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확인해 봐도 좋다. 내 직접 네가 전투에 사용하는 능력들과 너의 패턴을 분석하여 가장 적절하리라고 판단된 물건을 준비해 온 것이니까.]
뭘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 건지.
선물을 주면서도 저렇게 호들갑을 떠니 내심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우주적 존재 '만라의 총괄자'의 선물 상자를 개방하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티팩트 '마력 증폭'을 획득했습니다.]
'마력 증폭?'
그리고 떠오른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
[마력 증폭 – 아티팩트]
등급 : S
효과 : 현재 마력 수치를 1.5배 증폭시킨다.
'미치겠군.'
무려 마력 수치를 1.5배나 증폭시켜주는 아티팩트였다.
S등급이기는 하지만 그 위 등급이 있었으면 분명 S 이상의 등급을 배정받았을 만한 아티팩트다.
현재 내 마력은 500을 조금 넘었다.
여기에서 1.5배가 증가한다면, 단숨에 마력이 750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다.
250의 마력.
육체 스탯으로 따지자면 무려 500개의 육체 스탯을 쏟아부어야만 얻을 수 있는 수치였고.
포식으로 250의 마력을 얻기 위해서는 족히 한 달 이상을 쉬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해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수치였다.
마력 수치가 얼마나 올리기 힘든 능력치인가.
마력 수치를 타고나지 않았으면 가지고 있는 것조차도 불가능했고.
심지어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조차도 모든 스탯 포인트를 마력에 쏟아 넣을 수 없다.
그 정도로 귀한 게 바로 마력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이 아티팩트가 얼마나 사기적인 아티팩트인지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
'이걸 단번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현재 5단계의 오러 블레이드를 6단계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마력이 1000에 도달해야 한다.
'앞으로 250.'
단숨에 절반의 수치를 채워 버린 셈이었다.
'오러 블레이드 6단계는 사실상 오러 블레이드의 최종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심으로 검술 명가와 직접 대적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만라의 총괄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내게 딱 맞는 보상을 준비해 줄 줄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티팩트 – 마력 증폭'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아티팩트를 사용했습니다.]
[아티팩트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마력 : 514.23 -> 771.34]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69
>스탯
-육체
힘 : 789.11
민첩성 : 755.12
체력 : 672.21
-정신
마력 : 771.34
아티팩트를 사용하고 난 뒤 나의 스탯 정보다.
'마력이 육체 스탯을 뛰어넘었다.'
기염을 토할 만한 성과다.
내가 마법 명가의 핏줄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었건만, 마력 수치가 육체 스탯의 일부를 뛰어넘게 될 줄이야.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군.'
물론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평범한 육체 계열의 플레이어였다면 마력이 높아져서 좋을 일은 없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포함하여 다른 많은 능력들이 마력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
그때.
[마음에 드는가.]
만라의 총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입니다."
말 할 것도 없다.
내 만족감에 대해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네가 만족한다니 나로서도 꽤 뿌듯하구나. 마음 같아서는 너를 더 어비스에 붙잡아 두고 다른 인간들과 싸움을 붙여 보고 싶기도 하다만.]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다시 한번 참았다.
당연히 그냥 하는 말일 테니까.
저들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며 후원하는 것까지다.
[물론 너와 같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붙잡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
"……."
나는 대답 대신 침묵으로 답했다.
[그 존재께서도 저 꼭대기에서 너를 유심히 지켜보고 계시겠지.]
'그 존재?'
순간 만라의 총괄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라의 총괄자의 입에서 존칭이 나올 정도의 존재라면 탑의 설계자 밖에는 없다.
'우주적 존재들이 탑의 설계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다급히 만라의 총괄자를 바라봤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럼 너를 다음 관문인 마법사의 숲으로 보내주겠다.]
만라의 총괄자가 말했다.
내가 탑의 설계자에게 묻기도 전, 내 시야가 어두워졌다.
***
'젠장.'
탑의 설계자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되는가 싶었지만, 내 생각대로는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어쨌든 추측으로만 존재하던 설계자가 실존한다는 실마리는 얻어 낸 셈이다.'
실제로 그렇다.
전생에서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미래에서조차 탑의 존재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설계자가 있다는 사람들과 아니면 그런 것은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렇게 많은 의견들이 대립하고 있었지만, 나는 지금 탑의 비밀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를 손에 넣은 셈이었다.
물론 만라의 총괄자가 직접 탑의 설계자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초월의 격을 지닌 존재가 존칭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꼭대기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점까지도.
'우선 이 정도로 만족하자.'
더 알아내고 싶다고 해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언젠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럼 이제는.'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진한 마나가 느껴지는 울창한 숲.
바로 마법사의 숲이다.
