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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31화 (131/277)

131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름 조심한다고 거리를 벌려 놓았던 탓에 이들이 도망치려는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늦지 않았고, 막 도망가려던 놈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릴 수 있었다.

"누, 누구야!"

"뭐 하는 새끼냐고!"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이다.

그들이 입은 옷에 마법 명가의 문양이나 다른 흔적 따위는 없었지만, 그런 것은 없어도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삭

특히 내 손에 들린 이 주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은 수정체들은….'

분명 놈들의 실험의 결과물일 것이 확실했다.

'용도는 뻔하지.'

자신들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한 일종의 마력 증폭제일 것이다.

짧은 순간 내가 베어낸 마법 명가 녀석의 몸 상태와 신체 내부를 살핀 결과, 내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저 녀석들도 별반 다를 것 없어. 심지어 이 말까지도.'

엄청난 수확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그리고 나와 대치하고 있던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어쩔 줄 모른 채로 버둥대고 있었다.

나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달아나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의미 없다는 것을.

그러니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일 테고.

그러면 내가 저들에게 답을 내려 줄 차례다.

부웅!

검을 들어 마법 명가 녀석들을 향해 움직였다.

"이, 이! 쏴! 공격해!"

그때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 한 명이 소리쳤다.

그 외침과 함께 거기 서 있던 대략 열 명의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나를 향해 마법을 쏘아 보냈다.

역시 검은 수정체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유사했고, 그들의 사용한 마력은 신체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몇 배로 증폭되었다.

'무시무시하군.'

이런 말단 녀석들이 이 정도라면, 마법 명가의 수뇌부들.

그리고 특히 박승균의 힘이 얼마나 더 강해져 있을지.

콰콰콰쾅!

그들의 마법이 내 몸에 닿아 폭발을 일으켰다.

'조금 쓰라리군.'

그렇다면 꽤나 훌륭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장비가 가진 마법 저항력을 뚫고, 거기에 더해서 내가 보유한 스탯의 위력까지 꿰뚫고서 아주 미약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는 뜻이니까.

"허, 허어억!"

"마, 말도 안 돼!"

하지만 마법 명가의 녀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나를 보며 기겁한 채로 소리쳤다.

"말도 안 되긴."

그리고 이젠 내 차례다.

나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으으으아아아!"

놈들이 다급히 나를 향해 마법을 사용했지만.

우우웅!

어느새 검 위로 피어오른 푸른 오러 블레이드는 놈들의 마법을 허공에서 모두 분쇄해 버렸다

.그 찰나의 순간 놈들의 눈빛은 흔들렸다.

콰직! 콰드드득!

"크아아악!"

"커허억!"

오러 블레이드가 한 번 허공을 수놓은 뒤, 순식간에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 절반의 몸뚱이가 잘려 나갔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남은 이들 모두는 다시 채 저항도 하기 전에 오러 블레이드의 공격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커으억…."

푸훅!

남은 한 명의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 들었다.

'남은 녀석은 없다.'

이미 싸우는 와중에도 초감각을 통해 근방을 샅샅이 살펴본 뒤였다.

여기에 있던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은 내가 쓰러트린 녀석들이 전부다.

나는 놈들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수정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이거라면.'

역시나 놈들의 실험에 대한 분석과 데이터를 요약해 놓은 문서가 있었다.

'그것도 많이.'

여기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놈들이 작성한 서류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그러던 중,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마석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10명의 인간의 신체와 1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단 말이지.'

내가 빼앗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마석의 수가 정확히 몇 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림잡아도 백 개는 훌쩍 넘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갔을지.'

이것들이 내 손에 담긴 이상, 놈들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것을 세상에 폭로하기 전, 박승균을 내 손으로 붙잡아야 한다.

나는 마석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류는 품속에 잘 집어넣었고.

'돌아가자.'

마부와 몰른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마부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 장소에는 다른 마차 몇 대가 함께 모여 있었다.

물론 죄다 허름하고 초라한 마차들이었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대부분은 남쪽으로 갔을 테니까.'

오히려 플레이어들이 없는 편이 나에게는 훨씬 편하다.

"별일은 없었나?"

나는 마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부와 몰른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오오! 물론이죠! 이곳은 안전하답니다!"

마부가 말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니 벌써 꽤 많은 맥주를 마신 모양이다.

아무래도 마차 안에 놓여 있던 드럼통이 맥주를 보관해 놓는 통이었던 모양이다.

"오호호! 주인니이이임!"

몰른은 품 안에 들고 있던 류트를 튕기며 외쳤다.

주변에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조금 전까지 몰른이 류트를 연주했던 것 같다.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하니까."

내가 마부에게 말했고.

그는 내심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해가 뜨는 즉시 출발할 테니, 그렇게 알고 준비해라."

