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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30화 (130/277)

130화

오러 블레이드를 포함한 다른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다.

저들의 이목을 끌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서걱!

"흐읍?!"

풀썩!

한 녀석의 몸이 갈라지고 짧은 신음과 함께 고꾸라졌다.

놈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지도 모른 채 당황하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움직임을 포착하기에, 나의 속도는 그들의 인지 능력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서걱! 푸훅! 콰직!

산적들은 빠른 속도로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조금이나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그들은 급하게 무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앙! 터엉!

눈먼 공격들이 내 몸을 두드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의 공격력으로는 감히 내가 입고 있는 장비의 방어력을 꿰뚫을 수 없었다.

"카르르르륵!"

"크르르르!"

산적들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 예상대로다.'

이미 그들에게서 흑암파와 유사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은 파악했지만, 인간의 언어가 아닌 괴음이 나온다는 건, 마법 명가의 소행이라는 물증을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들의 수를 빠르게 줄여나갔고.

마지막 한 녀석만이 남아있었다.

"카르르륵…!"

이를 갈며 계속해서 괴상한 소리만을 흘려보내고 있는 산적.

'어떻게 하지?'

이런 상태라면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였다.

파직! 파지직!

살아남은 한 명의 산적은 급하게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마치 프로그래밍 된 어떤 행동인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커윽… 커으억…."

간신히 숨이 붙어 있던 산적 역시도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것 역시 프로그래밍 된 것이 분명하다.'

어떤 알고리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본거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놈을 사로잡는다.'

벌써 저 멀리까지 달아나고 있는 산적을 바라봤다.

나는 그를 향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고.

퍼억!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아 목덜미를 붙잡았다.

"크르르르륵!"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버둥거리는 산적.

빠득!

나는 그대로 놈의 다리를 분질렀다.

"카아아아아!"

산적이 다시 한번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럼에도 마치 좀비처럼 부러진 다리 대신 손을 이용해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놈을 들어 올린 채 마부와 몰른이 기다리고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히에에엑!"

내가 산적 하나를 들고 나타나자 마부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라. 언제 어디에서 놈들이 또 뛰쳐나올지 몰라."

물론 이 근방에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산적은 없다.

다만 괜히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겁을 준 것이다.

"예, 예엡…!"

마부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크륵… 크르르륵…!"

이 와중에도 산적은 내 손에 붙들린 채 허둥대고 있었다.

"너는 적당한 곳에 숨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기다려라."

"예, 예?!"

"아니면 나와 같이 이놈들의 소굴로 갈 생각이 있나?"

"헉! 그, 그럴 리가요!"

"몰른. 너도 이 마부와 함께 적당한 곳에서 눈이라도 붙이고 있어. 최대한 빠르게 다녀올 테니까."

"알겠어요오…."

몰른은 산적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 산적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몰른과 마부는 다시 우리가 왔던 길로 돌아갔다.

그들은 마부가 처음 휴식을 취하려고 했던 장소에 가 있기로 했다.

그곳이 마부들이 쉬어가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나는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다시 내 손에 들린 채 버둥대는 산적을 바라봤다.

산적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물약 하나를 꺼내서 먹였다.

산적의 부러진 다리가 빠르게 회복됐다.

"크르르륵!"

다리가 회복되자마자 산적은 재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같은 방향이다.'

나는 산적이 움직이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직 놈의 뒤를 쫓지는 않았다.

'최대한 초감각의 범위만 벗어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자.'

아직까지는 다른 산적이나, 혹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운 좋게 잡아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쯤이면 움직여도 괜찮겠어.'

나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산적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미 시야에서는 한참 전에 벗어났지만 초감각은 놈의 위치와 움직임을 정확하게 캐치해냈다.

그렇게 놈의 뒤를 따라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이동했을 무렵.

'나타났다.'

놈이 다른 사람과 조우했다.

아직 그게 누구인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대화를 직접 들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산적은 아니다.'

몸에서 풍겨오는 기운이 흑암파나 산적의 그것과는 크게 달랐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나는 내 추측을 확신했다.

'조금 더 접근해서 확인해보자.'

거리에 따라 초감각의 효능도 달라진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입모양이나,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의 변화도 파악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조심스레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과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고, 초감각의 범위가 그들 뒤쪽으로까지도 뻗어나갔다.

'역시.'

그 뒤에는 산적들의 소굴이 있었고, 소굴 안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제 의심할 여지는 없다.'

