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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94화 (94/277)

94화

"우선 확인할 게 있다."

"말해 보시오."

"그들이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아, 알고 있었소."

여왕개미가 말을 더듬었다.

혹시라도 내가 거북 개미 쪽으로 넘어가지는 않을까, 노심조차 하는 모양이다.

다른 장군 개미들도 마찬가지다.

긴장감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걱정은 안 해도 좋다. 거북 개미를 도울 생각은 없으니까."

그제야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한숨들이 들려왔다.

"어쨌든 그것도 좋은 소식이군. 그 사실을 잘 이용하면 거북 개미들을 구워삶을 수 있을 테니까."

"어떻게 말이오?"

"나를 이용해라."

내 말에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설마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이용하라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피해를 입을 생각은 없다.

"단순하게 나의 '존재'를 이용하라는 뜻이다. 거북 개미들이 원하는 건 당연히 나의 '존재'일 테니까."

"그렇소. 그들도 그대가 자신들의 편에 속하길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겠지.

지금 거북 개미의 세력에 나의 존재가 더해지면 능히 솔져 개미든, 칼날 개미든 때려 부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이제 곧 칼날 개미들을 사냥하러 떠날 거다."

"……."

칼날 개미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다시 묘한 긴장감이 어렸다.

내 행적을 봐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칼날 개미라는 세력은 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뜻이리라.

어쨌든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거북 개미들과 만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러니 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거북 개미들에게 너희를 지키라고 하면 되겠지."

"아…."

여왕개미가 짧은 탄성을 토해냈다.

"너희가 없어지면 거북 개미들은 나와 만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사라질 테니, 너희를 지킬 수밖에 없을 거다."

혹시 모를 솔져 개미나 칼날 개미의 공격으로부터 거북 개미라면 최소한의 보호 정도는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내가 칼날 개미를 부수는 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을 테니.

"내가 이 만큼 판을 깔아 줬으면 거북 개미를 구워삶는 건 너의 몫이다. 그런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내 말에 여왕개미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멸망하면 나 역시 큰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내가 호랑 개미를 유지시키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들이 불쌍하다거나, 동정심이 들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개미들에게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호랑 개미를 택했던 것도 이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보상을 얻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게다가 호랑 개미가 멸망한다면, 개미굴의 진행도가 초기화되어 버릴 것이고.

기껏 얻어낸 업적마저 사라져버리지 않겠는가.

내가 개미굴을 떠나기 전까지 호랑 개미의 세력은 유지되어야만 한다.

"하겠소."

여왕개미가 답했다.

"좋아."

대화가 끝이 났고.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정말로 칼날 개미들과의 전쟁을 치를 시간이 목전에 도달한 것이다.

***

그렇게 강민이 칼날 개미들의 진영으로 떠나고 난 뒤.

거북 개미들에게 호랑 개미 측의 서신이 도착했다.

"흐으음…."

거북 개미의 여왕은 호랑 개미 측의 제안을 읽어 내려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크게 고민할 여지는 없지 않습니까. 애당초 호랑 개미들도 선택권은 없을 겁니다."

"그럼, 그럼. 당연한 말이지."

장군 개미들이 맞장구를 쳤다.

평소에 답답한 말들만 늘어놓는 장군 개미들이지만 이번에는 여왕개미도 그들의 말에 크게 반박할 여지는 없다.

'맞는 말이다. 그 모험가의 존재는 호랑 개미로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겠지만…. 호랑 개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어차피 결정을 내리는 결정권자는 그 모험가일 테니까.'

호랑 개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호랑 개미로서는 강민이 떠난다고 하면 붙잡을 그 어떤 명분도, 힘도 없다.

그리고 여왕은 모험가.

즉, 강민이 자신들을 택할 거라고 확신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호랑 개미를 선택할 이유가 더 이상은 없지 않겠는가.

'모험가들은 개미들의 전쟁에서 큰 업적을 세울수록 좋은 보상을 얻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최고의 보상을 위해서는 칼날 개미를 무너트려야 할 것이고.

'호랑 개미에게는 가망이 없으니. 반드시 그자는 우리를 택하게 될 거야.'

몇 번을 거듭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더욱더 여왕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우선은 저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맞다. 모험가가 돌아올 때까지는 말이야. 그리고 모험가가 돌아오면….'

그때에야말로 호랑 개미를 집어삼키고 거북 개미가 날개를 펼칠 순간이 도래하리라고.

여왕개미는 생각했다.

"즉시 호랑 개미 측으로 병력을 파견하라. 결코 호랑 개미가 멸망해서는 안 될 것이야!"

여왕개미가 소리쳤다.

여왕은 절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강민이 작성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심지어 자신의 의사 판단으로 내렸다고 생각한 지금의 결정마저도.

"맡겨만 주십시오! 으하하하!"

장군 개미가 소리쳤고.

즉시 병력을 이끌고 호랑 개미 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점점 칼날 개미와 솔져 개미의 전장과 가까워졌다.

'스케일이 다르군.'

사자 개미와 호랑 개미.

그 둘의 싸움은 정말 어린 애의 장난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병력의 숫자뿐만이 아니라, 한눈에 보더라도 칼날 개미와 솔져 개미의 덩치 자체도 호랑 개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만큼 여왕개미가 강하다는 뜻이겠지.'