나는 그 말과 함께 마차 안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이제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법 명가.

놈들의 몰락.

아니, 파멸이 이제 내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

날이 밝았고, 내 말대로 마부는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내가 마차에 들어 온 뒤로도 꽤 오랜 시간 맥주를 마신 것 같았지만 마부에게서 취한 기색이나 피곤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프로라는 건가.'

뭔가 어리숙해 보이지만, 마부석에 앉았을 때만큼은 그의 눈빛이 빛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새 몰른은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마부와 달리 몰른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하고 가끔 헛구역질을 하는 걸 보니 아직도 숙취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몰른에게 물약 한 개를 건넸다.

"마셔라. 앞으로 또 이렇게 과음한다면 너와 계속 다닐 수 없어."

내가 말했다.

그 말에 몰른은 흠칫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빈말이다.

몰른의 버프 능력은 내게 있어서 버릴 수 없는 카드다.

다만 앞으로 주의하라는 뜻으로 경고를 날린 셈이다.

"오늘은 쉬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그때 마부의 외침이 들려왔다.

힘찬 외침이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지.

어제 그렇게 많은 돈을 줬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와 몰른을 태운 마차는 빠르게 질주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그 무렵 마법의 숲 최북단.

침엽수가 넓게 분포되어 있었고, 사람의 흔적은 찾기 힘든 극한의 환경을 갖춘 대지에 작은 건물 하나가 지어져 있었다.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그 내부는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그 안에는 한 남자가 앉아서 이를 갈고 있었다.

바로 박승균이다.

현재 그 건물 안에 있는 인물은 마법 명가의 가주 박호량과 박승균, 그리고 몇 명의 장로들 뿐이었다.

이전의 영광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이 순간에도 다시 도약할 순간을 꿈꾸며 마음속으로 분노의 칼날을 갈고 있을 따름이었다.

꿀렁! 꿀렁!

그 순간에도 가주와 박승균, 장로들의 몸속으로 무언가가 스며들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지난 시간동안 생체 실험을 통해 모아놓은 마석의 마기였다.

그들의 온몸에서 핏줄이 괴상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피부 역시도 곳곳이 검게 물들어 있다.

모두가 마석의 마기를 흡수하며 생겨난 부작용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런 겉모습 따위에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있는 존재는 누구도 없다.

그저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자를 죽여 없애고, 다시 마법 명가를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이 모든 고통들을 감내하고 있을 뿐.

그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게 검술 명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검술 명가가 벌인 짓이라고 확신했던 건 아니다.

분명 유력하지만, 이런 짓을 벌일 만한 많은 이들을 용의자 선상에 두고 면밀히 분석해 왔다.

그런 정보들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장로와 가주, 박승균은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탑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빠지지 않고 귀담아듣고 있었으니.

'놈들뿐이다.'

특히나 검술 명가가 다른 명가들을 젖혀두고 탑을 등반하며 독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 확신했다.

'그래. 너희는 그렇게 오만하기 그지없는 놈들이었지.'

박승균이 이를 악물었다.

검술 명가의 김준석.

그리고 가주인 김원호.

같은 거대 명가임에도 마법 명가의 부족한 육체 능력에 대해 늘 멸시의 시선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함도 이제 더 이상은 없다.'

그들이 마석으로 마기를 자신들의 신체에 주입받으며 마력만이 강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동시에 신체 능력의 강화에까지 성공했다.

모두 흑암파를 육성하며 그들이 쌓아 올린 연구 성과 덕분이다.

'신체 능력과, 그 누구에게도 비할 바 없는 마력이라면… 네놈들을 짓밟는 것도 이제 머지않았다. 죽여주마. 네놈들이 내 발밑에서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어 줄 것이야.'

박승균의 눈이 분노와 함께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에도 마기가 박승균의 몸을 타고 흘렀고, 박승균은 마법 명가 고유의 호흡법을 통해 마기를 자신의 일부러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이었다.

꾸득- 꾸드드득-

박승균의 팔뚝의 힘줄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

벌써 마차를 타고 출발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마부는 쉬지 않고 마차를 움직였다.

역시 돈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전생에선 마부들이 나를 어찌나 깔봤던지.'

최소한의 금액만 준다면, 피고용인 역시 최소한의 일밖에는 하지 않는다.

이제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의 위치는 마부의 목적지인 아룬든에서 그리 멀지 않다.

'북서쪽으로 몇 시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사람이 많지 않는 북쪽 땅에서도 은밀하게 모여 있는, 마법의 숲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 비밀 집단.

어느덧 울창하던 숲이 사라지고 드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황량했다.

그리고 곳곳에 뻗어 있는 침엽수들은 우리가 북쪽 땅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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