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외부에서 난 소음이 아니다.
내 몸속에서 터져 나온 굉음이었다.
역류하는 마력을 내가 자의로 움직이며 마력이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내가 억지로 멈춘 마력은 내가 제어하지 않았다면 내 뇌 속으로 파고들 뻔했으니까.
'이걸 멈추지 못했으면 나 역시 그대로 정신이 나가 버렸을 거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레 마력을 막아내느라 그 타격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지금 내 상태는 말이 아니다.
폭주가 시작된 지 아직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내렸고, 아직도 전신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침착해야 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버텨내야 했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리고 다시 초감각에 집중했다.
나는 내 마력을 조금씩 움직이며 미쳐 날뛰는 마력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원래의 흐름을 되찾아야 해.'
지금의 마력은 원래의 흐름을 무시한 채 혈관이란 혈관은 제멋대로 찾아다니며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으니까.
'천천히. 하지만 강력하게.'
나는 마력의 원래 흐름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전생에서 공부해서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인간의 몸속에 흐르는 기의 흐름.
각종 '기'의 관문들.
그 흐름을 되찾아야지만 이 미쳐 날뛰는 마력을 억제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각종 명가의 호흡법의 기초가 되는 원리였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오랜 시간을 거쳐 변형시켜왔지만, 내게 필요한 건 그런 호흡법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기의 흐름.
꾸득! 꾸드득!
마력을 억제하는 이 순간에도 폭주하는 마력은 내 혈관을 제멋대로 날뛰려고 난폭하게 혈관을 뚫고 내달렸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초감각 덕분에 전신 어느 곳에서 마력이 폭주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덕분이었다.
바쁘게 마력을 움직이며 폭주하는 마력을 억제하고, 다시 길을 열어줬다.
그럴 때마다 피부 밖으로는 눈에 띌 정도로 도드라진 혈관이 흉측하게 비쳐 보였다.
한 곳을 진정시키면 다른 한 곳에서 수도꼭지가 열린 듯이 마력이 터져 나왔고.
그곳을 진정시키면 또 다른 곳에서 마력이 터져 나왔다.
내 몸이 경련하듯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몸이 통제가 되질 않았다.
사실 통제를 할 여유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리라.
몸이 경련을 하고 부르르 떨리건 말건, 지금 나는 마력의 폭주를 살피고, 그곳으로 마력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으니까.
입안에 피가 잔뜩 고였다.
하지만 피비린내를 느낄 여유조차 없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저 사방에서 미쳐 날뛰는 마력을 진정시키며 원래의 흐름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
이 와중에도 모든 스탯들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어느새 모든 스탯이 900을 돌파해 100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결국.
[마력이 1000에 도달했습니다.]
[오러 블레이드가 6단계로 상승합니다.]
[초감각 (A)가 초감각 (S)로 등급이 조정됩니다.]
[초감각의 감지 능력이 더욱더 발전합니다.]
마력이 1000이 된 순간 떠오른 메시지.
그리고 초감각의 감지 능력이 확대됨과 동시에 나는 더욱더 기민하고 정확하게 마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그 순간부터 분위기는 반전됐다.
1000이 넘는 마력이 폭주하는 마력을 빠르게 진압하기 시작했으며.
S등급의 초감각을 통해 나는 더욱더 빠르게 폭주 지점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조금만 더 하면….'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여유가 생겨났고, 나는 마력을 억제하면서도 내 몸을 살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내 몸에는 흉측한 흉터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다만 여기저기에 멍이 조금 났을 뿐이다.
그나마도 물약 조금 마시면 금방 회복될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역시나 초감각 덕분이다.
특히나 마력이 1000이 넘어가면서 더욱더 세밀하게 내 몸을 흐르는 마력을 살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초감각이 없었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었겠지.'
그렇게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고.
몰른은 저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그동안 나의 교육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나를 믿고 지켜보고 있겠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결국.
"허어어어억!"
마력이 완전히 진정된 순간 나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입 안에 가득 뭉쳐 있던 피가 토하듯이 터져 나왔고.
그제야 머리가 핑, 돌며 엉켜있던 마력들이 천천히 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신에 피가 돌기 시작하며 잠시 현기증이 몰려왔다.
손끝, 발끝이 저려왔다.
"살았군."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었다.
만약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정신줄을 놓아 버릴지도 몰랐겠지.
"하아…."
나는 다시 숨을 내쉬었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인벤토리에서 물약 하나를 꺼내 들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약을 삼키며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몸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데에만 꼬박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결국 나는 다시 서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죽는 줄 알았어."
몸을 일으키고 그렇게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6단계 오러 블레이드의 정보를 확인했다.
[오러 블레이드 – R]
>6단계 [최종 단계]
>육체 / 정신 복합계 스킬
-힘과 마력 수치의 영향을 받는다.
>추가 공격력 : 300.00
>지속시간 : ?
