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콰르릉! 콰아앙!
성문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성문과 성벽의 잔해들이 잠시나마 성의 내부와 외부를 차단했다.
"캬아아악!"
"키르르륵!"
[힘 2.1을 포식했습니다.]
[힘 1.8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2.2를 포식했습니다.]
[힘 1.9를 포식했습니다]
.
.
.
개미는 목숨을 잃으며 내게 스탯을 남기고 떠나갔다.
카가각! 카가각!
무너진 잔해 너머에서 개미들의 괴성이 끝없이 들려왔다.
잔해를 치우기 위해 발버둥치는 칼날 개미들이 만들어 낸 소음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 나는 빠르게 성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개미 성의 내부는 무척 복잡하다.'
개미들의 특성 때문이다.
지구의 개미들의 터전인 개미굴 역시도 무척 복잡한 구조를 자랑한다.
그들은 그 내부에 하나의 생태계를 조성해 놓을 정도였으니까.
탑의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이 거대한 성 자체가 개미들의 생태계나 다름없었으니.
구조도를 한, 두 번 본다고 하여 외울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심지어 여왕의 방은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 놓여 있다.'
전생에서도 개미 성에 잠입했다 실종된 플레이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번 길을 잘못 든다면, 영영 길을 잃어 개미굴 내부에서 죽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개미들의 성 내부의 지도를 만들겠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감각이 있으면, 지도 따위는 필요 없지.'
나는 벌써 성 내부로 진입해 달리는 와중에도 초감각을 끌어 올려 내부의 구조를 머릿속에 담고 있는 중이다.
'빨리 지하로 내려가야 해.'
성 자체는 높이 솟아 있지만, 여왕개미는 가장 낮은 층에 숨어 있다.
성의 윗층은 일개미나 병정개미들의 공간일 뿐이다.
벌써 스무 개도 넘는 방을 지나쳤다.
모두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니, 전투 개미들이 머물던 방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
'저기다.'
나는 초감각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발견했고.
그곳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아직까지 나를 추격하는 개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아래층으로 향하는 입구에 도착했고.
다시 한번 초감각을 사용해 아래층의 상황을 살폈다.
'젠장.'
아래층의 상황을 살핀 순간,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개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건, 나를 쫓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저기에서 기다리고 있었군.'
말 그대로 개미들은 아래층의 입구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는….'
셀 수 없다.
수 백 마리가 좁은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우거의 신체는 앞으로 대략 15분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남은 15분을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곧 성 밖에서도 개미들이 쏟아져 올 테니까.
결국 아래층으로 내려가 길을 메우고 있는 개미들을 모두 쓰러트려야 한다는 뜻이다.
은신과 궁신탄영을 제대로 활용만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니, 무조건 할 수 있다.
스태미너 물약을 먹은 덕분에 아직도 체력은 건재한 상태였으니.
'가자.'
나는 바로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겼고.
저벅
그 순간.
"캬아아아악!"
"키에에에에에!"
내 발 소리를 들은 칼날 개미들의 미친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소리를 질러주면 나야 고맙지.'
어차피 은신 덕분에 놈들은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놈들이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내 '소리' 뿐인데.
저렇게 자신들의 소리로 나의 소리를 묻어 준다면 나로서는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콰아아앙!
궁신탄영을 사용했다.
궁신탄영이 만들어내는 굉음조차 묻힐 정도로 칼날 개미들의 소음은 성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몸을 회전시켰다.
궁신탄영의 가속력과 함께 내 몸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오러 블레이드는 다시 한번 날카로운 믹서기의 칼날처럼 칼날 개미들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각!
허공에 칼날 개미들의 파편들이 무수히 튀어 올랐다.
놈들은 더욱더 큰 혼란에 빠져 허공에 대고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으니.
콰직! 콰드득! 콰드드득!
애꿎은 제 놈들의 동료를 공격하는 장면들도 빈번하게 펼쳐지는 중이었다.
포식 스탯 메시지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말 끝도 없이 이어져 있군.'
다음 층으로 향하는 입구는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긴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칼날 개미를 보고 있자니, 칼날 개미의 위상이 다시금 피부로 와 닿을 정도다.
'분명 엄청난 병력이 전쟁터로 보내졌을 텐데도, 이렇게 많은 수가 남아 있다니.'
동시에 칼날 개미를 무너트리겠다고 호랑 개미의 여왕 앞에서 호언장담했던 내 모습이 겹쳤다.
물론 나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있던 호랑 개미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 지.
그런 나를 믿고 내 제안을 수락했던 여왕개미는 또 얼마나 절실했었는지.
'재미있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다.
그토록 끔찍하고 두려웠던 이 탑이.
이 순간에는 너무도 재미있는 놀잇감 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콰가가가각!
다시 한번 분쇄된 칼날 개미들의 파편들이 허공을 뒤덮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지휘관의 외침을 한 번 사용해 주니.
콰아아앙! 쿠우웅!
남아 있는 개미들은 마치 석상이 무너져 내리듯 가루가 되어 쏟아지기 일쑤였다.
제 아무리 강한 칼날 개미라고 한들, 지금의 내 앞에서는 한낱 개미에 불과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성 전체가 크게 흔들렸고.
