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며 놈들 거점 앞을 지키고 있던 흑암파 녀석들의 몸이 순식간에 분쇄됐다.
오랜만에 꺼내드는 지휘관의 외침.
그 한 번의 공격으로 흑암파는 물론이요, 놈들 본진의 방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오러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6단계의 오러 블레이드.
기존의 오러 블레이드와 성능만이 아니라 겉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오러가 흰색으로 바뀌었어.'
기존의 오러 블레이드는 푸른빛이었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오러는 말 그대로 순백색의 오러.
'그만큼 마력이 순수해졌다는 거겠지.'
내가 알기로 오러 블레이드의 색은 시전자의 마력이 투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본래 마력이란 그 어떤 색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오러 블레이드가 푸른빛을 띠는 것은, 마력이라는 무색, 무형의 기운이 인간의 신체를 거치며 미세한 불순물들이 응축된 결과라는 것.
그렇게 따져 본다면, 지금 이 백색의 오러는 그야말로 그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마력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뜻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내가 이렇게 입구에서부터 대놓고 나의 존재를 과시한 건 모두 자신감에 대한 표출이기도 했다.
지금 내 모든 스탯과 스킬을 고려해 봤을 때, 이 안에 나를 쓰러트릴 인물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초감각과 위엄. 이 두 가지 스킬만 있으면 두려울 건 없다.'
이미 초감각의 효능은 기존 범위의 두 배 이상 늘어난 정도가 아니다.
놈들의 거점 내부에 있는 녀석들의 머리칼이 흩날리는 것조차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역시 여기에 다 모여 있었어.'
마법 명가의 장로와 가주, 그리고 박승균까지.
현재 남아있는 마법 명가의 핵심 인물들은 다 이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으며.
그 말은 곧, 이곳이 놈들의 마지막 목숨 줄이라는 뜻이겠지.
그때였다.
"저기다!"
"저쪽에 침입자가 있어!"
안쪽에서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뒤로는 수십의 흑암파들이 따르고 있었고.
'저 뒤쪽에.'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력 하나로만 따진다면, 얼마 전 싸웠던 장로 이상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플레이어였다.
'가주가 아니라면… 박승균. 그 녀석이겠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다시 한번 나를 향해 달려드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바라봤고.
그들의 입이 벌어지려는 그 순간.
콰아아아앙!
다시 한번 지휘관의 외침을 사용했다.
나를 중심으로 하여 거대한 폭발과 함께 굉음이 일어났고.
쿠쿠쿠쿠쿵!
남아있는 모든 방벽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끄아아아악!"
"커허어억!"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와 그 뒤를 따르던 흑암파들이 피를 쏟으며 나자빠졌고.
우우우웅!
진동하는 오러 블레이드를 허공에 대고 내리그었다.
검기의 파동이 쏘아져 나가며 쓰러져 있는 그들을 한 번 훑고 지나갔으며.
그 순간 그들은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그런 뒤에도 엄청난 기세로 날아가는 검기의 파동.
그때였다.
화륵!
검기의 파동이 사라졌다.
어디에 부딪친 것도 아니었다.
정말 단어 그대로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검기의 파동이 사라진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놈이다.'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인 박승균.
그가 저 앞에서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타났군."
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저 얼굴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전생에 비해서는 많이 앳되지만, 단 한 순간도 잊어 본 적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반갑다. 박승균."
물론 네 놈은 나를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은 목 뒤로 넘겼다.
내 말에 박승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놈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우리의 악연을 끝낼 때다."
"……."
박승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자신을 놀리는 것 같겠지.
놈은 내 얼굴도 모를 테니까.
"무슨… 개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박승균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누구냐. 어디서 보낸 누구냐. 말해라… 당장…!"
그가 다시 말을 이었고.
"그걸 네가 알 필요가 있을까?"
"알아야지. 알아야 너를 보낸 배후를 파멸시킬 수 있을… 테니까."
이번에도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
"불가능하다. 너는 내 손에 죽는다."
내가 말했다.
"개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 내가? 내가 너에게 죽는다고? 어디서 그런 얼토당토 않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야! 나는 박승균이다. 대 마법 명가, 박씨 가문의 장남이자 훗날 우리 가문을 이끌게 될 박승균이라는 말이다!"
콰아아앙!
박승균의 외침과 함께 그의 몸에서 폭풍 같은 마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마력과 함께 거센 풍압이 몰아쳤다.
박승균의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이 흩날렸다.
박승균의 몸이 꿈틀대며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말라있던 박승균의 몸은 순식간에 터질듯한 근육질의 몸매로 바뀌었고.
구구구구!
박승균의 양손에서 지축을 뒤흔들 만큼 방대한 양의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박승균을 중심으로 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에 호흡이 조금 가빠졌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역시 검술 명가인 것이냐."
박승균이 다시 말했다.
그의 시선은 내 손에 들려 있는 오러 블레이드로 향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한층 침착해진 상태였다.
"글쎄."
나는 말을 아꼈다.
사실 저 녀석은 여기에서 죽을 테지만, 굳이 말해 줄 의무는 없으니까.
"그래. 하지만 곧 말하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말하게 달라고 나에게 울고불고 사정하게 되겠지!"
그와 함께 박승균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위엄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상대방의 신체 능력이 약화됩니다.]
