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키륵- 키르르륵-
스무 마리의 저주받은 고블린들.
"허, 헐!"
"저, 저거… 뭐죠?"
갑작스레 나타난 저주받은 고블린을 보고 파티원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걱정 마십시오. 61층에서 업적 보상으로 획득한 능력입니다."
"무, 무슨… 무슨 업적이길래…."
궁금한 모양이다.
솔직히 탐이 나겠지.
저들도 저주받은 고블린의 힘은 이미 체감했을 테고.
그런 저주받은 고블린 스무 마리를 부릴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전투에 있어서 큰 이들일 테니까.
말 해 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
"일격으로 홉 고블린 처치입니다."
"……."
꿀꺽
그 한 마디에 파티원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욕심이 난다고 해서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오크 좀비들.
그 수는 스물을 조금 넘었다.
초입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난이도가 61층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
키륵- 키르르륵!
저주받은 고블린들은 그저 제 자리에 서서 특유의 울음소리만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오크 좀비들을 바라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키르르륵!
스무 마리의 저주받은 고블린들이 일제히 오크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내 살기에 반응하는 건가?'
딱히 저주받은 고블린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린 것도 아니다.
그저 오크 좀비들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을 뿐인데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 살기에 반응하는 게 맞는 모양이다.
'좋군.'
그러면 이제는 녀석들의 전투력을 지켜볼 차례다.
'저주받은 고블린은 무조건 오크 좀비보다 약해.'
하지만 새로운 능력, 저주받은 홉 고블린의 외침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소환된 저주받은 고블린의 공격력과 HP는 내 힘과 체력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얼마나 강할까.'
그렇게 저주받은 고블린들을 지켜보고 있을 무렵.
키르르륵!
푸학! 파각! 파득! 콰지직!
스무 마리의 고블린들은 한 손에 들고 있는 투박한 단검을 이용해 오크 좀비들을 미친 듯이 도륙하기 시작했다.
오크 좀비들은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바닥에 나자빠졌다.
그리고 고블린들의 단검이 오크 좀비들의 머리를 하나씩 깨부수기 시작했다.
파득! 파직! 콰득!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파육음과 함께.
"허, 허억…."
"저게 뭐야…."
파티원들이 기겁할 정도로 무자비하고 처참한 장면이 펼쳐졌다.
그리고 놀라운 건.
[체력 3를 포식했습니다.]
[체력 5를 포식했습니다.]
.
.
.
저주받은 고블린이 처치한 오크 좀비의 스탯은 나에게 전해졌다.
'사기군.'
이 정도면 매크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 순간.
콰직!
오크 좀비의 도끼가 저주받은 고블린의 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키르르르륵!
저주받은 고블린은 오히려 분노하며 몸을 허공에 띄웠다.
동시에 녀석이 단검을 내질렀고.
콰직!
고블린의 단검이 오크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풀썩
머리가 관통당한 순감 힘없이 추락하는 오크 좀비의 신형.
쿠우웅!
'끝났다.'
스무 마리의 오크 좀비를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분 남짓.
게다가 고블린들의 상태 역시 양호하다.
'몇 마리가 부상을 당했지만 놈들은 개의치 않는것 같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고.
'훌륭하군.'
말 그대로 저주받은 고블린들에게 '의지'는 없어 보였다.
저들은 온전히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완전한 꼭두각시.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야.'
나는 그렇게 새로운 능력의 효과에 충분히 만족했다.
말했듯 저주받은 고블린은 오크 좀비에 비해서 한참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받은 고블린 한 마리는 오크 좀비에 비해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빠른 속도로 오크 좀비를 압도했다.
실제로 오크 좀비의 공격을 받고도 쓰러지기는 커녕 곧바로 반격하지 않았던가.
그 말은 즉, 내 힘과 체력에 영향 받은 저주받은 고블린의 공격력과 체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뜻이겠지.
'이대로라면 분명히 1주일 안에 65층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겠어.'
그렇게 나와 저주받은 고블린들은 오크 좀비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스탯이 빠르게 증가했고, 경험치 역시 착실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저주받은 고블린들의 역할은 내가 처치하고 남은 오크 좀비 잔당을 정리하는 것.
나는 검기의 파동을 흩뿌리며 개미떼처럼 쏟아지는 오크 좀비들을 한 번에 수십 마리씩 쓸어 넘겼다.
내가 말했던 그대로 파티원들에게는 일말의 전투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파티를 맺은 이상, 저들도 일정량의 경험치는 획득하게 될 테지.
덕분에 파티원들도 이렇다 할 불만 사항은 없다.
오히려 나를 응원하고 있는 파티원들의 외침이 들려 올 정도였다.
'빠르게. 더 빠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키르르르륵!
케륵! 케르르륵!
저주받은 고블린들은 더욱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내가 쏘아 보낸 검기의 파동은 던전의 벽에 충돌했고.
쿠르르릉!
쏟아져 내리는 던전의 벽은 그 아래에 있던 오크 좀비 부대를 짓뭉갰다.
그리고 그 순간.
[레벨이 올랐습니다.]
내 레벨은 어느새 90이 되었다.
하지만.
'포식 슬롯은 열리지 않았어.'
아무래도 100레벨에 도달해야 포식 슬롯을 열어 줄 모양이다.
문제는 없다.
