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그 무렵 장로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 먼 곳까지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빠르게 사라져 가는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의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사실 금방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해봐야 어떤 야만인이 습격했다거나,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 봤자 툰테른들이 쳐들어온 것 정도일 테니까.
'혹시 다른 명가에서 우리에 대해 눈치를 챈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명가가 자신들의 위치를 발견하고 쳐들어왔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을 테지.'
지금 명가들은 자신들의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쁜 상태다.
그런데 굳이 마법 명가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일을 해서 그들이 얻을 게 없지 않은가.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그가 움직이지 않은 것은 당연히 장로로서의 위엄 때문이었다.
하찮은 전투 따위에 참가할 정도로 장로라는 위치는 가볍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여기에 와 있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말단의 명가 플레이어들과 부대끼고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가 젊은 시절이었다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어쩌다 우리 가문이 이 지경에 놓인 것인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화가 났고, 수치스러웠으며 이 모든 상황이 너무도 개탄스러웠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전투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있어서도 안 될 일이고, 차마 상상조차 못 한 일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명가 플레이어들의 마력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저들을 버려둔 채, 그들의 본진으로 움직여도 자신을 질타할 사람은 없다.
비록 장로가 실권에서 몇 발자국 물러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존재감만큼은 감히 가주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위인들이지 않은가.
'…….'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아니.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군.'
이제 곧 완성을 앞두고 있는 자신들의 생체 실험의 효과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그동안 마법사의 숲 깊은 곳까지 숨어드는 바람에 제대로 된 전투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 이 가문을 위해 내 한 번 소매를 걷어 올려도 나쁘지 않을 테지.'
장로로서의 자부심만큼이나 자신의 가문을 향한 애정 역시 남과 비할 수 없었다.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놈이 바로 우리의 가문을 이 꼴로 만들 녀석이렷다.'
다른 명가의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그는 지금 사태를 일으킨 것이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혔던 인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네 놈을 산 채로 잡아다 제발 죽여달라고 빌 정도로 끔찍한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해주마.'
그리고 실험체로 만들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네 놈의 배후는 내가 직접 밝혀주마.'
그렇게 마법 명가의 장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만인가.'
탑이 열리고 그 초창기에 명가를 이끌고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 장본인으로서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투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
'역시.'
놈들은 강해졌다.
그리고 놈들이 자행하고 있는 실험의 목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마력 강화와 신체 강화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거야.'
설마 이 정도까지 실험이 진행됐을 줄이야.
내 생각 이상으로 놈들이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만약 여기에서 저지하지 못한다면 정말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 거다.'
놈들은 검기의 파동조차도 버텨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반격을 가할 정도로 멀쩡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처음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 버텨냈던 것처럼, 검기의 파동이 앞줄의 몇 명을 그대로 증발시키고 힘이 약해지고 나서 뒤쪽에 서 있던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검기의 파동의 일격에 사망하지 않았다.
물론 내 말이 오만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정도면 충분히 강한 것도 맞다.
하지만 저들은 고작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다.
누누이 말했지만, 저들의 신체 능력은 웬만한 일반 플레이어들에게도 한참이나 못 미칠 것이 분명한데도.
'그걸 버텨냈다는 건….'
놈들의 신체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졌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골치 아프군.'
지금 저쪽에서 나를 향해 명가의 직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더욱더 긴장되게 만드는 건, 놈의 마력이 이 순간에도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직계라면 저런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마력만이 아니라 신체 능력에 있어서도 비교가 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꽈악-
검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땅을 디디고 있는 허벅지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후우….'
천천히 숨을 고르고, 명가의 직계가 다가오고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순간 화들짝 놀라서 기함을 내지를 뻔했다.
'장로다.'
마법 명가의 장로.
그가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장로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명가의 장로들.
명가에 속한 플레이어들은 제쳐 두고서라도, 직계들조차 쉽사리 볼 수 없는 존재들이 바로 명가의 장로들이다.
'차라리 잘 됐군.'
놈을 제물로 삼아 레벨을 올린다.
'동시에 놈들의 진짜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도 있겠지.'
장로라면 가주나 현 실세인 박승균보다는 약할 것이 분명하다.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들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오랜 시간 동안 전투라는 것을 멀리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곧바로 명가들의 본진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야겠지.'
앞으로 진짜 마법 명가와의 싸움에서 나의 승산이 어느 정도가 될 수 있을지를 파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실험 대상.
그리고 그때.
"네 놈이로구나."
마법 명가의 장로가 나를 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엄청난 포스군.'
전투력은 별개로 두고서라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과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
어쩌면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만나 쓰러트리기도 했지만.
