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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85화 (85/277)

85화

내가 기다렸던 건 사자 개미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고였다.

예를 들면 병력이 어디로 이동했다거나, 혹은 칼날 개미 쪽에서 원군이 왔다거나 하는 등의 보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전 들려온 소식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소식이었다.

'사자 개미가 호랑 개미를 찾아올 줄이야.'

사자 개미 쪽에서 호랑 개미를 찾아왔다는 말에 나도 조금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이번 협상이 성사된다면, 나의 상황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애당초 개미굴에서 내 목적은 천하통일 따위가 아니다.

첫 번째로는 사자 개미들을 박살내는 것이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는 칼날 개미를 쳐부수는 것.

호랑 개미들에게는 미안한 소식일지도 모르겠지만, 호랑 개미의 승패 따위는 내게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칼날 개미를 쳐부수고 일어날 결과는 오롯이 호랑 개미들의 몫일 뿐.

어쨌거나.

'이번 협상을 통해서 사자 개미와 가까워지면 놈들에게 접근하는 것도 쉬워질 거다.'

놈들과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사자 개미를 무너트리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내가 두 번 놈들을 공격했으니.

녀석들은 당연히 침입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호랑 개미와 사자 개미가 협상을 맺게 된다면.

삼엄해진 경계 따위는 관계없이 놈들의 본진에 침투할 수 있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식으로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넘어 오다니.

사자 개미가 호랑 개미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수 있는 건.

지금 사자 개미 측의 여왕이 심리적으로 무척 압박받고 있다는 뜻이리라.

'잘 됐어. 아주 좋은 상황이야.'

입꼬리가 절로 춤을 추고 있다.

'이제 슬슬 나한테 의견을 물으러 올 때가 됐는데 말이지.'

호랑 개미 쪽 이야기다.

놈들은 현재 시점에서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여왕개미 이상으로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상황마저도 내가 이끌어 낸 것이었으니.

이번 일에 대해서 결정 내리기 전, 내가 하지 말래도 호랑 개미 입장에선 내 의견을 물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잠시 후.

내 예상대로 호랑 개미 쪽에서 내게 개미 한 마리를 보냈다.

"모험가님."

"왜 그러지?"

나는 조금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개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호랑 개미 쪽에서 우리와의 협력을 제안해 왔습니다."

"그랬군."

예상대로다.

"여왕께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 모험가님의 의견을 여쭙고자…."

나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답해줬다.

"놈들과 협력하겠다고 말해."

의견을 구한다고 했지만, 나는 답을 제시했다.

어중간하게 이랬으면 좋겠다, 라는 말이 아니라 명백한 지시였다.

반드시 내 뜻대로 하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겨줬다.

내 대답에 개미는 흠칫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개미는 곧 몸을 돌려 떠났다.

이렇게까지 말해줬으니 내 뜻은 분명히 어필이 되었을 것이고.

이제 사자 개미와 호랑 개미는 은밀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겠지.

***

잠시 후 사자 개미가 돌아간 뒤, 여왕개미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여왕개미는 사자 개미들과의 협상 내용에 대해서 내게 설명했다.

내가 말했던 그대로 사자 개미들과 손을 잡기로 약속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선은 그대가 사자 개미와 손을 잡으라는 뜻을 내비쳤기에 그리 하기는 했소만…."

무언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한번 들어 보자.

"저쪽에서 내 건 조건은 거북 개미를 치자는 것이었소.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사자 개미들의 유일한 활로는 거북 개미를 공격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정황을 본다면, 그것이 정답이니까.

사자 개미의 여왕이 나름 괜찮은 판단을 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일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거요."

"언제지?"

"앞으로 일주일 후요."

일주일.

확실히 사자 개미의 여왕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자 개미의 여왕이 그렇게 다급히 전쟁을 준비한다면 당연히 사자 개미들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을 테고.

내가 놈들의 진영에 잠입해서 무너트리는 것도 훨씬 간편해질 테니까.

"잘됐군."

"그리고 오늘부터 병력 교류가 시작될 거요."

"병력 교류?"

그 말에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니까.

두 진영의 병력을 교류한다는 건, 이동이 자유로워진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일종의 협력의 증표요. 다만…."

여왕개미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호랑 개미에게 불리한 조건이 달려 있는 모양이다.

"우리의 병력들이 사자 개미의 외곽을 지키기로 했소."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거군."

"그렇…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그게 무슨 말이오."

"호랑 개미가 사자 개미의 외곽을 지킨다는 건, 나를 쉽게 통과시켜 줄 수 있다는 뜻이지 않나."

"…아…!"

사자 개미의 본진으로 잠입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해질 수밖에 없다.

이건 명백한 사자 개미들의 자충수다.

속으로는 호랑 개미를 적의 침입의 완충제로 쓰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사자 개미 측에서 나를 위한 자동문을 설치해 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여왕개미의 얼굴.

"일주일 안에 사자 개미를 무너트리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그들과 거북 개미를 공격하게 될 거요. 당연히 거북 개미와의 싸움에서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건 우리일 것이고, 만약 승리한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내가 일주일 안에 칼날 개미를 박살내지 못하면 호랑 개미는 말 그대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일주일은 차고도 넘칠 만한 시간이다.

