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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35화 (135/277)

135화

내 예상이 정확하다면, 내 생각 이상으로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만약 마법 명가와 관련된 임무를 받게 된다면 놈들을 처치하는 동시에 임무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될 거고. 그러면 일거양득이다.'

그리고 내 질문 한 번에 막사 내부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나를 향한 적개심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흑마법사라…."

현자가 그 말을 한 번 되뇌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그들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아 왔고, 결국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이 북쪽 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 분위기를 한 번에 휘어잡아야 한다.

나는 현자의 입이 열리기 전, 다시 말을 이었다.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죽이려고 했었고, 간신히 살아남아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습니다."

"……."

"현자께서는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으로 저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저조차도 크게 놀랄 정도였지요. 맞습니다. 저는 강합니다. 육체뿐만이 아니라, 꿰뚫어 보신 그대로 마력도 누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술렁이는 툰테른들.

"이렇게 강해진 건 모두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함이었지요. 그렇게 그들의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되며 툰테른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 위에 조금의 거짓을 얹었다.

"물론 이곳에 제가 제 발로 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 대해서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겠지요."

내 말에 여기저기서 침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게 마지막 신뢰를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일 수밖에 없다.

전생의 나는 떠돌아 우연히 찾아오게 되었지만, 지금은 마치 계획이라도 된 양 여기에 걸어 들어왔으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희 모험가들은 마법사의 숲에 살고 있는 존재들에게 의뢰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 알고 있네."

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이었지요. 마침 툰테른이라는 훌륭한 존재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마침 복수를 위해 이 북쪽 땅에 온 김에 위대한 툰테른의 의뢰를 감당할 영광을 누리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역시나 거짓과 진실이 교묘하게 섞인 변명.

하지만 내 의도를 달성하기엔 충분히 달콤한 혀놀림이었다고 확신했다.

"으음…!"

"크흠. 흠."

역시 뒤쪽에서, 그리고 현자의 입에서 만족스럽다는 듯한 헛기침들이 터져 나왔다.

그럼 이제 마지막 점을 찍을 차례다.

의뢰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의뢰를 끄집어낼 생각이다.

"툰테른의 적과 저의 적이 공통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당신들의 부담을 저에게 얹어 주십시오. 기꺼이 짊어지고 위대한 툰테른 일족을 위협하는 이들을 제 손으로 끝장내겠습니다."

앳된 소년이 현자를 바라봤다.

현자는 굳게 다문 입술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무슨 말인가 뱉어내려던 순간.

펄럭!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 족장님!"

족장이라는 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

풀썩

족장은 어느새 현자의 옆에 자리했다.

툰테른 중, 유일하게 현자와 동등한 위치에 놓여있으면서 현자와 동일한 수준의 발언권을 가진 인물.

듣기로 그는 막 밖에서 전투를 벌이고 들어온 참이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 그의 온몸에는 피가 자욱했으며, 등에 걸려 있는 커다란 대검 역시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막 자신의 아들을 통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참이다.

"현자께서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나도 딱히 이렇다 할 반론을 들이밀 생각은 없다."

그가 말했다.

"허나 정말 네가 그렇게 강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군."

그렇게 말하며 내 몸을 훑어봤다.

"흐음…."

족장에 비해서 내 몸은 초라하다고 말할 정도로 족장의 몸은 거대했다.

"훌륭한 몸이로군."

하지만 족장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괜히 족장 자리를 얻어낸 건 아닌 모양이다.

"원한다면 시험해 도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서 족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직접, 이라는 말은 생략했지만 그 역시 내 시선의 의미를 느꼈으리라.

그리고 다시 한번 무거운 긴장감이 깔리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모든 툰테른들의 무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자다.

그들로서는 감히 족장에게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내걸어야 할 일일 테고.

족장 역시 자신에게 도전해 오는 이들에게 손속을 봐주지 않는다.

아무리 다른 야만인들과 다르다고는 해도, 이들 역시 힘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종족들이니까.

설령 제 아들이 도전해 온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결코 봐준다거나 수를 양보하지 않는다.

"흐하하하하!"

그때 족장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족장이 몸을 일으켰다.

크기도 참 크다.

한눈에 봐도 2m는 족히 넘어 보인다.

모든 툰테른들이 거대했지만, 그중에서도 머리 하나 정도는 더 커다란 족장이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현자를 향해 그렇게 한 마디를 내뱉고는 자신의 등에 걸린 검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자아!"

고함을 터트리며 커다란 검을 나를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

그 모습에 몰른은 기겁하며 옆으로 벗어났고.

'그래. 이 정도는 해 줘야 나도 심심하지는 않겠지.'

