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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11화 (111/277)

111화

그야말로 난리가 난 상황이다.

모두가 62층을 돌파해 내는 건, 검술 명가 혹은 화랑 길드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황에서 위드 길드가 62층을 돌파해 냈다니!

명가와 거대 길드들은 아직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로서도 크나큰 충격인 건 분명했다.

다른 길드도 아니고 아직 top10 안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위드 길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으니까.

물론 그건 거대 세력들의 입장이다.

탑의 플레이어들은 다시 한번 위드 길드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던 와중, 62층을 최초로 돌파하고 난 뒤로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위드 길드로 발걸음을 향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리고 그 시각, 위드 길드의 활약에 더불어 가장 큰 혼란에 빠져 있는 건 다름 아닌 체술 명가였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체술 명가의 실세인 최강혁.

그는 일간지를 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알다시피 화랑과 공조하여 탑을 빠르게 공략하겠다는 야심을 세우고 있던 찰나였건만.

정작 62층을 돌파한 건 위드 길드였고.

더 나아가 들려온 소식에 처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연빈이, 연빈이가 사망했다니! 그리고 최준혁 그 자식은 또 왜!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어서 나를 납득 시켜.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대가리를 뭉개 버릴 테니까!"

그가 자신 앞에서 최준혁과 최연빈의 사망 소식을 전한 남자를 노려보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 그…!"

지금 최강혁의 모습은 인간 같지 않았다.

성난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만 같았다.

"말해! 대체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우리를 건드린 거냐고!"

그가 분노한 건, 위드 길드의 소식보다도 자신 명가 소속의 플레이어가 사망했다는 점이었다.

방계인 최준혁은 둘째치더라도, 그의 친동생인 최연빈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체술 명가의 기대주 중 하나였고, 그가 아끼는 동생이기도 했으니까.

"최, 최연빈 공자님을 해치운 범인은 알 수 없지만… 최준혁 공자님을 처치한 건… 이, 이주성이라는…."

콰아아앙!

최강혁 쇠로 된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쇠로 된 탁자는 마치 종잇장처럼 일그러졌고.

"이주성? 이주성은 또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 같은 새끼야!"

"아, 아직 그것까지는 파악이…!"

최강혁의 눈에서 불똥이라도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이 버러지들이….'

콰아아앙!

"흐어어억!"

최강혁의 고함 소리에 집무실 내부가 굉음과 함께 크게 뒤집혔고.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오줌이라도 지릴 것처럼 온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최강혁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이주성이라는 자를 찾아가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가 직접 어비스로 내려가 이주성이라는 플레이어를 찢어 죽일 수는 없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어비스에서 체술 명가의 플레이어가 죽었다.

그로 인해 체술 명가의 차기 가주로 촉망받는 자신이 복수를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것이야 말로 체술 명가의 명예를 깎아 먹는 일이다.

고작 일반 플레이어에게 목숨을 잃어, 쪼잔하게 복수하러 40층에 내려온다?

절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지금 어비스에 우리 명가 쪽의 플레이어가 있느냐."

"예. 그,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알려라. 이주성. 그자를 만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이라고. 만약 이주성을 보고도 놓친다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날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고…."

최강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를 억누르고 또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최강혁은 그 옆에 있는 플레이어를 바라봤다.

움찔!

타오르는 것 같은 그 눈빛에 남자가 몸을 움츠렸다.

"너는… 당장… 당장 화랑 길드에 연락을 취하거라. 철기영. 그 망할 작자를 당장 내 눈앞에 데려 오라는 말이야!"

최강혁이 다시금 소리쳤다.

"아, 알겠습니다!"

두 남자는 다급하게 외치며 최강혁의 집무실 밖으로 달음질쳤고.

"으아아아아아!"

홀로 남은 방에서 최강혁은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손발이 부르르 떨려왔다.

도저히 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애꿎은 화랑 길드에게로 향했다.

위드 길드의 62층 정복 소식과 체술 명가 플레이어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까지.

정작 화랑 길드는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건만.

그에게는 지금 화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화랑…. 화랑 이 쓰레기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철기영의 그 호언장담.

반드시 탑을 돌파하고 최고의 길드 자리를 지켜내겠다던 그 자신감이 허세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작 위드라는 듣도 보도 못한 녀석들에게 뒤처질 정도라니…. 망할 쓰레기 같은 새끼들에게 내가 낚였다는 말인가…!'

화랑길드에 대한 불신이 최강혁의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

42층의 이름은 마석의 관문이다.

그리고 41층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와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41층과 다른 점이라면, 1:1대전이 아니라는 것 정도가 있겠지.

이를테면, 무차별 대난투라고 해야 할까.

말 그대로다.

42층의 플레이어들은 넓은 공터에 소환되어 그 이후로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야만 한다.

