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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27화 (127/277)

127화

"위드 길드 가입 조건 엄청 까다로워졌더라."

"그럴 만도 하지. 랭킹 3위 됐잖아. 급이 있다는 거지."

"하…. 진즉에 들어가 놓을걸. 화랑 제외하면 탑에서 명가들 영향 안 받는 최고 길드잖아."

"기다려라. 내가 마법사의 숲만 클리어하고 나면 바로 위드 길드 들어갈 거니까."

"어이구? 그때까지 기다려주겠대? 지금 저 위쪽에 있는 양반들도 위드 들어가려고 난리던데."

마법사의 탑 로비에 진입하자 플레이어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떠들고 있었다.

확실히 위드 길드의 위상이 올라갔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때가 기회다.

화랑 길드가 자신만만해 있을 때.

자신들이 탑의 질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오만한 마음에 빠져 있을 이때.

'빠르게 치고 올라가야 해.'

박명철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의미 없는 정치질을 할 때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증명하며 더 많은 인재를 끌어모으고 성장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

'그 전에 나도 확실히 무언가를 보여줘야겠지.'

그 첫 단추를 꿰기 위해 나는 마법사의 탑 로비에 있는 데스크로 향했다.

"음? 모험가시군요."

"맞습니다.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 왔습니다."

"이 서류에 인적사항을 작성해 주세요."

데스크에 있던 마법사는 내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내가 서류를 건네받는 모습을 보며 플레이어들은 나를 흘끔흘끔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쯤 되면 플레이어들도 고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한 다리 건너면 알 수 있었고, 서로의 얼굴도 꽤나 낯이 익을 수밖에 없다.

"누군지 알아?"

"글쎄?"

잠시 이런 소리들이 들렸지만 그들은 금방 관심을 껐다.

그보다 유력 길드, 혹은 이름을 날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주변에 모여 친분을 쌓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혹시라도 콩고물 하나 얻어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아부하고 잘 보이기 위해 애쓰던 시절.

'하지만 그만큼 의미 없는 짓도 없었지.'

결국 중요한 건 본인의 실력이라는 것을 나중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래. 다른 건 신경 쓰지 말자.'

나는 서류에 인적사항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건 없다.

이름와 레벨, 그리고 보유한 능력들.

나는 내 상태창에 적힌 정보들을 그대로 적어 내려갔다.

'터무니없군.'

내가 적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이었다.

고작 69레벨에 51층에 서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될 정도인데.

그 밑을 꽉 채우고 있는 스탯과 능력들.

하나같이 남들이 평생을 매달려도 하나 얻을까 말까 한 사기적인 능력들뿐이다.

하지만 어쩌랴.

진짜인 것을.

그리고 마지막까지 모두 작성한 뒤.

"다 됐습니다."

마법사에게 서류를 건넸고.

마법사는 내가 건넨 서류를 받아들었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 응?"

서류를 대충 훑어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는 마법사.

"이거 장난치시면 안 돼요."

예상했던 반응이 튀어나왔다.

"장난 아닙니다."

"아니, 뭔…."

그러더니 내 몸을 훑어본다.

내 장비를 보고는 다시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는 조금 놀란 것 같은 반응이다.

안목이 없지는 없은 모양이다.

얼핏 본다면 평범한 장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법사 탑의 마법사들 정도면 이 재료들이 얼마나 뛰어난 장비인지는 대충 눈치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전히 의심을 푼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곧 테스트할 거니까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만약에 거짓인 거 들통나면 테스트 결과와 상관없이 아이언 등급의 신분증 받아야 됩니다."

아이언 등급.

가장 낮은 등급의 신분증이다.

아이언 등급을 받게 될 리도 없겠지만, 만약 아이언 등급을 받게 된다면 적어도 십 년은 마법사의 탑에서 벗어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정도로 폐급 신분증이다.

심지어 전생의 나조차도 아이언 등급의 신분증은 받지 않았을 정도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답했다.

거짓이 아닌데 뭐가 꿀리겠는가.

"후…. 우선 로비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서류를 들고 안쪽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시간이 조금 걸릴 텐데. 몰른."

나는 몰른을 바라봤다.

몰른은 아직도 마법사의 탑이 신기한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몰른?"

"예, 예에?"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몰른.

"이거 가지고 가서 전투 식량 좀 사 와. 충분히 사 와야 할 거야. 앞으로 오랫동안 떠돌아야 할 테니까."

"알겠어요오오…. 그런데…."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듯이 말끝을 흐리는 몰른.

"한 잔만. 딱 한 잔만 먹어야 한다. 오래 머무를 생각 없으니까."

"오호호호호! 알겠어요오오!"

몰른이 기쁜 얼굴로 마법사의 탑을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로비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 상태로 마법사의 탑 로비에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둘러봤다.

'역시 가장 핫한 건 위드 길드와 화랑 길드인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플레이어.

그들의 장비 위에 그려진 문양은 위드의 문양과 화랑의 문양이었다.

물론 위드 길드의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내 얼굴을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길드의 공식 활동에 참여한 적도 없었고, 내 갑옷에 길드의 문양이 그려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개중에는 명가의 플레이어들도 있었으나 확연히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명가의 플레이어들의 거들먹거리는 모습은 줄어들었고, 그들 주변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수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재밌군.'

