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아티팩트 – 강화]를 획득했습니다.]
[능력 하나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강화할 능력을 선택해 주십시오.]
[S등급 미만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S등급 미만.
즉 AAA등급까지의 능력만을 강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알려지기로는 S등급이 능력의 최고 등급이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능력 강화라….'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S)
6. 아이언 바디 (AA)
7. 지휘관의 외침 (AAA)
8. 초감각 (A)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들의 목록.
선택지는 금세 좁혀진다.
'AAA등급을 S등급으로 만드는 게 훨씬 이득이지.'
상식이다.
AA등급과 AAA등급 사이의 차이보다, AAA와 S등급 사이의 차이가 훨씬 크다.
같은 한 등급의 차이지만 알파벳 A와 알파벳 S사이에는 명백하고도 뚜렷한,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개.
오우거의 신체와 지휘관의 외침이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조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오우거의 신체와 지휘관의 외침. 둘 다 너무 훌륭한 스킬들이다.'
이 두 스킬 중 하나가 S등급으로 올라가 준다면, 내 전투력은 한 차원 새롭게 거듭날 수 있게 되리라.
그러니 갈등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역시.'
지휘관의 외침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오우거의 신체도 뛰어난 스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지금 내게 더 절실한 스킬을 골라 보라면, 당연히 지휘관의 외침 쪽이다.
골렘들과의 싸움에서 그 효과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광역 범위 스킬.'
[스킬 '지휘관의 외침 – AAA'를 강화하시겠습니까?]
"그래."
[스킬 '지휘관의 외침 – AAA'를 했습니다.]
[스킬 '지휘관의 외침 – S'가 상태창에 각인됩니다.]
[지휘관의 외침]
>등급 : S
>스킬 사용 시 시전자의 '힘' 스탯보다 낮은 '체력'을 가진 적이 '공포'에 걸립니다. (최대 150명/마리)
>공포
-다수의 상대의 체력이 (힘/10)%만큼 감소 (5회 중첩 가능)
>재사용 대기 시간 : 40초
'허,'
그 결과는 놀라웠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상의 수는 100에서 150으로 증가했고, 중첩 가능 수치가 2회 가 늘어나 5회가 되었다.
'5회 중첩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손 하나 대지 않고서도 다수의 상대를 완전히 빈사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 화룡점정은 대사용 대기시간이다.
무려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과연 S급.'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정도 결과물이라면 내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
'그럼 이제….'
31층으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파티원들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
"미치겠군."
"이거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죠?"
"와 나…. 이거 현실 맞죠?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위드 길드의 주축인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쉴 새 없이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대한민국 탑에서 발간되는 일간지다.
[철목 길드의 간부들 연이어 사망한 채 발견…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아….]
[철목길드에게 원한을 가진 누군가의 소행인가]
[대형 길드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긴장감…. 화랑 길드의 행보는?]
철목 길드.
대한민국 랭킹 5위의 거대 길드가 무너져가고 있다.
그것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길드의 주축들이 죽어가면서 말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몰락이라니.
이 사태를 더욱 큰 혼란으로 몰고 가는 건, 이 사태의 배후에 대해서 난무하는 추측들이다.
그리고 범인은 당연히 오대 명가로 좁혀졌다.
당연한 추측이다.
철목 길드는 명가에 소속되지 않은 얼마 안 되는 랭커 길드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어떤 명가의 소행이냐는 점이었다.
감히 명가를 지목해서 그 배후를 밝혀낼 만한 용기를 가진 자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탑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추측만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상은 더욱더 깊은 안개 속에 가려지고 있었고.
"파국이로군."
"그렇죠."
"……."
대한민국의 탑은 점점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현재의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중.
[(속보) 궁술 명가의 예지원, 앞장서서 이번 사태에 대해 밝혀내겠다고 알려…. "이미 창술 명가와 체술 명가와의 논의는 끝났다. 반드시 이번 사태의 원흉을 밝혀내고 낱낱이 밝혀내겠다."]
궁술, 체술, 창술.
세 명가가 드디어 마법 명가를 압박하기 위해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마저 전해졌다.
꿀꺽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던 박명철마저도 이 순간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폭풍의 눈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
"이 다음은 대체 뭘까요…?"
"하…. 이제 좀 익숙해지려나 싶었는데 또 새로운 스테이지라니."
"으으으…."
플레이어들이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탄식을 쏟아냈다.
매 10층.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는 순간마다 플레이어들이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다음에 어떤 무대가 펼쳐야 할 지 조금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그뿐인가.
지금까지 함께 힘을 합쳐왔던 파티원들과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 말은 곧, 알 수 없는 플레이어들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며.
