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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46화 (146/277)

146화

"일종의 '오류'야."

설계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오류라니.

그렇게 떵떵거리던 녀석들이 결국 오류의 파생물이라는 말인가?

"오류라니…. 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나는 설계자를 쏘아붙였다.

"그 존재의 방대한 에너지를 스테이지 형식으로 구성하며 작은 틈이 생겨났지. 그 틈에서 발생한 균열이 인간에게 전해지며 '혈계'라는 것이 생겨나 버렸어."

그러면 내가 다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 것도 그 오류의 일종이라는 것인가?

그 말은 즉, 나 역시도 탑의 저주를 받은 존재라는 뜻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설계자는 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결국 그 흔적을 지우는 게 나와 다른 설계자들의 첫 번째 목적이고. 그 마지막의 목적은 자신들이 길러낸 플레이어를 탑의 정상에 보내는 것."

"굳이 지울 필요가 있습니까. 오류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탑의 일부일 텐데."

내가 물었다.

하지만 설계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그냥 놔뒀겠지만…. 문제는 오류를 일으킨 '원인' 때문이었지."

"행동…?"

"그래."

설계자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너희는 이 탑에 오른 최초의 플레이어가 다섯이라고 알고 있겠지."

"……."

당연하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아니었어. 총 열 명이었지."

"그러면 다른 다섯은…."

"뭐겠니. 제물이 된 거지. 오류는 그냥 생긴 게 아니야. 다섯 명의 제물과 함께 이 탑의 본체는 그들에게 '혈계'라는 오류를 선물했던 거야. 나와 다른 설계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겠지."

"……."

"녀석들은 그 힘을 축복이라고 여겼어. 결국 자신들을 잡아먹게 만들 힘인지도 모른 채.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야."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네가 탑의 정상에 올라줬으면 해. 거기에 그 녀석의 머리가 있거든. 머리만 박살 내면… 이 끔찍한 존재를 없앨 수 있을 거야."

"당신들의 힘으로 없앨 순 없는 겁니까?"

"할 수 있다면 했겠지. 그게 불가능했으니 우리는 탑이라는 것을 만들고 플레이어들을 경쟁시킨 거고."

"……."

갑자기 내게 쏟아진 낯설고 조금은 혼란스러운 정보들에 잠시 머리가 멍해진 찰나였다.

그때.

"도와줘."

설계자가 말했다.

"정화자라는 그 업적을 달성하게 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어."

도와줘, 라는 말과 함께 설계자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는 안 했어. 이 탑을 설계한 건 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부족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거든."

그럴 테지.

말했듯 다른 국가와 대한민국의 탑의 등반 속도는 전생에서도 크게 차이가 났다.

고일 대로 고여 버린 대한민국 탑에 미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플레이어들의 일에 개입할 수는 없었지. 불문율이었거든. 그래도 기다려 보고 싶었어. 그리고 '정화자'라는 업적을 설정해 둔 채 지켜보고 또 지켜보고 있었지."

그리고 설계자가 나를 바라봤다.

커다란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그때 네가 나타난 거야."

이제는 꿀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모든 업적과 히든피스를 독식하고. 무자비하면서도 강력하고. 너무도 호쾌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네 팬이 됐어."

"과찬입니다."

"그럴 리가. 설마 플레이어 한 명이 혈계를 계승한 일족 하나를 몰살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

"……."

진심인 모양이다.

설계자는 두 손을 꽉 움켜쥔 채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설계자는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진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들을 되짚어 봤을 때 알지 못하는 쪽으로 내 확신이 기울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화자 업적은 '집단'을 위한 업적이었어. 정화자라는 업적을 설정하면서부터 내가 걸어 놓은 업적 달성 조건이 개인이 달성하기엔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으니까."

"……."

"그리고 생각했어. 어떤 집단이 그 업적을 달성하고 난다면, 그 집단을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밀어주기로.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고. 그 '저주받은' 일족을 처치했다는 건,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그렇지 않아?"

내 동의를 구하는 설계자.

비슷한 목표라는 것은 결국 한 곳에 고여 있지 않고 더 높은 곳을 추구하리라는 목적을 두고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더 나아가 '명가'에 대한 증오까지.

"맞습니다. 저는 탑을 끝없이 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저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명가라는 존재들을 지극히 혐오하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설계자가 미소 지었다.

"그러면 나를 도와주기로 약속한 거다?"

"도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가야 할 목표를 가는 것뿐이니까요."

진심이었다.

우연히 나와 설계자의 지향점이 같았을 뿐, 설계자의 의도에 끌려 다닐 생각은 없다.

"그거면 충분해. 그리고 나도 너에게 도움을 받게 된 이상 응당 보답을 해야겠지."

그 순간.

[설계자의 축복 효과가 적용됩니다.]

[탑의 파편을 획득했습니다.]

"탑의 파편…?"

금시초문이다.

전생에서도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아이템.

"내가 주는 선물."

"이게 뭐죠?"

"업적을 달성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려고 가지고 있던 거거든. 확인해봐. 네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나는 곧바로 인벤토리를 펼쳤다.

[탑의 파편]

>등급 : R

>탑의 근원인 '파멸의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금속 덩어리. 탑을 구성하는 재료.

>특이사항 : 제련 가능한 재료 아이템

"…아…!"

그걸 본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제련 가능하다는 말은 즉, 장비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양도 꽤 많아. 쓸만한 대장장이에게 맡긴다면 훌륭한 장비가 될 거야."

"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를 탈탈 털어 준 거거든."

나는 다시 한번 탄성을 쏟아냈다.

