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젠장! 대체 뭐야! 아까 처음 소리가 터져 나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방금 확인하고 오는 길이예요!"
"그럼 X발! 귀신이라도 나타났다는 거야? 야만인들이 뒈져 있었다며!"
"저희라고 알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감도 못 잡겠습니다!"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두 번째 굉음이 터져 나온 우측 방향으로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놈들이 공격해 온 건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지. 놈들은 지금쯤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그러니 끝장을 봐야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어."
지금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게 툰테른일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사실 이 북쪽 땅에서 자신들을 위협할 세력은 툰테른밖에는 없다.
아니, 위협이라고 하는 것조차 민망했다.
그들이 툰테른을 아직 정복하지 못한 건, 그들이 살고 있는 천혜의 요새 때문이지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기회다. 놈들이 제 발로 찾아와 줬다면, 지금이야말로 확실하게 사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족장이라는 녀석이 직접 여기까지 쳐들어왔을 수도 있겠죠."
"그래."
툰테른의 족장.
그들이 사로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압도적인 전투력은 둘째 치고서라도, 기묘한 전술과 전략으로 그들이 이끌고 있는 야만인을 쓸어버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쑤였으니까.
'반드시 잡는다. 놈만 잡으면… 게임은 끝이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건 바로 스스로를 마검사로 만드는 것.
게다가 부정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미 마력의 수준은 기존 자신들의 힘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거기에 탁월한 육체까지만 더해진다면 전세를 단번에 뒤엎을 수 있으리라.
"가자! 어서!"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가 소리쳤다.
그들은 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르는 플레이어와, 또 수십 명의 야만인들은 곧 굉음의 진원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작은 신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음…?!"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는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이 족장인가? 족장 혼자서 쳐들어왔다는 말이야?'
그럴 리가 없다.
자신도 멀리에서나마 족장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가 기억하고 있는 족장은 훨씬 더 크고, 우람했으니까.
'아들이라도 보낸 것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가 봐왔던 야만인들은 자식이라고 해서 손속을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기 일쑤지 않던가.
'그래. 잘 됐군. 아들이라면 더 사로잡기 쉬울 것이다. 족장의 그 무지막지한 재능도 이어받았을 테고.'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멈춰 섰다.
"사로잡아라!"
그 외침과 함께 야만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즉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단번에 사로잡아야 한다. 너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라!"
"예!"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리자 순식간에 한 곳으로 방대한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증폭된 마력은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로 강력했으니.
구구구구!
야만인들이 강민의 주변에 도달했을 무렵 그들도 마법사용을 위한 마력을 다 끌어모은 상태였다.
"쳐라!"
명가의 플레이어가 외쳤다.
그 외침과 동시에 야만인들이 강민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수십 명의 야만인이었으니, 반드시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콰직! 콰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악!"
사라졌다.
말 그대로다.
수십 명의 야만인이 단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뭐, 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란 말인가!
눈으로 볼 수도, 이 사태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알 수 있는 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뿐.
하지만 어쩌랴.
이미 마력은 모두 다 모여 있었고, 그들의 지팡이는 전방에 있는 한 남자, 강민을 향해 있을 뿐.
명가의 플레이어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외쳤다.
"쏴라!"
순식간에 열 개의 마법이 한 사람을 향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
공기를 찢어발기며, 대지를 뒤흔들며 날아드는 강렬한 마법들!
하지만 그 순간.
팟!
"?!"
사라졌다.
조금 전과 같았다.
분명 그 자리에 서 있었건만, 그 자리에 서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이번에도 역시 눈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이 사태를 파악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다만.
콰콰콰콰쾅!
애꿎은 바닥만 두드린 그들의 마법과, 그 마법이 일으킨 굉음만이 그들의 귀를 두드릴 뿐이었다.
"X발! 뭐야! 뭐냐고오오!"
명가의 플레이어가 욕지거리가 섞인 괴성을 내질렀다.
그때.
"궁금한가?"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죽는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 뿐.
파직!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상체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자신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아…!"
잘렸다.
자신의 상체가 잘려진 채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그의 눈에 담겼고.
삐이이이이-!
시야가 점멸됐다.
쿠우우웅!
그것이 그가 눈에 담을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뭐야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일어난 모종의 사태에 큰 혼란에 빠진 남은 플레이어들이 정신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자리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압도적인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
'멍청한 것들.'
기세등등한 놈들은, 순식간에 절규하며 사방에 지팡이를 정신없이 휘둘러대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지팡이를 허우적대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을 뿐.
'패닉이군.'
그럴 만도 하지.
수십 명의 야만인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으니까.
'검기의 파동. 역시 훌륭한 능력이야.'