예상할 수 없는 무수한 갈등을 겪으며 죽음의 문턱을 오고 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떻게 되든… 다 같이 꼭 탑의 꼭대기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사를 함께 겪어 온 만큼 정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감성이 풍부한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과 닥쳐올 예측 불허의 상황에 대한 압박감이 뒤엉킨 결과물이리라.
몇몇은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어떤 해답을 내주길 바라는 표정들이다.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다음 층에 대한 답을 내주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지 않겠는가.
'저들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31층.
내가.
아니, 우리가 함께 가야할 층은 여기 있는 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층이다.
[31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가 모두 함께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파티원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어, 어어어…?!"
"우아아아아앗!"
"함께… 함께 갈 수 있대요! 만세에에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파티원들이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
31층.
여기서부터 펼쳐질 무대는 그동안 겪었던 환경과는 꽤나 이질적일 것이다.
저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을 나누는 것도 어찌 보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함께하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펼쳐질 무대의 이름은 [개미굴]
이름 그대로다.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개미형 몬스터들의 땅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빛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장소지.'
그러니 아무리 많은 파티원이 있다고 해 봐야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보이질 않는데 사람이 많아야 무엇 하겠는가.
그래. 어느 정도 의지하고 앞으로 헤쳐나갈 수는 있겠지만.
어둠 속에서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개미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으리라.
내가 초감각을 얻기 위해 그 개고생을 했던 이유다.
빛이 극도로 제한된 곳에서 '눈'이라는 감각 기관은 그 기능을 크게 상실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초감각이 눈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해 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당연히 초감각 없이 개미굴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한다.
이것도 역시 탑의 배려의 일종이며 동시의 혹독한 훈련이기도 했다.
개미굴의 개미는 '신호'를 보낸다.
신호는 빛이 아닌, 소리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상대의 위치와 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기도 했다.
'확실히 전생에서도 개미굴을 돌파하고 나서 내 실력이 크게 늘었던 것도 사실이지.'
그럴 수밖에 없다.
개미굴을 통과하고 나면, 플레이어들의 전투력은 극도로 상승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는 오감을 극도로 끌어 올려야만 하고.
그런 훈련 과정을 거치고 나면, 레벨이나 능력을 초월하여 기본적인 인간 자체가 강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제는 불필요한 과정이지만.'
그때 익혔던 것들은 이미 나에겐 남아 있다.
굳이 그렇게 번거롭고 불필요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 갑시다."
내가 말했고.
"예! 강민 씨!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저도요! 혹시 형님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형님? 저는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플레이어들이 외쳤다.
나는 그들을 보며 그저 피식,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31층 개미굴에 입장했습니다.]
[개미굴은 개미들의 왕국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개미를 생각한다면 큰코다칠 것입니다.]
개미굴에 대한, 어찌 보면 경고로 느껴질 수도 있을 짧은 설명이 지나갔다.
[클리어 조건 : 24시간 동안 생존하라.]
그리고 다시 한번 짧고 강렬한 클리어 조건까지.
복잡한 설명이나, 특별한 목적도 없다.
그저 24시간 동안 생존하라.
그 짧고 강렬한 문장에 플레이어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여유로운 건 나뿐이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봤다는 것도 크게 한몫했지만.
'초감각.'
이 사기적인 능력 덕분이다.
조금 전부터 활성화시켜 둔 초감각은 벌써부터 어두운 개미굴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개미굴을 마력이 훑으며 마치 스캐너처럼 개미굴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도와줬다.
"갑시다."
내가 말했다.
"어, 어디로 갑니까? 하나도 안 보여요!"
"우선 소리에 집중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분간은 그것만 생각하십시오.'
소리에 익숙해지게 되면 개미굴을 헤쳐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다.
"아,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의 말수가 사라졌다.
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플레이어들은 내 발 소리를 듣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귓가를 울렸다.
저벅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만큼 지금 무거운 적막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쿵!
"으으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넘어졌어요! 미안, 미안합니다!"
이런 일은 벌써 몇 번이나 발생했다.
발을 헛디디거나, 예상치 못한 지형지물에 부딪치는 일 말이다.
간혹 개미의 습격이라고 생각해 무기를 뽑아 드는 일도 왕왕 발생했다.
나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주변 상황을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으니까.
저들의 압박감과는 반대로 내 움직임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
당연히 초감각 덕분이다.
'이렇게 편하다니.'
보이지는 않지만, 길 위의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
살아있는 생명체가 감지됐다.
나는 자리에서 멈춰 섰고.
"무, 무슨 일…."
"쉿."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