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이, 이게 대체 뭐요?"
해밀턴은 내가 내민 여왕개미의 턱뼈를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턱뼈의 정체도 모르면서 이렇게 놀라는 건, 오로지 천부적인 대장장이로서의 감 때문이리라.
"탑에서 구한 물건입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 그럴 수 있겠소…?"
미스릴, 아다만티움, 그리고 오리하르콘을 줬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이다.
그만큼 여왕개미의 턱뼈가 훌륭한 재료라는 뜻이겠지.
"허어… 호오… 흐어… 하아아…!"
여왕개미의 턱뼈를 어루만지는 해밀턴의 입에서 쉴 새 없이 감탄 섞인 신음이 흘러 나왔다.
"이, 이것을… 이것을 내가…. 정말 내게 맡겨 줄 수 있겠소?"
해밀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한번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면 왜 여기를 찾아왔겠습니까."
"미치겠군. 정말 미치겠어. 아직도 당신이 주고 간 금속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이런 선물을 내게 주다니…."
고작 재료를 맡긴 것을 보고 선물이라니.
해밀턴은 역시 천성 대장장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다른 대장장이에게 맡겨도 충분히 훌륭한 무기가 나올 만한 재료지만.
해밀턴의 손을 거치면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무기로 거듭나게 될 테니까.
"우선, 우선… 장비를 벗어 두고…."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해밀턴의 시선은 턱뼈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툭
나는 내가 입고 있던 장비들을 벗어 해밀턴의 공방 한 곳에 가지런히 내려놨다.
갑옷들을 벗고 나니 갑옷 아래에 덧대 입는 천 옷이 드러났다.
'냄새가… 조금 심하긴 하군.'
안 그래도 옆에서 몰른이 코를 꽉 막고서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해밀턴의 포스에 기가 눌려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냄새가 심해요오오오, 라고 표정으로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시간은 쓸 수 있을 만큼 쓰셔도 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데…."
하루빨리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긴 했지만, 해밀턴을 재촉할 생각은 없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니까.
"3일. 3일만 시간을 주시오."
"……."
역시 해밀턴이다.
박명철이 내 탑 오르는 속도를 보고 놀랄 때 아마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와 몰른은 25층 마을의 여관으로 향했다.
몸을 씻기 위해서다.
허름한 옷에 악취가 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흠칫 놀라 몸을 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그만큼 내가 열심히 탑을 올랐다는 증거일 뿐이다.
***
몸을 씻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역시나 몰른은 먼저 자리를 잡은 채로 맥주와 각종 음식들을 열심히 음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개미 등껍질을 팔아 자금이 넉넉해졌으니, 몰른에게 충분히 음식을 시켜 주기도 했었고.
척
나는 몰른의 맞은편에 앉았다.
맥주에 취해 불그스레 볼이 달아오른 몰른은 다짜고짜 품 안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주인님!"
피리다.
개미굴에서 연습했다던 그 피리 말이다.
"제가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요오!"
그러더니 입에 피리를 가져다 댔다.
연주를 하려는 모양이다.
몰른이 술 취한 채 연주하는 건 한두 번도 아니었고.
탑의 주점에서는 이런 식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음유시인들이 꽤 있었다.
삐리리~
그렇게 몰른이 연주를 시작했을 무렵.
[펫 몰른의 경험치가 100%가 되었습니다.]
[펫 몰른의 단계가 상승합니다.]
[펫 몰른에게 새로운 능력 '바람의 노래'가 추가됩니다.]
'어…?'
그래, 맞다.
잊고 있었다.
펫에게는 단계라는 것이 존재하고.
경험치가 차오르며 단계가 상승하면서 새로운 능력이 추가된다는 것을.
다만 내가 그렇게 유의 깊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 뿐이다.
'아무래도 펫을 가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으니까….'
전생에서도 그랬고, 다시 살아나게 된 다음에도 그랬다.
늘 혼자 활동하는 걸 추구했으니, 펫에 대해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몰른의 정보를 확인했고.
[펫 – 몰른]
>등급 : AAA
>2단계
>특성 : 버프
>승리의 노래 : '몰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모든 스킬의 지속 시간이 1.5배 상승한다.
>바람의 노래 : '몰른'의 피리 연주를 듣게 되면 20분간 모든 스킬의 사용 대기 시간이 50% 감소한다.
맙소사.
사용 대기 시간 50% 감소라니.
이런 옵션이 추가된다면, 전투의 대부분을 각종 능력에 의존하는 나로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뭐, 뭐야?"
"이거 뭐지? 사용 대기 시간 감소?"
"미친! 이거 뭐야!"
플레이어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 능력은 사기적인 버프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나는 다급하게 몰른의 연주를 멈추게 했다.
굳이 이런 사실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몰른의 피리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았고 아직 테이블 위로 올라가지도 않았으니 몰른의 버프 효과라는 것을 다른 플레이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왜, 왜요오!"
"몰른. 앞으로 그 연주는 내가 있을 때에만 해 줬으면 좋겠다."
"주, 주인님…!"
