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52화 (152/277)

152화

하지만 그게 그들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은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흐어어억!"

콰아앙!

"미친! 이거 뭐 이래!"

카아아앙!

"커헉! 힘 존나게 세잖아!"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곡소리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저주받은 고블린은 고작해야 성인 남성의 평균 키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 괴력만큼은 무지막지했다.

푸각!

키르르르륵!

"허억, 허억… 겨우 잡았잖아."

"뭐가 이렇게 세? 내가 알던 고블린이 아닌데?"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겨우 고블린을 처치한 플레이어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순간.

"헐…."

"이게 다 몇 마리야…."

"말도 안 돼…."

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저주받은 고블린들의 시체를 보며 플레이어들이 탄성을 쏟아냈다.

저들이 모여 대략 스물에 가까운 고블린을 처치하는 동안 나는 그 나머지 고블린을 모두 쓰러트리고도 시간이 남아 그들의 사냥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스탯 포식량이 월등해.'

고작 몇 마리 사냥하지도 않았건만 60층 이하에서 포식하는 스탯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양을 포식할 수 있었다.

이것 역시 모두가 설계자의 의도겠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지금이야 어려워하지만 곧 고블린 사냥에 적응되고 나면 빠른 속도로 레벨을 올릴 수 있을 테고.

"저 고블린 약점이 무릎이라고 했지?"

"맞아. 무릎 공략하면 금방 잡을 수 있다고 했어."

"아오, 긴장해가지고 까먹었어."

"어쩔 수 없지. 이제 시작이잖아."

조금 전의 전투를 되새김하며 저들끼리 피드백을 주고받는 위드 길드 플레이어들의 모습.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 정도는 아니지만 저주받은 고블린 사냥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갑시다."

내 말에 플레이어들이 내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저주받은 고블린 던전 더 깊숙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

그렇게 벌써 내 레벨은 75가 됐다.

그동안 느리게 오르던 레벨은 61층에 오르자마자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은 아직 아무도 레벨을 올리지 못했다.

사냥 속도가 나보다 느린 것도 맞지만, 저들은 나보다 레벨이 훨씬 높을 테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저들은 한 스테이지에 머무른 시간이 나보다 몇 배는 많을 테고.

그러니 나보다 레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저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게 맞다.

사실 고작 70레벨 언저리에 61층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이대로면 71층에 가기 전에 다음 포식 슬롯을 열 수 있겠는데.'

71층에서 타국의 플레이어들을 만나기 전, 포식 슬롯을 열어 놓는다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다음 포식 슬롯이 열리는 게 언제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만.'

지금 추세라면 80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90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100레벨에 다음 슬롯이 열릴지도 모르지.'

어쨌든 최대한 71층에 올라가기 전, 다음 포식 슬롯을 열 생각이다.

90레벨이 아니라면 100레벨을 달성하면 그만이다.

지금의 속도라면 71층까지 100레벨을 달성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됐다!"

"진짜 쉬운데?"

"무릎 박살! 무릎 브레이커!"

어느새 저주받은 고블린 사냥에 익숙해진 플레이어들이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내가 굳이 신경 써서 약점을 노릴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다른 스킬도 필요 없이 오러 블레이드 한 번 휘두르면 한 번에 열 마리, 스무 마리의 고블린들이 썰려 나가는 것을.

'그리고 진짜는 이제부터지.'

던전의 초입을 저주받은 고블린이 장식해 줬다면 이제는.

'저주받은 고블린 마법사.'

단순히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단검만 휘두르는 고블린이 아닌, 마법을 사냥하는 고블린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타이밍이다.

'물론 녀석도 패턴이 단순한 건 마찬가지지만. 마법의 위력은 절대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야.'

체감 난이도는 몇 배 이상 뛰어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순간.

키륵!

저 먼 곳에서 고블린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선 저주받은 고블린 수십 마리와 그 뒤를 따르는 저주받은 고블린 마법사 다섯 마리.

"마법사가 나타날 겁니다."

내가 플레이어들을 향해 말했고.

플레이어들은 다시 한번 긴장한 기색으로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 순간.

콰르르륵!

고블린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흐, 흐어어억!"

"마법이다! 준비해!"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그들은 미리 교육받은 그대로 고블린의 마법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들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미안하다. 고블린 마법사는 넘겨주기에 너무 아까워.'

마력을 포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

치지직!

뇌전검을 사용했다.

백색의 오러 위를 감싸는 뇌전과 함께 민첩성이 증가됐고.

파앗!

몸을 날렸다.

"어, 어어?!"

"허엇!"

순식간에 내 모습이 사라지자 전투를 준비하던 플레이어들이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들과 먼 곳에 떨어져 있었고.

파직!

"키륵…?!"

오러 블레이드가 고블린 마법사의 목을 관통했다.

[마력 10을 포식했습니다.]

한 번에 10의 마력을 포식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확실히 달콤하다.

곧바로 오러 블레이드를 움직였다.

파직!

[마력 9.4를 포식했습니다.]

케르르르륵!

키륵! 키르르륵!

