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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75화 (75/277)

75화

저들은 내가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저들에게 떠오른 메시지는 [첫 번째 도착한 파티의 소환에 응하시겠습니까?]였을 테니까.

"말도 안 돼!"

"어떻게 강민 씨가 제일 먼저 도착한 거죠?"

"혼자… 혼자였잖아요!"

아직도 놀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파티원들.

그중에서도 몇몇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도 있다.

"자세한 설명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세 번째 길도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보다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빠르게 태고의 골렘을 처치하는 일이다.

이 지긋지긋한 골렘의 사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그보다 더 빨리 35층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법 명가.'

마법 명가를 박살 내는 건 지금의 나에게 탑을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이 시점에서 35층부터는 분명히 고층이라고 할 만하다.

35층에 존재하는 마을부터는 지금껏 내가 거쳐 온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상위 랭킹 길드의 건물들이 존재하고, 당연히 명가들의 건물도 존재한다.

본당은 아니지만, 명가의 수련생들을 훈련시키는 시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

현재 마법 명가의 상태가 어떤지 말이다.

박명철에게 계속 보고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이라도 한시 빨리 탑을 올라가고 싶은 것이다.

내 뜻이 어느 정도 전해진 모양인지 파티원들도 정신을 수습하고 싸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가 됐으면 시작하겠습니다."

"예. 다들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렇게 나는 태고의 골렘이 잠들어있는 수정체를 향해 움직였다.

***

"빨리빨리 안 움직여? 확! 씨! 너 때문에 다칠 뻔했잖아! 엉?"

"저 새끼 뺀질대는데 어떡할까요?"

"좀 밟아 줘라."

"옙!"

탑의 30층 골렘 대신전으로 향하는 길.

한참 전에 싸움이 끝나고 이미 서열 정리가 끝난 상태다.

얼마 전 전우애를 나누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 번 폭발하기 시작한 야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싸움에서 승리한 이들은 열 명 남짓한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자리에 올라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인가?

그렇지 않다.

애당초 파티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었던 건, 강민이라는 구심점 덕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강력한 구심점은 사라졌다.

그리고 한 번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먼저 자신을 위협하고 공격했던 건 파티원이라는 합리화까지 더해진 이상.

폭발한 광기는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을 뿐.

손속을 봐줄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한 번 피를 본 사이였으니 더 마음에 안 들면 죽여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계속해서 합리화했다.

이게 원래 탑의 모습이다.

죽고 죽이고, 짓밟고 올라가는 곳이다, 라고 말이다.

잠깐이지만 절대 권력에 취하기 시작한 이상 광기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폭발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콤한가!

말 한마디에 여러 명의 플레이어들이 복종했고.

말 한마디에 다른 이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이란.

그중에서는 조금 전 강민의 모습을 보며 압도적인 절망감을 느꼈던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만함이 다시 마음속에 꿈틀댄다.

강민과 같은 정상은 될 수 없지만 분명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굴복시키지 않았던가.

'나는 강하다.'

그런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또 앞으로도 같은 일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으리라.

이대로 탑을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더욱더 강해질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여 더 많은 이들을 발아래에 둘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으하하하하!"

플레이어가 소리쳐 웃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멀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저 이 순간의 권력을 취해 기쁨을 만끽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런 착각은 오래 갈 수 없었다.

[태고의 골렘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태고의 골렘이 쓰러지기 전까지 대신전의 중앙부에 도달하십시오.]

[중앙부에 도달하지 못할 시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태고의 골렘의 체력 게이지가 떠올랐다.

"뭐, 뭐야…!"

태고의 골렘의 체력 게이지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무슨 개소리야!"

악을 내질렀다.

패널티라는 단어를 본 순간,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냉혹한 현실의 벽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골렘 사제를 상대하는 것보다 태고의 골렘을 상대하는 편이 더 편했다.

골렘 사제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천을 넘는 대군을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나 혼자 강하다고 해도 눈먼 공격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고의 골렘은 어떤가.

그런 걱정 따위는 없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단지 눈앞에 있는 이 커다랗고 움직이는 돌덩이 하나뿐이다.

놈이 제아무리 빠르게 몸을 놀리고, 강력한 힘을 내뿜는다고 해도 나에게 있어선 의미 없는 몸짓일 뿐이다.

심지어 초감각이라는 능력이 생겨난 이 순간에는 더더욱 말이다.

아니, 굳이 초감각을 사용할 필요조차 없다.

놈의 크기는 족히 4m를 넘는다.

그런 놈이 제아무리 빨리 움직인다고 해 봐야 내 시야를 벗어날 수는 없을 테니까.

콰가가각! 콰아앙!

전류가 잔뜩 휘감긴 오러 블레이드가 놈의 몸통을 난자했다.

무수한 파편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놈이 양손을 뻗어 나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나는 이미 그 자리에서 벗어난 뒤였고.