나를 피해 달아난 산적과 만난 인물은 그의 몸에 손을 대고 마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마법 명가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순간이었고.

'저 안에도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이 열 명 가까이 있어.'

그뿐인가.

그동안 봐왔던 마법 명가의 실험실 내부와 비슷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실험 기구, 실험 도구, 그리고 피 실험체들.

'달라진 게 있다면, 마법 명가 녀석들의 마력의 움직임 정도인가.'

갈 데까지 갔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저들의 입장에서야, 약해진 힘을 저렇게라도 키우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어찌 되었건,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만 있게 된다면, 이 탑 안에서 '마법 명가'라는 이름을 흔적도 없이 지워낼 수 있을 테니까.

'자, 그럼.'

나는 산적들의 소굴.

아니, 마법 명가의 새로운 실험실이 있는 곳을 향해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젠장. 플레이어들에게 공격받은 모양입니다."

"그쪽 길은 웬만해선 높은 등급을 받은 놈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인데…."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 역시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으니, 최대한 플레이어들이 찾지 않는 곳.

혹시 플레이어들이 지나가더라도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지나지 않는 곳을 거점으로 삼은 것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 북쪽 땅으로 오고 있는 거지? 대부분 플레이어들은 남쪽으로 향하는 게 정석일 텐데…."

아무리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마법사의 숲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마법사의 숲 남쪽.

척박하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북쪽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풍요롭고 많은 마법사의 숲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남쪽으로 향하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들이 거점으로 삼은 곳으로 지나가는 이들은 대부분 원주민 상단이나 뭣도 모르는 어리숙한 플레이어들 정도밖에는 없었다.

사실 마법사의 숲 정도까지 올라와서 뭣도 모르고 어리숙한 짓을 할 플레이어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으니.

"젠장. 제대로 미친놈한테 걸린 모양이야."

지금 그들이 세뇌한 산적을 공격한 플레이어는 분명 평범한 인물은 아닐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됐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여기를 뜨면 그만이다. 어차피 이 산적 나부랭이 따위야 버려도 타격은 없어. 빨리 실험 자료들 챙겨."

"예. 알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이 급하게 산적들의 산채 내부를 뛰어다니며 챙겨야 할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어. 우리의 마법력이 눈에 띄게 증폭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의 손에는 검붉은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다.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거야 앞으로 더 많은 실험을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이다.

물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희생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로선 큰 거리낌은 없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생체 실험을 자행해오기도 했고,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짓을 하지 않고서는 무너져가는 명가를 살릴 방법은 없을 테니까.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나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부웅- 파악!

그리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산적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커흑!"

그것을 시작으로 산채 내부에 모여 있는 산적들을 하나씩, 빠르게 처치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한 속셈이었다.

'우리가 떠나면 이놈들은 정신을 차리게 될 거다. 괜히 이상한 소리를 떠들게 놔둘 수는 없지.'

산적들을 모두 처치했다.

그리고 아직 살아는 있지만, 의식은 없는 실험체들을 바라봤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들이 납치한 모두가 실험체가 되었다.

그리고 동물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참혹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지만,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는 태연했다.

'이놈들은 제 몫을 다 한 녀석들이지.'

그는 실험체 옆에 놓여 있는 검은 돌덩이들을 챙겼다.

그것이 바로 마력을 증폭시키는 마석.

그것을 통해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총 백오십 개. 이곳에서만 백오십 개의 마석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더 빨라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때.

"끝났습니다!"

"좋아. 모두 나를 따라와!"

그가 수하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급히 산채를 벗어났다.

그리고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놨었으니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물론 지금 그들의 상황에서 아티팩트라거나, 공간이동 같은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마석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시키고 마법으로 세뇌한 짐승들이었다.

"어서 올라타!"

"예!"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온몸에 검게 물들고 근육이 쫙쫙 갈라진 말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려던 순간.

파직!

"……?!"

왠지 좋지 않은 느낌과 함께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

무슨 일인지 미처 파악할 틈도 없었다.

그저 점점 기울어지는 시야와 함께 자신의 등에서 느껴지는 타들어 가는 통증에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쿠우우웅!

말과 함께, 남자의 몸이 그대로 반 토막이 난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뭐, 뭐야!"

"누구야! 어떤 개 같은 자식이!"

그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다급하게 시선을 뒤로 옮겼다.

"늦을 뻔했군."

거기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플레이어….'

맞다.

그는 분명 플레이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본능적으로 느낀 한 가지의 사실은 바로..

저 남자는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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