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우습지 않은가."
내가 박승균과 한 명의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노오오옴…!"
그러는 와중에도 장로는 저딴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걸까.
아니다.
그건 아닐 거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겠지.
"너…."
박승균이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딴 것들이 명가라고 떠들며 플레이어들의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게 정말 꼴 같지도 않잖아."
내가 한껏 비아냥대며 박승균에게 말했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박승균이 소리쳤다.
"개소리? 아직도 내 말이 개소리 같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나와 몰른 그리고 박승균과 장로 한 명.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나머지 장로들은 진즉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아마 이쯤 됐으면 너도 눈치챘을 테지. 지금 너희가 이따위 비루한 꼴로 마법사의 숲 최북단에 숨어들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인지 말이다."
"……!"
그 말에 얼굴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박승균.
들썩이는 어깨와 거친 숨결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다."
"이런 개새끼가아아아아!"
그 순간 박승균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양 손에서 일렁이는 검은 불꽃은 나를 집어 삼킬 듯이 그 크기를 빠르게 키우고 있었고.
부우우웅!
박승균의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육체 개조를 통해 증가시킨 신체 능력을 이용한 공격이겠지.
하지만 놈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내 앞에서 근접 전투를 택하다니.
홱!
나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피해냈고.
"으아아아아아!"
허공을 가른 자신의 주먹을 보며 박승균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턱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는 검의 손잡이를 이용해 박승균의 턱주가리를 후려쳤다.
빠아아아악!
검 손잡이가 박승균의 턱뼈를 박살 냈다.
"커허어억!"
박승균은 피를 토해냈다.
그러면서 박승균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너무도 무력하고 너무도 힘없는 모습이다.
쿠우웅!
박승균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다시 한번 피를 토해내며 몸을 부르르 떤다.
"크으… 크으으…!"
알 수 없는 탄식을 쏟아내는 박승균과.
"어찌… 어찌 우리에게 이러는 것이냐. 일면식도 없는 네 놈이 대체 우리에게 이런 몹쓸 짓을 하느냐는 말이야!"
장로가 나에게 소리쳤다.
"하하…."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대체 왜! 왜애애애애! 커허억!"
다 죽어가는 박승균이 피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설명해 줄 이유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약속은 지켜야겠지."
내가 박승균을 향해 다가갔다.
"……?"
박승균의 흔들리는 눈빛에는 진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두려움.
늘 오만하고 모두를 내려 보던 그의 눈빛에 저런 감정도 담길 수 있었던가.
새삼 느껴지는 감회를 뒤로한 채 그에게 속삭였다.
"내 이름은…."
"……!"
"한강민이다."
그 말과 함께 박승균이 눈을 부릅떴다.
알고 있겠지.
내 이름을 말이다.
"네, 네가… 네가…!"
"그럼 너도 약속을 지킬 차례다."
내가 놈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는 조건은.
"잘 가라."
놈이 죽기 1초 전.
푸훅!
박승균의 목에 검이 꽂혔다.
"꺼헉… 허어억…!"
박승균의 몸이 파르르 떨렸고.
이내.
풀썩
축 늘어졌다.
"긴 악연이었어."
그렇게 나는 박승균을 내 손으로 처치해냈다.
'…….'
내 손을 바라봤다.
가늘게 떨려왔다.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묘하게 뒤엉킨 흥분감에 호흡이 조금 거칠어졌을 뿐.
"그리고 너도."
남은 한 명의 장로를 바라봤고.
"으, 으아아아아아!"
장로가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직!
반으로 쪼개진 장로의 몸이 갈라진 채 떨어져 내렸다.
'그럼 이제.'
나는 놈들의 거점 내부를 바라봤다.
아직도 그 안에 가만히 멈춰 있는 한 남자.
'박호량.'
마법 명가의 가주만이 남아있었다.
***
'아….'
한 남자가 탄식을 흘려보냈다.
사실 직감하고 있었다.
이제 곧 모든 게 끝이 나리라는 걸 말이다.
간신히 붙들고 조금이라도 생명을 이어가 보고자 온갖 노력을 다 해왔다.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처절하고도 악착같이 버텨온 나날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는가.'
박호량.
마법 명가의 가주이자.
마법 명가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뇌었다.
그의 아들이 죽었고, 장로들이 모두 죽었다.
그럼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분노야말로 가장 큰 동력이니까.
모두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마음속에 꿈틀대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타오르는 가슴과 차가운 머리.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였으며, 자신의 최후를 장식하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마음 상태였다.
'나도 끝이 나겠군.'
자신이 승리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은 결코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장로와 박승균과 함께 움직이지 않은 것이었다.
어차피 몇 명이 모여 있다고 한들 의미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그가 싸움을 포기했다는 건 아니다.
'이길 수 없겠지만, 네 놈도 무사히 살아나가지 못하게 해주마.'
죽겠다는 각오를 한 이상 상대를 불구로 만드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 테다.
꽈아악-
그는 자신의 손가락 끝에 마력을 응축한 채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꾸욱 눌렀다.
"흐읍…."
그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그의 몸에 어떤 문양 하나가 그려졌다.
