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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17화 (117/277)

117화

"내가 먼저 가겠다."

김호윤이 말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당연한 이야기다.

명가의 플레이어가 둘인데 셋이 협력해서 거인족과 싸우자는 건 이들의 체면상 맞지 않는 행동이다.

그래도 가오가 있다는 거겠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필요할지 모를 '협력'이 이들에게는 필요 없다.

여기에 남은 건 오직 '경쟁'뿐이다.

나와 구철민도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 순간에도 구철민은 나를 씹어버리겠다는 기세로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잠시 후.

쿠우웅!

거인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름답게 키는 4m에 육박하며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자태다.

'이번에는 격투 타입인가.'

거인족의 손에는 웬만한 성인 남자 정도는 쌈 싸 먹을 정도로 거대한 건틀렛이 착용되어 있었다.

그르륵-

거인족이 숨을 내쉬면서 쇳소리를 뿜어냈다.

동시에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김호윤을 향해 엄청난 양의 어비스 포인트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격이 높은 녀석들이라 그런지 후원 액수의 단위가 다르군.'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 기세라면 45층 안에 2000만 포인트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포인트를 충분히 쌓아 올릴 수 있으리라.

김호윤은 천천히 거인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과연 저 흉악한 거인족을 눈앞에 두고서도 여유가 넘치는 걸음걸이다.

문득 저 녀석이 방계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것만 같은 여유였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과연 검술명가의 품격이 느껴질 정도로.

콰아아!

거인조고가 가까워 지면서 김호윤은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의 검에서 타오르는 검기는 더욱더 크기를 불리기 시작했다.

'그래. 한번 보여봐라. 네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검술 명가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나는 김호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당연히 직계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검술 명가 플레이어들의 힘을 가늠하는 데에는 괜찮은 자료가 되어 주리라.

그리고 그때.

파앗!

김호윤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보며 거인족이 포효했다.

[그아아아아!]

포효와 함께 수십 미터가 떨어진 여기까지 바람이 몰아칠 정도였다.

그럼에도 김호윤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고.

거인족과 김호윤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구우우우!

먼저 공격한 건, 거인족이었다.

거인족의 무지막지한 주먹이 김호윤을 향해 쏟아져 내렸고.

파앗!

김호윤은 발을 굴렀다.

아무래도 거인족의 공격을 직접 막아내기는 무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저 주먹에 공격이라도 당한다면, 온몸이 으스러질 테니까.

콰아앙!

거인족의 주먹이 바닥을 크게 내리쳤다.

그 진동이 여기까지도 느껴졌다.

"헛!"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구철민이 놀라 균형을 잃을 정도로.

저 먼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화악!

그 틈 사이로 김호윤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어어어!]

거인족이 그런 김호윤을 보며 다시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다.

무식한 덩치에게 무기를 건네준 움직임은 아니다.

저 거인족의 움직임은 명백히 건틀렛을 사용하고 오랜 싸움을 거쳐 온 전사의 움직임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무게 중심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김호윤 역시 당황하지 않았다.

김호윤의 검이 거인족의 건틀렛과 충돌했다.

카앙!

한 번 울려 퍼진 쇳소리.

[?!]

먼 곳에서조차 거인족의 당혹감이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운 응수였다.

김호윤은 그 찰나의 순간 허공에서 거인족의 공격을 흘려낸 것이다.

거인족의 괴력이 무색할 만큼 김호윤은 놈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김호윤은 거인족의 주먹을 발로 디디며 허공으로 다시 한번 도약했고.

허공에서 검을 움직였다.

검술 명가 특유의 패도가 느껴지는 검무다.

콰드드드득!

검기로 거인족의 팔꿈치를 공격했다.

팔꿈치가 인정사정없이 찢겨졌다.

허공에 거인족의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그어어어!]

거인족이 다시 포효했다.

하지만 거인족 역시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됐다.

콰아앙!

거인족이 김호윤을 향해 도약한 것이다.

거인족 역시 김호윤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더욱더 진중한 자세로 싸움에 임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쿠우웅! 콰콰콰쾅!

쉴 새 없이 폭음이 터져 나왔다.

거인족의 거대한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빠른 움직임에 김호윤도 내심 당황한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미친!"

구철민이 탄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놈은 당황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오히려 더 빠르고 더 날카로워진 거인족의 공격을 역으로 이용하며 검기를 흩날리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겠다는 듯이.

마치 거인족이 진정한 힘을 보이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확실히 대단해.'

검술 명가에 대한 모든 감정을 뒤로하고서 내린 판단이었다.

고작 해봐야 스물 초반의 나이.

게다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본 거인족일 텐데도 저렇게 능숙하게 대처한다는 건.

검술 명가에서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버텨냈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우주적 존재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우주적 존재 '광기의 검호'가 플레이어 '김호윤'의 실력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주적 존재 '광풍의 검신'이 플레이어 '김호윤'의 침착함에 내심 탄성을 흘립니다.]

검과 관련된 우주적 존재들이 모두가 김호윤의 실력을 인정할 정도였다.

그렇게 이십 분 정도 김호윤은 거인족과의 싸움을 이어갔고.