나는 오히려 족장의 행동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었다.

족장의 대검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얇고 가느다란 검이었지만.

'후회하게 될 거다.'

카앙!

족장의 검이 쏟아져 내리는 경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쿠우우우웅!

족장의 검과 내가 들고 있는 검이 충돌했다.

막사 내부가 크게 출렁일 정도로 큰 파동이 일었다.

"흐읍!"

"흐어어억!"

툰테른들의 입에서 기함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

족장의 눈매가 좁혀졌다.

빠득!

그리고 어디선가 파열음이 일어났다.

"맙소사…."

소리의 근원지는 족장의 검.

내가 들고 있는 작고 검은색의 검이 족장의 검을 파고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족장의 검이라고 해봐야 무식하게 크기만 클 뿐, 내 검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무려 개미 여왕의 턱뼈를 재료로 하여 해밀턴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만들어낸 검이었으니까.

빠드득!

다시 한번 울려 퍼지는 파열음.

그리고.

끼기기긱!

나는 힘으로 대족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이게 어찌…."

"어떻게 이런 일이…!"

주변에서 쏟아져 나오는 툰테른들의 신음소리가 내 귀를 쉴 새 없이 두드렸다.

나는 이 와중에도 족장의 검을 밀어내고 있었다.

저들의 눈에는 마치 물리법칙을 역행하는 듯한 장면으로 비쳐 보일 것이 분명했다.

거구의 족장이 자신의 모든 체중을 실어 기습적으로 내리친 일격을, 족장의 반도 채 되지 않을 무게를 가진 내가 받아냈으니까.

아니, 받아낸 것을 넘어서 그의 무기에 금이 가게 만들고 오히려 내가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허어…."

결국 대족장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절망이나 좌절, 수치 따위가 아니다.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해보시겠습니까."

카드드득!

그렇게 말하며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족장의 검은 천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쿠웅!

결국 족장은 자신의 검을 바닥에 내렸다.

"말도 안 되는군."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중얼대는 족장.

"조금은 비겁했습니다."

내가 조금은 비꼬는 말투로 한 마디 던졌다.

사실이지 않은가.

만약 내가 힘이 약했으면.

아니, 족장과 비등하기라도 했으면 나는 큰 부상을 면치 못했으리라.

"크흐음…."

족장은 민망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비겁했다고 말은 하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던데?"

대족장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내가 먼저 시험해보라고 한 순간 족장이 가만있지 않으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내가 자초한 일이나 다름없다.

당황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저자라면 충분히 그 일을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족장이 현자에게 말했다.

다른 툰테른들과 다르게 현자는 평온한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다시 현자의 입이 열렸다.

"우리의 무례를 용서하시고 나의 부탁을 들어줄 용의가 있으시오?"

어느새 현자의 말은 존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시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최고 등급의 의뢰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최고 등급의 의뢰를 수행할 시, 마법사의 숲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게 됩니다.]

내 예상대로다.

단번에 마법사의 숲을 클리어 할 수 있을 만한 의뢰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물론입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의뢰를 수락했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이들을 쓰러트리고, 그들의 배후에 대해서 밝혀 주시오."

현자의 말과 함께 또 한 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고 등급 의뢰 – 저주받은 야만인]

>난이도 : 지옥

>클리어 조건 : 툰테른과 전투 중인 저주받은 야만인을 처치하고, 그들의 배후를 밝혀내라.

"금방 해치우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하오."

그렇게 나는 의뢰를 손에 넣었다.

'마법 명가를 쓰러트리기 전에 저주받은 야만이라는 녀석들을 처치하는 게 먼저다.'

이렇게 순서를 정한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다.

70레벨을 달성하고 포식 슬롯을 개방한 뒤에 마법 명가를 만나야 한다.

'마법 명가의 능력을 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그렇게 나는 다시 현자를 바라봤다.

"제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주십시오."

"으음…."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은 현자는 나에게 의뢰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이 근방의 야만인들이 우리를 습격하기 시작했지. 물론 다른 야만인들과의 싸움이 그전에도 없었다는 건 아니오. 다만 그들이 이상해졌다는 것이 문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때문인지, 그리고 야만인들이 어떻게 이상해져 있을지는 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현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까지는 잘 싸우고 있으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수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의 일족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

마법 명가 녀석들은 결국 툰테른이라는 일족도 자신들의 실험체로 사용하기 위해 납치해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래도 다른 야만인들과는 차별성을 가진 툰테른이니, 그들에게도 욕심이 날 수밖에.

그리고 현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일족의 보금자리 북동쪽 방향에 현재 우리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소. 그들을 무찔러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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