당연하게도 그 밖에서는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들의 끝없는 싸움을 관람하며 어비스 포인트를 후원하고 말이다.

42층의 클리어 조건은 42층에서 생존하며 '어비스의 마석'을 손에 넣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마석을 지키며 24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42층 마석의 관문 내에 존재하는 마석의 개수는 한정되어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어비스의 마석을 쟁취해야만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홀몸으로 42층에서 살아남기란 정말 지옥 같다는 점이지.'

개수가 한정된 마석을 소유하고 24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특히나 자신의 마석을 지킬 힘이 없다면, 정말 끔찍한 24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전생에서도 정말 갖은 고생을 하며 42층을 통과했던 기억이 난다.

뭐….

그렇지 않은 층이 있기나 했겠느냐마는.

어쨌거나 각종 정치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게 바로 42층 마석의 관문이다.

간혹 같은 명가, 혹은 길드의 소속원끼리 은밀한 곳에서 만나 자신이 가진 마석을 넘겨주는 경우도 번번하고.

미리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협의한 뒤에 홀로 다니는 플레이어를 무작위로 사냥하는 플레이어들도 많다.

'마석을 소유한 플레이어 머리에는 징표가 생겨나니까.'

그게 문제다.

마석을 소유하고, 그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은 상태라면 모두의 표적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24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경험인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석을 목숨값으로 넘겨줘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정말 운이 없다면 평생 마석 하나 손에 넣지 못한 채 42층에서 썩어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

'지금에야 물론 그런 걱정은 없지.'

내가 마석을 들고 플레이어들 한복판을 거닌다고 할지라도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마석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걱정도 되지 않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곧 41층을 벗어나 42층으로 향했다.

[42층 마석의 관문에 진입했습니다.]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

[플레이어 '이주성' 님이 42층 마석의 관문에 입장했습니다.]

42층에 입장한 순간 허공에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다.

[플레이어 '우민지' 님이 마석을 획득했습니다.]

[플레이어 '우민지' 님이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강만준' 님이 마석을 손에 넣었습니다.]

.

.

.

끝없이 쏟아지는 메시지들에 내가 등장했다는 메시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게 바로 42층 마석의 관문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끝도 없는 마석 쟁탈전.

죽고 죽이는 무한 혈투.

그리고.

[우주적 존재 '강철의 무적자'가 환호합니다.]

[우주적 존재 '비열한 거부'가 막대한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우주적 존재 '쟁탈의 무투가'가 더 격렬히 싸우라고 소리칩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가 바로 우주적 존재들이 가장 열광하는 곳이기도 했다.

인간들의 심리전과 치밀하고 치열한 혈투가 이어지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정말 높은 격을 가진 우주적 존재들은 아직 이곳에 없지만.

어쨌든 인간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발악이지만, 저들에게는 그저 유희거리에 불과하지 않던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대충…. 마석의 관문 서부인가.'

마석의 관문에 대한 지리는 이미 꿰뚫고 있다.

전생에서 여기에서 보낸 시간만 족히 수년에 가까웠으니까.

24시간을 버티기 위해 수백 번도 넘게 마석을 넘겨주거나 버려둔 채 달아나기를 반복했고.

수백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안 가 본 곳이 없고, 숨어보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전생에서 그렇게 살아남았다.

쓸쓸한 기억이지만, 분명 지금에서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42층의 지리를 꿰뚫을 수 있는 셈이니까.'

나는 검을 가볍게 쥐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탐색전이다.

마석을 들고 있는 이들에게 징표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까지는 알 수 없다.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향하는 곳은 42층의 중앙부다.

북부와 남부, 서부와 동부 모든 곳이 교차하는 광활한 평원이 위치한 곳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게 마석의 관문 중앙부지.'

전생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죽고 죽이고, 정치와 협잡을 일삼는 무대가 바로 중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에서야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곳에 가면 무조건적으로 마석을 들고 있는 이들이 있을 거고.

'더구나 명가들의 플레이어와 거대 길드의 플레이어들도 있겠지.'

마석을 들고 바로 43층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

앞으로 만나게 될 탑의 주요 플레이어들과 긴밀한 대화를 충분히 나눈 뒤에 43층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더 나아가 그들을 잘근잘근 짓밟아 주며 내 이름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그렇게 여유롭게 중앙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직도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드넓은 마석의 관문이었으니 꽤 많은 플레이어가 모여 있다고는 해도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플레이어를 만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를 더 걸어 슬슬 중앙부와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저 앞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다.

'재미있겠군.'

나는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저기에 어떤 녀석들이 있건 나를 해할 수 없다는 자신감 덕분이기도 했고.

운이 좋으면 저기에서 곧바로 마석을 획득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 후.

'호오….'

눈앞에서 꽤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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