그리고 설계자의 말대로 양은 넘치도록 많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기다렸던 건 '집단'이었던 만큼 나 혼자서 쓰기에는 넘치도록 많은 양이었다.

'해밀턴에게 가져다줘야겠어.'

해밀턴 역시 처음 보는 재료일 테고, 제대로 제련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해밀턴이 여러 번 실험을 거칠만한 충분한 양이기도 했으니 문제는 없다.

"기대해. 이건 시작이니까. 모든 지원을 쏟아준다는 그 약속. 무조건 지킬 거야."

"하하…."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탑에 대한 비밀을 조금 알아내고 말 줄 알았건만.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어낸 셈이었다.

"곧 다시 보자고."

설계자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 겁니까."

"71층. 거기부터 새로운 게임이 시작될 거야. 그동안의 경쟁은 우스울 만큼 치열한 '진짜' 게임 말이야."

그 말은 즉, 타국의 플레이어와도 만나게 되리라는 뜻일 테다.

기다리던 바다.

대한민국 탑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70층을 돌파해 낸 괴물 같은 타국의 플레이어들과 경쟁하게 되는 것.

"기대하겠습니다."

내가 말했고.

설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파앗!

나는 다시 마법 명가의 거점으로 돌아왔다.

***

'훌륭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얻어냈다.

마법 명가가 사라졌고, R등급이라는 그 성능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 재료를 구해냈다.

'심지어 다른 누구도 구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재료다.'

탑에서 사냥, 혹은 업적을 통해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말 그대로 이 탑을 설계한 존재가 직접 수집해 놓은.

그리고 동시에 이 탑의 근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재료를 손에 넣은 것이다.

'믿을 수 없군.'

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게다가 설계자를 완전한 내 편으로 만들었다.'

서로 같은 목적을 바라보고 있는 협력 관계.

내가 내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이상 설계자 역시 나를 끝없이 지원해 줄 수밖에 없다.

'그래야 설계자 역시도 다른 설계자들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나의 두 번째 삶에 있어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고.

나는 이제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먼저 할 일은 해야지.'

우선 툰테른을 찾아가 미션을 클리어해야 한다.

해밀턴을 만나는 건 그다음이다.

'들뜨지 말자. 하나씩.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거야.'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다.

한순간 얻어낸 보상에 들 뜰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그대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그리고 그때.

"주인니이이이이임!"

몰른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어디 다녀오셨어요오오오!"

"좋은 곳… 좀 다녀왔다. 걱정 마라. 어디 안 가니까."

"가자, 몰른."

***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바위산 내부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강민을 추적해서 마법사의 숲 북쪽에 도착한 명가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바로 툰테른들이 살고 있는 바위산 내부.

빠악!

플레이어 한 명이 툰테른의 현자를 걷어찼다.

"허윽!"

현자가 배를 움켜쥐었다.

"이 새끼야. 빨리 말 안 해? 한강민 그 새끼 어디로 갔냐고!"

그 모습을 보며 궁술 명가의 플레이어 예창민이 소리쳤다.

"그만! 그만해!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그 모습을 보며 툰테른의 족장이 소리쳤다.

"무사? 지금 무사한데? 어쩌려고? 싸우게? 덤벼 봐, 이 새끼야. 퉤!"

예창민이 족장을 향해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일전에 다른 플레이어들의 행태를 보며 혀를 찼던 예창민이었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명가의 일원.

태어난 순간부터 명가의 일원으로 자라난 그 역시 결국 다른 명가의 일원들과 크게 다를 수는 없었다.

"하, 나 이 새끼들. 끈질긴데?"

툰테른들은 강민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발설하지 않았다.

강민은 홀로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과 싸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들로서는 그런 신의를 지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분통이 터졌다.

거기에는 그들의 조급함이 더해졌다.

정말 강민이 마법사의 숲을 벗어나 61층에 합류하게 된다면.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미쳐 날뛰는 위드 길드에 날개라도 달아주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정말 명가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너, 너희는… 결코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현자가 피를 쏟아내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빠직!

예창민이 다시 현자의 배를 걷어찼다.

"커허억!"

피를 한 움큼 쏟아낸 현자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혀, 현자님! 현자니이이임!"

툰테른들이 그 모습을 보고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결국 참다 못한 족장이 무기를 꺼내 들고 소리쳤다.

부우우웅!

그의 커다란 대검이 움직이며 플레이어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그때 그의 공격을 막아 낸 체술 명가의 플레이어.

"크흡!"

맨 몸이었지만 금강불괴라는 사기적인 스킬은 족장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빠아아악!

체술 명가 플레이어의 발이 족장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족장이 복부를 움켜쥐고 기함을 터트렸다.

도무지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아, 아버지! 아버지!"

저쪽에서 족장의 모습을 보고 족장의 아들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닥쳐, 이 새끼야! 너 알지. 한강민! 한강민 그 새끼 어디 있냐고!"

"모른다! 나는 몰라! 너희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저주를 받고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 거야!"

족장의 아들이 자신을 다그치는 플레이어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그 순간.

짜악!

"이 어린 새끼가!"

결국 플레이어는 족장의 아들에게마저도 손을 대고 말았다.

"멍청한 새끼들."

"어떡하죠?"

"어떡하긴. 저거, 저거만 남기고 싹 다 죽여."

족장과 족장의 아들.

그 둘만 남기고 모두 죽이라는 명이 떨어졌다.

"오케이!"

그리고 그들이 움직이려는 그 순간.

파각!

"어…?"

예창민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시야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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