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꽤 어색하군.'
검을 들고 있음에도, 발을 디디고 골렘들을 베어 내고 있음에도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다.
'촉각 정도야 전투에 큰 지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
당연히 전생에서는 지옥의 길에 도전하지 않았다.
그럴 힘도, 깜냥도 되지 않았으니까.
그 말은 즉, 촉각이 없이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이다.
처음 느껴 본 감상으로는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싸울 때에는 시야와 소리만이 아니라, 검을 쥐고 있는 그 미묘한 감각을 충분히 느껴야 한다.
검으로 상대를 베어낼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미묘한 감각을 포착하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신체를 움직여야 하니까.
하지만 그런 모든 감각이 삭제된 상태에서는 나도 모르게 과한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체력 분배가 흐트러진다는 뜻이지.'
하지만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아직 미묘한 차이일 뿐이고, 이 속도라면 충분히 내가 계산했던 시간 안에 지옥의 길을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골렘들을 베어내면서 빠르게 맵을 살폈다.
'대충 1/3 지점이다.'
준수한 속도다.
아직 2단계가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
2단계까지는 어떻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청각이 마비되기 시작하는 3단계부터는 난이도가 극도로 치솟을 테니까.
그렇다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속도 역시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해.'
지금 당장의 목표는 시각이 마비되기 전, 대신전의 중앙부에 도달하는 것.
그게 가능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극도로 짧아진 거리라고는 하지만 평균으로 봤을 때 최소 하루, 이틀은 소요되는 거리다.
물론 나는 반 이상 시간을 줄일 생각이지만.
'잡념은 지우자.'
생각할 시간에 골렘을 한 마리라도 더 베어 넘기고, 1미터라도 더 달려야 한다.
"몰른, 뛰어!"
내가 외쳤다.
그렇게 두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렸을 무렵.
"흐어어억! 흐어어억!"
몰른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그에게 포션 하나를 건넸다.
포션을 받아 마신 몰른의 숨소리가 차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죽을 뻔했어요오오!."
몰른의 외침과 함께 순간 동굴의 축축하고 불쾌한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작됐군.'
[골렘화 2단계가 진행됩니다.]
[플레이어 한강민 님의 후각이 마비됩니다.]
2단계가 진행된 것이다.
지금 나의 위치는 지옥의 길의 1/2 지점을 조금 넘은 위치.
'2단계가 진행된 시점에서 절반을 돌파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앞을 나를 공격하는 골렘들도 더 강해질 것이며, 길 또한 이전보다 훨씬 거칠고 험해질 테니까.
'3단계가 진행되기까지는 앞으로 3시간, 길어야 4시간.'
청각까지가 마지노선이다.
시각이 마비되기 시작하면 살아남을 확률은 0%에 수렴한다.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그저 앞으로 뚫고, 또 뚫고 나가야만 한다.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6번째 파티가 골렘 대신전에 진입했습니다.]
[7번째 파티가 골렘 대신전에 진입했습니다.]
[7개의 파티가 모두 골렘 대신전에 진입했습니다.]
[현재 인원 : 73명]
이제야 마지막 파티가 30층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파티를 구성하는 데 몇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뜻이리라.
'인원이 줄었어.'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파티를 구성하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고.
'안타깝군.'
그들을 동정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내 코가 석 자다.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후각까지는 괜찮지만.'
골렘에게는 체취도, 피 냄새도 없다.
그러니 전투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감각을 상실한다는 건, 단순히 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익숙한 것이 사라지고 나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묘한 긴장감이 내 전신을 감쌌다.
작지만 꾸준히 쌓여 갈 이 피로감은 내 체력을 계속해서 갉아 먹을 테다.
나는 체력 포션 하나를 꺼내 마셨다.
익숙한 포션의 냄새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각이 사라지니 당연히 미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역겹군.'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액체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간다.
포션 마시는 일이 이토록 끔찍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나는 애꿎은 포션 병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침착해야 한다. 동요하면 안 돼.'
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이거다.
작은 충격이 몇 배의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상실한 감각만큼 내 신경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누적되는 피로감이 커지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인과다.
골렘을 처치하는 것 외에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얹힌 셈이었다.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체력을 잘 분배해야 한다.
그것이 지옥의 길을 클리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
"결국 다시 이렇게 됐군요."
"…그나마 우리는 양반이었죠."
강민과 함께 처음 파티를 이뤘던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같은 파티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더 이상 용사 무리가 없다.
대부분이 10위권, 20위권대에 랭크되어 있던 플레이어였으니까.
그들이 30층에 진입한 건, 대략 네 시간 전.
강민이 떠나고 대충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쩔 수 없죠. 그때 분위기를 보니까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칼부림도 날 판이었으니까요."
"……."
다시 한번 탑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그들은 말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내심 안심하고 있기도 했다.
어쨌거나 30층의 클리어를 목전에 두고 있었으며, 현재의 파티원들과는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택한 길은 인내의 길.
가장 멀지만 동시에 평탄한 길이었다.
실제로 그들을 습격하는 골렘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곳곳에 쉴 만한 공간도 꽤 많이 존재했다.