두 마리의 고블린 마법사가 죽고 나서야 고블린들은 다급히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자 나름 진형을 갖추고 있던 고블린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파직!

그 틈을 타 고블린 마법사 한 머리를 더 처치했다.

"지, 지금이다! 공격해!"

"에라 모르겠다!"

고블린들의 진형이 흐트러지자 플레이어들은 고블린들을 향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고.

파직! 콰득! 푸각!

빠른 속도로 고블린 무리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고블린의 수를 줄이는 동안 나는 그곳에 있던 모든 고블린 마법사를 쓰러트렸다.

그 결과 총 60에 가까운 마력을 포식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려 레벨이 하나 더 올라 내 레벨은 76이 되었다.

엄청난 성장속도다.

나는 내심 속으로 설계자를 향한 감사를 전했고.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내가 말했던 3주.

그 3주를 위해서 61층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

"난리도 아니군."

"세상에. 내 눈으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뭘 잘했다고 그렇게들 떠드는 겁니까."

현재 탑의 한구석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궁술 명가의 예진희, 창술 명가의 구준회, 그리고 체술 명가의 최강혁이 모여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보기 드문 장면이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들 말고도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인물이 두 명 더 있었으니.

하나는 위드 길드의 박명철이고, 다른 하나는 검술 명가의 김민석이었다.

"……."

김민석.

그는 김준석의 동생이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김준석의 대리인으로 나와 있는 것이었다.

이번 회동을 주체한 건, 한 집단이 아니다.

현재 급박한 상황에 놓인 창술, 궁술, 체술 세 명가와 화랑 길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만남이기도 했다.

허나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이번 회동이 성사된 결정적 동기는 검술 명가의 참가 덕분이었다.

그렇게 검술 명가는 자신이 회동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위드 길드의 참여를 내걸었고.

'…바라던 바야.'

박명철도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언젠가는 닥쳐올 상황이었으니 박명철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

만약 아직 64층을 돌파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고민했을 법도 하지만.

이미 64층을 돌파하고 탑의 여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 자리를 피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오히려 박명철은 한껏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다.

'다른 녀석들은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이전에는 하늘같아 보였던 세 명가는 더 이상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화랑 길드 역시 마찬가지다.

태연한 척하지만 조급해하는 철기영의 태도가 박명철의 눈에는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검술 명가다.

그동안 조용히 탑 등반에만 열중하던 검술 명가가 무엇 하러 이 자리에 나온 것이며.

그 조건이 자신의 참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박명철의 머리도 조금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짚이는 건 있다.

'검술 명가가 나를 불렀다는 건… 아무래도 강민 씨 때문이겠지.'

검술 명가도 강민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탑의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특히나 얼마 전에 있었던 명가 플레이어들의 실종.'

마법사의 숲에서 벌어진 그 사건은 명가와 상위 길드 사이에서는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

'저들은 분명 강민 씨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이곳에 불러들일 일이 없다.

하지만 박명철 역시 꿀릴 것은 없다.

그가 아는 강민은 결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칠 인물이 아니다.

강민이 했으면, 응당 이유가 있으리라.

실제로도 그렇다.

강민이 그들을 공격했던 건, 모두 그들이 자초했던 일이 아니었던가.

강민이 공격하지 않았으면, 그들은 툰테른 모두를 죽이고 강민을 위협했으리라.

강민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에 불과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이 약속하지 않았던가.

마음껏 날뛰라고.

그 뒤는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말이다.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온 거지.'

지금의 위드를 만들어 준 사람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자. 다들 집중해 주십시오."

그때 검술 명가의 김민석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검술 명가일 수밖에 없으니, 자연적으로 그가 이번 회동을 이끄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다들 고심이 크실 것으로 압니다."

김민석은 입에 발린 말을 꺼냈다.

"얼마 전 있었던 불의의 사건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박명철을 흘끗 바라보는 김민석.

박명철의 추측이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그래. 와 봐라.'

박명철은 지지 않았다.

그는 강민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고, 이제 곧 강민이 검술 명가의 머리 위로 올라서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용의자로 의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민석의 말에 모두가 눈매를 좁혔다.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

다만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을 뿐.

김민석의 입이 다시 열렸다.

"위드 길드의 한강민."

꿀꺽

그 한 마디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민석은 박명철을 향해 되물었다.

무례한 일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심증밖에는.

아니, 심증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토록 적나라하게 추궁하다니!

하지만 박명철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인데, 당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세게 나가야 한다. 뒤로 물러나면, 거기는 벼랑이야.'

박명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불쾌하군요."

"……?!"

"뭐, 뭣…!"

"이봐요!"

박명철의 대답에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기함을 터트렸고.

철기영은 박명철의 패기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김민석은 차분했다.

그렇게 김민석이 다시 무슨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우리 위드를 의심하는 그 발언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허…!"

결국 김민석은 박명철의 당돌한 태도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 자체가 충격적인 건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고, 맞는 말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 대상이다.

'미친 게 아니고서야 검술 명가 앞에서….'

'한강민을 믿고 그러는 건가?'

'돌았군.'

말 그대로.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검술 명가의 직계 앞에서 저런 말을 내던질 자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