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55화 (155/277)

155화

"저기요, 박명철 씨. 미쳤어요? 혹시 뭐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어디가 좀 아프고 막 그래요? 그것도 아니면… 뭐 내가 뭘 잘못해서 그래요? 말 좀 해 줘요.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할 테니까!"

김민희.

그녀가 박명철을 보며 소리쳤다.

"으아악!"

그러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김민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지금 김민희가 이렇게 흥분한 이유는 하나다.

조금 전, 박명철에게서 명가와의 회동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저… 누님. 고정을…."

"고정? 고저어엉? 동희야. 너도 저 사람이랑 같이 미쳤어? 아니면 박명철 씨가 뭐 돈이라도 조금 찔러 줬니?"

길드장이라는 호칭 대신, 박명철 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건 흥분했을 때 김민희의 말버릇이었다.

"뭘 그렇게 흥분해."

박명철이 입을 열었다.

잔뜩 흥분한 김민희와는 반대로 박명철은 너무도 차분했다.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검술 명가잖아, 검술 명가. 사실상 걔들이랑 맞짱 뜨자고 죽빵 한 대 갈기고 온 거나 마찬가지 아니야?"

"맞아."

박명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 어떠냐는 듯한 표정으로.

"허…."

박명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처럼 검술 명가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고 해 보자."

"……."

"그러면 달라졌을까? 걔들이 어이구야, 제가 너무 했네요. 미안합니다. 앞으로 잘 지내 봐요. 이랬겠냐고."

"그건…."

"아니지. 그 녀석들은 이미 작정하고 온 거야. 정말 그 범인을 밝히고 싶어서 그 말을 꺼냈겠어? 그 검술 명가가? 관심도 없었을 거다. 거기에서 대놓고 강민 씨를 지목했다는 건, 명백하게 네 표현대로 그것들이 먼저 내 죽빵을 갈긴 거라고."

"……."

김민희는 입을 다물었다.

풀썩

그리고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실 알고 있다.

김민희라고 모르겠는가.

다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검술 명가.

그 이름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이 탑에 존재하기는 한다는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탑에 오르기 전부터.

그리고 탑을 오르고 나서.

이 자리에 올라서는 그 순간까지.

검술 명가라는 이름은 모든 플레이어의 뇌리 깊숙이 스며있는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힘과 권세는 말 한마디로 웬만한 길드 따위는 순식간에 지워 버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쯧쯧."

그때였다.

옆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믿음이 부족한 자여."

다시 이어지는 음성은, 한동희의 목소리였다.

"뭐 이 새꺄?"

"나는 검술 명가가 두렵지 않다네. 이 믿음이 부족한 자여!"

"……."

김민희도 한동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

바로 강민의 존재를 두고 하는 말일 테지.

알고 있다.

그녀도 알고 있지만.

두려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검술 명가에 대한 두려움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탑을 오르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DNA에 각인 된 '본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걱정 마라, 민희야."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박명철의 목소리.

"우리는 강해졌다."

그의 말에서는 묵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강민 씨는 더 강하다."

진심이 느껴지는 박명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김민희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대박!"

"……!"

"역시."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세 사람은 동시에 감탄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들에게 도달한 메시지 때문이다.

[현재 한강민 파티 61층 돌파. 역대 최단 기록임.]

"거 봐라. 걱정할 게 있기는 하겠냐?"

입꼬리를 한껏 들어 올린 박명철이 김민희를 보며 말했다.

그 순간 김민희는.

"오케이. 알겠어요. 항복. 내가 항복할게."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

나와 파티원들은 62층 대기실에 도착했다.

61층 이후로는 매 층을 클리어 할 때마다 대기실에 도달하게 된다.

파티원 중에 사망자, 혹은 부상자가 생겼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마찰 때문에 더 이상 파티를 맺지 못하게 된 플레이어들을 배려한 시스템이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 정도 올랐을 경우 한 파티에서 쫓겨난다는 건, 다른 파티에도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62층 정도면 플레이어들도 슬슬 고일 대로 고인 녀석들이니까.'

한 다리 건너면 모두를 알 수 있다.

아니, 한 다리뿐인가.

사실 이 정도면 서로 안면 정도는 이미 다 터놓은 상황일 테지.

그런 환경에서 안 좋은 이미지로 낙인찍힌다면 그야말로 나가리다.

내 파티원들도 마찬가지다.

나와 비교해서 조금 모자라 보이는 것뿐이지, 어딜 가도 빠지는 이들은 아니다.

저들 중 하나가 탑의 저층에 내려간다면 저층의 플레이어들은 아마 저들을 신처럼 우러러볼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말을 증명한다는 듯이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62층에서 대기 중이던 플레이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도 다들 탑의 저층구간에서 함께 협력했던 플레이어들이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와 사이가 좋지는 않다.

개중에는 서로 눈을 흘기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은근한 부러움들은 감추지 못하는군.'

말 그대로 나와 파티를 맺었던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선에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위드 길드에 소속됐다는 사실에 대한 부러움이겠지.

하지만 그때였다.

"저분은 누구셔?"

"아, 그러니까…."

파티원과 대화를 나누던 플레이어 한 명이 나를 흘끔 보고는 물었다.

파티원은 난색을 표했다.

아마 한동희나 박명철, 혹은 김민희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았겠지.

나에 대한 존재를 떠벌리지 말라고 말이다.

