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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20화 (120/277)

120화

"반갑습니다. 이주성… 아니, 한강민 씨."

"……."

어비스의 관리자라는 녀석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외모로만 봐서는 10대 후반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겉모습만 그럴 것이지만.

그리고 이 녀석이 바로 어비스에서 우주적 존재들의 언어를 메시지로 바꿔 플레이어에게 전송하는 녀석이다.

"아, 걱정은 마세요. 당신이 구매한 외형 변경권과 이름 변경권은 제가 판매하는 아이템이고… 저에게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본래 모습을 봐야만 하는 책임이 있거든요. 관리자니까요."

"상관없다."

내가 답했다.

관리자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이다.

"호…. 너무 태연하시군요. 그런 실력으로 외모와 이름을 바꿨다는 건 분명 사정이 있다는 것일 텐데, 제가 알아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어차피 너는 어비스 내에서 플레이어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녀석은 말 그대로 관리자.

플레이어들 사이에 어떠한 개입도 할 수 없다.

내게 불이익도 끼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하하하!"

내 말에 관리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꽤나 놀랐다는 표정이지만 굳이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녀석의 역할은 딱 그 정도.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추궁할 권리는 없다.

나 역시 대답해 줄 의무도 없고 말이다.

"대단하시군요. 맞아요. 정확합니다. 역시 비범한 플레이어가 아니시군요. 그러니까 우주적 존재들께서 당신께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

말이 많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는 게 어떨까."

내 말에 관리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당신을 소환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했듯, 관리자의 집무실은 그 장소 자체가 하나의 히든 피스다.

여기에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보상은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분명 엄청난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거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 거인족과의 전장에 거대한 격의 존재들과 위대한 격의 존재들을 초청하고자 합니다. 오직 그들만요. 그 아래의 격을 지닌 존재들은 입장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뭐…?"

파격적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을 모두 쳐내고, 알곡들만 남기겠다는 말이지 않은가.

관리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여기부터가 본론이겠지.

"그 전장에 진입하는 플레이어는 강민 씨 혼자가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결국 우주적 존재들의 장난감이 되라는 말이군."

그 말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방해 없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꺼내 우주적 존재들의 유희를 충족시켜 주라는 뜻.

"으음…."

관리자가 망설였다.

그로서는 아무래도 우주적 존재들에 대한 단어를 조심해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렇다면 거인의 난이도도 높아진다는 말이겠지? 그들의 유흥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맞습니다. 물론 강민 씨의 선택에 따라서 평범하게 43층 거인의 관문을 진행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미 경고되었듯이 어비스 포인트가 회수될 겁니다."

그 말을 하며 내 얼굴을 살폈다.

혹시라도 거절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는 표정이다.

"만약 제안하면 더 많은 어비스 포인트를 얻을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추가적인 혜택도 증정될 겁니다."

"추가 혜택?"

"예. 만약 여기에서 우주적 존재들의 유희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신다면… 비밀 상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실 겁니다."

"……!"

비밀 상점.

그것 역시 전생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다.

'이게 바로 히든 피스다.'

솔직히 많은 어비스 포인트 정도로는 관리자의 집무실에 도착한 보상으로는 부족했다.

어비스 포인트야 이미 엄청나게 쌓아 올렸고.

앞으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쌓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비밀 상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대단한 아이템들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만약 여기에서 우주적 존재들의 눈에 제대로만 들 수 있다면.

'더 나아가서 초월의 격을 가진 이들도 내게 관심을 갖게 될 거다.'

초월의 격.

그것이 바로 지혜의 수문장이 지니고 있는 격이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지혜의 수문장과 크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순간에도 많은 우주적 존재들이 강민 씨에게 흥미를 느끼고 계십니다."

선택하라고는 했지만, 녀석의 눈가에는 진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우주적 존재들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에게도 큰 재미를 선물해 달라는.

어떻게 보면 간절하기까지도 한 그런 눈빛이다.

그리고 내 결정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응하겠다."

내 대답에 관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포인트 회수는 생각할 것도 없다.

그 뒤에 따를 엄청난 이득들을 그대로 흘려보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 말에 관리자가 방긋 웃으며 손뼉 쳤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그가 그렇게 외쳤고.

"잠시 후 전장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비밀의 전장에 소환되었습니다.]

[플레이어들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일정 격을 소유하지 못한 우주적 존재들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비밀의 전장이라는 곳에 소환된 순간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이었다.

'재밌네.'

플레이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주적 존재들의 출입까지 제한해 버릴 줄이야.

'VVIP무대라는 건가.'

그 말은 즉, 여기에 등장하게 될 우주적 존재들이 후원하는 어비스 포인트의 단위가 달라진다는 말일 것이다.

'잘 됐군.'

전생에서는 초월의 격은커녕 거대한 격, 혹은 위대한 격의 우주적 존재들을 만나는 것조차 힘겨웠다.

고작해야 48층을 넘어갔을 때에 한둘 정도 만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부익부 빈익빈이지.'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위대한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이 다수 입장합니다.]

[거대한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이 다수 입장합니다.]