야만인들을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게다가 뇌전검이 더해진 나의 민첩성은, 놈들이 내 모습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마법 명가라서 가능했던 일이지만.'
어쨌든 다른 명가의 플레이어들에 비해 육체 능력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이다.
저들로서는 감히 나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조금 멀리에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저들의 처절한 몸짓들이 우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중앙부에서 더 많은 야만인들과 남아있는 모든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다시 움직여 볼까.'
아직도 직계로 보이는 녀석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확신했다.
'직계가 확실하다.'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서 있다는 것은, 명가의 직계의 오만함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다른 녀석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놈을 처치하면 되겠어.'
그렇게 나는 다시 마법 명가의 플레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여전히 잔뜩 긴장된 기색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
그러던 중, 한 녀석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 찰나의 순간 녀석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떨리는 동공과 함께, 놈의 입이 미세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서걱!
"어…?"
놈의 입에서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외침이 터져 나오기도 전, 놈의 상체가 갈라졌다.
푸학!
그리고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핏줄기와.
투둑! 투두둑!
핏방울들이 떨어지며 바닥을 적셨다.
[마력 2를 포식했습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마력 포식 메시지.
이제 이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였지만, 이게 다 어디인가.
모두 나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어 줄 테다.
그때였다.
"나, 나타났다아아아아!"
그 옆에 있던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가 괴성을 내질렀다.
"젠, 젠자아아… 커헉!"
그 녀석 역시 내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다시 한번 미쳐 날뛰기 시작한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허공을 향해 쉴 새 없이 마법을 터트렸다.
모두가 꽤 훌륭한 위력을 지닌 마법들이었고, 개중에는 눈먼 공격들이 내 몸을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다.
카아아앙!
오러 블레이드 앞에 놈들의 마법은 눈덩이나 다를 바 없이 터져 나가기 일쑤였고.
서걱! 파득! 콰아아앙!
내 공격이 이어질수록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느새 한 명의 플레이어만이 남아서 서 있게 되었다.
"어, 어으으으으…!"
전신을 파르르 떨며 사색이 된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
나는 놈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그냥 당해주지 않았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겠다는 듯, 몸 위로 마력을 뒤덮었다.
일종의 방어 마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정도로 내 공격을 막아낸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너무 큰 믿음일 뿐이다.
오러 블레이드가 놈의 몸을 공격했다.
파각!
"……!"
검이 놈의 몸통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한 번에 베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공격하려는 것을 알고 미리 대비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일격에 베어내지 못할 줄이야.
'놈들의 연구가 이 정도까지 진척됐다는 건가?'
어쩌면 내 생각 이상으로 싸움이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흑… 꺼허으윽…!"
그 와중에도 입에서 계속 피를 토해내고 있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
푸훅!
나는 다시 놈을 향해 검을 휘둘러 곧 숨통을 끊어줬다.
놈의 몸이 힘없이 고꾸라졌고.
그때.
"저기다! 저 녀석을 당장 사로잡아라!"
다시 한번 아까와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물론 나는 이미 저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야만인의 수는 대충 100이 넘고, 남은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전부 몰려왔군.'
아직도 직계의 플레이어는 이 내부에 있다.
'저놈들을 최대한 빠르게 처치하고 직계 놈과 싸워야 한다.'
체력을 최대한 아껴야만 한다.
고작 쫄따구 한 명이 내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이지만 막아냈다.
그렇다면 직계 플레이어의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솔직히 말해서 예상조차 되지 않는다.
'젠장. 하여간 끝까지 지겹도록 끈질긴 놈들이군.'
"크아아아아아!"
"크으으으으어!"
백이 넘는 야만인들이 초점 없는 눈동자로 마치 좀비 떼처럼 나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생명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놈들을 보며 역겨움에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다.
그리고 동시에 검 위로 푸른 검기가 피어올랐다.
우우우웅!
'한 번에 쓸어버린다.'
나는 백여 명의 야만인들을 향해 검기의 파동을 쏘아 보냈다.
순식간에 반달 형태로 크기를 불린 검기의 파동이 야만인들을 향해 쏘아졌고.
카드드득! 콰직! 파드드득!
아까 전과 같이 야만인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검기의 파동에 닿은 순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번.'
검기의 파동을 쏘아 보냈고, 남은 야만인들도 모두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그리고 저 뒤쪽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놈들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희도 가라.'
나는 놈들을 향해 쉬지 않고 검기의 파동을 쏘아 보냈다.
"으, 으아아아아아!"
자신들을 씹어 삼킬 듯한 기세로 맹렬하게 쏘아져 나가는 검기의 파동.
그것을 보며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천둥과도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