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뭐지? 왜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야.'
그 무렵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궁술 명가의 예진희.
현재 마법사의 숲에서 한강민을 추적하고 있는 무리에 끼어 있던 자신의 동생 예창민.
어느 순간부터 예창민으로부터의 보고가 끊겨 버린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천덕꾸러기고 말을 안 듣기는 해도 어쨌거나 자신의 동생이다.
그런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지는 건 누나로서 당연한 감정이었다.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도 실력 하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러운 성질머리는 둘째 치고서라도 현재 궁술 명가 내에서 자신 다음으로 촉망받는 가문의 후기지수였으니까.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 현재 창술 명가와 체술 명가에서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예창민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강민을 수색하겠다고 떠났던 모든 궁술 명가의 직계, 방계들로부터 모조리 연락이 끊겨 버렸으니.
'설마… 아닐 거야. 아니잖아. 그렇지?'
혼란은 끊임없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한강민.
잊혀져 가던 그 인물이 갑작스럽게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둘째 치고.
그를 쫓던 명가 플레이어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스물도 넘는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연락이 두절되다니.
'우연일 리가 없어.'
답은 하나다.
정말 한강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과 현재 그의 위치는 마법사의 숲이라는 것.
'말이 돼?'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게 대체….'
더욱더 초조해진다.
그 정도 속도라면 마법사의 숲을 클리어 해 내는 것도 시간문제일 테니까.
'그 녀석이 위드 길드 소속이고… 정말로 61층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때에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위드 길드의 폭주를 그 누가 막아설 수 있으랴.
'막아야 돼. 어떻게 해서든 위드 놈들이 64층 클리어 못 하게 막아야 한다고.'
예진희가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가정과 경우의 수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렇다 할 뾰족한 수가 없다.
체술 명가와 창술 명가라고 해도 지금의 위드는 막을 수 없다.
위드를 건드렸다가 괜히 비난의 대상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거다.
위드와 검술 명가의 탑 등반 경쟁이 첨예해질수록 다른 명가들의 위상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고.
명가 소속의 플레이어들도 더 이상 못 해 먹겠다며 탈주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동안은 직계와 방계에게 차별을 받아도 '명가'라는 브랜드에 기대어 그 정도 차별은 견뎌 낼 수 있었으니 붙어 있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길드의 위세가 명가를 넘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반 플레이어들은 굳이 명가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명가의 위세가 떨어지는 속도는 더더욱 가속되기 시작했으니.
지금 이 시점에서 명가들끼리 뭉쳐 봐야 길드 중에서도 그 명성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위드 길드를 어찌할 수는 없는 일.
'화랑? 화랑에 연락을 취해야 할까? 그들이라면 위드를 막을 수 있을까?'
결국 예진희도 명가가 아닌 화랑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비록 그것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게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복잡한 생각은 뒤로 밀어 두고서라도,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절실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가 화랑의 철기영에게 연락을 취하려던 그때.
벌컥!
그녀의 집무실 문이 크게 열렸다.
"뭐야?"
예진희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고.
"큰일 났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예진희에게 다급히 신문 한 장을 건넸다.
그 순간 예진희는 직감했다.
좋지 않은.
아니,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위드 길드, 64층 돌파]
신문 전면에 걸려있는 타이틀이었다.
***
"으아아아아아!"
"했다, 해냈다! 해냈어어어어어!"
"위드! 위드! 위드으으으으!"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
"됐다! 됐다! 됐다고오오오!"
그들을 이끌고 있던 여자.
위드 길드의 김민희가 기쁨에 젖은 함성을 쉴 새 없이 뱉어냈다.
지금 이 순간에 체면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한 꺼풀 벗어 넘겼다는 사실에 미칠 듯이 기쁘기만 할 따름이었다.
"검술 명가 아직 클리어 못 한 거 확실한 거지?"
김민희는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다.
"예. 맞아요. 지금 밖에 있는 애들이랑 계속 연락하고 있는데 검술 명가 못 깬 거 맞고요. 지금 벌써 일간지에 우리가 64층 돌파했다는 소식 쫙 돌리고 있대요."
"으흐하하하하! 아오! 진짜 뒈지는 줄 알았잖아!"
김민희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힘들었다.
정말 힘들고 끔찍한 싸움이었다.
그만큼 64층의 난이도는 끔찍할 정도였다.
그래도 검술 명가에 앞서 64층을 돌파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강민이 건네준 정보 덕분.
'그나저나 검술 명가 놈들은 얼마나 괴물인 거야?'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보'가 있었으니 조금 더 수월하게 탑을 등반할 수 있었겠지만.
검술 명가는 상황이 다르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탑을 등반하고 있는 그들이지 않은가.
'괴물은 괴물이야. 정말.'
다른 명가들은 몰라도, 검술 명가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그들로서는 검술 명가를 앞지른 것도 사실상 운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들보다 빨리 탑을 돌파하리라는 보장은 없어.'