[우주적 존재 '천둥의 문지기'가 턱수염을 쓰다듬습니다.]

[우주적 존재 '광후의 커튼'이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그 이외에도 많은 우주적 존재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높은 격을 지닌 우주적 존재들의 수가 백을 훌쩍 넘었다.

이 정도면 그 아래의 격을 지닌 이들 수천이 모인 것보다 더 엄청난 규모다.

'초월의 격을 지닌 녀석들은 없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고작 43층이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자, 그럼.'

내 상대는 누구인가.

저 정도 격을 지닌 이들이 43층에 내려왔다면, 분명 엄청난 것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우주적 존재들이 불러들일 거인에 대해서 상의합니다.]

'상의까지 하다니.'

대체 어떤 녀석을 불러내려고 저러는 건지.

[우주적 존재 '폭염의 지배자'가 언성을 높입니다.]

[우주적 존재 '북방의 한기'가 싸늘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우주적 존재 '행성의 파괴자'가 복장을 터트립니다.]

한동안이나 우주적 존재들의 상의가 이어졌다.

그렇게 30분여가 흘렀을 무렵.

[우주적 존재들의 합의가 끝났습니다.]

[잠시 후 거인족의 대족장 '칼라만'이 소환됩니다.]

'대족장….'

결국 상의 끝에 가장 센 녀석을 불러들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전생에서 내가 듣기로 등장했던 거인 중 역대로 강했던 것이 대전사 정도였다고 들었는데.

'대족장이라면….'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강한 녀석일지 가늠은 되지 않는다.

물론 걱정이 된다는 것도 아니고.

'재밌겠군.'

여기에선 다른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가진 모든 힘을 터트려서 대족장이라는 녀석을 쓰러트리면 그만이겠지.

그리고 저쪽에서 차원의 균열이 벌어지며 육중한 덩치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콰아아아앙!

'놀랍군.'

대족장이라는 녀석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우선 위엄이 통하지 않았다.

그 말은, 녀석의 모든 체력의 총합이 내 이상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거인족의 대족장의 자리에 거저 오른 게 아니라는 듯이, 놈의 전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키는 4m를 훌쩍 넘어 보였고, 양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도끼는 내 덩치를 갓난아이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였다.

'게다가 저 도끼가 대체 무슨 금속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러 블레이드에도 잘리지 않아.'

적어도 탑에 존재하는 광물은 아닌 게 확실하다.

적어도 탑에 존재하고 있는 광물 중에 오러 블레이드의 절삭력에 흠집조차 나지 않는 광물은 없으니까.

다시 한번 도끼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저토록 거대한 도끼를 내가 검 휘두르는 것 이상으로 가볍게 휘두르고 있으니, 내심 감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쾅! 콰쾅! 콰콰콰쾅!

수수깡 휘두르듯 도끼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거인 대족장.

전장 자체의 바닥이 파도라도 치는 것처럼 출렁일 정도였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실망감을 내비칩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대족장은 인간에게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소리칩니다.]

우주적 존재들도 슬슬 이런 반응을 내비치기 시작할 정도다.

상관없다.

어비스에서 내 목적은 늘 그랬듯 승리가 아닌 '쇼'다.

더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한 쇼.

오히려 저런 반응은 환영이다.

실망감을 역전시켜 줄 때에야 말로 그 쾌감이 몇 배로 증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검기의 파동은 아낄 생각이다.

사실 그렇게 하면 저 녀석은 내 상대가 될 수 없지만, 그러면 너무 쉬워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너무 싸움이 빨리 끝나면 어비스 포인트를 끌어 모을 시간이 짧아지기도 할 테고.

'힘으로는 안 돼.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해도 저 괴물 같은 괴력에는 당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기를 잘라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말했듯, 오러 블레이드에 흠집도 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이전처럼 품 안으로 달려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놈은 전번에 상대한 거인에 비해 훨씬 더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품 안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건 불가피하다.

'빈틈을 찾아야 해. 그 틈을 노리지 않는다면 품 안으로 파고드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건, 놈의 빈틈이다.

지금까지 나는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놈의 면면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당황했다고 해서 겁을 먹을 이유도, 좌절할 이유도.

내가 놈에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답은 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나는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전생에 비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녀석의 도끼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전장 전체를 크게 울렸다.

다시 한번 쏟아지는 우주적 존재들의 메시지.

'침착하게. 다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렇게 나는 몇 번의 공격을 잘 피해내며 끊임없이 대족장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리고 결국.

'됐다.'

놈의 빈틈을 찾아냈다.

수십 번이나 넘게 놈의 공격을 지켜보며 발견해 낸 틈이었다.

그 틈이란 이랬다.

'도끼를 다섯 번 휘두를 때 숨을 고른다.'

아주 찰나다.

눈여겨보지 않았으면 발견하지도 못했을 정도의 찰나.

그리고 알아냈다고 해도 저 틈을 노린다는 게 도박수로 느껴질 정도의 찰나 말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동안 내 삶에서 답을 찾아낸 이상, 그 기회를 놓친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도끼가 땅을 두드렸다.

'자, 앞으로 두 번.'

검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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