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콰아앙!
그때 이 탑에서 가장 분노하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검술 명가의 김준석이었다.
"이 멍청한 새끼들!"
그는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명가의 직계, 방계의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위드? 그딴 듣도 보도 못한 길드한테 64층의 클리어를 빼앗겼다고?"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검술 명가의 본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위드 길드에게 64층의 클리어를 빼앗겼다는 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문의 지원이 부족했나?"
김준석의 말에 모든 명가의 일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부족했을 리가.
차고 넘쳤다.
명가의 역사를 통틀어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아무 말이 없자 김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부족한 게 뭐지?"
김준석의 눈빛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지만, 간신히 억누르고 있다는 게 피부로 와 닿을 지경이다.
"네놈들의 실력이다. 실력! 고작 그딴 길드 하나에 뒤처질 정도로 네놈들이 나약해 빠졌다는 말 아니야! 내가 틀린 말을 하고 있나? 입이 뚫려 있으면 뭐라고 반박이라도 해 보라는 말이다!"
고오오오오!
김준석의 분노가 치밀어 오를수록 그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하는 마력이 공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비록 마법 명가의 수준은 아니지만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도 스스로의 마력을 갈고닦는다.
그것이 그들의 힘의 근원이었으며.
오랜 시간을 통해 갈고닦은 호흡법을 통해 쌓아 올린 마력은 수치가 높지는 않아도 그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정점에 오른 김준석의 마력은.
"끄읍…."
"허억…."
그저 밖으로 흘러나온 정도만으로도 직계와 방계 플레이어들의 숨통을 조이기에 충분했다.
"명심해라.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이미 두 번이나 위드라는 것들에게 탑의 클리어를 빼앗겼어. 세 번? 세 번이나 빼앗긴다면 이제 탑의 그 누구도 우리의 권위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준석의 말에 플레이어들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반드시 65층을 우리 힘으로 돌파해 내겠습니다."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플레이어들의 말에 김준석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가주께서. 그리고 장로들께서 보고 계신다. 가주께서 직접 너희를 훈계하신다는 것을 내 말리고 말려 내가 너희 앞에 서 있는 것이니… 긴장의 끈을 절대 놓지 말아야 할 거다."
가주, 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검술 명가의 가주인 김원호.
그의 이름은 듣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썩 꺼져라. 앞으로 일주일. 일주일 안에 어떻게 해서든 65층을 돌파해라. 돈이나 재원은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탑을 등반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마지막 떨어진 김준석의 한 마디와 함께 모든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풀썩
김준석은 플레이어들이 사라진 뒤 자신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젠장."
사실 이 정도도 많이 참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준석은 김원호에게 대판 깨지고 온 참이었으니까.
원래 같았으면 김준석도 다른 플레이어들을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팔이라도 한짝 잘라냈어야 성정이 풀렸을 것인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가 이 정도로 끝낸 것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고.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만 같았으니.
'…아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해.'
***
"반갑습니다."
61층에 올라섰고, 일전에 만났던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 말했지만 61층부터 70층의 테마는 단순하기 그지없다.
쭉 이어진 던전을 나아가며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끝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각 층의 클리어 조건.
'하지만 단순하다고 해서 난이도가 쉽다는 게 아니지.'
머리를 쓸 필요 없다는 건, 그만큼 몸을 혹사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전생에서야 어느 정도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들의 약점이 공개되었다고는 하지만,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가 끔찍할 정도로 강하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내가 위드 길드에게 넘겼던 정보들도 당연히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의 공략법.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각 층을 돌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보면, 그 난이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오랜만이군.'
61층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었다.
본격적으로 던전에 진입하기 전의 대기실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
'플레이어들도 꽤 많아.'
위드 길드에서 탑 아래층에 대한 공략법을 플레이어들에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지시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하나다.
'대한민국 탑의 경쟁력을 올려야 하니까.'
71층 이후로 우리는 타국의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위드 길드 혼자 71층에 올라서는 건 확실히 타국에 비해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최대한 탑 전체의 평균을 올리는 게 우리로서도 이득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위드 길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홍보 효과를 노린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것이 지금의 이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대형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보통 그들끼리 파티를 맺어 던전에 진입한다.
명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군소길드, 중견 길드는 다르다.
군소 길드, 혹은 중견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세력들과 손을 잡고 탑을 공략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당연히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만을 이끌고 61층을 공략할 생각이었고.
아직까지는 플레이어들이 내 등장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당연히 내 얼굴을 모르니까.
그저 위드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다들 준비는 되었습니까."
내가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돌아보며 물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나는 그들과 파티를 맺었다.