결국.

콰득!

김호윤의 검기가 거인족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쿠우웅!

결국 거인족의 몸이 쓰러져 내렸고.

다시 한번 우주적 존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백만이 넘는 포인트가 김호윤에게 쏟아졌다.

그렇게 거인족을 쓰러트린 김호윤은 나와 구철민이 서 있는 곳을 향해 걸어왔다.

위풍당당한 자세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운이 좋았다. 주먹을 쓰는 거인족이었으니."

마지막으로는 마음에도 없는 겸손까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전생에서도 거인족 중 주먹을 쓰는 거인이 나타나면 운이 좋다고 했을 정도니까.

아무래도 검이나 창과 같은 무기를 쓰는 녀석이 나오면 까다롭다.

그렇지 않아도 리치가 긴 거인이었는데, 혹여 창이라도 들고 나타난다면 감히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는 중 구철민의 표정은 복잡해졌다.

자신의 생각보다 김호윤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표정이 좋지 않군."

김호윤이 내게 말했다.

"뭐…."

나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부담된다면 지금이라도 네 오만함을 취소해도 용서해 줄 의향이 있다."

"음?"

"말 그대로다.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해도 좋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내 표정을 잘못 읽은 모양이다.

헛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놈의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오히려 반대다.

'대충 30분.'

김호윤이 거인족을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녀석이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 오래 걸렸다.

확실히 거인족이 제힘을 온전히 쏟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김호윤도 아주 미세하게 벅차하는 모습도 보였을 정도였으니까.

결론은 나쁘지 않았다, 라는 정도.

역시 검술 명가라고는 하지만 방계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내가 아무리 말로 떠들어 봐야 녀석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지.

어쨌든 그 다음은.

"내, 내가 가겠다."

구철민이 나섰다.

잔뜩 긴장된 기색이다.

거인족을 혼자 상대해 본 적은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바로 앞에서 김호윤의 실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상태였으니, 더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겠지.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딱히 저 녀석에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창술 명가에 대해서 무언가 얻을 껀덕지라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잠시 후.

두 번째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우주적 존재들의 관심은 김호윤에 비해 적었다.

'이번에는 검인가.'

오히려 김호윤 때보다 난이도가 높은 거인이 나타난 셈이다.

구철민은 조금 인상을 찌푸린 채 거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런 구철민의 뒷모습을 보며 김호윤이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생각하지?"

"뭘?"

"구철민. 저 녀석의 실력에 대해서 말이다."

"아직 아무것도 안 봤는데 그런 걸 왜 묻는지 모르겠는데."

"그런가."

김호윤은 잠시 입맛을 다셨다.

"사실 나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되면 싸움에 임하는 순간의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구철민 저 녀석은 확실히 내 아래다."

"……."

조금 어이가 없었다.

제 입으로 저런 말을 내뱉다니.

그러면서 스스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혹시 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저렇게 비쳐 보일 수도 있으려나.'

만약 그렇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이라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것 역시 명가 특유의 오만함이기도 했으니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이 정도면 잘 참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어쨌든, 저 녀셕은 꽤 고전할 거다."

김호윤이 말했고.

나는 말없이 구철민을 바라봤다.

잠시 후 구철민의 싸움이 시작됐다.

역시 김호윤의 예상대로였다.

구철민은 검을 든 거인족과의 싸움에서 꽤나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패배하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 시점에서 거인과 혼자 싸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손꼽을 실력은 분명하지.'

말했듯,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세 명이 힘을 합쳐야 겨우 상대할 수 있는 괴물이다.

그럼에도 간혹 사망하는 플레이어도 나타날 정도였으니.

'그래. 저 녀석도 대단한 건 맞아.'

다만 비교 대상이 검술 명가의 김호윤이었을 뿐.

확실히 우주적 존재들도 간혹 심심해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구철민은 거인을 쓰러트렸다.

쓰러트리기는 했지만.

'한 시간도 넘게 걸렸군.'

그리고 구철민이 걸어왔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구철민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대한 힘은 내색을 감추려는 녀석의 노력이 구철민을 더더욱 안쓰럽게 만들고 있었다.

"그, 그렇게… 여유롭게… 서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구철민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네놈도… 곧… 거인족이 얼마나… 강한지 느끼게 될… 거다…!"

알지.

알다마다.

내가 전생에서 몇 명의 거인과 싸웠고, 44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43층에서 머물렀는지.

저 녀석은 상상도 못 할 거다.

아무런 능력도 가지지 못한 채 거인족과 싸워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혈계를 물려받은 저 녀석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잠시 후.

[세 번째 거인족의 전사 '코물리'가 소환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고, 잠시 후 거인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

"창을 들고 있는 거인족이라면…."

당연히 검과 주먹보다 훨씬 까다로운 거인이다.

모든 무기 중 가장 다루기 쉽고, 리치도 긴 무기.

그리고 거인족의 창이라면 그 리치는 족히 10m에 이를 테니까.

'아무래도 우주적 존재들이 장난질을 친 것 같은데.'

거인족이 등장한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녀오마."

나는 검을 뽑아 들고 거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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