루트를 선택할 때, 잠시 의견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강민도, 용사도 없는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강민을 제외하고 남은 여섯 파티.
이전의 파티원들을 모두 모으려던 그들로서는 자연스럽게 용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3명이라는 인원 제한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들의 전력은 약해졌지만, 혼란보다는 안정을 택한 셈이다.
"살아서 여기를 벗어나는 것. 그거 하나만 생각합시다."
파티의 리더가 조금은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
그 역시 강민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자신의 한계를 말이다.
한때는 탑의 정상에 올라 랭커의 반열에 들고 싶었고, 이름 날리는 길드에 속해서 힘과 권세를 누리겠다는 꿈을 꾸었던 적도 있었지만.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분수가 있는 거지.'
혀끝이 쓰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민이라는 괴물을 보고 난 뒤 자신의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살아남으면, 결국 강해질 것이고.
강해지면 탑의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으리라.
그것이 탑의 또 다른 이치기도 했다.
"갑시다! 기운 내자고요!"
파티원 한 명이 외쳤다.
반면 다른 파티들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애초에 파티원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조금 더 좋은 파티원을 구성하고, 더 강한 용사를 파티에 포함시키기 위한 결과였다.
"……."
함께 걸어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화조차 없다.
특히나 파티 구성 과정에서 살인을 한 플레이어가 속해 있는 파티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골렘을 처치하기 위해 무기를 뽑아 들었을 뿐인데도, 플레이어들은 흠칫흠칫 놀라며 견제하기 일쑤였다.
"이…. 적당히! 적당히 좀 해!"
결국 폭발한 플레이어가 소리쳤다.
파티 구성 중 살인을 저질렀던 플레이어다.
안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던 와중, 파티원들까지 저런 태도를 보이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가 파티원들을 향해 악을 내질렀다.
"다 더러운 새끼들이 왜 나만 쓰레기 취급하는 건데?"
"……."
그의 고함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멸시가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볼 뿐이었다.
"솔직히 여기에서 사람 안 죽여 본 새끼 있어? 없잖아! 너도! 너도! 다 똑같은 새끼들이… 이, 이이이!"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얼굴이 벌겋게 닳아 올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른 플레이어들은 더욱더 그를 거리두기 시작했다.
채애앵!
그때 화를 참지 못한 남자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럴 줄 알았어! 너 같은 새끼는 싹을 뽑아야 돼!"
파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30층에 올라서고 나서도 서로에게 검을 뽑아 들었고.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눴다.
결국 인명 피해가 또 발생했다.
아직 30층의 초입 부분에 불과했지만, 파티원의 절반이 플레이어들의 손에 죽어 버린 경우도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한 플레이어가 검상을 부여잡고 괴성을 내질렀다.
이런 현상은 한 파티에서만 발생한 건 아니다.
살인을 저지른 플레이어가 속한 파티 모두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
"후우…. 후웁."
나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촉각과 후각.
그 두 감각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혹시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제대로 싸우고 있는 것은 맞는지.
매 순간 스스로를 의심하고 돌아보며 누적되는 피로감은 점점 더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꿀꺽
포션 한 병을 꺼내 마셨다.
'포션의 복용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2단계가 시작된 지 3시간이 조금 안 됐을 무렵이다.
그 사이에 네 병째다.
평소라면 하루 종일 싸워도 포션 한 병 정도 먹는 정도였건만.
포션의 복용량이 너무도 크게 늘어 버렸다.
포션을 과용하니 그 부작용으로 인해서 미약한 현기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위험해.'
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맵을 펼쳤다.
이제 1/3 정도가 남았다.'
꽤 많이 왔다.
하지만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3단계가 진행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렘화가 진행되는 데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
대략적으로 유추만 가능하다.
'그게 더 사람을 미치게 하지.'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욱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결국 내 선택이었다.
책임지는 것도 나다.
'이번 업적만 달성하고 나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골렘 메이지, 골렘 워리어, 골렘 사제.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골렘 히어로.
베어내고, 박살 냈다.
깨부수고 짓밟았다.
'더, 더, 더!'
속으로 나를 다그쳤다.
이제 곧 청각마저 사라지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내 가슴을 조였지만, 그 감정을 애써 외면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나면 그거야말로 끝이다.
'패닉.'
지옥의 길을 택했던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가장 큰 원인.
나는 그 두려움을 골렘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극복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살아 있고.
골렘을 쳐부수고 있다.
그걸 내 눈으로 보고 있다.
그거면 된다.
나는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때였다.
터어엉-
골렘의 몸체가 박살 나 떨어지는 소리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
때가 왔다.
굳건하게 서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휘청했지만 간신히 검을 바닥에 꽂아 넣은 채로 몸을 지탱했다.
검을 박아 넣었다는 감각도, 검이 박혀 들어갔음을 증명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와 함께 떠오른 메시지.
[골렘화 3단계가 진행됩니다.]
[플레이어 한강민의 청각이 마비됩니다.]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동굴이 너무도 넓어 보였다.