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더블 캐스팅?'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 마력을 품고 있는 마법을 이 짧은 시간에 캐스팅 할 수 있는 방법은 더블 캐스팅 밖에는 없다.
'미치겠군.'
내가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더블 캐스팅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술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심지어 다른 속성의 마법을…!'
"죽어라아아!"
장로의 외침과 함께 전류가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조금이나마 안도 할 수 있었다.
'다행이야.'
하필 저 녀석이 지금 사용한 마법이 전류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파지지직!
그때 막 내 검 위에서도 다시 한번 뇌전검의 전류가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로의 마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오러에 둘러싸인 뇌전검의 전류가 거세게 치솟았고.
파지지지지직!
장로의 전류 마법과 뇌전검의 전류가 한데 뒤엉켰다.
뇌전검의 전류를 이용해서 장로의 마법을 조금이나마 약화시킨 것이다.
"?!"
장로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아직도 내 검 위로 장로의 마법과 뇌전검의 전류가 뒤엉켜 있었고, 나는 급하게 더 많은 마력을 검으로 쏟아부으며 뇌전검의 전류를 컨트롤했다.
하지만 장로의 마력이 조금 더 강력했던 모양인지, 뇌전검의 전류가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장로의 마법이 내 몸을 휘감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홱!
나는 장로를 향해 내 검을 내던졌다.
뇌전검의 전류와 장로의 마법이 뒤엉키며 허공에 흰 선을 그려냈다.
"뭐, 뭐…!"
장로의 입에서 당황이 가득한 탄성이 터져 나왔고.
그 순간에도 검은 화살같이 빠른 속도로 장로의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흐읍!"
그는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과연 그의 움직임은 웬만한 육체 계열의 플레이어 이상으로 날렵했다.
하지만.
파직!
검은 결국 장로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크으으악!"
장로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마법과 뇌전검의 전류가 섞여 있는 검에 공격당한 덕에 그의 온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을 타고 푸른 스파크가 쉴 새 없이 튀어 오르며 장로의 눈이 뒤집어졌다.
아무리 더블 캐스팅이건 육체 개조건 그딴 잔재주를 부려 봐야 몸으로는 나한테 안 된다.
심지어 위엄의 효과가 적용되어 움직임이 느려진 상태라면 더더욱!
파앗!
나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기는 저 먼 곳에 처박혀 있지만, 저딴 녀석쯤이야 주먹으로도 어렵지 않게 쓰러트릴 수 있다.
부웅!
주먹이 놈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제야 감전 상태에서 풀려난 장로의 동공이 나를 향했지만.
"크으읍…!"
그럼에도 아직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장로는 내 공격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결국.
빠아아악!
내 주먹이 놈의 안면을 가격했다.
"커헉!"
장로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충격파가 더해진 일격이니 아마 놈의 뇌에 큰 충격이 갔을 것이 분명하다.
놈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나는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빠아아악!
이번에는 놈의 옆구리.
장로의 몸이 'ㄱ'자로 꺾였다.
역시나 충격파의 위력이 더해져 놈의 내장이 파괴됐을 것이다.
"크어어어억!"
입에서 토하듯이 피를 쏟아내는 장로의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서 있을 수 있다니.'
그것 \뿐인가.
이쯤이면 벌써 나자빠져 죽어가야 정상일 텐데도 몸의 균형을 유지했고, 흐릿하지만 동공은 정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네, 네노오옴…!"
이것 봐라.
말까지 하고 있지 않나.
'혹시 저 능력을 내가 가질 수는 없을까?'
포식 슬롯이 열리고,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린 뒤에 내가 저 능력만 손에 넣을 수 있으면.
'대박이다.'
저 정도로 육체를 강화시켜 주는 동시에 마력을 증폭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이라니.
'욕심이 난다.'
하지만 문제는 저들의 저 능력이 상태창에 각인이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아직 그건 알 수 없어.'
포식 슬롯이 열리지 않아 상대가 가진 능력을 꿰뚫어 볼 수는 없으니까.
'기대되는군.'
그리고 나는 다시 놈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날아드는 내 주먹을 보며 장로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끄으으읍…!"
장로가 온 힘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리며 자신의 전신을 마력으로 코팅했다.
아까 전에도 봤던 마법 명가 녀석들의 방어 기술이 분명했다.
타아아앙!
주먹이 놈의 면상을 두드린 순간, 철판을 두드린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먹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다.
빠직!
놈의 코뼈가 함몰됐고, 안면이 내려앉았다.
피가 튀어 오르며 내 주먹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 순간.
부우웅!
장로의 지팡이가 나를 향해 움직였다.
아직도 저럴 기운이 있다니.
그리고.
빠악!
장로의 지팡이는 내 몸을 두드렸다.
어느 정도 타격감이 있기는 했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끝이군.'
아마도 지금의 일격은 놈의 마지막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으리라.
스르륵-
장로의 몸이 천천히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풀썩!
그의 몸이 땅 위로 쏟아져 내렸다.
"후우우…."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걸음을 옮겨 저쪽에 박혀있는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아직 살아있군,'
그렇다고 다시 움직이며 나를 공격할 정도는 아니다.
