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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24화 (124/277)

124화

"허, 헛!"

낡은 검의 무사가 기함을 터트렸다.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와중, 내가 그의 회심의 일격을 피해내고.

거기를 더 넘어서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눈을 부릅뜹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합니다!]

[소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자신이 배팅한 어비스 포인트를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냅니다!]

탓!

그런 메시지를 보며 나도 다시 땅에 발을 디디고 숨을 골랐다.

궁신탄영을 미친 듯이 활용한 후유증으로 복근이 뻐근하게 당겨왔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하지만 그것을 티를 낼 수는 없다.

나는 자리에 서서 최대한으로 태연하게 낡은 검의 무사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군."

그가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옆구리에 나 있는 상처를 어루만졌다.

우주적 존재라고는 하더라도 육체를 입고 있으니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충격파와 뇌전검, 오러 블레이드까지 뒤얽힌 일격이었으니 그 고통은 만만치 않으리라.

"후우…."

나는 다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우주적 존재들의 메시지를 살폈다.

그럼에도 아직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여간 콧대 높은 것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힘들긴 하지만 다시 싸움을 이어가는 수밖에.

꽈악-

나는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런데 그때.

"허허. 더 싸우겠다는 건가?"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 재미있군. 그래. 나도 조금 더 싸워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가 시선을 돌렸다.

우주적 존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

나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음?"

잔뜩이나 모여 있던 우주적 존재들이 어디론가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저분께서 자네에게 흥미를 느끼시는가 보군."

그 자리엔 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우주적 존재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 '만라의 총괄자'가 플레이어 '이주성' 님에게 대화를 요청합니다.]

'만라의 총괄자….'

내가 그토록 부르짖던 지혜의 수문장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저 존재 역시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였다.

"어쩌겠나. 나와 더 싸우겠는가. 아니면 저분과 대화를 나눠 볼 텐가."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하하. 그렇지. 그게 맞는 선택이야. 나도 저분 앞에서 재롱부리는 건 내키지 않거든."

우주적 존재 입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재롱'이라고 낮출 정도라면.

과연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의 위엄이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래. 쉽지 않을 걸세. 나와 같은 우주적 존재들도 감히 저분의 격 앞에서는 전신이 뒤틀리는 것 같은 위압감을 느끼게 되니까."

"걱정 고맙습니다."

내가 낡은 검의 무사에게 인사를 건넨 그 순간.

[우주적 존재 '만라의 총괄자'의 공간에 소환됩니다.]

다시 한번 내 시야가 어두워졌다.

***

내가 소환된 곳은 드넓은 신전 내부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지나칠 정도로 웅장한 내부 광경에 숨이 막혀 올 정도였다.

'여기로 가면 되는 건가.'

나는 정면을 바라봤다.

이 넓은 공간에 문이라고는 정면이 있는 거대한 문 하나뿐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텅- 텅-

내 발걸음 소리가 신전 내부에 울리며 커다란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문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도 아무런 응답은 없다.

'더럽게 불친절하군.'

불러냈으면 적어도 누군가를 보내지는 않더라도 안내 메시지 하나 정도는 보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문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으니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문을 열기 위해서 20,000,000 어비스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한 번 사용한 어비스 포인트는 되돌려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쩐다.'

내가 만나려고 했던 녀석은 분명 지혜의 수문장.

하지만 이 문 너머에 있는 건 만라의 총괄자다.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인가.'

분명 지혜의 수문장도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겠지만, 그중에 나를 선택한 게 만라의 총괄자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큰 문제는 없겠지.'

사실 내가 지혜의 수문장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 중 내가 아는 존재가 바로 지혜의 수문장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계획과는 조금 달라졌다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지금 내 실력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전생에서 초월의 격을 지닌 존재를 만났던 플레이어가 50층에 올랐을 때와 지금 50층에 올라 있는 나.

누가 더 강한가 묻는다면 당연히 내가 더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 나를 택한 우주적 존재가 지혜의 수문장보다 더 윗급일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래. 사용하겠다."

결정을 마친 나는 2000만 어비스 포인트를 사용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끼익- 끼기기긱-

거대한 문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벌어진 작은 틈 안에서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촤아아앗!

문틈 새에서 더욱더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나는 잠시 눈을 찌푸리고 정면을 바라봤다.

'…….'

저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는 여자의 몸에 비해서 과할 정도로 거대한 의자였다.