이 속도라면 며칠 이내에 100레벨에 올라설 수 있을 테니까.
'좋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그 이후로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일사천리라는 말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푸슉! 푸슉!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저주받은 고블린들의 칼소리.
고블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영리하게 오크 좀비를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의 영민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고블린들의 특성.
좋게 말하면 영민함, 나쁘게 말하면 영악함.
그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작은 덩치를 이용하여 오크 좀비의 하체를 공략하고, 오크 좀비가 쓰러지는 즉시 머리를 박살 냈다.
혼자가 힘들다면 둘이 협력했고.
오크 좀비의 숫자가 많다면 도망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오크 좀비를 처치하는 속도는 처음에 비해서 반 이상으로 짧아졌고.
[체력 3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2를 포식했습니다.]
[힘 4를 포식했습니다.]
.
.
.
강민의 눈앞에 끝없이 쏟아지는 스탯 포식 메시지.
그뿐인가.
강민이 뿜어내는 검기의 파동과 지휘관의 외침과 같은 능력들은 쏟아지는 오크 좀비들을 1초에서 수십 마리씩 '파괴'하고 있었으니.
이 속도라면 정말로 언데드 좀비의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채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게 확실시 되는 상황이었다.
"……."
"이거 기분 탓일까?"
그런 고블린과 강민을 보는 플레이어들은 묘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도 알고 있었다.
강민 혼자의 힘이 나머지 그들을 다 합친 것만큼 강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생각을 다시 한번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가 아니야.'
애초에 모두가 합친다고 해서 어떻게 비벼볼 만한 대상이 아니다.
자신들이 같은 층에 있다는 게 민망할 지경이다.
"저 고블린이랑 싸우면 이길 수 있기나 하겠어?"
"솔직히 나는 자신 없는데."
"나도…."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강민은커녕, 지금 강민이 부리고 있는 저 고블린조차 쓰러트릴 자신이 없었다.
고블린의 칼질 몇 번에 푹푹 쓰러지는 오크 좀비를 보고 있자면, 강민이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전신에 소름이 돋아날 지경이었다.
간혹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그들에게 다가오는 오크 좀비 몇 마리를 사냥해 봤으니 충분히 알고 있다.
그들이 오크 좀비를 쓰러트리는 속도보다, 고블린들이 오크 좀비를 쓰러트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들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강민이 부리는 고블린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저주받은 고블린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군.'
'그러니까 길드장님이 그렇게 아낀 거겠지.'
게다가 겨우 파티 보너스 경험치를 받고 있을 뿐인데도, 경험치는 빠른 속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벌써 몇몇이 레벨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들이 강민의 뒤를 따르던 중.
"오오오오?!"
갑자기 몰른이 화들짝 놀라며 괴상한 외침을 뱉어냈다.
그리고 마침 오크 좀비의 한 웨이브를 처리한 강민이 몰른을 돌아봤다.
***
'뭐지?'
저 먼 곳에서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몰른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몰른이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거기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잔뜩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몰른이 서 있었다.
그 주변으로 모여드는 플레이어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내 예상이 맞는다면, 몰른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능력이 생겨난 게 아닐까.
충분히 가능성 있다.
이미 전에도 몰른에게 새로운 능력 하나가 생겨났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몰른의 정보창을 펼쳐냈다.
[펫 – 몰른]
>등급 : S
>3단계
>특성 : 버프
>승리의 노래 : '몰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모든 스킬의 지속 시간이 1.5배 상승한다.
>바람의 노래 : '몰른'의 피리 연주를 듣게 되면 20분간 모든 스킬의 사용 대기 시간이 50% 감소한다.
>영웅의 찬가 : '몰른'의 노래를 들은 순간, 1시간 동안 공격력이 50% 증가한다. (대상, 펫의 주인과 주인의 파티원)
'미치겠군.'
AAA등급이었던 몰른의 등급이 무려 S등급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겨난 능력은 S등급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능력이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이 몰른에게 추가되었다.
공격력이 50% 증가되는 버프라니.
그것도 무려 한 시간동안.
'기존의 능력들도 모두 사기적이었지만….'
지금 새로 생겨난 능력은 이전의 능력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나 마력 수치가 크게 증가하며 뇌전검과 오러 블레이드의 지속시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된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나는 몰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주인님! 악상이 떠올라요!"
나를 보며 몰른이 말했다.
새로 생겨난 능력이 몰른에게는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어떤 음악이지?"
내가 물었다.
"으으음…!"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몰른은.
"신나고! 화끈한… 주인님같이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이 떠올랐어요오오!"
그렇게 말하며 몰른은 자신의 류트를 꺼내 들었다.
"연주해… 봐도 될까요오?"
"그래. 한 번 들어 보고 싶네."
"오호호!"
몰른이 웃으며 류트를 튕기기 시작했다.
퉁! 퉁!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투둥! 투두둥!
본래 몰른의 연주에 비해 훨씬 더 경쾌하고 빠른 박자의 음악이 몰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몰른의 스타일과는 정 반대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만드는 흥겨운 음악이다.
플레이어들도 몰른의 음악에 맞춰 지쳐서 축 늘어졌던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몰른의 연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
[영웅의 찬가 버프 효과가 적용됩니다.]
[1시간 동안 공격력이 50% 증가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허, 헉!"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들.
그와 함께 내 몸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