개미들의 힘은 곧 여왕개미의 힘과 비례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개미들은 모두 여왕개미가 낳은 여왕개미의 자식이니까.

'이런 녀석들과 전면전으로 맞붙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지금의 내가 강하다고 한들, 칼날 개미 전체와 싸운다는 건 버거울 수밖에 없다.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만,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역시 한 가지다.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

마침 칼날 개미는 솔져 개미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두 세력은 개미 세상의 패권을 휘어잡기 위해 길고 격렬한 싸움을 이어오고 있었고.

지금은 그 싸움의 정점을 치달리고 있는 중이었으니.

'어쩌면 이때야말로 내가 개입하기 가장 수월할 때일지도 모르지.'

만약 싸움을 멈추고 있는 시기였다면 오히려 내가 개입해서 칼날 개미를 쓰러트리는 건 훨씬 더 어려웠으리라.

'자, 그럼.'

나는 첫 번째 목표지점을 정했다.

현재 칼날 개미와 솔져 개미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점들은 미리 파악해 놓은 상태다.

'총 열다섯 곳.'

열다섯 곳에서 솔져 개미와 칼날 개미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싸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싸움의 범위를 더 늘려 줄 생각이다.

아무리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싸움의 범위가 커지면 본진의 병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각 측의 여왕개미들은 한계 이상으로 알을 낳아대고 있을 테니.

병력을 증강시키는 것도 이제 어느 정도는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가자.'

나는 내가 정해 놓은 목표 지점으로 향했다.

***

내가 도착한 곳은 아직 두 세력의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로 경계하며 대치해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내가 할 일은 하나다.

놈들의 병력 근처에서 큰 소란을 만들고 나는 뒤로 빠지는 것.

빠지면서 한쪽 진영의 개미들의 사체를 늘어놓는다.

그 이후에 수색 개미들이 그 현장을 발견하게 되면 당연히 상대 개미가 습격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몇번 더 같은 일들을 반복하며 싸움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것.

나는 우선 몸을 숨긴 채 초감각을 최대로 활용했다.

마력이 300을 넘어서면서 초감각의 효과는 더욱더 극대화됐다.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도 양측의 병력을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있을 정도다.

'칼날 개미의 수색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은신을 활용해서 놈들을 습격할 생각이다.

'한 마리는 남겨 놔야겠지.'

솔져 개미들은 군인이라는 이름 담게 은신과 기습에 능하다.

물론 나처럼 존재 자체를 숨길 정도는 아니지만, 갑작스레 습격당한 칼날 개미로서는 당연히 솔져 개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을 무렵이었다.

쿵! 쿵!

주변을 수색하는 칼날 개미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무시무시하군.'

온몸이 쇠처럼 단단하고, 각 관절마다 뻗어 나온 칼날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몸에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나는 충분히 강하니까.

'은신부터.'

나는 칼날 개미를 발견한 즉시 은신을 사용했고.

칼날 개미들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최대한 기척을 숨겼음에도 청각에 민감한 개미들은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으으…."

"키르륵…."

놈들이 알 수 없는 말을 떠들어댔다.

심지어 내가 있는 방향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역시 만만치 않은 놈들이다.'

하지만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은신으로 완전히 모습을 숨겼으니까.

내가 다시 걸음을 멈추자 놈들은 내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키르르륵…."

"그르르르…."

놈들과 내가 천천히 아주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렇게 나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륵, 그르륵…."

칼날 개미들이 멈춰 섰다.

그러더니 주변을 몇 번 둘러봤다.

"키르르르…."

잘못 생각했다고 판단했는지 놈들이 다시 몸을 돌렸다.

놈들 모두가 방향을 전환한 그 순간.

화륵!

오러 블레이드와 뇌전검, 그리고 충격파를 동시에 활성화시켰고.

"키르르르륵!"

놈들이 다급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놈들이 나의 존재를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다.

촤라라라락!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수놓으며 순식간에 칼날 개미들을 엄청난 속도로 베어 넘겼다.

[힘 3을 포식했습니다.]

[힘 2.6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3.1을 포식했습니다.]

.

.

.

[민첩 1.2를 포식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스탯 포식 메시지를 뒤로한 채.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고.

남아 있던 칼날 개미들마저도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을 버텨내지 못했다.

놈들은 갈가리 찢겨진 채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한 마리를 제외한 모든 칼날 개미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치르르르르!"

살아남은 한 마리는 다급하게 몸을 돌려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놈들의 병력이 대기 중인 곳이리라.

나는 달아나는 놈의 모습을 잠시 지켜봤고.

곧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두 번째 목표 지점.

작전은 방금 전과 같다.

은신한 채로 칼날 개미를 습격하는 것.

두 번째 지점에서는 대략 30분 정도를 대기하고 난 뒤 칼날 개미를 습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행동을 몇 번 더 반복했다.

총 열 번.

그렇게 같은 일을 반복하기 위해 대략 7시간의 시간이 소요됐다.

열 장소 모두에서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중에는 인접한 장소도 있었으니까.

내 목표치는 열 곳의 절반.

'최소 다섯 곳에서 더 싸움이 벌어지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다시 싸움이 시작되면.

나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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