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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97화 (97/277)

97화

'뭐, 뭐야. 뭐냐고!'

최연빈.

그는 지금 크게 당황했다.

분명히 이 자리로 칼날 개미를 습격할 플레이어들, 혹은 개미들이 당도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그의 생각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계획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음에도 무기력하게.

정말이지 처절할 정도로 무력하게 기습을 허락해 버렸다.

'그런데 대체….'

그럴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습격하는 상대에 대해서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벌써 자신이 이끌던 특임대 중 절반 이상이 시체가 되어 쓰러지고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력했다는 이 현실 때문에.

그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탑에서 태어나 훈련을 받고 1층부터 개미굴까지 오르는 그 모든 순간에 말이다.

자신의 계획은 늘 적중했고, 완벽하게 수행해 냈으며.

이루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이뤄냈다.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체술 명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최연빈 그에게 했던 말이다.

실제로 현재 체술 명가에서는 최연빈을 촉망받는 후기지수 중 하나로 손꼽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럴 것이다.

지금 최연빈이 느끼고 있는 압도적인 공포감 말이다.

단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던 자신에 대한 확신과 경험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이니까.

항상 성공의 길만을 달려왔던 최연빈에게 실패를 극복할 만한 '완충제'따위는 있을 리 만무하다.

그리고 그의 가문인 체술 명가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실패는 없다.

실패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말라.

우리는 최고가 되어야 할 것이고, 도약해야 한다.

검술 명가, 마법 명가를 넘어서야 한다, 라고.

명가중 최약체로 평가받는 그들이었으니.

만의 하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최연빈도 태어난 순간부터 '실패'에 대한 관념 따위는 지우도록 훈련받았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실패하지 않고 패배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들이 멸시하고 깔보는, 혈계에서 배제된 일반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에 있어서는 결코 패배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현재 개미굴에 '명가'의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승리해야 했다.

자신의 계획은 어긋남이 없어야만 했다.

그것이 최연빈이 알고 있는 상식이었건만.

이 순간에, 강민이라는 독보적인 존재 앞에 최연빈의 모든 경험은 부정되고 있다.

그의 마음을 지탱하던 유일한 기둥인 '자신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쿠우웅!

그때 최연빈의 눈 앞에 특임대 중 최연빈을 제외한 마지막 플레이어가 눈을 까 뒤집은 채 쓰러졌다.

"누, 누구… 누구야!"

최연빈이 소리쳤다.

하지만 당연히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

'무너졌다.'

나는 직감했다.

체술 명가의 플레이어의 한마디를 들은 순간 말이다.

'재미없군.'

명가의 플레이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게 더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내 전생에만 하더라도 명가의 녀석들은 내가 결코 닿을 수 없이 높은 곳에 앉아 있던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마주한 명가의 플레이어는 겁먹은 생쥐나 다름없는 모양새였다.

'물론 아직 덜 성장한 녀석인 것도 맞지만.'

이제 고작 개미굴에 올라 있는 녀석이다.

현재 직계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녀석일 테니.

겉으로는 강한 척, 단단한 척하지만 그 속은 아직 말랑말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얼굴만 봐도 꽤 앳돼 보이고 말이지.'

그렇다고 봐줄 생각이라는 건 아니다.

어쨌든 놈과 나는 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놈이 명가의 피를 타고 이어난 이상, 나와는 필연적으로 적으로 만나 싸우게 될 수밖에 없다.

아홉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렸음에도 아직 기척을 숨기고 녀석을 지켜보는 이유는 하나다.

'우선 포식이 가능한 건 확실하다.'

지금 내 눈앞에 녀석의 능력들의 리스트가 떠 있으니까.

S급 능력의 포식 조건은, 상태를 처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혈계의 포식은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다.

특히 내가 여겨 보고 있는 능력은 '궁신탄영'이다.

혈계인 '금강불괴'역시 훌륭한 능력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 내게는 그렇게 절실한 능력은 아니다.

'어쨌거나 아이언바디가 있으니까.'

게다가 현재 내 방어구는 탑 전체를 둘러봐도 손에 꼽을 수준의 장비였으니.

굳이 방어력을 더 늘릴 필요는 없다.

애당초 내 몸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존재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궁신탄영은 다르지.'

궁신탄영은 한순간에 엄청난 거리를 도약할 수 있는 이동기다.

그 속도는 텔레포트보다는 아니지만, 엄청난 추진력과 가속력을 얻을 수 있으니.

지금 내게는 텔레포트보다도 더 궁합이 잘 맞는 능력이기도 하고.

'저 능력만 있으면, 은신과 더불어 암살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나는 저 '궁신탄영'을 손에 넣을 계획이다.

[궁신탄영 – 혈계 파생]

>포식 조건 : 상대를 처치하라

>시간 제한 : 05:00분

>실패 시 : 해당 대상에 대한 모든 능력 포식 불가

'지독하군.'

제한 시간이 5분이라니.

게다가 5분 내에 놈을 처치하지 못하면, 궁신탄영뿐 아니라 다른 모든 능력을 포식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

'만약 여기에서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궁신탄영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지겠지.'

그 어떤 다른 방해도 없이 체술 명가의 플레이어를 독대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절호의 기회.

[능력 포식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수락하는 즉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됩니다.]

망설일 게 없다.

'그래.'