마법 명가는 전생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었으며, 또 나로서는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했던 집단이니까.
심지어 그 집단의 정상에 올라 있는 남자다.
'긴장되는 것도 당연하지.'
나는 다시 한번 천천히 숨을 골랐다.
저 앞에서 다가오던 장로 역시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
지팡이다.
미스릴로 만든 지팡이.
'과연 마법 명가의 장로라는 말이겠지.'
지금처럼 미스릴을 극도로 구하기 힘든 이 시점에서 지팡이를 통째 미스릴로 만들다니.
'오리하르콘에 비해서 공격력은 떨어지지만 마력의 흡수율과 방출력을 훨씬 뛰어난 금속이지.'
그렇지 않아도 증폭된 자신의 마력을 더 증폭시킬 수 있는 훌륭한 무기다.
그리고 장로의 미스릴 지팡이에서 마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조금 전 플레이어들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마나다.
구구구구!
땅이 격렬히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균형을 잡는 것조차 버거웠다.
단 혼자서 끌어 올린 마나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가만있을 수는 없는 노릇.
치지지직!
뇌전검을 사용했다.
뒤를 이어 충격파와 오우거의 신체가 중첩되었고.
오러 블레이드를 다시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오른 메시지.
[위엄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상대의 신체 능력이 약화됩니다.]
'걸렸다.'
아무리 장로라고 해 봐야.
그리고 실험을 통해 신체 능력을 증폭시켰다고 해 봐야 놈은 내 아래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
위엄의 효과가 적용된 순간 미세하게 흔들린 장로의 호흡.
'놓칠 수 없지.'
파앗!
몸을 날렸다.
전광석화와 같이 쏘아져 나가는 내 몸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흡!"
장로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다급히 마력이 응축된 지팡이를 휘둘렀다.
큰 힘이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카아아앙!
검과 지팡이가 충돌했다.
불똥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장로는 버텨냈다.
놀라운 현상이다.
모든 스킬이 중첩된 내 일격을 마법 명가의 장로가 힘으로 버텨낼 줄이야.
"끄흡…!"
하지만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상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빠아아악!
나는 그대로 그의 상체를 발로 걷어찼다.
"커헉!"
그가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뒤로 밀려났다.
'그러는 중에도 아직 마력을 잃지 않았어.'
아직도 그의 지팡이에는 마력이 모여들고 있다는 말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보통의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캐스팅 도중에는 걷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이 태반이건만.
내 공격을 받아내고, 더 나아가 가슴팍에 타격을 입고서도 버텨내다니.
장로가 이 정도인데, 가주와 박승균은 어떻겠는가.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마법 캐스팅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이겠지.'
마법 명가 녀석들은 정말 골치 아픈 상대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죽어라아아아!"
장로가 고성을 내지르며 지팡이를 나를 향해 뻗어냈다.
구구구구구!
작은 불덩이가 지팡이 위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나를 향해 쏘아져 나오는 불덩이는 그 크기가 순식간에 수 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해졌다.
나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면서도 그 크기를 계속해서 불리고 있었으니.
'위험하다.'
고작 65%의 마법 저항력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피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재빠르게 발을 굴렀고, 마법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우욱!
불덩이가 방향을 틀었다.
'뭐라고?'
정확히 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불덩이가 살아있다는 듯이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문제는 그러는 중에도 불덩이는 더욱더 크게, 그리고 더욱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젠장.'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대로라면 저 마법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때려 부수는 수밖에.
우우우웅!
나는 검기의 파동을 사용하기 위해 불덩이를 바라보며 마력을 다시금 끌어올렸다.
그리고.
후우웅!
검을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내리그으며 검기의 파동을 터트렸다.
검기의 파동이 빠르게 날아가며 장로의 마법과 충돌했다.
쿠구구구구!
검기의 파동이 장로의 마법을 감싸며 그의 마법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젠장.'
아직 힘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더.
콰아아아!
두 번째 검기의 파동을 쏘아 보냈고, 두 개의 검기의 파동이 거대한 화염구와 맞부딪치며 힘을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콰아아아앙!
"크읍!"
장로의 마법이 허공에서 분쇄됐다.
하지만 잔류해 있는 마력이 나를 향해 몰아쳤고, 뜨거운 열기가 내 몸을 감쌌다.
나는 재빨리 마력을 끌어올리며 내 몸을 감쌌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 화상을 면하기는 힘들었으리라.
'그러면 이제 반격이다.'
반격을 위해 놈을 바라본 순간.
"……?!"
"놈!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말아라!"
두 번째 마법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