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역시나.
해밀턴의 공방은 닫혀있었다.
사실 오늘 하루뿐만이 아니다.
내가 탑의 파편을 맡기고 떠난 지난 일주일간 해밀턴의 공방은 단 한 순간도 열려있지 않았다.
덕분에 내가 25층 마을에 머물러 있는 매일매일 플레이어들의 불만은 멈추질 않아있던 상태였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웃긴 건 플레이어들의 반응이다.
"해밀턴 님! 제발 문 좀 열어 주십시오!"
"돈은 드릴 테니 제발 제 장비 좀 만져 주십시오! 부탁드릴게요!"
"해밀턴 님! 해밀턴 님! 제바아아알!"
문을 닫는다고 손님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쉬운 건 플레이어들이었고, 매일같이 공방 앞에 줄을 지어 플레이어들이 해밀턴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건 일상이었다.
지금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돌아가 주십시오. 이러다가 해밀턴 님의 눈에 띄면 블랙리스트에 등록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 곧 공방 문이 열릴 테니 오늘은 돌아가 주십시오!"
그 앞에서 플레이어들을 돌려보내는 건, 그의 수제자들의 일이었고.
해밀턴은 단 한 순간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결국 블랙리스트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은 아쉬운 마음을 못내 감추며 공방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사라지고 난 뒤, 나는 해밀턴의 공방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간 순간 수제자들의 기계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오늘은 공방 문을…."
그 순간 내 얼굴을 확인한 수제자.
"흐, 흐억!"
다급히 놀라며 숨을 돌이켰다.
전에 나를 대기시키려다 해밀턴에게 혼쭐이 났던 그 수제자다.
"그, 그… 오셨군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수제자가 나를 보고는 다급히 공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들어오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수제자의 안내와 함께 나는 해밀턴의 공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깡! 깡! 깡!
해밀턴의 개인 공방 안에서는 아직도 무두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해밀턴의 작업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말과 함께 수제자는 나를 위한 차 두 잔을 내왔다.
나와 몰른의 차다.
몰른은 차의 향을 맡더니 눈을 번뜩였다.
그만큼 냄새만 맡았을 뿐인데도 고급 차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 해밀턴 님께서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제자는 내 눈치를 보며 저쪽 멀리에 가서 앉아있었다.
'젊어 보이는데. 해밀턴의 성질머리를 받아내느라 고생깨나 하고 있겠어.'
그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잠시 스쳐 지나간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해밀턴의 눈에 들어 수제자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일 테고.
해밀턴의 밑에서 교육받고 그의 기술을 배우게 된다면 저 수제자 역시도 언젠가 이름 날리는 대장장이가 되리라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저…."
그때 수제자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차를 마시고 있던 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선생님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제가 선생님 밑에서 배운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선생님께서 이토록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모험가님들은 제가 처음 봅니다."
수제자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니, 모험가님들뿐만이 아니죠. 웬만한 거부가 와서 돈다발을 꺼내 들어도 썩 꺼지라고 화를 내기 일쑤인데. 사실 모험가님을 처음 뵈었을 때,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정말 화들짝 놀랐을 정도입니다."
"……."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와 해밀턴의 관계를 뭐라고 말해야 할까.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실 처음 해밀턴에게 접근했던 건 다 나의 이득 때문이었지만.
지금의 관계는 단순히 이득을 따지는 관계보다는 조금 깊어졌다고 생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때였다.
저벅
"내 은인이다."
발걸음 소리와 함께 들려온 해밀턴의 목소리.
"허, 헉!"
수제자는 해밀턴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이놈아. 그런 질문을 뭐 하러 하고 있어? 저 모험가는 내 은인이야.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직도 구석에 처박혀서 나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을 거다. 응? 그러면 네 놈도 내 밑에서 교육받는 건 꿈에도 상상 못 할 일이었을 거고."
그렇게 말하며 해밀턴은 나를 바라봤다.
은인이라.
낯 뜨거운 말이다.
말했듯 나는 그저 내 이득을 위해 해밀턴을 찾아왔을 뿐이었는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름 내 인생도 나쁘지 않군.'
전생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관계들.
동료, 우정, 혹은 친구.
그것이 지금의 내게는 생겼다.
누구를 위한다는 그 사소하고 흔한 감정이 전생의 나에게는 없었다.
'그만큼 처절하고 악착같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전생의 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그저 내일의 생존을 걱정하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정도였으니까.
'관계를 맺을 여유조차 없었지.'
확실히 나는 달라졌고.
강해졌다.
덕분에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
"들어오시오."
그런 나를 보며 해밀턴이 미소 지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자부심.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물건이 나왔겠군.'
나는 해밀턴의 뒤를 따라 그의 공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확인해 보시오."
해밀턴이 장비를 건넸다.
장비뿐만 아니라, 검까지 새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우선 검에는 그대가 준 재료와 오리하르콘을 적절히 섞었소. 절묘한 비율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도 마시오. 그리고 장비들도 마찬가지요. 아다만티움과 미스릴의 완벽한 배합을 찾느라 지난 일주일간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었지."