몰른이 감동한 모양이다.
눈이 반짝반짝거렸다.
"오늘은 연주 말고 같이 맥주나 마시자."
내가 말했고.
몰른은 내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
그렇게 해밀턴의 작업이 마치길 기다리며 나는 앞으로 어비스에서의 계획에 대해서 다시 되짚었다.
어비스.
말했듯 그곳에는 우주적 존재들이 관람객이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은, 모든 층을 종합한 포인트다.
포인트란 일종의 어비스에서의 화폐와 같다.
어비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하거나 물약 같은 것들을 구입할 수 있는 화폐 말이다.
'최대한 포인트를 아껴야 해.'
물론 내 전생에서는 포인트를 아낄 여유는 없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포인트를 아끼는 생각 따위는 할 수 없었다.
한 개의 포인트라도 더 써서 물약을 구입했고, 장비를 구입해야만 겨우 괴물 같은 플레이어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지금에 비해서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훨씬 낮을 텐데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
지금 시점에서야 어비스에 고랭커 플레이어들이 즐비하지만, 전생에서만 하더라도 어비스는 그리 높은 층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70층까지 돌파해 냈을 시점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포인트를 낭비할 이유가 없어.'
장비는 충분하다.
지금의 장비만으로도 웬만한 고랭커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는 수준일 것인데.
해밀턴이 무기만 완성해 준다면 명가의 플레이어들의 무기보다 더 훌륭한 장비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물약도 마찬가지지.'
적어도 45층 이전까지 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을 거다.
이건 내가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생각할 건, 어떤 존재와 이야기를 나눌지에 관한 것이다.
전생에서도 분명 우주적 존재와 대화를 나눈 이들이 있었다.
모두가 명가, 혹은 거대 길드의 길드장 정도뿐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정보에 대해서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어.'
정보 공유에 개방적이었던 전생에서도 우주적 존재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주적 존재를 만나고 온 플레이어들이 강해졌다는 것.
그러니까 우주적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공공연한 히든 피스의 일종이었다.
문제는 알고 있으면서도 우주적 존재를 만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뿐.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라 불렸던 이는 바로 지혜의 수문장이라는 존재다.
우주적 존재는 많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몇 명이라고 셀 수도 없을 만큼.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혜의 수문장'이라는 우주적 존재는 독보적이었으니.
'그와 만나게 된다면,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물론 지혜의 수문장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포인트는 천문학적이다.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우주적 존재들에게 '후원'을 받아야 한다.
즉, 수많은 우주적 존재들에게 내 존재를 어필하고,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지금의 나는 독보적으로 강하니까.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
다시 날이 밝았다.
드디어 오늘이 해밀턴이 약속했던 그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웬만한 사건에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 나였지만, 새로운 무기를 앞두고 있는 이 순간에는 설렘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가자.'
아직 오늘이 다 간 건 아니지만,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고 있는 몰른은 남겨 둔 채로 해밀턴의 공방으로 향했다.
해밀턴의 공방은 닫혀 있었다.
손님을 받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 안 끝난 건가.'
아무래도 여왕개미라는 재료는 낯설 수밖에 없을 거다.
심지어 이 시점의 탑이라면 해밀턴조차 단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는 건 당연할 테니, 해밀턴도 제련을 하는 데 있어서 신중할 수밖에.
우선은 밖에서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내 설레는 마음은 둘째치고서라도 해밀턴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때.
끼기기긱!
해밀턴의 공방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내 심장이 쿵, 쿵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공방의 문이 완전히 열렸고.
해밀턴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해밀턴은 방긋 웃고 있었다.
해밀턴은 고개를 끄덕였고.
"완성되었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해밀턴을 향해 다가갔다.
"어떻습니까. 결과물은 잘 나왔습니까?"
해밀턴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렸다.
끼기긱! 쿵!
해밀턴은 누가 오기 전에 다급하게 다시 공방의 문을 열어 잠갔다.
"다행이오. 당신이 기다리고 있어서. 혹시 또 날파리들이 끼어들면 귀찮아질 뻔했는데."
그래도 손님인데 날파리라니.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해밀턴이 나를 이렇게 좋아하게 됐다는 게 새삼 낯설 지경이었다.
"우선 여기에서 기다리시오. 손질을 맡긴 장비는 저쪽에 있으니…."
선반 위를 가리킨 해밀턴이 급하게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해밀턴이 손질한 장비는 다시 완벽한 상태로 복원되어 있었다.
마치 새로 만든 장비처럼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나는 다시 장비를 착용했다.
해밀턴이 조금 손을 본 건지, 이전보다 내 체형에 더 잘 맞았고, 움직이는 데 더 편해졌다.
그렇게 잠시 후.
해밀턴이 공방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여왕개미의 뿔 색 그대로 검은색이었고, 위쪽으로 아주 조금 휘어 있었다.
여왕개미의 턱뼈의 모양을 최대한 살려서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이거요. 확인해 보시오."
해밀턴이 내게 새로운 무기를 건넸고.
나는 무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무기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