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됐다.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플레이어들의 말문이 순식간에 턱, 하고 멎어 버렸다.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키기 시작했고.
말없이 서로의 눈빛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이 지나간 뒤.
콰앙!
누군가가 탁자를 크게 내리쳤다.
"뭐라고?"
"다이아 등급이라고?"
"X발 그게 말이 돼?"
"일을 시켰더니 일은 안 하고 어디서 가짜 뉴스를 퍼 나르고 있는 거야?"
그것을 시작으로 플레이어들이 광분해서 날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더욱더 소란스러워진 장내는 수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
그중에서 예창민은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말이라 호흡이 가빠질 정도였다.
'다이아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시점에서 다이아 등급의 신분증을 받고 마법사의 숲을 통과한 이들이라고 해봐야 각 명가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지경인데.
'만약 그놈이 한강민이라면?'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크게 삼켰다.
정말 본가에서 내려온 지령이 사실이고, 한강민이 마법사의 숲에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가 정말 다이아 등급의 신분증을 손에 넣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위험하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한강민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위드 길드의 소속이었고 위드 길드는 지금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력 중 하나라는 것.
'이 와중에 정말 한강민이 그렇게나 강해졌다면 위드 길드는 앞으로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게 될 거야.'
그 말은 즉, 다시 한번 길드와 명가의 역전된 상황이 더욱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검술 명가는 더욱더 우리와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최악의 사태다.
정말로 세 명가의 위상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질지도 모를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낮아진 명가들의 위상을 비웃은 플레이어들의 모습은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정도였는데.
만약 한강민이라는 플레이어가 정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위드 길드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다면.
'젠장!'
그리고 그는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이 망할 새끼들이….'
그들은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현실을 외면한 채로 아우성만 치고 있을 뿐.
열등감.
혹은 불안감 때문이리라.
자신들이 아닌 누군가가 다이아 등급의 신분증을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초라해질 테니까.
그리고 자신들 명가의 위상이 더욱더 흔들릴 테니까!
'이딴 새끼들이 나와 같은 명가라니….'
그런 생각이든 순간 예창민은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 순간에야 검술 명가의 마음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으니까.
'아….'
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맞는 말이다.
명가는 더이상 답이 없다.
명가?
그 이름을 짊어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저것들이 훗날 명가를 이끌 재목들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지.
예창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그가 눈을 부릅떴다.
"닥쳐, 이 개자식들아!"
그가 소리쳤고.
다시 한번 분위기가 싸하게 얼어붙었다.
"뭐, 뭐야?"
"어디서 큰소리를 치는 거야!"
"너 뭐야, 이 새끼야!"
개판이다.
난장판이다.
엉망진창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들 정신좀 차리십시오, 제발! 이러다 우리 다 뒈질지도 모른다고요!"
예창민이 다시 소리쳤고.
"……!"
"크흡…!"
그제야 플레이어들이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자. 앉아요. 다들 앉으시고…."
울상이 되어있는 정보 요원들을 바라봤다.
"그래. 북쪽으로 갔다고?"
"예.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아룬든으로 향하는 마차를 타고…."
그 말에 예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람을 풀어 아룬든으로 갑니다. 빠질 사람은 빠지십쇼. 말리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예창민은 몸을 일으켰다.
궁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입을 꾹 다문 채 그 뒤를 따랐다.
***
"귀가 가렵군."
"귀 좀 파세요오."
"누가 내 욕을 하고 있는 모양이야."
"에에이~ 그거 다 미신인데요오?"
"말이 그렇다는 거다."
"헤헤헤."
나는 지금 몰른을 데리고 다시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의뢰의 클리어 조건도 미리 달성해 뒀겠다, 그리고 포식 슬롯도 열렸겠다 마음이 한참이나 가벼워진 상태였다.
'마법 명가 녀석들과의 싸움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조금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지금은 다시 한번 험난한 행군길을 시작해야 할 때였다.
'점점 더 추워지고 있어.'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을 지경이었다.
숨을 내쉬면 입김이 얼어붙어 결정이 만들어질 정도였으니까.
이전에 내가 한 번 엄포를 놓은 뒤
그렇게 몰른과 함께 북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무렵.
"몰른. 연주를 준비해라."
다시금 초감각의 범위 내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인간이다.'
하지만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아니다.
추측하기로는 아마도 마법 명가 녀석들의 실험체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접근했을 무렵, 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흑암파?'
분명했다.
지금 저쪽에 보이는 건, 이미 내가 한 번 상대해 본 적 있는 흑암파와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었다.
'거의 다 도착한 모양이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안 그래도 이 지긋지긋한 추위에 화가 날 지경이었으니까.
'최대한 조용히 처치해야겠어.'
혹시 소란이라도 피웠다가는 여기 어딘가에 숨어있을 마법 명가 녀석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를 테니까.
몰른이 연주를 시작했고, 몰른의 버프를 받아든 나는 흑암파 녀석들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주변을 살피며 정찰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외진 곳에서도 흑암파를 이용해서 정찰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놈들도 어지간히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을 짓밟아 주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지.'