그의 집념과 천재성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장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해밀턴이 완성한 장비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무게도 느껴지지 않아.'
내가 지금 입고 있는 미스릴 갑옷과 비교해도 탁월할 정도로 가벼웠다.
'그러면 이번에는 옵션을 확인해 봐야겠지.'
나는 그렇게 해밀턴이 완성한 장비들을 바라봤고.
그와 함께 장비의 옵션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장검 - 대성공]
>공격력 : 323
>추가 능력치 : 힘 + 100 민첩성 + 100 체력 + 100 마력 + 100
>대성공 추가 공격력 + 100
>포식 가능 잠재 옵션 : 힘 + 50
'믿을 수 없군.'
공격력이 총 400이 넘게 증가한다.
게다가 모든 스탯이 100씩 증가하는 무기라니.
'이전 무기의 위엄 스킬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위엄.
바로 개미 여왕의 턱뼈 검에 달려 있는 추가 능력이었다.
하지만 위엄을 포기하고서라도 이 검을 택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무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위엄은 스탯의 총합이 나보다 낮은 이들의 신체 능력을 약화시키는 능력.
그것만 본다면 대단한 능력은 맞지만, 앞으로 내가 상대하게 될 이들이 나보다 스탯의 총합이 낮으리란 보장은 없다.
위엄이라는 스킬은, 일명 '양학'에는 특화되어 있지만, 나보다 강한 적과의 싸움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검이라면 강자와의 싸움에서 오히려 더 압도적인 힘을 발휘해 낼 수 있을 테지
'그다음은 방어구들.'
놀랍게도 모든 방어구가 대성공이었다.
모두 착용한 결과 총 방어력은 500을 넘어섰다.
이전 미스릴 장비의 총 방어력이 200 중반대였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단번에 방어력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른 셈이다.
게다가 포식 슬롯이 열리고 포식 가능한 잠재 옵션을 모두 포식한 결과.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70
>스탯
-육체
힘 : 1300.12
민첩성 : 1294.54
체력 : 1302.32
-정신
마력 : 1546.16
>마력 저항력
+ 50%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R)
6. 아이언 바디 (S)
7. 지휘관의 외침 (S)
8. 초감각 (S)
9. 은신
10. 궁신탄영 (혈계 파생)
11. 육체 개조 (???)
12. 툰테른의 가호 (S)
장비를 바꾼 뒤 나의 상태창이었다.
방금 전만 해도 내 모든 육체 스탯은 1000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잠재 스탯을 모두 포식하고 장비의 스탯 추가 효과를 더한 순간 순식간에 모든 육체 스탯이 크게 증가했다.
'레벨로 따지는 건 이제 무의미해.'
특히나 내가 올라선 탑의 최고층이라면 레벨 한두 개 정도의 격차는 무색하다.
말도 안 되는 능력과 장비들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괴물들이 즐비한 곳이니까.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외국의 플레이어들.'
그들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떤 면에 있어서라도 한국의 플레이어들보다 강하리라는 것.
'그건 내 전생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어.'
전생에서도 대한민국의 탑은 타국에 비해서 한참이나 뒤처져 있었으니.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 역시도 나라는 촉진제로 인해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건, 체력이 1000을 넘어가는 순간 아이언 바디의 등급이 S등급으로 올랐다는 것.
이전에는 체력 1당 0.1씩 증가하던 방어력이 체력 1당 0.2의 방어력으로 바뀌었으니.
'이로써 단번에 260의 방어력 상승.'
장비의 방어력과 합치면 도합 800에 가까운 방어력이 한순간에 증가해 버린 것이다.
'믿을 수 없군.'
그뿐인가.
'마력 저항력.'
이전에 아다만티움이 섞여 있던 장비의 마법 저항력 65% 대신 마력 저항력 50%으로 치환됐다.
65%에서 50%로 떨어졌다고 하여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마법 저항력보다 마력 저항력이 상위 호환 옵션이니까.'
마법에만 저항하는 마법 저항력과 달리, 마력 저항력은 마력을 사용하는 모든 기술에 대한 저항력을 갖는다.
'검술 명가의 검기에도 마찬가지지.'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마법 저항력은 마법 명가를 상대하는 데에는 특효지만, 검술 명가와의 싸움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하지만 마력 저항력이라면.'
검술 명가의 검기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뜻.
'완벽하군.'
솔직히 마력 저항력이라는 옵션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훌륭하군요."
내가 해밀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히 아이템의 옵션만 뛰어난 건 아니었다.
움직이는 데에도 조금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몇 번 내 장비를 손본 경험이 있는 해밀턴은 진즉에 나의 신체 조건을 꿰뚫고 있었으니.
장비를 만들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내 체형 조건을 완벽하게 반영해 놓은 것이겠지.
"혹시 장비가 손상되거든 즉시 찾아오시오. 아직 재료가 조금 남아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해밀턴과 다시 짧은 작별을 나누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진짜로.
'61층.'
나의 마지막 한이 어려 있는 그 스테이지로 향하게 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