속으로 그렇게 외친 순간.

[05:00]

[04:59]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간다.'

나는 명가의 플레이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오우거의 신체를 활성화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제아무리 금강불괴라고 할지라도 쉽사리 버텨낼 수는 없을 테다.

심지어 놈은 내 위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할 테니.

5분의 시간은 차고도 넘치리라.

나는 즉시 검을 움직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카아아앙!

'……!'

놈은 다리를 들어 내 검을 정확히 막아냈다.

놈의 다리 위에는 각반이 달려 있었고.

그 각반 위로는 다시 푸른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역시.'

명가 고유의 호흡법.

검술 명가의 검기, 혹은 검강.

그리고 나의 오러 블레이드와 유사한 능력이다.

'쉽사리 넘겨주지는 않겠다는 건가.'

조금 당황했던 것 같은 녀석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호흡이 안정됐고, 눈을 감았다.

시야가 아닌, 자신의 경험과 오감을 이용해 나를 상대하겠다는 뜻이리라.

'명가는 명가로군.'

그래.

차라리 잘 됐다.

나도 저렇게 훌륭한 능력을 거저먹어 버린다면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을 테니까.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04:58]

이제 고작 2초가 지났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오러 블레이드가 맹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명가의 플레이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콰앙!

몸의 몸에서 맹렬한 기운이 솟구쳤다.

체술 명가의 혈계 파생 능력인, '폭기.'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능력.

내가 가진 오우거의 신체와 비슷한 능력이다.

그와 함께 놈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콰콰콰쾅!

순식간에 허공에서 열 번이 넘게 공방이 오고갔다.

맹렬한 기세가 우리 둘 사이를 뒤덮었다.

'끔찍하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명가 중 최약체.

그 중에서도 막내급임에도 불과하고 이 정도로 강하다니.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내 마음 한켠에 자리했던 오만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때.

콰아앙!

놈의 몸이 한순간에 뒤로 물러났다.

'저게 바로 궁신탄영.'

찰나의 순간 십여 미터를 이동하는 사기적인 능력.

그리고 저 능력의 무서운 점은 바로 이것이다.

놈은 곧바로 다시 나를 향해 도약했다.

역시나 궁신탄영이다.

콰아아앙!

짧은 도약만으로도 순식간에 나와 지척으로 가까워진 명가의 플레이어.

시전 시간 사이에 공백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게다가 더 무서운 건, 저 어마무시한 가속력이다.

체술 명가의 '금강불괴'의 힘을 몇 배로 이끌어내는 능력.

온몸이 무쇠처럼 단단해진 상태에, 폭기로 증폭된 신체 능력과 궁신탄영의 가속력이 더해진 녀석의 도약은.

마치 대포나 다름없다.

저 녀석의 도약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충돌한다면,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채 죽어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녀석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리라.

그동안 많은 이들이 저 녀석의 공격에 그렇게 죽어갔을 테니까.

물론 그건 내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미 체술 명가 녀석들의 공격 패턴에 대해 모조리 꿰뚫고 있다.

지금 저 컴비네이션 말고도 말이다.

'알고 있다면, 눈 뜨고 당해 줄 이유도 없다는 거지.'

놈이 첫 번째 궁신탄영을 사용한 그 순간, 나는 놈이 이렇게 나오리라는 걸 이미 예상한 상태다.

당연히 나는 이미 놈의 경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궁신탄영의 유일한 약점은, 방향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것.

너무 빠른 속도를 사용자 스스로도 조절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그런 약점을 보완하는 건 체술 명가의 '금강불괴.'

어느 곳에 충돌해도 다치지 않는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무용한 일이다.

콰드드드득!

내 검 끝에 녀석의 몸이 닿았다.

"……!"

오우거의 신체를 베이스로.

충격파와 뇌전검.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힘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오러 블레이드.

놈의 가속력은 비단 스스로의 공격력만을 증폭시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빠르게 달려오는 이상, 내 검과 충돌한 녀석의 몸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충격이 전해졌으리라.

꽈아아아악!

몸을 지탱하고 있는 내 발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허벅지와 무릎, 발목과 발가락. 그리고 검을 들고 있는 어깨와 광배, 그리고 팔꿈치와 손목.

그러니까, 내 전신에 감히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부하가 걸렸다.

전신이 뒤틀릴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놈의 몸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상태로 내 검 끝에 걸려 있다.

아직도 놈의 추진력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런 놈의 운동 에너지를 검 하나로 버텨내고 있는 상황.

이제 남은 건, 누가 더 잘 버티느냐의 싸움이다.

이를 악물었다.

몸의 복부에 검을 꽂아 넣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끄으읍…."

내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이었고.

그 고통을 온 힘을 다해 참아내고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면, 내가 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1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뇌전검의 사용 시간이 끝이 났다.

다시 사용하진 않는다.

필요할 때 곧바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쿨타임을 채워 놓아야 한다.

뇌전검을 사용하는 대신, 나는.

꽈아악!

내 온몸의 무게 중심이 쏠린 왼쪽 발에 다시 한번 무게를 실었다.

힘겨웠지만, 천천히, 아주 조금씩 내 몸의 무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처억!

걸음을 내디디는 데 성공했다.

파득!

오러 블레이드가 기어코 놈의 복부를 파고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의 함의는 단 하나다.

내가 이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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