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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09화 (109/277)

109화

한명준.

그는 내색을 안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이주성이라는 남자가 너무도 거대하게 보였고, 정말 자신과 같이 41층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콰앙! 콰콰쾅! 콰쾅!

강민의 검을 한 번 막아낼 때마다 온몸이 저릿했다.

강민의 공격을 눈으로 따르고 검으로 막아내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이게 살살하는 거라고? 뻥 아니야?'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쇼'를 위해 자신의 실력에 맞게 힘을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강했으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강하다고 했지만, 적어도 한명준 그가 탑을 오르며 봐 왔던 플레이어 중, 이렇게 강한 이들은 없었다.

심지어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통틀어도 말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온 거지? 아니지. 검술 명가 쪽 플레이어 같은데….'

하지만 그런 한명준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어비스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두 사람의 대전에 열광합니다.]

어느새 백 명도 넘게 모여든 우주적 존재들과 그들이 후원하는 어비스 포인트가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으니까.

'미친.'

그동안 한명준은 41층에서 열 번이 넘는 대련을 치렀다.

42층에 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 대전에서 후원받은 최대 액수가 고작해야 2만 포인트.

그리고 구경하는 우주적 존재의 최대 수는 스물 남짓.

'역대급이야. 이건 진짜 역대급이라고.'

자신이 다른 길드원에게 듣기로도 41층에서 이런 파격적인 반응은 전무했으니.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멈출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런저런 상처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그 사실을 통해 한명준은 이주성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한명준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수치스러웠고, 동시에 절망스러웠다.

루키라는 호칭에도 화랑의 괴물 같은 플레이어들을 보며 좌절감을 맛보고 있던 한명준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최소한 자신과 같은 층의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나름 손에 꼽힐 수 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X발. 손에 꼽기는. 듣도 보도 못한 새끼가 이렇게 강한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괴물들이 탑에 득실댄다는 거야!'

울화가 치밀었다.

올라도, 올라도.

항상 머리 위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고.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였다.

"나를 공격해라."

강민의 짧은 한마디가 들려왔다.

"뭐, 뭐…?"

한명준은 강민의 공격을 힘겹게 받아내면서도 급하게 되물었다.

"쇼를 하려면 서로 피 정도는 뿜어 줘야 하지 않겠어?"

강민의 눈빛은 진짜였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피를 흘리는 것 따위 당연히 감수하겠다는 결의에 찬 눈빛이다.

다시 두 사람은 공방을 주고받았다.

모든 관절이 저릴 만큼 끔찍한 통증이 한명준을 엄습했지만.

그 순간.

"……!"

강민의 빈틈이 드러났다.

서로 검을 마주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만약 한명준의 실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졌으면 결코 발견해 내지 못했을 빈틈이었다.

그만큼 강민의 연기는 완벽했다.

그리고 이 짧은 순간에 저런 빈틈을 드러낼 수 있는 강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도 되지 않았지만.

푸학!

한명준은 검을 내질렀다.

강민의 옆구리를 한명준의 검이 스쳐 지나갔고.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플레이어 '한명준' 님을 후원합니다.]

[다수의 우주적 존재들이 당장 플레이어 '이주성' 님을 베어 버리라고 소리칩니다.]

다시금 우주적 존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촤아아악!

강민의 오러 블레이드가 한명준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커헉!"

말도 못 할 정도의 통증이 가슴으로부터 치솟았다.

오러 블레이드 때문이다.

평범한 검으로 베이는 상처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한명준은 깨달았다.

'깊지 않아.'

아픈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금세 나을 수 있을 정도의 상처다.

역시나 그 찰나의 순간에 이렇게 절묘하게 공격의 깊이를 조절해 냈다는 뜻이리라.

'말도 안 되는 사람.'

그리고 그때 강민이 눈짓했다.

검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강민이 먼저 대전을 포기한다는 건, 우주적 존재들의 의심을 살 수 있을 테니.

그리고 한명준도 스스로 대전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어차피 포인트는 모을 만큼 모았다.

당장 42층에 올라서도 충분할 정도로 많은 포인트를 단 한 번에 쓸어 담은 셈이었으니.

"대, 대전을 포기하겠습니다!"

한명준이 소리쳤고.

후우웅!

강민의 검이 한명준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

한명준.

그는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전에 계획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 호흡에 충분히 맞춰 올 정도였으니까.

'물론 내가 몇 템포 늦추기는 했다만.'

어쨌든 우주적 존재들의 관심은 충분히 끌었다.

한명준이 대전 포기 신청을 하고 난 뒤로 다시 우주적 존재들이 나를 향해 구애하기 시작했다.

[우주적 존재 '결의의 용사'가 상대를 처치하라고 애원합니다!]

[우주적 존재 '결의의 용사'가 30,000 어비스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우주적 존재 '결의의 용사'가 왜 가만히 있느냐고 아우성칩니다!]

이런 식으로 항복 신청을 받지 말라고 항의하는 우주적 존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입꼬리를 비틀며.

"허락한다."

라고 말해 줬다.

[우주적 존재 '결의의 용사'가 이것은 싸움이 아니라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칩니다.]

뭐, 저 녀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저 녀석 말고 이미 내 팬이 된 우주적 존재들은 후원 메시지를 쏟아 보내고 있었으니까.