궁신탄영을 사용해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하며 칼날 개미들을 쉴 새 없이 쓰러트렸다.
그렇게 지하 2층에서 5분이 넘는 싸움을 이어간 뒤.
"후…."
어느덧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칼날 개미들의 숫자는 1/4이하로 줄어들어 있었다.
남은 녀석들조차도 패닉 상태에 빠져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음 층으로 향하는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다음 층으로 가는 입구다.'
지하 3층.
그리고 그 끝에 여왕개미의 방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저벅
나는 마지막 지하 3층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
호랑 개미의 반군 아지트.
"현재… 전쟁의 상황은 어찌되어가고 있소?"
"칼날 개미가 점점 솔져 개미를 몰아치고 있습니다. 칼날 개미는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건 것으로 보이는 상황입니다. 대규모의 병력이 전 방위에서 솔져 개미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꿀꺽
들려온 보고에 호랑 개미들의 참모 막사 내부가 정적에 휩싸였다.
정말 칼날 개미와 솔져 개미가 본격적으로 마지막 싸움에 돌입했다.
그 사실을 듣게 되니 그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왕님."
그때 장군개미 하나가 호랑 개미의 여왕을 바라봤다.
"말하시오."
"거북 개미는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저들도 분명 이번 싸움이 끝나고 나면 야욕을 드러낼 것이 분명합니다."
맞는 말이다.
호랑 개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낸 것은 맞지만, 저들은 이번 싸움이 끝나면 새로운 강자로 도약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싸움에서 칼날 개미와 솔져 개미 둘 중 하나는 궤멸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 즉시 거북 개미는 승리한 세력에게 칼날을 뽑아 들 것이다.
그 뒤에 다시 한번 호랑 개미는 거북 개미의 방패막이가 될 것이 뻔하다.
"……."
여왕개미가 장군 개미들을 둘러봤다.
'이것은 모두 나의 책임이다.'
여왕개미는 자책했다.
개미들의 전투력과 사기는 전적으로 여왕개미에게 달려 있다.
여왕개미의 컨디션이 좋고, 더 강할수록 그 진영의 개미들은 더 강해진다.
그러니 이토록 장군 개미들이 나약한 건, 모두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병력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강만이 만들어 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무력감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여왕개미의 눈에서 미약하지만 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빠져나갈 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다.
멸망뿐이라고, 반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었건만.
'한강민….'
정체 모를 모험가의 등장.
고작 혼자서 칼날 개미를 부수겠다고 떠들어대던 그 인간은.
'정말로 해내지 않았던가.'
기적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아직 칼날 개미는 건재했고.
현재 강민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강민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반드시 칼날 개미를 무너트리고 돌아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가 다시 장군 개미들을 바라봤다.
"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오."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힘 있는 한 마디였고.
장군 개미들도 그 변화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이 순간부터 먼 미래를 보는 것 보다, 지금 당장의 할 일을 할 것이오. 그것은 거북 개미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거요."
여왕개미가 장군 개미들을 둘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거북 개미들의 본진에서는 다가올 싸움을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니, 이쪽에는 크게 신경 쓰기 힘들 것이오. 크게 신경 쓸 이유도 없을 것이고."
"……."
크게 신경 쓸 이유도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면서도 여왕개미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 태도에는 묘한 위엄마저도 느껴졌다.
"모든 방비 태세를 갖추시오. 우리는 다시 나아갈 것이오. 그 시작은…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충실하게 훈련시켜 줄 것을 부탁드리오."
""명심하겠습니다!""
장군 개미들이 감정에 복받쳐 크게 외쳐 대답했다.
***
"캬아아아아!"
"케에에에에!"
지하 3층.
여왕개미의 방이 존재하는 마지막 층.
과연 마지막 층인 만큼 지하 1층, 2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을 칼날 개미들이 가득 메우고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왕개미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여왕개미의 위치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
당연히 지하 3층에 진입하는 즉시 초감각으로 파악해 낸 결과였다.
'열 마리의 장군 개미와 함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다.'
아직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이렇게 많은 장군 개미들이 남아 있다니.
분명 전장에 나가 있는 숫자만 해도 2, 30마리에 가까울 텐데 말이다.
'우선 여기 있는 개미들을 빨리 처치하는 게 급선무겠지.'
그 순간, 수백 마리의 칼날 개미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곤두섰고, 섬찟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때 막.
'오우거의 신체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오우거의 신체만 있다면, 수백 마리의 칼날 개미 따위야 결코 내 적수가 될 수 없지.
꾸드득! 꾸득!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한 그 즉시 내 몸의 근육이 꿈틀대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빨갛게 달아오른 내 근육에서 증기마저 피어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쿠우웅!
발을 굴렀다.
나를 향해 달려드는 칼날 개미들을 향해 검을 한 번 휘두른 그 순간.
콰드드드득!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칼날 개미들의 몸이 산산이 찢겨져 나갔다.
오우거의 신체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오우거의 신체가 끝나기 전, 반드시 여왕개미와 조우해야 한다.
칼날 개미의 여왕은 강하기 때문에, 오우거의 신체 없이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것이다.
여기에서 오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5분. 5분 안에 여왕개미가 있는 곳에 도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