그저 몸을 가늘게 떨며 마지막 남은 한 줄기 숨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수준이었다.
검을 들어 그의 등을 향해 내리 꽂았다.
푸훅!
"커헙!"
검을 박아 넣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장로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떠오른 메시지.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70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포식 슬롯이 열립니다.]
'계획대로군.'
이제 남은 건, 마법 명가의 본진으로 쳐들어가 놈들을 쳐부수고 능력을 포식하는 것.
'대충 견적은 나왔다.'
장로와의 싸움을 통해 놈들이 가진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능력인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싸움은 아니다.'
세 개의 스탯 포인트는 모두 마력에 투자했다.
'한시라도 빨리 마력을 1000으로 만들어야 해.'
오러 블레이드의 최종 단계라고 일컬어지는 6단계로 올라서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또 한 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툰테른 현자의 의뢰 클리어 조건을 완수했습니다.]
[의뢰를 맡긴 인물을 찾아가 마법사의 숲 클리어 조건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역시 빨라.'
우선 한 짐 내려 놨다.
하지만 아직은 마법사의 숲을 떠날 때가 아니다.
***
그리고 그 무렵 마법사의 숲에서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흠…."
"쩝…."
"복잡하군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창술, 궁술, 체술 명가의 방계와 직계들이었다.
마침 마법사의 숲에서 탑을 오르기 위해 활동하고 있던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 소집된 것이다.
사실 직계와 방계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타 명가의 직계와 방계를 마주하고 있으니 각자의 입장은 꽤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요."
다시 한번 짧은 침묵이 이어진 뒤 그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각 본가에서 긴급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바로 한강민… 때문이죠."
한강민이라는 이름에 모두가 침성을 흘렸다.
그들 역시 한강민이라는 이름을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명가의 실세들이 그랬듯, 그들 역시도 한강민이라는 이름은 머릿속에서 꽤나 구석에 처박아 뒀던 상황이다.
'그런데 그놈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으다니.'
'대체 윗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여기저기에서 한탄 섞인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안 그래도 한시바삐 탑을 오르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이 넓은 땅에서 한강민을 찾으라니!
"제가 소신발언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때 한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섰다.
"말이 됩니까? 한강민이 마법사의 숲에 있다니요. 가당키나 한 말이냐는 말입니다!"
창술 명가의 방계 플레이어다.
평소에도 거만하고 말이 거침없기로 유명한 플레이어였다.
그의 발언에 창술 명가의 직계 몇몇이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코웃음 치며 무시했다.
"그 새끼가 진짜 마법사의 숲에 있으면 내가 장을 지지겠습니다. 어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거야?"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말이 안 되잖아요. 한강민. 그 이름이 잠시 날리긴 했지만 언제적이야? 어디 가서 객사했을지 누가 아냐고!"
"그래, 맞아! 맞아!"
한 명이 총대를 메고 나오니 다른 플레이어들도 하나둘씩 거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고,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를 얹어대자 시장통이 따로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자, 자, 조용!"
궁술 명가의 예창민.
예진희의 동생이 나서서 장내를 진정시켰다.
사실상 영향력으로 보자면 이 무리의 리더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까라면 까야지요. 그리고 다들 아실 겁니다. 지금 우리 명가들의 상황이 얼마나 난처한지 말입니다. 윗분들이라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가 뱉어내는 말에 다른 플레이어들도 딱히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지금 이렇게 날카로운 것도 현재 명가의 위상이 땅으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우선은 시늉이라도 하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희 누나인 예진희 플레이어의 판단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누나를 언급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발언에 힘을 싣는 중이었다.
"우선 사람을 보내 놨으니 곧 무슨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우선 그때까지는 지켜보도록 하고…."
그렇게 말을 멈추며 짧은 탄식을 쏟아냈다.
그라고 해서 답답하지 않겠는가.
마법사의 숲이 오죽 넓은가.
혹자는 미국 대륙만큼이나 넓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판국에 이 땅에서 어떻게 한강민이라는.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인물을 찾아내라는 말인가!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벌컥벌컥 입안에 쏟아 넣었다.
"크하…!"
답답했던 속이 조금이나마 뚫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물에 가까운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뒤엉켜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으니.
'엉망이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명가가 이 꼴이 난 건, 다른 누구의 탓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나라고 다르겠냐마는….'
한 가문 내에서도 방계는 방계끼리, 직계는 직계끼리.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가 자신이 잘났다고 언성을 높이며 상대를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건가.'
씁쓸했다.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찬란하고 빛나던 과거의 명가라는 이름이 어느새 빛바래서 고철 더미 안에 처박혀 있는 것만 같았다.
'쩝.'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다시 찻잔을 들어 올린 그 순간.
벌컥!
그들이 모여 있던 공간의 문이 다급히 열렸다.
거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각 명가에서 선별하여 보낸 정보 요원들.
"뭐 나왔어?"
"빨리 말해, 이 새끼들아!"
"어른들 기다리는 거 안 보여?"
다시 한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거드름 가득한 음성들과 함께.
"그것이…."
정보 요원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얼마 전에 다이아 등급의 신분증을 획득한 플레이어가 북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의 입에서는 여기 있는 모두가 싸늘하게 얼어붙을 만큼 충격적인 말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