정말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동안 내가 개고생했던 것들이 의미 없지 않았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기도 했고.

'조금 더. 조금만 더 기다려라. 명가 너희들의 그 오만함이 바닥에 추락할 날도 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때였다.

"134번 모험가님."

데스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나는 몸을 일으켜 데스크로 향했다.

"들어오십시오. 작성 내용과 실제 실력에 대해 테스트를 시작할 겁니다."

그러더니 다시 나를 쏘아본다.

각오하라, 라는 표정이다.

'각오는 무슨.'

그렇게 나는 마법사의 뒤를 따라 테스트 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반갑군.'

테스트장 내부에는 총 세 명의 마법사들이 앉아있었다.

내 전생에서도 봤던 얼굴이 보였다.

다만 그때에는 다 죽어가던 노인네들이었지만, 지금은 중년의 남성이다.

하지만 저 부리부리한 눈매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지.'

전생의 나는 마치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마냥 저 남자 앞에서 벌벌 떨었다.

사실 가진 게 없어서 들통 날 것도 없었지만.

그리고 그때.

"흐음…."

심사위원 세 명이 내가 작성한 서류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모험가님. 이곳은 당신이 장난질이나 하는 곳이 아닙니다."

역시 데스크에 앉아있던 마법사와 같은 반응이다.

전생의 나였다면 저 말에 잔뜩 겁을 먹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

"어차피 곧 확인해 볼 건데 뭘 그렇게 겁을 주는 건지 모르겠군."

내 말에 당황했는지 마법사들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댁들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이렇게 플레이어를 앞에 두고 면박 주는 게 취미던가?"

나는 다시 쏘아붙였다.

어차피 저들에게 잘 보일 이유 따위는 없다.

저들에게 더 잘 보인다고 등급을 더 잘 주는 것도, 더 낮은 등급을 주는 것도 아니다.

"크흠, 흠…."

무안한지 마법사들도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할 일이 많으니 빨리 해줬으면 좋겠군."

오히려 내가 당당하게 나가니 저들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왜 전에는 이걸 몰랐을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 전생을 더 어렵게 만들었던 건, 어쩌면 나 자신 스스로가 아니었을지.

뭐.

그건 아무래도 좋다.

'반드시 최고 등급의 신분증을 얻어야 한다.'

최고 등급의 신분증이라면 마법사의 숲 어디를 가더라도 통행에 문제 될 것은 없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어딜 가더라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실례했소."

그때 가장 가운데에 앉아있던 마법사가 말했다.

"그래도 이해해주길 바라오. 그대가 보아도 스스로가 적어 낸 것들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괜히 이런 일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빠르게 신분증을 받아내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싶은 마음뿐이다.

"흠흠. 그럼 가장 먼저 적어낸 것이 사실인지 판명하는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소."

간단히 말하면 스탯이 진짜인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세 명의 마법사가 각각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서 나의 신체를 살피고, 적어낸 수치에 부합하는가 판단하는 과정.

세 명이 들어와 있는 이유도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 명이 실수를 하더라도 다른 두 명의 데이터와 비교하여 교차검증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저 세 명은 탐지에 특화된 전문가들이었다.

"자 그럼 먼저."

가장 왼 쪽에 있던 마법사의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마력을 움직여서는 안 될 거요. 혹시 마력이 충돌했다간 나나 당신 둘 중 하나는 불구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알고 있다."

그의 마력이 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고.

"으음…!"

마법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마법사의 마력이 내 몸을 다 살피는 데까지는 대충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평균 탐색 시간이 2~3분인 걸 생각해보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허어…."

그리고 탐색이 끝난 뒤 마법사는 다시 한번 탄식을 흘려보냈고, 자신 앞에 있는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마법사들은 그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탐색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마법사들끼리도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니까.

"그럼 내가 하겠소."

이번엔 가장 오른쪽 남자다.

그 역시 마력을 움직여 나를 살피기 시작했고.

"허어… 호오… 흐어…."

조금 더 격렬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마력이 내 혈관, 근육, 관절 등 스탯을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기관을 훑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10분도 더 넘는 시간이 걸렸다.

분명 마력이 내 몸을 전부 훑고 지나갔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탐색을 반복한 결과였다.

그리고 마침내 마법사가 모든 마력을 거뒀다.

다시 묘한 표정으로 서류에 무언가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만 남았군."

가운데에 있는 마법사다.

이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실력이 뛰어나 보이는 마법사였다.

그의 마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우에 앉아있는 마법사들이 그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적은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해 내 달라는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마법사의 마법이 내 몸을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을 때.

"허어…!"

가운데에 앉아있던 마법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좌우에 앉아있던 마법사들의 시선에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놀람과 경악과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한 묘한 안도감까지.

마지막 마법사의 탐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2분.

단 한 번의 탐지로 나에 대한 판단을 끝낸 것이다.

그리고 서류에 무언가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 다시 무슨 글자 하나를 적어 넣었다.

'저게 바로 내 등급이다.'

그가 서류 작성을 완료했을 때.

좌우 두 명의 마법사들이 자신이 작성한 서류를 가운데 마법사에게 전달했고.

가운데의 마법사는 세 개의 문서를 비교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렸다.

"판정 결과를 안내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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