문 틈새로 흘러나오던 빛은 여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자의 몸집이 작다는 것 말고는 여자의 외관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얻어 낼 수 없었다.

'저게 만라의 총괄자인가.'

어쨌든 나를 초청한 게 바로 만라의 총괄자였으니.

그때였다.

[내 앞으로 오라.]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육성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꿀꺽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나조차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조금 전에 만났던 낡은 검의 무사와는 존재의 격이 다르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만라의 총괄자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낡은 검의 무사와 마찬가지로 만라의 총괄자도 자신의 본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강렬한 빛에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렇게 그녀와 대충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도달했을 무렵.

[그만 다가와도 괜찮다.]

만라의 총괄자가 말했다.

[과연. 비록 내 존재의 극히 일부만을 드러냈을 뿐이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도 나의 존재감을 버텨낼 수 있는 인간이라니.]

아직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제대로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망라의 총괄자가 하는 말을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초월의 격을 지닌 자들은 아무나 만나 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 자격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저 문을 건너올 만큼의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했느냐 하는 것이지.]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건 아주 기초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내 말을 듣고는 있는 것인지.

만라의 총괄자는 끝없이 자신이 할 이야기들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너의 모습은 꽤나 흥미로웠다. 단연코 파격적이었지. 그동안 내가 봐 왔던 그 어떤 인간의 행보에도 비할 바 없었다. 바로 그것이 나의 흥미를 끌었노라.]

"…감사합니다."

고작 대답하는 것뿐이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감히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올 정도였으니까.

[이런 생각도 했었지. 너의 삶이 혹 몇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

흠칫 놀랄 뻔했지만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억눌렀다.

만라의 총괄자의 말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게 아니었으니 굳이 여기에서 그런 티를 낼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행보를 보일 수 있었을지. 과연 너는 나를 비롯한 많은 우주적 존재들의 흥미를 이끌어낸 대단한 인간임에는 틀림없지. 그리하여 내가 너를 나의 신전으로 초청한 것이었다."

말이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한가지다.

내가 궁금해서 직접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는 것이었겠지.

그리고 그때.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한 가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음. 물론이다.}

예상외로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성이라도 내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혹시 초월의 격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 더 있는 것입니까."

지혜의 수문장과의 관계에 대해서 추측할 만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질문이었다.

[물론이다. 나 이외에도 초월의 격을 지닌 존재들은 더러 있다. 허나 그중에서 최고는 나다. 만라를 총괄하는 나의 격이야말로 그 누구에게도 비할 바가 아니지.]

꽈악

그 말을 들은 순간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지혜의 수문장 이상의 격을 지닌 존재가 바로 저 만라의 총괄자라는 뜻이니까.

'다시 한번 과거의 모든 것을 뒤엎었다.'

내 전생에서조차 누구도 만라의 총괄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히 이제 내가 받게 될 보상도 전생을 통틀어도 최고 수준의 보상이리라.

'같은 히든 피스 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히든 피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다른 이들도 너를 만나고 싶다고 아우성쳤으나 내 친히 너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아온 것이다. 궁금증은 해결되었는가.]

만라의 총괄자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하다마다.

저 말에 따르자면 나는 충분히 지혜의 수문장도 만날 자격이 있었던 것이고.

지금의 나는 그 이상의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다시 만라의 총괄자가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은 우주적 존재들은 너희와 같이 육체를 입었던 적이 있으나 더 이상 세상 모든 고통에서 자유로워진 존재. 허나 자유로움의 대가로 끝없는 무료함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지.]

무료함.

알고 있다.

몇 번이나 말했듯 플레이어들이 어비스에 와서 개고생을 하는 이유는 저들의 무료함을 채워주기 위함이니까.

[너의 모습을 지켜보며 꽤나 즐거웠다. 네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꽤 저층에 있을 때부터 나와 다른 초월의 격을 지닌 존재들은 너의 모습을 관람하고 있었으니까.]

관람이라는 단어가 그리 좋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서 너를 위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아마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내가 오랜만에 느낀 만족감에 준할 만큼 신중히 고른 선물이니까.]

드디어.

어비스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심지어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 중 최고라 자부하는 존재가 직접 선별한 보상.

"감사히 받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초월의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 '만라의 총괄자'가 플레이어 '이주성' 님에게 어비스의 클리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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