[파티의 정원이 가득 찼습니다.]
[61층의 던전 내부로 진입하시겠습니까?]
파티를 맺은 순간, 그런 메시지가 떠올랐고.
"진입하겠다."
그 말과 함께 우리들의 몸 주위로 빛무리가 감싸기 시작했다.
***
[던전에 입장했습니다.]
[저주받은 고블린의 던전]
>클리어 조건 : 저주받은 홉고블린을 처치하라
간단명료한 던전의 클리어 조건.
전생에서는 생각도 못 했지만, 설계자를 만나고 난 뒤라 그런지 저주받은 고블린의 던전에 들어와 있는 감회가 새롭다.
설계자는 '강하게 키우자'라는 모토로 탑을 설계했다고 했었다.
'확실히 실력을 키우기에는 적절한 환경이 맞지.'
저주받은 고블린.
평범한 고블린은 탑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약해 빠진 몬스터다.
하지만 저주받은 고블린은 다르다.
강하다.
엄청나게.
61층에 올라선 플레이어들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다만 저주받은 고블린이 강한 건, 저주받은 고블린이 다양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신체 능력이 무지막지하게 강력할 뿐.
빠르고, 힘이 세다.
그것뿐이지만 그런 저주받은 고블린을 사냥하는 건 강해지는 데에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면, 레벨이 빨리 오르지.'
그렇다고 고블린의 패턴이 다양한 것도 아니니 다른 몬스터에 비해서 사냥하는 게 훨씬 편하지 않은가.
'나름 머리를 썼어.'
술기운에 빨갛게 달아올랐던 설계자의 얼굴이 한 번 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키륵! 키르륵!
드디어 저주받은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 허억!"
"나타났다!"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주, 준비해!"
그들 중 한 사람이 외쳤다.
이미 한동희를 통해 저주받은 고블린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았을 테지만, 긴장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고블린이지만, 생김새는 다르다.
온몸이 검게 물들어 있었고,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흐른다.
몸집도 평범한 고블린에 비해 1.5배는 거대했으니.
처음 본다면 긴장할 수밖에 없지.
물론 전생의 나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 저 녀석을 봤을 때 얼마나 무서웠던지.
'자, 나도 오랜만에 추억 좀 느껴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알 수 없는 장검이라는 이름을 가진.
탑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검.
그리고.
콰르륵!
6단계의 백색 오러 블레이드가 검 위로 솟구쳤다.
이전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의 오러 블레이드다.
오러 블레이드가 검 위로 솟아난 순간 플레이어들 입에서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고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키르르륵!
오러 블레이드의 기세를 느낀 저주받은 고블린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으니.
처억!
놈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고.
부웅!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 휘둘렀다.
그 순간.
콰직!
"키륵…?"
"키, 키에에에에엑!"
한순간에 울려 퍼지는 고블린들의 단말마의 비명과.
투두두둑
일격에 모조리 잘려나간 열 마리도 넘는 고블린들의 몸뚱이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1초나 걸렸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저주받은 고블린 십여 마리가 한 번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힘 6을 포식했습니다.]
[힘 5.5를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7을 포식했습니다.]
.
.
.
그와 함께 떠오르는 스탯 포식 메시지들.
'쉽군.'
한 마리 사냥하는 데 몇 분이 걸렸던 전생과는 확연히 달라진 나의 모습에 미소가 흘러 나왔다.
"갑시다."
이제는 제한 시간이 사라진 오러 블레이드.
어차피 내 마력도 1000을 훌쩍 넘어서서 그 용량은 사실상 무한대나 다름없었으니, 더 이상 사용 시간을 계산할 피곤함도 사라졌다.
그렇게 나와 위드 길드 플레이어들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 뒤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저주받은 고블린 그렇게 강한 건 아닌가 봐."
"한강민 씨가 강한 거 아닐까?'
"그거야 당연하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공격 한 번에 열 마리 넘게 잡을 정도면… 우리가 너무 겁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가…."
대충 이런 말들이다.
저들이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사실 내 상태창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강한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테지.
지금 나의 강함은 저들의 상식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수준이니까.
'직접 사냥해 보면 알게 될 거다.'
저주받은 고블린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저들의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조금 더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무렵, 다시 한번 저주받은 고블린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숫자가 꽤 많다.
얼핏 살펴도 50을 넘는 숫자.
키르르르륵!
오십 마리도 넘는 저주받은 고블린들이 한 번에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은 자신감에 차오른 플레이어들이 위풍당당하게 저주받은 고블린들을 향해 무기를 치켜들고 싸울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