위엄의 효과가 발동됐다.
그 순간.
"……?!"
박승균의 얼굴에 진한 당혹감이 어렸다.
'역시.'
제 아무리 놈이 육체 개조를 통해 신체 능력을 증폭시켰다고는 해도 내 아래일 수밖에 없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결코 놈은 나를 넘어설 수 없다.
놈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 어떤 저항도 내게는 소용없다.'
놈은 결국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콰아아아아!
내가 검을 향해 마력을 불어 넣은 순간, 백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1.5배 이상은 더 길게 뻗어 나왔다.
[오러 블레이드 6단계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신체 능력이 30% 증폭됩니다.]
약해진 박승균과, 더 강해진 나.
사실상 이미 이 게임의 결론은 맺어진 셈이다.
박승균 혼자서는 나를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박승균이 물었다.
답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네 놈은!"
그렇게 외치며 박승균의 양손에 모여 있던 마력이 나를 향해 뻗어 나왔다.
공격 마법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릎 꿇어라!"
놈이 외쳤고.
그의 마력이 내 몸에 닿았다.
그 순간.
"……?!"
그의 마력이 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세뇌인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내 정신을 장악하려는 속셈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우습군.'
이미 폭주를 한 번 이겨낸 경험도 있었고.
그를 통해 한계를 돌파한 초감각과 1000을 넘어선 마력 수치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이따위 것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허…?!"
박승균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 초감각은 내 몸 전체를 꿰뚫고 있었고, 박승균의 마력이 내 몸 내부로 침투한 그 찰나의 순간부터 나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으니.
박승균의 마력이 제대로 침투하기도 전에 나는 그의 마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낸 것이다.
"무, 무슨…! 이게 어떻게…?!"
박승균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면서 안간힘을 쏟아내며 더 마력을 침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크으으으…!"
역시나 헛수고.
그가 어떤 방향으로 마력을 쏘아 보내건 간에 나는 그의 모든 계획을 한발 앞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승균의 마력이 내 몸에 침투하기 전, 미리 마력의 벽을 생성하여 그의 마력을 튕겨낸 것이다.
"흐…흐으으으…!"
박승균의 입에서는 쉴 새 없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얼굴을 적셨고,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들은 그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되는…! 대체… 대체 너는 누구야아아아!"
그가 소리쳤다.
"알고 싶은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꾸득! 꾸드득!
오우거의 신체가 활성화되며 내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박승균만큼 흉측하게 부풀어 오른 건 아니지만, 그 효율만큼은 놈의 육체 개조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이어진 뇌전검과 충격파.
파지지직!
백색의 오러 위로 다시금 백색의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찌… 이게 대체 무슨…!"
총체적인 난국일 테지.
박승균의 입장에서 말이다.
자신의 주 무기인 마력을 이용한 공격은 이미 막혀들었는데,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않은가.
"자, 내 이름이 궁금하다고 했나?"
나는 놈을 보며 말했다.
박승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내 몸이 쏘아졌다.
물론 박승균 역시 만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콰콰쾅!
박승균의 몸 주위에서 펼쳐진 마력의 장벽들은 나를 가로막았다.
엄청난 반응속도다.
물론 육체 개조 덕분일 테지만.
콰드드득! 쿠우웅!
일격에 박승균이 만든 마력 장벽들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마, 말도 안…!"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미 내 검이 놈의 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으니까.
"젠장!"
박승균은 지팡이를 꺼내 들어 내 공격을 막아냈다.
카아아아앙!
박승균의 지팡이는 내 오러 블레이드의 일격을 막아냈다.
놈의 지팡이 역시 미스릴로 만들어진 지팡이였고, 그 위에 오러 블레이드와 비슷하게 마력이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려주지. 내 이름."
"……?!"
내 말에 눈을 부릅뜬 박승균.
카앙!
나는 검을 들어 올렸고, 몸을 움직였다.
이런 말과 함께.
"다만 조건이 있다."
내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오러 블레이드가 다시 박승균이 서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크으으윽!"
박승균은 기함을 터트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마력이 빠르게 모여들며 땅 아래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콰르르륵!
거센 불길이 곧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나를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파앗!
나는 어느새 놈의 뒤쪽으로 움직인 상태였다.
놈의 마법은 순식간에 나의 방향을 놓친 채로 허공을 배회하고 있을 뿐.
나는 놈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내 모습을 놓친 박승균은 바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박승균에게 말했다.
"네 숨이 1초 남짓 남았을 때. 그때 내 이름을 말해주마."
"흐, 흐아아아아악!"
박승균이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경기라도 일으키듯 부르르 떨리는 박승균의 몸.
나는 그런 박승균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빠아아악!
로우킥.
박승균의 무릎이 단번에 뒤틀렸다.
"끄아아아악!"
박승균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박승균을 향해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빠아악!
"커헉!"
박승균의 복부가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그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발길질을 내질렀다.
굳이 검이 아닌, 손과 발로 박승균을 공격하는 이유는 하나다.
아직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
쿠우우웅!
내 발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
내 발이 멈춰선 부분에는 얇은 막 여러 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총 여섯 개.
이건 박승균의 짓이 아니었다.
'나타나셨군.'
마법 명가의 장로들.
박승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저들이 제 발로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