시 조금은 흥분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보스존 내부로 걸음을 내디뎠고.

[보스 존에 입장했습니다.]

[잠시 후 오크 좀비 히어로가 등장합니다.]

그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나는 준비했다.

이전과 같다.

뇌전검과 충격파.

그리고 궁신탄영.

꽈아악!

가슴과 배, 등에서 묵직한 긴장감이 느껴졌고.

내 몸이 팽팽하게 당겨오기 시작했다.

내 몸은 폭발력을 일으키기 위해 끝없이 수축되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 오크 좀비 히어로가 등장했습니다.]

그 메시지가 떠올랐다.

쿠우우웅!

오크 좀비 히어로의 육중한 몸뚱이가 굉음과 함께 나타났다.

온몸이 검게 썩어 문드러졌으며,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으며 한 손에는 성인 남자보다 거대한 도끼를 들고, 한 손에는 역시나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오크 히어로 특유의 왕관의 씌워져 있었다.

놈의 몸을 두르고 있는.

한때는 오크 영웅의 상징이었을 갑옷들은 해지고 찢겨진 채로 넝마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어어어어어-"

울음소리는 듣고 있는 이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 정도로 낮고 음산했다.

"그르으으-"

다시 한번 음산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오크 좀비 히어로가 나를 바라봤다.

쿠우웅!

육중한 발걸음과 함께 놈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쿠웅! 쿵!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나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 지경이다.

그리고 그 순간.

태애앵!

신호가 왔다.

수축될 대로 수축되었다는.

이제 맹렬한 폭발력과 함께 오크 좀비 히어로를 향해 날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그 신호다.

'간다.'

콰아아아앙!

궁신탄영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역시 내 몸에 회전을 걸었다.

콰콰콰콰콰!

오러 블레이드와 뇌전검이 뒤엉키며 허공위로 백색의 무수한 원을 그려냈으며.

오러 블레이드가 일으키는 파공성은 마치 전투기가 이륙하는 것만 같은 굉음을 일으켰다.

시야가 아찔해질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며, 나는 오크 좀비 히어로를 향해 쏘아져 나갔고.

"그르으으으으!"

조금은 당황한 것만 같은 오크 좀비 히어로의 울음소리와.

부우우웅!

초감각으로 놈의 도끼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이제 멈출 수도 없다.

그리고 놈의 도끼가 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직!

오러 블레이드 끝으로 놈의 도끼가 닿았다.

그 감촉이 전해졌다.

하지만.

파지지지직!

놈의 도끼는 찢겨졌다.

마치 종잇장이 찢겨 나가듯 오러 블레이드의 절삭력과 회전력을 버텨내지 못했다.

이번엔 놈의 방패가 나를 향했다.

'간다.'

파지지직!

나는 놈의 몸통을 관통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반대쪽으로 착지했다.

"후우."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오크 좀비 히어로가.

아니, 오크 좀비 히어로였던 것이 서 있었다.

남은 건, 이전에 다리였을 커다란 기둥 두 개.

그 위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훌륭하군.'

회복될 여지조차 남겨 두지 않은 채, 오크 좀비 히어로의 무릎 위의 모든 것을 없애 버린 것이다.

[체력 20을 포식했습니다.]

[힘 24를 포식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업적 '미치광이'를 달성했습니다.]

[업적에 대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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