플레이어는 내 눈치를 봤다.

어떻게 하느냐는 표정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내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니까.

"위드 길드 플레이어셔."

"아, 그렇구나. 혹시 이름이…?"

그 말과 함께 나를 향해 다가온다.

"야, 야!"

하지만 파티원은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왜? 인사 좀 하려고 하는 건데."

그런 파티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플레이어.

사실 인사를 나누는 것 정도야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때.

"말을… 못 하셔."

파티원이 말했다.

이게 뭔.

한순간에 사람을 벙어리로 만들어 버리다니.

"아, 저, 정말?"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먹혀들었다.

"그, 그래. 타, 탑을 오르다…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거든."

"아…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사과하는 플레이어.

나도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주인님. 저 사람 바보인가 봐요. 그런 거짓말에 속는 걸 보면."

몰른은 옆에서 이런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앞으로 내 정체를 숨기는 게 더 어려워지겠어.'

지금이야 대충 얼토당토 않는 거짓말로 넘겼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매 층 거쳐야 하는 대기실에는 분명 명가의 직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여기에 명가 녀석들은 보이지 않지만.

저쪽에서는 화랑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나와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노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사실 저 녀석들은 딱히 신경 쓸 것도 없지.'

지금이야 어찌어찌 버티고 있겠지만, 그것도 머지않았다.

내가 현재 탑의 최상층인 65층에 도달하는 순간 저들의 위세는 모래탑처럼 무너지게 될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무너지게 만들 계획이다.

'내가 신경 쓸 건 검술 명가뿐.'

여유가 많지 않다.

놈들은 지금 악이 오를 대로 올랐을 것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탑을 올라서기 위해 모든 집중을 쏟아낼 게 분명했다.

'그동안보다 훨씬 더 폐쇄적으로 돌변할 테지.'

외부를 향한 모든 관심을 끄고 오로지 탑을 돌파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사실상 앞으로 위드 길드가 검술 명가를 앞서 탑을 클리어하는 일 따위는 없으리라.

65층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보스 몬스터의 난이도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약점을 안다고 해도 이렇다 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렇기에 지금의 위드는 검술 명가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검술 명가가 위드를 향한 견제를 멈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이 숨죽이고 있는 건, 잠시일 것이다.

아주 잠시 몸을 웅크리고 힘을 기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응축된 힘이 나와 위드를 향해 날아들 것이다.'

그 타이밍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65층을 클리어하고 난 뒤일 수도 있고.

66층을 클리어하고 난 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곧 놈들의 칼날이 위드와 나를 향하리라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더 강해지기 전, 탑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더 많은 힘을 비축하기 전.

그래서 그들의 칼날이 나를 향하기 전에.

'내가 먼저.'

놈들을 향해 내 검의 끝을 움직여야 하겠지.

그리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일어나자 파티원들은 대화하던 플레이어들을 뒤로한 채 서둘러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죄, 죄송… 합니다."

나를 벙어리라고 말했던 플레이어들이 굳은 얼굴로 사죄했다.

"상관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십시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앞으로 탑을 빠르게 오를 겁니다. 61층에서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요. 그렇다면 당신들은 몬스터를 사냥한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내 말 뜻을 이해한 플레이어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 말대로라면 저들의 성장 가능성이 늦춰진다는 뜻이다.

"괜찮습니까? 만약 원치 않는다면 이곳에서 기다리며 다음 위드의 플레이어들이 도착하길 기다리십시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저는 가겠습니다."

"저도요."

"저도 마찬가지요."

"어차피 탑을 빨리 오르는 게 성장에 유리한 건 다 아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층을 클리어하기만 해도 경험치가 쏟아지고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요, 뭐."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리고 층간 이동 아티팩트만 있으면 다시 층을 내려와 반복 사냥도 가능할 테고.

"좋습니다, 그럼."

저들의 동의를 받았으니 나 역시 더 이상 거리낄 건 없다.

'앞으로 7일.'

일주일 안에 나는 65층까지 올라갈 생각이다.

"힘들 겁니다. 다들 각오하십시오."

그 말을 던지고 나와 파티원들은 62층으로 향했다.

***

[62층에 도착했습니다.]

[언데드 오크의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언데드 오크의 던전]

>클리어 조건 : 오크 좀비 히어로를 처치하라.

역시나 간단한 클리어 조건.

저주받은 고블린의 던전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유일한 차이점은 바로 난이도뿐.

취엑- 취에엑-

벌써부터 저 앞에서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저주받은 오크들.

녹색의 오크와는 달리 온몸이 검게 썩어 문드러진 오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크 좀비.'

좀비라는 건, 놈들의 생명력이 끔찍하리만치 질기다는 뜻이다.

놈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머리를 부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공격을 퍼붓는다고 해도 죽지 않고 되살아나니까.

취에에- 취에에엑-

우리를 발견한 오크 좀비들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크에 비해 한참이나 느린 속도지만, 플레이어들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오크 좀비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럼 나도 한 번 시험해 봐야겠군.'

새로 획득한 능력, 저주받은 홉 고블린의 외침.

그 능력의 효능을 실험해 볼 시간이다.

나는 곧바로 저주받은 홉 고블린의 외침을 사용했고.

키아아아아!

나를 중심으로 울려 퍼지는 음성과 함께.

투둑- 투두두둑

내 주변으로 스무 마리의 저주받은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