아마도.
아니, 확실하다.
이 시점부터 검술 명가는 더욱더 칼을 갈 것이고, 단 한 번도 탑의 선 등반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내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건데….'
기쁨도 잠시.
앞일 때문에 잠시 머리가 복잡해지려던 그 순간.
[박명철 : 지금 61층에 있는 애들 데리고 나 있는 데로 좀 와 봐.]
박명철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 것이다.
***
"야. 동희야 오랜만이네. 그쪽은 괜찮냐."
"아, 뭐. 그렇죠."
김민희와 한동희.
두 사람은 꽤 오랜만에 만났다.
현재 위드의 활동 범위가 넓어진 만큼, 두 사람에게 부여된 임무가 달랐으니까.
김민희는 최전선에서 탑을 돌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한동희는 61층에서 새로 유입되는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그동안 위드 길드가 쌓아 온 노하우를 전수했다.
일종의 마케팅이기도 했다.
위드 길드에 소속되기만 한다면 61층 이후로는 길드에서 책임지겠다는 마케팅.
당연히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김민희는 최전선에서, 한동희는 61층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길드장님은 왜 이런 데로 오라고 한 걸까요."
"그러게? 근데 여기 오니까 옛날 생각난다."
"아, 그렇죠."
지금의 위드 길드가 되기 전.
그들은 나름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탑의 저층에 종종 내려오곤 했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강민을 만났던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들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니.
굳이 탑의 저층에 내려와서 유망주를 발굴한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질 않았다.
지금은 쏟아지는 가입 원서를 골라내기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감회가 새롭네."
"그러게요. 참.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이야."
그저 그런 중소길드에서 1위 자리를 넘보는 거대 길드로 성장하기까지.
현실감이 없을 정도의 성장.
그리고 그 속도조차도 전례가 없을 정도였으니.
"아, 저긴가?"
그때 김민희가 한 곳을 바라봤다.
25층 마을 구석에 있는 여관.
"이런 데로 왜…?"
한동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리에 스쳐 가는 이름이 있었으니.
"헐."
"설마?"
한강민.
이렇게 박명철이 누군가를 은밀히 만난다는 건, 그 사람 밖에는 없다.
'미쳤다.'
'마법사의 숲 끝낸 거야? 그게 말이 돼?'
그렇게 두 사람은 61층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빨리 박명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직 강민을 본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강민 씨만 오면.'
'한강민 씨만 있으면.'
그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고민은 해결되리라.
검술 명가와의 경쟁.
그 싸움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니까.
벌컥!
그렇게 여관방의 문을 열었을 때.
"반갑습니다."
너무도 듣고 싶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들 그대로다.
아니, 그건 아닌가.
마지막 봤을 때에 비해서 확실히 피로에 찌들어 있는 모습이 만난 첫 순간에 확실히 느껴졌다.
"고생이 많습니다."
내가 그들을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넸고.
"고생은요. 와, 나! 저 지금 기분 째질 것 같은데요?"
김민희가 소리쳤다.
"안 그래도 이제 어떡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여기 모여 있는 거 보면 마법사의 숲 클리어한 거 맞죠?"
나를 보며 묻는 김민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동희와 김민희 뒤에 서 있는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모두 초면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가 위드 길드 소속인 건 맞지만, 아직 위드 길드의 길드원들과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내가 교류했던 건, 박명철과 한동희, 그리고 김민희가 전부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플레이어들은 조금은 긴장된 기색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저분들이 61층에 있는 이들입니까?"
"예. 맞아요. 동희랑 같이 61층 클리어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친구들이죠."
김민희가 그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플레이어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몸이 굳어졌다.
"긴장할 건 없습니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위드 소속의 길드원일 뿐이니까요."
"하하하…."
내 말에 멋쩍은 웃음을 흘려보내는 플레이어들.
"자, 자.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말라니까요? 강민 씨 좋은 사람이에요."
한동희가 굳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말했다.
"야. 대체 얼마나 갈궜길래 애들이 이래?"
그런 한동희에게 김민희가 한 번 쏘아붙였고.
"갈구긴요. 제가 신입 플레이어분들 잘해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아무튼. 앞으로 일주일 후 합류할 테니, 그때 되면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와 함께 탑을 등반하게 될 플레이어들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 불러 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에는 나를 불편해하던 플레이어들도 어느새 조금은 편해진 투로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굳이 내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건 61층부터 70층의 테마 때문이다.
'61층부터는 전형적인 레이드지.'
각 층은 하나의 던전이며, 몬스터를 사냥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이 바로 각 층의 클리어 조건.
'팀플레이가 중요한 스테이지니까.'
나는 플레이어들과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며 그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그동안 61층을 오르게 될 플레이어들은 종종 나를 찾아왔고, 어느새 꽤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해밀턴이 약속했던 그 날이 다가온 것이다.
'가자.'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해밀턴의 공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