피가 흘러 붉게 물든 구멍들이 만든 건 북두칠성의 형상이었다.
'이것을 쓰게 될 줄이야.'
탑이 세워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날 동안 지구의 사람들은 탑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하지만 쉽사리 탑 안에 발을 들일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탑에 등반하기 시작한 게 10년이라고는 하지만, 그 전부터 탑은 존재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 당연히 그 시간동안 탑에 발을 디뎠던 사람들은 존재했다.
그 중에는 죽어서 사라진 이들도 있었고, 어떤 계기로 인해서 탑 밖으로 나오게 된 이들도 있었다.
'최초의 다섯 명.'
그들이 바로 명가의 시조들이었고,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을 최초의 다섯 명이라 부르며 신적인 존재로 추앙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그들의 피를 이은 자손들에게 '혈계'라는 능력이 주어진 것이다.
다만 그들도 이유는 몰랐다.
어찌하여 탑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그들에게만 혈계라는 능력이 전승되게 되었는지.
하지만 그런 힘을 바탕으로 명가들은 탑 밖에서부터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결국 '명가'라는 이름을 앞세워 탑을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우우웅!
박호량의 몸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법 명가의 시조인 박중만과 그의 형제들이 개발해 낸 최후의 비기.
자신의 목숨은 잃게 될 테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의 신체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방어력.
마법 방어력.
혹은 그 어떤 훌륭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만큼 상대를 철저하게 망가트릴 수 있는 끔찍한 기술이었다.
'네놈은 더 이상 탑을 오를 수 없다.'
그는 강민의 다리를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팔을 없애는 건 안 된다.
저 정도의 괴물이라면 필시 한쪽 팔만으로도 탑을 오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다리라면 다르겠지.'
특히나 강민과 같이 빠르게 움직이며 전투를 벌이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다리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기관일 테니까.
그를 향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는 강민의 방향을 바라보며 박호량이 생각했다.
그리고 박호량의 몸이 푸른빛에 완전히 휩싸였을 때.
저벅
강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아아아!"
그 순간 박호량이 괴성을 내질렀다.
박호량의 몸을 감싸고 있는 푸른빛이 강민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뿜어지고 있었다.
***
'음?'
박호량을 만난 순간, 나를 향해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초감각으로 파악하기로도 저것은 평범한 마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 말은 즉, 피할 수도 혹은 검으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는 말이었고.
차차차착!
내 몸을 감싼 푸른빛은 나의 팔과 다리를 묶어내기 시작했다.
"이게…!"
나는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적과 싸우고 많은 능력을 맞이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 순간.
"으으으…!"
저 앞에 서 있는 박호량.
아니, 박호량이 맞는 건지도 확실치 않은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인물의 한쪽 손이 움직였다.
꽈아아악!
그의 손이 움직인 순간 내 왼쪽 다리가 강하게 조여 왔다.
"흐윽!"
내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내 의지를 완전히 벗어난 왼쪽 다리가 찢어질 듯이 아파왔고.
푸른빛은 내 다리를 더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내가 느꼈던 그 어떤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흐… 흐흐흐… 흐흐흐하하하하!"
그때 터져 나온 박호량의 소름 돋을 만큼 섬찟한 웃음소리와 함께.
꽈지지직!
왼쪽 다리가 짓뭉개졌다.
"끄아아아악!"
나는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왼쪽 다리의 뼈와 근육, 그리고 모든 관절들이 사정없이 뭉개지며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끄윽! 끄으으아아악!"
내 몸과 정신은 이제 완전히 나의 의지를 벗어났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현상에 나는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조금 전부터 내 몸을 묶어내고 있는 푸른빛 때문이다.
"주인, 주인니이이이임!"
내 뒤에 있던 몰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터어어엉!
몰른의 몸이 푸른빛에 튕겨나가 저 멀리 떨어진 벽에 처박혔고.
꽈직! 꽈드득!
이 순간에도 내 발은 기괴하게 뒤틀리고 뭉개지며 점점 압축되어가고 있었다.
그 모든 순간에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내 정신을 갉아 먹고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끄으… 끄으으하하하하하!"
또 한 번 박호량의 울음 섞인 웃음소리.
아니, 절규가 내 귀를 두드렸다.
그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목소리마저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그렇게… 쉽게… 끝나리라고… 생각했다면… 네 오…산이…다…."
박호량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자신의 최후를 알고 있다는 듯한.
그런 힘없는 목소리와 함께.
사아아앗!
푸른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쿠우우웅!
내 몸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악!"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고통은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풀썩!
박호량의 몸이 고꾸라졌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웅덩이를 만들었고, 계속해서 바닥을 적셔가고 있었다.
"허어… 허어억…."
이걸 대체.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이제야 커다란 산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그런데 그때.
[탑의 저주를 받은 일족 하나를 모두 처치했습니다.]
[업적 '탑의 정화자'를 달성했습니다.]
[업적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탑의 설계자와의 만남이 주선됩니다.]
뭐?
그 메시지를 본 순간, 조금 전 느껴졌던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내 시야가 찬란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모든 부상이 회복됩니다.]
[신체와 정신이 원래의 상태를 회복합니다.]
"……."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공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