콰콰콰쾅!

나는 놈의 목을 향해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놈의 목에서 다시 한번 파편들이 튀어 올랐다.

놈의 눈에서 짙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조금 화가 난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말릴 수는 없다.

오감이 되돌아온 자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된 상태였으니까.

내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놈의 체력 게이지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열심히 태고의 골렘을 향한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저들 역시도 허공에 떠올라 있는 딜 미터기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1위 한강민 – 123,655,433]

압도적인 수치다.

2위가 884,344 데미지였으니까.

그리고 저 수치는 당연히 이번 층을 클리어하고 난 뒤의 보상과도 직결된다.

나는 태고의 골렘의 전신을 훑으며 사정없이 공격을 이어갔다.

아직도 세 번째 파티는 도착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분명 그러지 않았던가.

내가 파티원들을 통해 다른 파티를 불러 모았을 때 말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을 잡아 보겠다고 되도 않는 자랑질을 해대는 꼴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녀석들도 모두 똑같다.

그때 그들이 보냈던 눈빛들.

자신의 파티 리더가 무리의 권력을 휘어잡길 바랐던 그 눈빛들.

그 다음 잠시 분위기에 취해 서로를 위하는 척했다지만.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부우우우웅!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호를 그렸다.

검이 놈의 골반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거센 충격을 받은 놈의 몸이 크게 휘청였고.

"지금이다아아아!"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놈이 기울어지는 이 틈을 노려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 태고의 골렘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이제 남은 체력은 30%.'

태고의 골렘의 체력이 엄청난 속도로 빠지고 있었다.

현재 가한 총 데미지의 80%는 내가 입힌 데미지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파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인내의 길을 택한 파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난의 길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하루 만에 중앙부에 도착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니까.

그저 내가 말도 안 되는 속도였을 뿐이고.

내 선택을 받은 저들이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태고의 골렘의 체력을 더욱더 빠른 속도로 줄어가고 있었고.

'이제 10%'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20%의 체력을 더 줄였다.

그동안 엄청난 수의 골렘을 학살하며 스탯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충 10분 정도 지났을 때.

쿠르르르릉!

태고의 골렘의 체력이 0%가 되었다.

태고의 골렘의 거대한 몸체가 바닥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가 와르르 무너지니 대신전의 중앙부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을 뿐이다.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태고의 골렘을 처치했습니다.]

[30층의 클리어 조건을 모두 완수했습니다.]

타앗

나는 그제야 땅에 발을 디디며 착지했다.

홀가분하다.

이제 드디어 지긋지긋한 골렘의 사원을 벗어날 시간이 다가왔다.

"우아아아아아아!"

"됐다! 됐어! 태고의 골렘을 쓰러트렸어요!"

"만세에에에에!"

"고맙습니다! 강민 씨! 정말 고마워요!"

그들의 환호성을 뒤로한 채 곧 떠오를 메시지를 기다렸다.

[업적 '너무 빠른 30층 클리어'를 달성했습니다.]

[너무 빠른 30층 클리어]

>20분 이내에 태고의 골렘을 처치했을 시 주어지는 업적

[30층 클리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이런 게 있었나.'

전생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업적이다.

그렇다는 건 전생에서도 이 정도 속도로 태고의 골렘을 사냥한 플레이어는 없다는 뜻이리라.

'좋군.'

좋은 소식이다.

그만큼 나의 성장이 훌륭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테니까.

플레이어들은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다시 한번 광분했다.

"헉! 업적!"

"업적 처음 달성해 봐요!"

"저도! 저도 처음이에요! 와아아…. 내가 업적을 달성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나 같은 경우야 업적을 달성하는 게 이제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업적에 대한 정보를 꿰뚫고 있었고, 달성할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업적을 통해 능력을 하나 얻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게 평범한 플레이어들의 현실이다.

탑을 오르며 업적 하나만 달성해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당연히 전생의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메시지.

[순위 집계가 완료되었습니다.]

[순위에 따라 보상을 선택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강민 씨가 첫 번째겠네요."

"당연하지. 강민 씨가 아니었다면 업적같은 건 생각해 볼 수도 없었을 테니까!"

AAA등급 1개.

AA등급 5개.

A등급 10개.

그 밑으로도 쭈욱 나열되어 있지만, 어차피 의미 없다.

여기 있는 인원들은 모두 최소 A등급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허어억…."

"아, 아티팩트…. 아티팩트다아아아!"

"우아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티팩트.

그것도 무려 A급 이상의 고급 아티팩트다.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그리고 나는 이미 내가 선택할 보상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목록을 훑어본 순간, 단번에 내 눈을 사로잡은 아티팩트.

[아티팩트 – 강화]

>등급 : AAA

>능력 하나를 선택하여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다.

바로 이것이다.

유일한 AAA등급의 아티팩트.

아티팩트의 등급은 성능과 직결된다.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강화' 아티팩트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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