[우주적 존재 '입이 가벼운 장난꾸러기 요정'이 당신의 이름을 전파합니다.]

그거면 됐다.

작은 손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한명준이 내게 외쳤다.

"혀, 형님! 꼬,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새 나를 향한 호칭이 형님으로 바뀌었다.

역시 단순한 근육 덩어리.

존경심 가득한 눈빛.

한명준은 원래 그랬다.

과거에 나를 막 대하지 않았던 것도 나의 집념과 실력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고.

지금의 내 실력을 직접 느꼈다면 저 녀석은 나에게 비할 바 없는 호감을 느끼고 있을 테지.

"할 수 있으면."

"예, 예?"

물론 놈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은 없을 거다.

놈이 내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도, 가능성도 없는 건 당연하고.

놈이 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니까.

딱히 악감정은 없지만, 굳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도 없다.

그렇게 한명준은 곧 자신의 대기실로 떠나갔고.

나는 이제 41층에서 마지막 한 번의 대전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실에 돌아온 순간 나를 향해 대전 신청 메시지가 몇 개 도착했다.

처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만약 박명철에 이어 한명준까지 죽여 버렸다면, 이마저도 없었겠지.

그럼 이제 다시 선택의 시간이다.

41층의 마지막을 매듭지을, 그리고 앞으로 내 계획에 더 큰 추진력을 달아 줄 상대는 누구일지.

그리고 이번엔 온 힘을 다할 생각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두 번 연속 우주적 존재들의 시선을 완전히 교란시킬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다음 상대를 결정했다.

이번엔 체술 명가의 방계 플레이어였다.

***

'건방진 새끼.'

체술 명가의 방계인 최준혁.

그는 '이주성'이 자신의 대전 신청을 수락했다는 사실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주성이라는 플레이어가 거슬리던 참이다.

'고작 명가도 아닌 주제에 그렇게 설치고 다닌다고?'

자신은 명가임에도 불구하고 직계들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비단 이주성이라는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뿐만이 아니라 현재 탑에서 날고 긴다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어느 정도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기도 했고.

덕분에 그는 지금껏 41층에 꽤 오랜 시간 머무르며 많은 플레이어들을 죽였다.

당연히 그에게 죽은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명가가 아닌, 일반 플레이어들이다.

'그리고 말이야.'

그가 더욱더 강민을 증오하게 된 건 조금 전.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를 처치하고 난 것을 본 뒤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고작 일반 플레이어인 주제에 마법 명가에게 손을 대다니.

비록 마법 명가가 몰락하고 있었고, 자신과 같은 명가가 아닐지라도.

명가의 피를 이었다는 그 자존심이 결코 강민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넌 내 손으로 죽인다.'

방계지만, 혈계는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혈계조차 없는 이주성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한껏 입꼬리를 비틀며 이주성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던 중.

[플레이어 '이주성' 님이 잠시 후 소환됩니다.]

강민의 소환 메시지와 함께, 동시에 우주적 존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주적 존재들은 강민만큼이나 최준혁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현재 최준혁의 전적 때문이다.

[15전 15승 0패 15KILL]

전승이며, 동시에 모든 상대를 살해한 이런 전적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이주성, 그러니까 강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럼 그렇지.

역시 방계라는 것들은 모두 저런 표정이다.

한명준과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저 녀석의 상판을 본 순간 기분이 더러워졌다.

'잘 됐어. 명가 중 제일 만만한 체술 명가라면, 내게도 큰 부담이 없겠지.'

현재 화랑과 체술 명가가 손을 잡고 있기는 했지만, 명가 중 가장 만만한 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체술 명가다.

'게다가 체술 명가가 화랑 길드와 손을 잡은 상황이야. 그 둘이 정말 날아오른다면 내 입장에서도 그리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정말 두 세력이 시너지를 내면서 화랑 길드가 치고 올라가면 위드 길드의 성장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위드 길드에게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돌아가는 찰나다.

여기에서 내가 조금 제동을 걸어 줄 필요가 있다는 뜻.

'그러니까 여기에서 너는 죽어줘야겠다.'

내가 개미굴에서 처치한 한 명과 여기에서 만난 저 녀석.

무려 두 명의 혈계가 사라지게 된다면, 체술 명가 내부에 당연히 혼란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때.

"건방진 새끼."

최준혁이 말했다.

놈은 자신의 주먹 위에서 번득이는 건틀렛을 쓰다듬고 있었다.

"이 주먹으로 너 같은 벌레들 열다섯 마리를 쳐죽였어."

"더 지껄여 봐."

내가 말했다.

한껏 비아냥대면서.

"미친… 새끼가…."

그와 함께 우주적 존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대화는 듣지 못해도 저들도 분명 나와 최준혁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는 캐치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

[대전이 시작됩니다.]

나와 최준혁의 싸움이 시작됐다.

싸움이 시작됐지만, 최준혁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저 녀석도 내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궁신탄영을 사용하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차피 놈은 여기에서 죽는다.

그리고 우주적 존재들이야 내가 궁신탄영을 가지고 있건 말건.

그것이 체술 명가의 혈계이건 말건 관심은 없다.

그 말은 즉, 내가 궁신탄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밖에 알려질 이유는 없다는 거고.

'재밌겠어.'

최준혁, 저 녀석을 처치하기 전에 잠깐 골려 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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