나는 입꼬리를 비튼 채로 뇌전검을 사용했다.
민첩성이 증가하며 내 움직임이 바람처럼 빨라졌다.
나와 흑암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놈들의 능력창이 떠올랐다.
포식 슬롯이 열리고 나서 내가 포식할 수 있는 능력들의 목록이 펼쳐진 것이다.
'플레이어를 개조한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도 자신 명가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이었겠지.
정말 마법 명가가 갈 때까지 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육체 개조 - (#[email protected]!)]
저것이 바로 마법 명가 녀석들의 실험의 결정체일 것이다.
그리고 원래라면 등급이 적혀 있어야 할 부분에 등급 대신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었으니.
'시스템에 오류가 난 것인가 보군.'
시스템에 자연스레 각인된 능력이 아닌, 인공적으로 삽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리라.
그럼에도 포식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의 의구심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다.
'정말 포식해도 괜찮은가?'
만약 정말 저 능력이 강제로 상태창에 삽입되며 오류를 일으킨 것이라면, 내가 저 능력을 포식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다.
'확인해보면 알겠지.'
그렇게 나는 흑암파 녀석들과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놈들이 나를 발견하기도 전.
파직!
검을 휘둘렀다.
한 번에 모여 있던 흑암파 녀석들이 반토막이 난 채 허공에 떠올랐다.
단 한 명만 빼고.
내가 능력을 포식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 위해 남겨 둔 한 명 말이다.
"그으…?!"
놈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하지만.
빠아악!
내 주먹질에 놈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풀썩!
쓰러진 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죽은 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놈의 옆에 떠 있는 포식 가능한 능력들을 살폈다.
'역시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가 맞아.'
육체 개조라는 능력 위에는 이런저런 마법과 관련된 능력들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육체 개조라는 능력을 바라봤다.
[능력 '육체 개조'를 포식할 수 있습니다.]
[포식 조건 : 부작용 (폭주)를 견뎌내야 함.]
'부작용.'
역시나.
아직 미완성 된 능력이 분명하다.
게다가 폭주라면….
나는 쓰러져 있는 흑암파 녀석들의 면면을 살폈다.
'대충 알겠군.'
강력해진 마력을 억제하지 못하여 전신에 괴상할 정도로 핏줄이 솟아나는 현상들.
비단 겉모습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나마 이 녀석들은 폭주하는 마력을 버텨내고 살아 있었을 테고.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것이겠지.
'도박이라는 건가.'
나는 다시 한번 육체 개조라는 능력이 무엇인지 살폈다.
[육체 개조]
>등급 : S#@!
>효과 : 영구적으로 육체 능력과 정신 능력을 증폭시킨다.
이게 끝이었다.
다만 확실히 욕심 나는 능력인 건 분명하다.
'흠….'
잠시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나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볼 만한 도박이다.'
객기는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나라면 충분히 부작용을 감내해 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들었을 뿐.
그때였다.
"끄으…끄으윽…."
쓰러져 있던 흑암파 녀석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파직!
나는 다시 놈의 가슴팍을 짓밟았고, 놈은 피를 토하며 다시 혼절했다.
그리고.
"포식하겠다."
[능력 '육체 개조'를 포식합니다.]
[상태#[email protected] '육[email protected]##! 개조'가 각[email protected]@! 니[email protected]#.]
평소와는 다른.
괴상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시스템 에러 발생]
[에러 코드 #129]
[인위적인 능력이 상태창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사용자의 신체와 정신에 강한 압력이[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 순간.
"크흡!"
가슴팍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커허윽…!"
[막대한 양의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가 신체와 마력 수치를 증폭시킵니다!]
반복해서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정신이 아찔해졌다.
[힘이 증가합니다.]
[민첩성이 증가합니다.]
[체력이 증가합니다.]
[마력이 증가합니다.]
펼쳐진 상태창에서 육체 능력과 마력이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700언저리이던 육체 스탯은, 어느덧 800을 훌쩍 넘어섰고.
마력은 빠르게 900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럴수록 내 온몸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이 끔찍한 고통에 휩싸이고 있었으며.
꾸득! 꾸드드득!
혈관을 역류하는 마력과 마력을 담고 있는 피 때문이 피부 위로 핏줄이 괴상망측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정도 고틍쯤이야 충분히 버틸 만하다.
그리고 마력이 늘어날수록 또 한 가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으니.
'초감각.'
그 능력이 이제는 나의 외부뿐만이 아니라, 내 신체 내부를 마치 조감도를 펼쳐 놓은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나의 모든 혈관과 그 혈관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마력의 폭포수가 내 눈에 명명백백히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폭주를 제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초감각을 통해 내 몸 내부를 또렷하게 살필 수만 있으면.
'마력을 폭주하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을 테니까.'
온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나는 초감각을 통해 보이는, 내 전신을 타고 흐르고 있는 마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그때 어디선가 폭발음이 울려 퍼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