>5단계 추가 능력 부여 : 검기의 파동
>R 등급 추가 능력 부여 : 오러 블레이드 시전 중 신체 능력 30% 증폭
'…….'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옵션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공격력.
이전에 100이 추가되던 공격력은, 3배가 늘어나 300이 되었다.
이미 공격력만으로는 그 어떤 무기의 효과를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지금 내 무기의 공격력이 130.'
오러 블레이드까지 더해지면 무려 430의 공격력을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말도 안 되는군.'
그야말로 오러 블레이드의 최종 단계의 위엄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시전 시간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지.'
그 다음으로는 지속시간이다.
이전처럼 시간제한 따위는 사라졌다.
'?'라는 것은, 내가 지속할 수 있는 한 끝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일 테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건.
'R 등급이 존재했어.'
그동안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것이 모든 등급의 끝이 S등급이라는 것이었는데.
지금 나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밝혀냈다.
'R등급이 존재한다는 건….'
앞으로 나의 성장에 있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하하…."
연속해서 쏟아지는 충격적인 소식들에 다시 한번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모든 것의 화룡정점을 찍는 R등급 추가 옵션까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지금의 나는 최강이다.
'단언할 수 있어.'
검술 명가.
그 녀석들도 결코 나를 이길 수 없으리라.
'완벽하군.'
상태창은 굳이 열어 볼 필요도 없으리라.
이미 모든 육체 스탯은 1000에 근접했고, 마력은 1000을 뛰어 넘었다.
'독보적이야.'
그럼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때다.'
남은 물약을 모두 입에 털어 넣은 나는 마법 명가 녀석들이 있을 그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무언가 이상하다.'
그 무렵 박승균의 머리에 좋지 않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근래 들어 뜸해지기 시작했어.'
그들이 공급받고 있는 실험체에 대한 이야기다.
마법의 숲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꾸준히 실험체를 공급하던 플레이어들로부터 연락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 여기는 허접한 녀석들이 있는 곳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게 당연하다.'
박승균이 생각했다.
그것 말고도 다른, 그러니까 어떤 최악의 상황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그리고 마법사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조금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서도 저 깊은 어디선가부터 치솟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기 위해.
그 생각을 다시 묻어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실험을 진행하면 완성시킬 수 있어. 모든 것이 잘 될 거다. 우리는 다시 올라설 것이고. 우리를 멸시했던 모든 놈들을 밟고 올라설 것이다.'
박승균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였다.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님…."
마법 명가의 가주인 박호량이다.
"……?'
그 순간 박승균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박호량의 표정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임에도 박호량이 웬만해서는 자신을 직접 찾아올 사람이 아니라는 건 박승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박승균이 물었다.
그 질문을 던지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불안한 것인지.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그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은 박호량의 침묵이었다.
"말씀… 하십시오. 어서…."
박승균은 답지 않게 박호량을 재촉했다.
평소였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박호량의 입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을 그일 텐데도.
결국 박호량의 입이 열렸다.
입속이 얼마나 말라 있었는지 입이 벌어지는 순간 입술이 떨어지며 쩌억, 소리를 만들어 낼 정도였다.
"…가셨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
박승균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박호량의 말에는 그 어떤 힘도 담겨있지 않았다.
"돌아… 가셨다는 말이다."
"그 무슨…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체 누가 돌아가셨다는…!"
박승균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일 뻔했지만, 간신히 마음을 억눌렀다.
"장로…, 아니. 큰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이다…!"
꿀꺽
박승균의 동공이 흔들렸다.
철렁!
그리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빠질 뻔했지만, 박승균은 간신히 버텨냈다.
"하… 하하….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이겠지요. 큰 할아버님께서… 대체 왜 돌아가셨다는 말입니까. 하하… 하하하하!"
박승균이 억지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처절했다.
"오해일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큰할아버님께서는 우리 명가에서도 손에 꼽을 재능을 가지신 분이라고… 아버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인 박승균.
하지만 박호량은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한 얼굴로 박승균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
"사실이다."
결국 박호량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에 박승균은 절규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누구입니까. 대체 어떤 새끼가. 어떤 개 같은 자식이… 제가. 제가 직접 죽이겠습니다. 제 손으로 그 놈의 머리를 부수고 뼈를 으깨고 근육을 찢어 버리겠습니다."
박승균의 어깨가 들썩였다.
흥분을 멈출 수 없었다.
박호량이 앞에 서 있음에도 도무지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없었다.
"죽일 것입니다. 검술 명가입니까? 화랑 길드입니까? 아니. 아니지. 상관없습니다. 누가 되었든… 제가 죽일 겁니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습니다."
홱!
박승균이 걸음을 옮겼다.
박호량이 서 있는 곳을 지나쳐 걷고 또 걸었다.
그때였다.
쿠우우웅!
어디선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