"충분하다. 너는 걱정할 필요 없어."

"아…."

"물론 그 전까지 너희들은 연기를 잘해야겠지. 정말로 싸움을 준비하는 척 말이다."

"아, 알겠…소."

여왕개미는 마치 넋이라도 나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말이었음에도, 그동안 내가 한 일을 생각하면 딱히 반박할 수 없었겠지.

"일주일 후 다시 보도록 하지."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내가 움직이는 건, 두 진영의 병력 교류가 끝이 나고.

자동문 설치가 완료된 그 시점부터다.

'내일쯤이면 움직일 수 있겠지.'

***

사자 개미 측의 장군 개미가 호랑 개미의 아지트를 방문한 지 하루가 지났다.

"현재 전 방위에 장군 개미를 배치해 두었으며, 침입자가 우리를 공격했을 시, 즉시 전군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 체계를 재정비해 두었습니다."

사자 개미들 역시 호랑 개미와의 동맹을 체결한 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그러는 중에도 정체 모를 침입자에 대한 대비도 만반으로 갖춰 놓은 상태였다.

강민이 호랑 개미 측의 플레이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여왕개미의 궁을 중심으로 최정예 병력들을 배치해 두었고.

보고된 사실 그대로 사자 개미 병력이 밀집해 있는 모든 곳에는 장군 개미를 배치했다.

거기에 연락병의 수를 세 배로 늘려 놓은 상태다.

즉, 그 어떤 곳에서 침입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즉시 전군이 모여들 수 있도록 말이다.

"호랑 개미 측의 병력 배치는 어떻게 되었지?"

"호랑 개미들을 진영 외곽에 둘러놓은 상태입니다. 녀석들은 고작 1차 방어선의 역할을 하고 전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 말에 여왕개미는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 개미는 그저 자신들에게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막아주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호랑 개미 측에서 지금도 병력이 계속 도착하고 있으니, 이제 내일이면 외곽의 모든 병력을 호랑 개미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멍청한 것들."

여왕개미가 조소했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다.

"아니지, 아니야. 지금 놈들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이겠지. 파멸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모를 콩고물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말이야. 하하하하!"

한참동안 웃어젖히던 여왕개미가 웃음을 거뒀다.

"모험가들의 상황은 어떠하지?"

"모험가들에게도 현재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일러두었습니다."

"그들은 뭐라고 하던가."

모험가.

바로 사자 개미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자 개미 측에 속해 있지만 어쨌거나 별개의 세력들.

`여왕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상황을 보고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무력단체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그들 역시 거북 개미들과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겠지. 그들 역시 전공을 세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느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럴 것입니다."

벌써 플레이어들은 사자 개미의 본진을 벗어나 거북 개미들과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왕개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전의 침입을 허용했던 건, 대비가 부족했을 뿐이지 결코 자신들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다음은 없다. 두 번 공격을 성공했다고 해서 기고만장해 있다가는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오히려 여왕개미는 다시 침입자가 자신들을 공격하길 바랐다.

자신을 화나게 만든 인간을 잡아 처참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거북 개미만 무너트릴 수 있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사자 개미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순간이 도래하리라.

거북 개미의 세력을 흡수하고, 즉시 호랑 개미를 흡수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솔져 개미와 칼날 개미와도 싸워 볼 수 있는 거대 세력으로 도약할 수 있을 테니까.

'이번 싸움은 우리의 미래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완벽하게 해내야 해. 조금의 빈틈도 없이.'

여왕개미의 눈에서 투지가 타올랐다.

그런데 그때.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여왕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녀의 예상보다 너무 빨랐다.

호랑 개미와의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보란 듯이 자신들을 공격해 오다니.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좋지 않은 예감이 피어올랐다.

'설마….'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호랑 개미는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 특히나 지금처럼 병력 교류가 진행되는 중에는. 그럼 대체 누구냐. 누구라는 말이야…!'

복잡한 생각이 얽히고 꼬여 가던 중.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누른 여왕이 소리쳤다.

"반드시 그자를 잡아서 내 발 앞에 무릎 꿇리라!"

"예!"

여왕개미가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

내 예상대로 본진 안으로 침입하는 건 너무도 간단했다.

두 병력의 교류가 시작되면서부터 호랑 개미의 진영에서 사자 개미의 진영으로 향하는 길 자체의 경계도 느슨해졌다.

덕분에 숨거나 굳이 먼 길을 돌아올 필요도 없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사자 개미들은 자신들 본진의 외곽을 호랑 개미로 가득 채워 놨으니까.

자신들을 습격한 것이 호랑 개미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 결과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중요한 외곽의 방어를 호랑 개미에게 맡길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안일한 확신은 오히려 자신들의 심장부를 내어주는 꼴이 되었고.

나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자 개미의 본진으로 잠입할 수 있었다.

'멍청한 놈들. 호랑 개미의 짓이라는 걸 알게 된 뒤 여왕의 상판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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