'박승균. 네 놈의 숨통을 끊을 시간이 다가왔구나.'
나는 그 즉시 박명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는 정말 오랜 악연을 끝맺을 시간이다.
***
"주인님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어요오오!"
몰른이 소리쳤다.
그리고 박명철은 몰른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귀여운 동생을 보는 듯한 얼굴이다.
"어색하군요."
나는 내 몸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이주성의 몸에서 내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니 은근한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이제는 놀라지 않을 겁니다."
박명철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저는 강민 씨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거든요. 그럼. 인간인 이상 이렇게 빨리 탑을 오를 수는 없지."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안타깝게도 인간이 맞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전능한 존재는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내가 지금처럼 모든 것을 내 원하는 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탑의 70층까지다.
그 이후로 펼쳐질 세상에 대해서는 나조차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를 신뢰하되 전적으로 의지는 하지 마십시오."
박명철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말했듯 나는 신이 아니고 한낱 인간이니까.
누군가는 그저 장난으로 흘려들을 수도 있을 만한 말이었지만 박명철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졌다.
내 말을 잘 새겨 두겠다는 얼굴이다.
역시 박명철은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명철이 나를 신뢰하는 만큼 내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조금 들떴던 모양입니다. 요새 꽤 놀라운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렇겠지요."
대충 전해 듣기는 했다.
위드 길드가 탑의 3위 길드에 랭크되었다는 이야기.
"그 이후로 마법 명가 산하의 길드들은 모두 10위권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럼에도 마법 명가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명철은 내 얼굴을 한 번 살피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명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검술 명가와 다른 세 명가가 완전히 대립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호…."
흥미롭다.
대체 검술 명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검술 명가 산하 길드이자 2위 길드인 청검문. 그들이 여전히 2위에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화랑과 검술 명가 사이에서 어떤 밀담이 오고 간 것은 아닌가 추측이 되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나서 박명철은 다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무슨 답이라도 던져주길 바라는 얼굴이다.
하지만 어쩌랴.
말했듯 나는 신이 아니다.
내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은 내 전생의 경험에 의거한, 탑을 등반하기 위한 정보의 영역들 뿐.
물론 추측하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자신들의 가문을 향한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의 자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다른 명가와 선을 긋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런저런 정치 싸움을 하는 바에야 탑을 정복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쪽으로 전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그런 검술 명가를 다른 명가들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요."
맞는 말이다.
검술 명가가 움직이지 않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머지 세 명가가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
"이제 명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탑의 구조가 변하게 되리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내 말에 박명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혼란을 틈타 위드 길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제 조만간 저는 탑이 뒤집어질 만큼 커다란 일을 벌일 테고. 그때의 저를 충분히 지탱할 만큼 강해져야 합니다. 지금의 위치로도 부족합니다. 더 위로. 그리고 화랑 길드의 머리 위에까지."
"……."
탑의 정상.
나는 정상에 오를 것이고.
내가 몸 담고 있는 위드 길드도 응당 정상에 올라야 한다.
마법 명가를 무너트렸고, 결국 나는 검술 명가와도 싸우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나의 힘도, 위드 길드의 힘도 부족하니까.
다만 언젠가 그 날이 오리라는 것만은 확실했고, 그 때에 위드 길드는 나를 위한 거대한 방패가 되어 줘야만 했다.
부담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박명철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
"처음에도 그랬지요."
"……?"
"강민 씨를 처음 만났을 때요. 그 때에도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정말 마법 명가와 싸우고. 그들을 무너트릴 수 있으리라고는. 그런 짓을 하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조금은 들떠 보였다.
"하지만 해냈지요. 그리고 무너지기는커녕 상상도 못 했던 높은 곳에 올라 있습니다."
"그렇죠."
"그때와 비교해서 스케일만 커졌지 결국 같은 상황 아닙니까."
"맞습니다."
마법 명가에서 검술 명가를 포함한 다른 명가들로.
나는 뒤에서 싸우며 위드 길드는 나를 위한 방패가 되어 주는 것.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한 번 더 믿어 주십시오."
박명철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내가 답했다.
나와 박명철 사이에 그 이상의 인사치레는 오고 가지 않았다.
서로가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박승균. 그 자에 대한 소식은 알아냈습니까."
"……."
박명철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게…."
"말씀해 보십시오."
"강민 씨가 너무 빨리 올라왔습니다."
"예?"
"강민 씨가 너무 빨리 마법사의 숲에 도착하는 바람에…."
하기야.
점프 스크롤을 발견해 버려서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어비스를 돌파해 버렸으니까.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시간을 주실 줄 알았는데… 하하하…."
"그렇군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제가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겠습니다."
"아! 물론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박명철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면서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박명철.
어느새 능구렁이가 다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